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특별한 인생 경험이 있는 대법제자다. 나이는 70세로서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19년이 됐다. 이번 밍후이 대륙 법회기간에 사부님께 내가 세 가지 일을 한 수련 체험을 보고드리겠다.
사당(邪黨)의 호소에 따라 반란과 혁명으로 감옥에 갇히다
나의 인생 경험은 이 문장과 큰 관계가 없으므로 여기서는 말하지 않고 오직 나의 개인경험 중 관건적인 부분만 말하겠다.
지난 세기인 60년대 중기,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본성의 중점대학에 속하는 한 중의학 대학에 입학했다. 얼마 안 되어 중국공산당은 중화민족에게 깊은 재난을 가져다주는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문화혁명 전 나는 학생회 주석 겸 단 지부 서기였기에 역시 휘말려 들었다. 중국공산당의 ‘혁명은 무죄, 반란은 도리가 있다’는 속임수 아래에 나는 홍위병 반란단(團)에 가입했다. 내가 참가한 반란단은 대학생 183명으로 조성된 가강련(加強連)을 설립해 내가 연장(連長)을 맡았다. 나는 대형 투쟁에 참가했기에 문화혁명이 끝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는 내가 직접 사당의 ‘토사구팽’을 겪은 것이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진상을 말하는 도중에 나는 직접 겪은 경험으로 박해에 참여한 국보(국내안정보위국)와 ‘610’인원에게 알려주어 그들이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이해하는데 일부 작용을 일으켰다.
내가 모 중범죄자 감옥에서 있을 때 그 안에 적지 않는 국민당의 ‘전범’(중국공산당에게 포로가 된 고위 장교)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전에 장제스(蔣介石) 전담 의료진을 맡았던 국민당 고위급 인원이었다. 당초에 그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가려 했는데 공항에 온 공산당군에 의해 포로가 됐다. 그의 의술은 대단했는데 내가 의대생인 것을 알고는 출옥 전에 그의 의술을 나에게 전수해주었다.
보통 무기징역은 2년 후 유기징역으로 감형해주었는데 나는 8년 감옥살이에도 감형이 없었다. 하루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공안부 부부장이 감옥을 시찰할 때 나를 보고 나를 위해 몇 마디 말해주었는데 며칠 지나자 관련 부서는 곧 유기징역으로 해주었고 감형도 2년 더 해주었다.
판결이 유기징역으로 바뀐 후 나는 관리가 느슨한 노동교양 농장에서 복역했는데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주기 시작했고 점차 명성이 자자해졌다. 농장 인근에 한 8년 동안 침대를 떠나지 못하던 전신 마비 농민을 내가 치료해 낫자 그는 그의 딸을 나에게 시집 보내 감사의 뜻을 표했다. 내가 형기가 차서 출옥한 당일에 그는 나를 그의 집에 데려다 혼례식을 치렀다.
그의 딸은 나보다 24세나 적었다. 이렇게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 C현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정식으로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의사 생활은 이후 파룬궁 수련으로 박해를 받은 후 내가 진상을 말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편리한 조건이 됐다.
간수소에서 대법을 실증
예전에 패싸움으로 신체가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또 10여년 감옥생활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98년 나는 행운으로 대법을 얻었다. 법을 얻은 지 일주일 만에 사부님께서는 곧 내 신체를 청리해주셨다. 나는 연속 한 달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물만 마셨지만 정신은 아주 좋았다. 외출해서 홍법을 해도 하나도 영향 받지 않았다. 두 달 후 곤란과 시달림을 주던 고통이 모두 좋아졌고 나는 진정으로 무병한 몸을 체험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한번은 제3장 공법 관통양극법을 하다가 파룬을 돌리는데 단번에 땅에서 날아올랐다. 얼마 안 되어 천목도 열렸다.
1999년 ‘7.20’에 사당(邪黨)은 대법제자를 광적으로 박해했다. 나와 많은 현지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려고 계획했다가 불법적으로 간수소에 갇혔다. 간수소에서 모진 매를 맞고 족쇄, 수갑이 채워졌으며 침대, 쇠의자(철제 형구)에 앉는 박해를 받았다. 수련생들은 의연히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진상을 알렸다. 어떤 수련생은 단식으로 반박해를 했다. 수감자들은 대법제자의 언행에 탄복했고 잇달아 수련생을 따라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어떤 수감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수련생을 도와 쪽지를 전달해주고 혹은 수련생 몸의 형구를 풀어주었다.
