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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보고 자신을 생각해보며 자신을 수련해야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제자는 속인 중에서 생활하는데 생활 가운데서는 많은 일이 생긴다. 이런 일은 거울처럼 당신에게 보여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대법에 대조해 그 가운데서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 집착심을 버리게 한다.

속인이나 수련인을 접촉할 때면 모두 여러 가지 일에 부딪힐 수 있는데 많은 때 우리는 흔히 일 속에 빠져서 누가 옳고 그른지 본다. 실은 상대방의 옳고 그름인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닦아버려야 할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당신이 수련생과 접촉할 때 수련생이 수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인즉. 그러면 당신은 자신을 찾아보아야 한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수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간혹 당신은 그가 말한 그 방면에서 당신은 무척 주의해서 수구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당신이 수구하지 못하는 방면은 아마 그가 수구하지 못한 그 방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면이라면? 수련의 기타 방면이라면? 당신은 자신을 찾아보라. 틀림없이 당신이 수구해야 할 곳이 있을 것이다. 표현 형식은 다르지만 마음은 마찬가지로 집착심이다. 한 번은 한 수련생이 안전 방면에서 수구에 주의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당신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말이 법에 있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옳고 그녀가 옳지 않으며 수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나는 의식했다. 나의 수구하지 못한 방면은 이 방면에서 나타나지 않고 내가 얕보거나 나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이나 일을 보면 나는 곧 수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자신은 수련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하는 말은 더구나 법에 있지 못했는데 사실은 그가 나에게 표현해 보여 나에게 자신을 찾아보게 한 것이다.

또 한 번은 동료의 차에 앉아 일을 보러 갔다. 차에 같이 앉은 다른 동료는 자기가 어떻게 남을 도와 무슨 일을 했는데 전부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 마음 속의 첫 번째 반응은 ‘듣기 싫다’,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자신에게 반응이 나타났다. 남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질투심이다. 자신의 질투심은 버려야 했다.

조금 지나 생각해 보았다. 이 동료가 나에게 표현해보인 것은 과시심이지만 나는 자신에게는 과시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과시심은 어느 방면에서 표현되는가? 나는 최근에 생긴 일을 회상해보았더니 대번에 생각이 났다. 이 일이 있던 전 날, 한 동료와 한담할 때 그녀 남편이 얼마만한 돈을 써서 그녀에게 핸드백을 사주었다고 하자 나는 내 엄마도 얼마만한 돈을 나에게 쓰라고 주었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는데 우리가 말한 가치는 거의 비슷했다. 하나는 나의 잠재의식 가운데는 자기의 집안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엄마가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언어상, 체면상 나는 모두 그녀보다 못지않았으므로 쟁투심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잠재의식 중에 곧 이런 과시심리가 있다.”[1]였다.

최근에 서서히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우게 됐다. 많은 때 의식하지 못한 채 아주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이 모두 관념과 이기적인 생각이란 것을 정말 의식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나도 서서히 자신의 언행을 수정하게 됐다.

많은 때, 누가 한 말이거나 한 일이 어쩌면 당신 몸에 생기지 않았지만 당신이 들었고, 본 일이 당신을 불편하게 했다면 그럼 당신은 무슨 원인으로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지, 당신에게 무슨 마음이 있는지를 찾아봐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속인의 표면적인 것을 중요시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집착이고 당신의 사람 마음이다.”[2] 만약 당신이 신이라면 속인 중의 무슨 일에 이끌리겠는가? 당신의 무슨 마음을 이끌 수 있겠는가? 이렇게 찾으니 아주 많은 마음을 찾을 수 있었다. 날마다 생긴 일에서도 자신의 언행과 움직인 염두가 수련인의 표준에 맞는지 각별하게 주의를 돌렸다.

때론 발생한 일에 자신이 건드림을 당했음을 알게 됐으나 구체적으로 무슨 마음인지 잠시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구체적인 집착심을 찾을 수 없을 때면 나는 자신을 청리하는 구결을 한 번 염한다. “의념(意念) 중에서 자신의 사상 중의 좋지 못한 사상염두(思想念頭)와 업력, 좋지 못한 관념 혹은 외래(外來)의 교란을 깨끗이 제거한다.”[3] 오직 당신이 안으로 찾으려고만 한다면 사부님께서는 곧 깨우쳐 주신다. 한 번은 수련생과 고비를 넘으면서 나도 체면을 차리는 마음, 고려하는 마음, 수구 등 많은 마음을 찾아냈지만 그래도 늘 뭔가 근본 문제를 못 찾은 것 같았다. 이후에는 아예 찾지 않고 법공부를 했다. ‘논어’를 다 읽었을 때 나는 대번에 알게 됐는데 자신에게서 가장 큰 문제는 선한 마음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도리어 선한 마음을 닦아내지 못했으니 이건 그야말로 큰 문제였다! 앞으로는 꼭 주의해 이 방면에서 잘 수련해야겠다.

당신이 일의 옳고 그름에 빠지지 않고, 이 사람이나 어떤 사건이 당신에게 무엇인지 보여주는지 늘 생각하면 당신에게는 미워하는 마음이 쉽사리 생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사건을 보는 관념에 변화가 발생할 것인 즉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이런 일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런 일이 내 신변에서 생겼으니 나에게 무엇을 깨달으란 것인가?’ 당신은 자신의 명, 리, 정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손해를 당했는데도 자신은 손해를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또 어찌 미워하는 마음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이렇게 힘들여 당신에게 표현해주는데 자신은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찾았다면 더욱 좋은 것이고 잠시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이 방면으로 신경 쓴다면 어쩌면 다음 시각에 명백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수련 가운데서 아직도 잘하지 못한 곳이 많고 많아 몹시 부끄럽다. 하지만 이상의 체득은 최근 한 동안 깨달은 것으로서 수련생들과 공유하려 한다.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제자 사부님 은혜에 큰 절 올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에게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더 정진하자’[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도항-2001년 캐나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30/3560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