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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인은 절대 자아를 실증하지 말라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아를 실증’ 하는 몇 가지 두드러진 표현이 있다. 첫째, 자신이 정확하게 깨달았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수련생을 깔보게 된다. 둘째, 정체에 협력해 일을 할 때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길 좋아하고 일이 성사된 후 자신이 그 중에서 한 작용만 보고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의 정체 협력을 늘 소홀히 한다. 셋째, 잘못했어도 다른 사람이 지적해주는 것을 싫어하고 수련생이 지적해줘도 자신을 위해 변명한다. 넷째, 수련생의 장점을 잘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기 좋아한다.

중국 대륙의 많은 협조인은 대부분 사악이 광적으로 박해하는 악랄한 환경 속을 뚫고 지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일정한 범위 내에서 수련생들의 신뢰를 얻었고, 어떤 사람은 대법을 실증하거나 수련생을 돕는 일에 아주 열정적이거나 어느 방면에 특기가 있어 수련생들의 인정을 받아 협조인이 된 것인데 이런 인정은 협조인이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을 자양시킬 수 있다.

협조인이 자아를 실증하면 또 쉽게 수련생의 의지와 숭배를 초래한다. 수련생의 숭배와 의지는 또 협조인이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부풀어 오르게 한다. 만약 협조인이 법공부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고, 오래되면 협조인과 일반 수련생은 모두 이런 부분에 의지하고 협조 받는 상태를 정상적이라고 생각할 때면 매우 많은 수련생이 자신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협조인은 자신의 관념으로 자주 다른 수련생을 배치하고 영향 주게 된다.

필자도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아주 강했었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닦아버리지 못했으나 한 가지 일로 많이 명석해졌다. 한번은 현지 협조인들이 모여 교류할 때 한 가지 일에 대해서 각자 법에서 깨달은 인식을 마음껏 말했다. 한 수련생은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마지막에서야 말을 했는데 첫 마디가 “저는 다른 수련생들과 깨달은 것이 달라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은 나의 질투심을 건드렸다. 당시 비록 입으로 무슨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럼 당신의 ‘고견’을 들어 봅시다.’ 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교류를 들어보니 다른 각도에서 이 일에 대한 인식이고 다른 수련생의 교류내용에 대한 보충이었다. 나는 속으로 ‘어찌 굳이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게 깨달았다고 하는가? 만약 좀 더 보충하겠다는 말로 바꾸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듣는 수련생도 좀 편안했을 텐데. 나라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야.’ 라고 했다.

그러나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자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은 한 단락 법리를 점화해주셨다. “왜 어떤 때 각 지역에서 늘 논쟁이 발생하고, 어떤 때는 논쟁이 끝이 없는가? 왜 법을 실증하는 중 늘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가? 이러한 일이 최근 한 시기 중국대륙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실은 무슨 문제인가? 아주 간단하다. 바로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가이다. 만약 당신이 법을 실증한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당신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의견에 충격(衝擊)을 주고 당신의 목소리를 눌러 당신이 기분 나쁘다고 느끼거나,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어떤 문제를 견주어 당신에게 반대 의견을 제출하거나, 혹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당신이 불편을 느낄 때면, 당신은 일어나서 반대하고 변명한다. 그리하여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마저도 꺼리지 않는데, 가장 선의적인 변명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모두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박수) 왜냐하면, 당신이 대법을 제1위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이 제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다.”[1] 이 협조인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게 깨달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비교적 단순해 좀 직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원활했고 비슷한 정황이 있을 때 비록 이렇게 직언할 줄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말한 것이 더욱 전면적이고 더욱 법에 부합된다는 내 생각에 수련생의 인정을 받고 싶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말한 인식과 체득에 대해 언제나 부족하다고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인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것도 자신을 실증함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은 외지 수련생이 우리집에 와서 교류하겠다고 해서 또 현지 몇 명 수련생을 우리집으로 불러왔다. 이렇게 되자 거의 하루 종일 교류했다. 가뜩이나 전날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 오늘 또 법공부를 하지 못했다. 저녁에 발정념할 때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한 외지 수련생이 나를 본 후 “이전에 발정념하는 상태가 아주 좋았는데요. 그래서 저희 현지 수련생에게도 늘 얘기했는데 오늘 한 손으로 입정할 때 보니 비뚤어지셨네요. 잘 쉬지 못하셨죠?” 라고 했다. 그리하여 수련생의 묻는 말에 따라 “네, 잘 쉬지 못했어요.”라고 했다. 사실 이런 상태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매번 발정념한 후 같이 수련하는 아내는 나보고 “손이 비뚤어졌어요.” 라고 했다. 이후에 한번은 현지 협조인 수련생과 교류할 때 “주변 시와 현, 현지든 원래 다 조화롭게 분담했었는데 지금 왜 또 난장판이 됐나요? 지금 각 지역 수련생은 일이 있으면 우리집으로 와서 법공부도 따라가지 못하고 발정념도 잘하지 못하고 있어요.” 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자마자 한 수련생은 언짢은 기분으로 “현지 이메일함의 소식을 봤어요. 당신이 보냈을 것이라고 짐작했어요. 왜 자신을 찾아보지 않아요? 왜 모두들 당신 집으로 갈까요?”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표면상 평화로웠지만 속으로는 아주 화가 나 “물론 안으로 찾아봐야겠죠. 그렇지만 만약 모두 자기 집 문을 활짝 열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감당한다면 아마 지금 이런 정황일까요?” 라고 했다. 말하자마자 스스로도 아주 순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을 때 비로소 이것은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빌려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를 의식했다. 언제나 자신의 법리가 똑똑하고 문제를 잘 교류할 수 있으며 일부 기술도 안다고 생각했기에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다른 수련생들이 나에게 의존하게 했으며 이미 습관이 되어 스스로도 느낄 수 없었다. 수련생은 집착을 가지고 찾아왔고 나는 집착을 가지고 대응했던 것이며 우리는 이 과정 중 각자의 집착을 만족시켰던 것이다. 원래 다른 수련생이 감당하고 그가 걸어야 할 길을 다 내가 막았던 것이다. 이후부터 수련생이 우리집으로 찾아오면 먼저 내가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분별했다. 만약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면 책임을 분담하는 수련생을 찾아가라고 했다. 다시는 이전처럼 큰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요구대로 다 들어 주지 않았다.