‘5.13’ 사부님 탄신일과 ‘세계 파룬따파 날’이 오면 이 위대한 명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간수소에서 5월 13일에 불법적으로 수감된 전체 수련생들이 간수소 마당에 나가 단체 연공할 것을 제출했다. 간수소는 동의하지 않았다. 5월 13일 오전 나는 곧 감방에서 “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높은 소리로 외쳤다. 나는 큰 목소리를 타고 나서 전 간수소가 모두 들었다. 기타 간수소 수련생들도 즉각 같이 외쳤다. 한동안 “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간수소 경찰은 아연실색했고 살기등등하게 감방에 들이닥쳐 내가 선두로 외쳤는지 물었다. 내가 선두로 외쳤다고 하자 경찰은 즉시 두 수감자를 시켜 50kg짜리 족쇄를 나에게 채웠다. 동시에 나에게 또 특수 수갑을 채웠다.(정상적인 수갑보다 견디기 힘듬). 그 후에 또 두 명의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수감자가 나를 들고 구령을 부르면서 내 머리를 벽에 박았다. 만약에 일반 속인이라면 한번만 부딪히면 아마도 골절하든지 머리가 터질 것이고 적어도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다. 그들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내가 벽에 부딪쳐 자살했다고 할 것이다.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정책은 곧 ‘때려죽이면 그만이고 자살로 취급한다’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매우 평온했고 놀라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벽에다 부딪히는데 얼마나 들이 박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 머리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었고 심지어 붉어지거나 붓지도 않았다. 머리도 혼미하지 않고 눈도 어지럽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과 같아서 경찰과 수감자들은 모두 놀랐고 멍해졌다! 한 수감자가 감방 두목을 보고(감방마다 우두머리를 정해놓고 관리에 협조함) 말했다. “너무나 신기해요! 당신이 두목을 하지 말고 저 사람보고 하라고 해요.”
내가 그들에게 나의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고 제자를 대신해 이 일체를 감당하신 것을 알려주었다. 본래 ‘7.20’ 박해가 시작된 후 내 천목은 닫혔는데 이번 일로 다시 열렸다. 동시에 이전보다 더욱 똑똑하게 보였다.
얼마 안 되어 간수소는 정말로 나를 감방 두목으로 안배했다. 나는 곧 감방안의 수감자들의 싸움을 금지하고 새로 온 사람을 때리거나 벌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로 온 수감자를 때리고 시달림을 주는 간수소의 수십 년 ‘전통’을 내가 바꿔버렸다. 나는 또 같은 감방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배우고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으로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주었다. 본래 죄수들 사이에서 때리고 싸움질 하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간수소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대법의 감화로 이 감방의 풍기는 변했고 싸우는 자가 없어졌다. 이렇게 내가 관리한 감방은 이로 인해 ‘문명 감방’ 칭호를 얻었고 또 나에게 무슨 상장을 발급했다.
나의 이번 납치 감금은 진(鎭)의 사당서기가 나에게 자신의 병을 치료한다는 명의로 진 정부에 불러놓고 파출소 경찰에게 나를 체포하게 한 것이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말해주어도 그는 듣지 않고 “장쩌민의 정책을 집행한다”고 말했다. 내가 “인과응보는 천리인데 당신이 나를 붙잡으면 얼마 안 가서 당신도 들어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는 “당당한 제일 책임자 서기가 어떻게 감옥에 들어가겠는가”라고 하며 전혀 믿지 않았다.
20일 후 그는 9천여 위안을 수뢰한 혐의로 간수소로 들어갔다. 들어오자 수감자들이 한바탕 두드려 팼으며 감방을 바꾸면 또 매를 맞았다. 이후에 내가 있는 감방으로 들어왔다. 만약 속인이라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좋은 복수의 기회인 것이고 그에게 더욱 큰 고통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난 것이 대법 수련을 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복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관심을 보여주었고 그도 더는 매를 맞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잘못을 빌었고 나는 그에게 다시는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또 보응이 온다고 알려주었다.
그가 수뢰한 돈이 판결에는 못 미처 그는 또 돌아가 출근했다. 이때부터 그는 다시는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또 인터넷을 제공해 ‘삼퇴’하는 일도 도와주었다.
