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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과의사의 감사하는 마음

글/ 대만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매일 이른 아침에 대만 각 현시의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공원, 학교에서 연공하고 있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날씨가 춥든 덥든 그들은 쉬지 않고 계속 연공했다. 그들의 표정은 고요하고 움직임이 상서로웠다. 파룬궁(파룬따파)은 심성을 닦는 것을 강조했고 도덕을 승화하고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부합되는 좋은 사람이 되고 끊임없이 자신을 승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많은 수련생은 가정, 회사 각 방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고 사회 중 한 가닥 안정적인 힘이 됐다. 그들은 각 분야에 분포되어 있다. 대학교수, 공무원, 변호사, 엔지니어, 교사, 대학생, 군경, 노동자, 농민, 가정주부 등 각 계층 인사를 포함한다. 이란현 뤄둥(羅東) 중학교 연공장의 천궈펑(陳國峰)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천궈펑은 치과의사고 올해 56세이며 소박한 이란 작은 현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성적이 우수하고 문학과 역사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다. 고등학교 때 타이베이 젠궈(建國) 고등학교에 다녔다. 모교의 자유로운 학풍은 그가 인생과 생명의 가치의 진리를 찾는 길을 사색하게 했다. 1979년 타이베이 의대에 들어갔을 때 인연으로 불학(佛學) 동아리에 참가했고 이후로 약 20여 년 동안 그는 망망대해처럼 넓고 끝이 없는 삼장(三藏) 12부 경서에 빠져있었다. 그는 불교의 이치가 좋지만 좀처럼 올라가기 힘들고 시종 자신의 심신을 개변할 수 없다는 것을 체득했다. 우울증과 불면증은 그를 수년간 괴롭혔다.

1999년 ‘9.21’ 대지진 당시 대만에서 2,5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죽었다. 뉴스화면으로 많은 생사이별의 비극을 본 천궈펑은 갑자기 인간의 생명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체득했고 다시는 귀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때 그는 운 좋게 파룬궁을 만났다. ‘전법륜’을 보는 첫 순간부터 그는 이 책은 진정한 불법(佛法) 정도(正道)라는 것을 알았고 그가 장기적으로 불교 경서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의혹을 철저히 해결해줬다. 이후부터 천궈펑은 파룬따파가 바로 그의 생명의 종점이라고 확신했다.

우울증 불면증이 약 없이도 낫다

처음으로 ‘9일 학습반 테이프’를 봤을 때 천궈펑은 리훙쯔 사부님의 주위에 시종 황금색 광환이 있는 것을 보고 아주 신기해했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 원래 그는 저녁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났으며 거의 매일 아침 8시 알람이 울려야 깨어났다. 그런데 그가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고 법공부하려고 한 후부터 새벽 3시 15분에 자동으로 일어났다. 이런 상황은 일주일이나 지속해서야 사라졌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는 그가 수련하는 신심을 높여주었다.

천궈펑은 원래 성급하고 고집이 세며 화를 잘 참지 못하고 쉽게 다른 사람과 충돌이 생기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파룬궁을 배운 후 원래의 이기적이고 좁았던 흉금이 넓어졌고 점차 책에서 요구하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를 해낼 수 있었다. 아마 이 원인인지 몇 년간 그를 괴롭히던 우울증과 불면증은 파룬궁을 배운 후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아주 빨리 나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신체가 약하고 병이 많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18년간 몸이 건강했기에 병원에 간 적이 없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은 적이 없다. 진정으로 질병이 없고 온몸이 가벼운 행복함을 느꼈다. 사실 이런 상황은 파룬궁수련생에게는 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저지

대만에 ‘좋은 물건은 친구와 나눠야 한다’라는 광고 명언이 있다. 천궈펑의 아버지는 원래 목재기업가고 퇴직 후 각종 법문에서 배회를 했었는데 연공한 후의 천 의사 부부의 신체적 변화를 보고 당시 70에 가까운 아버지는 단호하게 기타 법문을 포기하고 한 마음으로 파룬궁을 수련했으며 이후로 심장병이 사라졌다. 직접 많은 혜택을 봤기에 천궈펑은 늘 각급 학교, 정부 기관과 회사의 요청으로 가서 강연했다. 보통 그는 생명교육과 의학전문가로 접근해 자신의 실례로 파룬궁이 질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데 신속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고 인연 있는 사람이 법을 얻길 바랐다.

천궈펑이 수련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인터넷을 통해 중국공산당이 잔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파룬궁이 돈을 받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단지 중국 대륙에서 연공하는 인원이 너무 많아 집권자에 의해 이유 없이 탄압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쩌민(江澤民) 집단은 전 국민이 파룬궁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해 분신자살, 살인 사건을 많이 만들어내고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했다. 그와 같은 법을 수련하고 있는 대륙 파룬궁수련생이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을 견지해 수감당하고 심지어 학대당해 사망한 것을 보고 자기 일처럼 생각했다. 그리하여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파룬궁의 진상을 똑똑히 알렸다.

'图1:二零一六年五月十二日,陈国峰在纽约参加集体炼功'
2016
512, 뉴욕에서 단체연공에 참가한 천궈펑

초대를 받아 강연하고 문장을 쓰고 투고하는 외에 천궈펑은 10여 년래 해외에 가서 법을 널리 선전하고 진상을 알리는 활동에 늘 참가했고 유럽, 미국, 아시아, 호주 등 각 지역에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박해를 폭로했다. 어떤 사람은 이해되지 않아 “의사로서 늘 휴진하고 외국에 가면 시간과 돈의 손실이 아주 크지 않나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천궈펑은 단지 은혜에 보답하려 애써야 한다는 인간의 기본 됨됨이에서 출발해 자신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는 일반 사회에서 일을 잘해야 하고 어디에서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활동에 참가하기 전에 그는 휴진 시간을 이용해 잔업을 하거나 환자를 잘 배치해 그들이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영향받지 않도록 했다.

