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변함없는 마음으로 법을 외우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80세가 됐고, 최근에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법을 외우려 생각했을까? 처음부터 말하려 한다.

올해 9월, 나는 수련을 방금 시작했을 때도 저지르지 않을 몇 가지 착오를 범했다.

어느 날, 나는 한 40여세 여성에게 대법 진상을 모두 이야기한 후에 길가 녹지 옆에 있는 낮은 담장을 보았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한 걸음에 담장을 넘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므로 비범하게 담장에 올라가고 뛰어내리는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순간 머리가 납을 부어 넣은 것처럼 무거워져 땅으로 내리꽂혔다. 길을 가던 남자는 놀라서 “아이구”하는 소리를 냈고 한 줄기 힘이 땅에 닿아 넘어지려는 내 몸을 단번에 바로 세웠다.

나는 사부님께서 다시 한 번 나를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과시심이 부풀어 올라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사부님을 또다시 번거롭게 해드린 것이다. 20년이나 수련했지만 과시심이 너무나 강해 관건적인 시각에 법을 잊어버렸다.

또 하루는 동창회에 참석했는데 옛 동창들 중 어떤 이는 지팡이를 짚었고 어떤 이는 병을 달고 있었다. 나는 좌석에 앉아 그들을 보고 나를 보았는데 마음속으로는 내가 일반인을 멀리 초월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나의 신체가 좋은데 수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들처럼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심이 함께 올라오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크게 넘어지게 됐고 온 몸에 통증이 몰려왔다. 기어 일어나 고개를 숙여 보니 바지가 찢어져 있었고, 다시 보니 무릎에도 피가 났고 얼굴에는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 환희심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과시심, 환희심… 수련 초기에 버렸어야 할 집착심들이 내 몸에서 여전히 아주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스스로 수련의 길을 회상해 보니 나는 평소 대부분의 경우 내 방법을 고집하며 법속에 있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1] 나는 법을 적지 않게 배웠는데 왜 법을 얻지 못했을까? 가끔은 법공부를 많이 하려고, 스스로 세운 법공부 계획을 달성하려고, 임무를 완수하듯이, 보기만 하면 됐고 눈에는 들어와도 마음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며 사람의 마음으로 하늘의 책을 대했다. 가끔 다른 사람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뜻밖에도 잠을 잤고 내가 읽을 차례가 됐을 때 어디를 읽어야 할지 몰라 또 한 차례씩 법을 읽을 기회를 놓쳐 버렸다. 내가 법을 읽을 때는 정신이 빠져나가 눈을 부릅뜨고도 글자를 놓쳤으니 이런 상태로 어떻게 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心性(씬씽)의 제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고이다. 그가 날마다 연공(練功)함은 마치 체조를 하는 것과 같은데 죽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건 웃음거리이다. 그가 날마다 연공하지만 그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지 못하면 나는 그의 연공은 체조하기와 같다고 말한다. 단지 그 아주 조그마한 차이에도, 그는 그것을 개변하기를 몹시 어려워한다. 당신이 개변되었고 당신이 속인의 관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곧 신이다. 당신이 할 수 없다면 곧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천천히 수련하는 과정의 사상기초가 없이는 당신이 그에게 내려놓으라고 해도 그 역시 내려놓지 못한다!”[2] 사부님의 법을 읽고 나서 나는 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을 외우는 것이며, 머리에 법을 담고 있으면 법리로 하여금 나의 행위를 지도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을 외우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또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기억력도 좋지 않은데 언제 법을 다 외울 수 있을까?’ 법을 외우는 데 대한 수련생들의 교류를 보니 여러 가지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지만 나는 대조해 가며 한 구절씩 외웠다. 외우고 낭독하고, 외우고 생각했고, 사부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시는 것인지 생각했다. 글자 표면의 뜻 외에도 더욱 깊은 함의들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법리와 대조하니 여전히 많은 차이가 났다. 내가 얼마나 기억할 수 있는지 막론하고 법을 외우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사부님께서는 ‘과시심리’ 중에 말씀하셨다. “평소 자신이 명(名)을 위하고 이(利)를 위하면서 좋은 점을 조금 얻어도 널리 자랑하고 자랑하며, 과시하고 과시한다: 나는 능력이 있고 강자다.”[3] 만약 일찍이 법을 외웠더라면 내가 어떻게 80세 고령에 담을 뛰어넘었겠는가? 나는 법을 외울 때면 진지하게 상상했다. ‘내가 그런 과시심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에게 과시심이 있을까? 어느 방면에서 나타날까?’ 일찍이 법을 외우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되었다! 다행히 정법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다행히 사부님께서 아직도 나의 제고를 기다리시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무엇이 착실한 수련인지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사부님께 맹세했다. ‘제가 얼마나 기억할 수 있는지 막론하고 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법을 외우겠습니다.’ 날마다 법을 외우면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고, 스스로 유례가 없는 변화가 발생함을 느꼈다. 대법을 통독하는 마음은 진실해졌고 중생을 구도하는 마음은 선해졌으며 내려놓지 못한 인정은 담담해졌다.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며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를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2] 리훙쯔 사부님의저서: ‘유럽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씬씽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11/35653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