개정 전 법원은 나에게 한 변호사를 지정해주었는데 나는 거절했다. 나는 자신이 자신을 변호하겠다고 했다. 법정에서 나는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말하고 결국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즉시 석방됐다.
집으로 돌아온 후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고 법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법공부를 잘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사부님의 ‘환경’ 문장에서 깨달았는데 대법에 하나의 정확한 위치를 주어야 했다. 이렇게 나는 병원 문 앞에서 매일 조용한 마음으로 두 강의 ‘전법륜’을 공부하는 것을 견지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수련을 견지하면 감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악당의 법률 규정은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수시로 감옥살이를 할 수 있음) 나는 줄곧 정정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법공부하고 진상을 말했다. 나는 내가 두려운 마음이 없다고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박해를 받아도 대법제자는 놀라서 물러서지 않고 반대로 대법 수련을 더욱 결연히 한다는 것을 세인에게도 보여줬다. 세인에게 용기를 주고 수련생 사이에 상호 격려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두 번이나 세뇌반 박해를 해체하시다
박해가 제일 미친 듯한 그 몇 년간 사당은 대량의 세뇌반을 만들어 대법제자를 박해했다. 그 중 우리 진(鎭)은 파룬궁 수련생이 많아 줄곧 사악의 중점 감시대상이었다. 어느 날 진 정부는 갑자기 이미 몇 년간 폐허로 된 경로당을 수리했는데 유리창에는 쇠창살을 설치하고 나무 대문은 철문으로 바꾸었다. 시공에 참여한 진상을 아는 한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수련생에게 이 일을 말했다.
수련생은 곧 공무원 중 대법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사당이 이곳을 이용해 대법제자 중 ‘중점 인물’을 대상으로 세뇌반을 운영하고 세뇌반에서 전향되지 않으면 노동교양소로 보낸다고 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수련생은 자신의 개인 안위를 고려해 숨는 것이 아니라 사악이 사람을 납치하기 전날 저녁에 여러 수련생을 조직해 단체 발정념을 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1]고 하셨다. 우리의 정념은 확실히 기적을 나타냈다. 저녁 11시, 본래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모이더니 밤 12시부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해 줄곧 아침 6시까지 내렸다. 묘하게도 강 직원이 수문을 여는 일을 깜박해 강물이 맹렬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는데 진 정부와 그 대법제자를 감금하려던 경로당이 물에 깊이 잠겨버렸다. 3일 후에야 물은 물러갔다. 경로당은 온통 진흙탕이고 각종 쓰레기가 쌓여 오랫동안 청소하지 못했다. 정말 ‘물이 금산을 덮치다(水漫金山-중국 민간 전설)’가 현실이 됐다. 세뇌반도 운영하지 못했고 당시 박해는 이렇게 해체됐다.
몇 달이 지나자 진상을 알고 여러 번 수련생을 도운 진 정법위 서기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이번에 당신들을 보호하지 못했네요. 어떤 사람이 당신들 23명을 신고했고 이미 상부에 보고 됐습니다. 현 ’610‘이 당신들을 모두 붙잡아다가 학습반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는 또 말했다. “속담에 방울을 풀려면 그래도 방울을 맨 사람이 풀어야지요. 지금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제보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가 정부에 가서 그가 말한 것을 취소하는 것이죠. 제보가 잘못된 것이고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 됩니다.”
그 제보자는 내 옆집 사람이다. 그는 사당(邪黨)의 배치로 나와 다른 수련생을 감시했는데 사당이 한 사람을 제보하면 6백 위안을 준다는 미끼에 ‘610’에게 23명의 수련생을 고발해 1만 위안의 ‘포상금’을 받았다.
저녁에 내가 그를 집으로 초청해 속을 터놓고 그에게 1만 위안을 돌려주고 제보가 확실하지 못했다고 말하도록 권했다. 그는 이미 재물에 눈이 어두워져 말했다. “돈은 내 손에 들어왔고 돌려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우려되어 말했다. “파룬궁을 박해하는 돈도 감히 쓸 수 있습니까? 이는 큰 업보를 당할 일입니다. 당신은 돈을 아끼고 생명을 아끼지 않습니까! 돈이 중요하나요, 아니면 생명이 중요하나요?!” 일주일도 안 되어 그는 자기 집 찻집에서 손님에게 차를 따라주다가 갑자기 땅에 쓰러지고 4일 만에 사망했다.