안으로 집착심을 찾고 모순을 피하지 않는다

파룬궁은 질병의 근원이 업력이고 수련인은 병이 없지만 다만 가끔 비슷한 질병 증상이 ‘소업’형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천궈펑에게 깊은 인상을 준 ‘소업’ 현상이 두 번 있었다.

수련 초기 한번은 그의 목이 갑자기 뻣뻣해지고 나무인형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고 걸을 수 없었으며 약간만 움직여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당시 그는 수련에 대한 이해가 아직 깊지 않았기에 바로 ‘난 수련인이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심성에 누락이 있는지 찾아보지 않았으며 찜질이라는 사람의 방식으로 잠시 편안하려고 했다. 법공부하고 연공해도 추구하는 마음을 갖고 했기 때문에 이틀을 끌어서야 비로소 나았다.

2015년 4월 초, 천궈펑의 몸에 또 소업 현상이 나타났다. 그는 갑자기 배가 꼬이는 듯 아프더니 서거나 앉을 수 없어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뒹굴어야 했는데 만약 하나의 자세로 몇 분 있으면 더욱 아팠다. 이번 병업은 사납게 왔고 24시간 내내 통증이 지속됐다. 정말로 하루를 1년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다행히 줄곧 사부님의 이름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었고 가족 수련생이 그에게 수련인의 정념을 잊지 말라고 격려해줬기 때문에 하루 후 기적이 나타났다.

천궈펑의 회상에 따르면 이번 소업이 해결된 가장 관건적인 것은 그가 위급한 순간에 수련의 법보인 ‘안으로 찾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년간 그는 두 일반인 어르신과 모순을 화해하지 못했다. 줄곧 피해 가는 방법으로 충돌을 면했다. 몸이 극히 괴로울 때 그는 자신에게 이 모순을 직접 대면해야 하고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의 모든 통증과 증상이 즉시 사라졌다. 이튿날 그는 전문적으로 두 어르신을 뵈러 갔고 진심으로 몇 년 동안의 잘못을 사과했다. 마음의 매듭을 풀은 후 그들과의 관계는 지금까지 아주 화기애애하다.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다

천궈펑은 수련하기 시작하자 잇따라 많은 진상을 알리는 항목과 협조하는 일에 참여했고 일을 적지 않게 했지만, 심성은 많이 제고되지 못했다. 주로는 안으로 찾는 데 공을 들이지 않아 헛고생을 많이 했다. 그가 가장 많이 범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잘난 체하며 자신의 견해가 고명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며 너그럽게 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권위적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는 능력을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나중에 자신의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 실증되면 심지어 득의양양해 하거나 이 집착심을 더욱 증가시켰다.

몇 년간 구체적인 항목 중 천궈펑과 합작하는 수련생이 있는데 기가 아주 세서 그는 상대방과 합작을 아주 힘들어했다. 이전에는 최선을 다해 만나는 기회를 피했기에 표면상으로는 무사 평온했는데 2016년에 둘이 함께 일하기 시작하자 모순이 매우 격화됐고 상대방은 마치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비록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천궈펑은 여전히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후에 다른 수련생의 미움을 사기 싫어하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오히려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천궈펑은 당시 전국 시기 조나라의 인상여와 염파의 ‘장상화(將相和: 장수와 재상이 화해하다)’ 이야기가 생각났고 어느 쪽에서 책임을 지고 처분을 바라는 것이 중점이 아니고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수련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체 법공부 교류할 때 천궈펑은 100명 이상 수련생이 참가하는 장소에서 진심으로 자신의 집착심을 말했고 자신의 쟁투심, 비교하는 마음, 경쟁심, 득실심, 추구하는 마음, 체면과 다른 사람을 깔보는 마음 등 부족함을 찾아냈다. 천궈펑은 이번에 직접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것은 그의 양해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체를 고려해 함께 이 항목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상황이 바뀔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계속 이 항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결과 형세는 호전됐고 쌍방은 모두 진일보 안으로 찾았다.

수련해 기쁘게 다시 태어났으니 더욱 정진하고 은사님께 감사드리겠다

올해 리훙쯔 사부님께서 파룬따파를 널리 전하신 25주년과 대만 설법 20주년, 이 두 경축일을 맞이하며 추석 전에 천궈펑은 특별히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18년간 그는 체력이 약하고 우울하며 내성적이고 겁이 많던 일반인으로부터 신체가 건강하고 적극적이며 낙관적인 대법제자로 변했다. 더욱 기쁜 것은 무지몽매한 생활과 작별했고 원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반짝반짝 빛나는 대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천궈펑은 이후로 심성을 닦는데 더욱 중시하고 자신을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로지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만 사부님의 만분의 일의 은혜라도 갚을 수 있다. 그는 이 한 차례 박해가 빨리 끝나고 더욱 많은 세인이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서서 직접 ‘진선인(眞善忍)’의 상서로움과 아름다움 및 파룬궁 진상을 명백하게 알길 바랐다.

원문발표: 2017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13/3565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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