나와 다른 수련생이 이 사람의 사망사례와 현지에 파룬궁을 박해해 보응을 받은 경찰과 정부 인원을 진 정부 관련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세뇌반 일은 현 ‘610’이 관계하므로 그들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저지할 힘은 없었다.
곧 현 ‘610’이 우리 지역 수련생들을 불법 체포하려고 하는 시기에 현에서 공업단지를 세우는 땅을 차지해 토지배상 문제가 있었다. 각급 정부는 금액을 층층이 뜯어냈고 결국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땅값은 아주 적어졌다. 그러자 현지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시 공안국은 대량의 경찰력을 동원해 진압하고 동시에 각지 공무원을 동원해 안정을 도모하려 했다. 그들은 사람과 시간이 없어 세뇌반을 꾸리지 못하고 이번 박해도 그렇게 해체됐다.
이후에 내가 이 두 차례 사건을 진 정부 대표에게 말해주었다. “두 번이나 당신들이 우리를 체포하려는 것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명백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당신은 우리 사부님과 대법의 위력을 본 것이 아닌가요?” 사실 앞에서 그들은 탄복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이 정확히 인식하든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든, 그것이 어떤 한 가지 생각을 품고 있든지 간에, 사실(事實) 앞에서 그들은 모두 인정해야 하며, 사실 앞에서 그들은 반드시 정시(正視)해야 한다.”[2]
본래 이번 농민들의 시위는 완전히 각급 탐관오리들이 농민의 토지배상금을 차지해 조성된 것이고 파룬궁과 어떠한 관계가 없다. 그러나 사당은 사람의 눈귀를 속이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파룬궁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악독하고 추악한 연극을 벌였다. 그들은 공업단지 관리위원회 건물에 파룬궁을 모함하는 사악한 대형현수막을 펼쳤다. 농민들의 시위가 파룬궁이 무엇을 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민중이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에 이번 모함 사건을 주도한 시 공안국장은 탐오 수뢰가 적발돼 사형판결을 받았다. 바로 선악은 보응이 있고 추호도 틀리지 않는다.
진료소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말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상을 말하는 중요성을 알려주었고 나는 곧 내 개인 진료소와 약방을 진상을 알리는 장소로 삼았다. 오직 내 진료소에 온 사람이나 문 앞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내가 진상을 말하는 대상이었다. 나는 직업이나 계층을 분간하지 않고 그가 얼마나 큰 관리이고 얼마나 돈이 많아도, 그가 와서 치료를 하든지 아니면 나를 박해하러 왔든지 막론하고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말했다. 어떤 때 내가 진상을 말하는데 경찰과 공무원이 옆에 있었지만 추호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천 가지 묘책이 있고 나는 나의 일정한 규칙이 있다고들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가?”[4]
그들은 직접 사람을 파견해 나를 검사, 감시하는 외에 또 내 좌우 인근 이웃을 안배해 몰래 나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게 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전화도 내 진료소 옆에 놓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오직 바르게 가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면 사부님께서 꼭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진상을 말하고 사람을 구하지 전혀 나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도하려고 거의 일체를 다 바치셨다. 나는 제자로서 왜 조사정법을 위해 일체를 다 바치지 못하겠는가?
환자를 상대해 나는 기본상 우선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시킨 후에 치료하고 약을 준다. 매주 몇 십 명을 탈당시킨다. 어떤 때는 백여 명을 탈퇴시킨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치병이나 불치병, 그리고 각종 암과 불임 환자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한 후 적지 않는 암환자들이 건강을 회복했고 오랫동안 불임이었던 사람도 아이를 갖게 됐다. 어떤 이는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아들을 원했고 정말로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나에게 매우 감격해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알려준다. “당신들은 감사를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감사드리지 말고 마땅히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파룬따파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나는 내 의료기술의 특별한 효과는 사부님의 가지와 대법의 위력이 발휘한 것임을 알고 있다.
각종 현대 의료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는 기적이 부단히 발생하자 내 명성도 갈수록 널리 퍼졌다. 일부 멀리 있는 환자, 심지어 신장, 베이징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를 찾아와 병을 보았다. 나는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해 진상을 들으러 온 것임을 알았다. 나를 찾아온 병자 중에는 공안국, 정법위와 정부 기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상을 알고 ‘삼퇴’한 후에 건강을 회복했고 동시에 대법을 위해 일부 일을 했다.
하루는 현 공안국장이 자신의 상사 같은 사람을 진료소에 데리고 와서 나를 찾았다. 이 사람은 자기가 50이 다 되어 가는데도 자식이 없다고 했다. 또 자식을 낳지 못하면 후대가 끊긴다고 하면서 전국에 유명한 불임 병원은 거의 다 찾아갔고 지금은 출국하는 길만 남았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당신은 무슨 나쁜 일을 하지 않았나요?” 그는 “저는 늘 법에 따라 일을 합니다.” 내가 또 물었다. “당신은 파룬궁을 박해한 적이 있나요?” 그는 말하기를 “저는 시 공안국에서 파룬궁 박해 사무를 보는 부국장입니다”(이후에 나는 그를 Z국장이라 하겠다.) 나는 말했다. “문제는 곧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파룬궁을 박해해 보응을 받았습니다. 당신 이 일은 오직 제 사부님께서만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이 아이를 낳으려면 오직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고 동시에 탈당, 탈단, 탈대해야만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일부 깨달음이 있었고 나는 한 봉지 한약을 지어주었다.
몇 달 후 이 Z국장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아내가 아이를 가졌어요. 당신이 말했던 그 일을 날 대신해 처리해주세요.” 그가 말한 그 일은 곧 ‘삼퇴’다. 연말에 그의 처는 아들을 낳았고 그는 고급 선물을 갖고 나에게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저는 아들을 낳았으니 당신도 하나 낳아요. 호구는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나는 이미 딸이 있는데 본래는 더 낳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처가 아들을 낳아 나의 의술을 전수하자고 했다. 이에 못 이겨 얼마 안 가 또 아들을 낳았다. 나는 60여 세에 또 아들을 낳아 한 동안 사람들의 미담이 됐다. 그때는 둘째를 가지면 안 되었는데 벌금도 내리고 호구에 올리기도 어려웠다. 이런 것을 그 Z국장이 날 도와 해결해주었다. 그는 이후에 또 그들의 공안정법계통 동료와 친구를 데리고 와서 병을 치료했다. 당연히 그들은 내가 진상을 말하고 삼퇴시키는 대상이 됐다.
이후에 한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주다가 악인의 모함으로 파출소에서 시 ‘610’ 세뇌반에 납치됐다. 그 수련생은 진상을 말할 때 수구하지 못하고 진상을 말할 때도 속인을 보호하는 것을 주의하지 못해 이 일을 그대로 세뇌반 사람들에게 말해주었고 직접 Z국장과 내 이름을 말했다. 재빨리 전 공안정법계통이 모두 알았다. Z국장은 큰 압력을 받았고 그는 내가 이번 일을 말한 줄로 오해하고 나에게 와서 원망했다. 나는 변명하지 않고 말했다. “두려워마세요,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나를 찾으라고 하세요.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으시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당신은 이미 공산당을 탈퇴했는데 곧바로 또 가입하면 안 됩니다. 더욱이 압력 하에서 대법에 미안한 짓을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아이는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보내주신 것이고 대법이 당신에게 준 것입니다. 당신은 아이를 지키길 원하지요?” 그는 말했다. “저는 당연히 아이를 지킬 것이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세뇌반을 주관하는 시 ‘610’ 처장은 그의 동창이었는데 그는 돌아가서 그 동창에게 수련생을 석방시키라고 했다. 그러자 ‘610’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동창에게 “당신이 상급인데 하급에 대해 방법이 없는가?”라고 했다. 마지막에 그들은 현 ‘610’의 태도가 어떠하든 직접 수련생을 풀어주었다.
상급에서 사람을 보내 Z국장을 조사하게 했는데 마침 조사팀 책임자가 군대에 있을 당시 그의 전우여서 이 일은 그대로 지나가버렸다. 이후에 시 공안국장이 장쩌민을 따라 대법을 박해하다가 낙마되고 처분을 당하자 Z국장은 또 대리국장을 몇 달 맡게 됐다. 그의 지위는 하나도 영향 받지 않았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7-미국 수도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4]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계속)
(밍후이왕 제14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7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4기(2017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8/3562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