한 수련생과 이렇게 교류한 적이 있다. 협조인으로서 아무리 바빠도 협조 범위 내의 수련생들이 각자 해야 할 일을 바쁘게 했다면 정확하게 바빴다고 할 수 있지만 만약 기타 수련생들이 다 한가하게 만들었다면 아마 틀리게 바빴을 것이다.

어느 날 한 노년 수련생이 날 찾아왔는데 전자책에 파일을 저장해달라고 했다. 이전이라면 바로 해줬을 것이다. 특히 연세가 많은 수련생을 보면 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허탕 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당신들 지역에 전자책을 저장해주는 책임자가 있지 않아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있지요” 라고 했다. 그런데 왜 거기로 찾아가지 않고 가까운 곳을 놔두고 먼 곳으로 날 찾아왔는지 묻자, 그녀는 “그 수련생을 찾으면 너무 느려요. 협조인이 또 그녀에게 전해줘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이나 시간이 걸리는데 여기로 오면 빠르게 해결되니까요.” 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최근 법공부를 통해 안으로 찾은 것을 교류했고 자신에게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동시에 그녀에게 다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녀는 듣고 “일리가 있네요. 알았어요. 누가 할 일이면 누가 해야죠. 누가 마음을 닦아야 하면 누가 닦아야죠. 저도 이 조급한 마음을 정말로 내려놓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했어야 했네요. 걱정 마세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라고 했다. 노년 수련생의 말은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우려하는 마음을 깨끗이 없어지게 했다.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은 수련생이 정체에 협력하는데도 영향을 준다. 주변에 한 현이 있는데 몇 년 전에 현지 협조인 C가 납치됐는데 수련생은 누가 현지 협조인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민주적인 선거방식으로 새로운 협조인 D를 선거했는데 추천하는 형식과 마음이 모두 속인화 됐고 동시에 어떤 수련생은 D수련생은 일만 할 줄 알고 협조능력이 없다고 해 협조인 사이에 간격이 아주 컸다. 현지 한 수련생은 우리가 가서 한번 교류하길 바랐다. 그들의 교류를 듣는 중 이 지역에서는 협조인을 아주 중요하게 볼 뿐만 아니라 협조인에 대한 요구도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협조인을 완벽한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모두 수련 중의 사람이라 완벽할 수 없어요. D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에게 부족함이 있으면 다른 수련생이 주동적으로 원융하고 보충하면 완벽해 지는 것이 아닌가요? 현지에 E수련생이 있지 않아요? 그녀의 교류를 들어봤는데 안으로 찾는 체득이 아주 좋았고 협조에 참여한 적도 있어 E수련생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라고 했다. 그들은 “이 E수련생은 몇 번 참여하다가 이후에는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들 사이에도 간격이 있는 것 같아요.” 라고 했다.

어느 날 이 E수련생이 왔다. 그녀가 계속 협력해 협조하길 바란다고 하자 그녀는 “처음에 저도 참여했어요. 그런데 저와 새로 선거된 협조인 D와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더는 참여할 수 없게 됐어요.” 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었다.

“어느 날 저희 협조인들이 함께 교류하는데 한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계속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찢어 복도에 여기저기 버리게 하는 것은 중생이 업을 짓게 하는 것이 아닌가요?’ 라고 했어요. D수련생은 ‘진상자료를 찢는 것은 구도 받지 않으려는 것이니 상관없어요. 우리는 계속해야 합니다.’라고 했지요. 저는 이 말이 법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렇게 깨닫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안으로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진상자료가 중생의 입맛에 부합되는지 아닌지는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는 마음이 순정한지 하지 않는지에 달렸습니다.’ 라고 했지요. 여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D수련생이 절 째려보고 얼굴을 확 돌리는 것을 봤어요. 이후에 그녀는 다른 수련생에게 ‘봤죠, 제가 뭘 말하든 다 틀려요, 그녀만 높게 깨달았네요.’ 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 협조 환경에는 제가 없으면 아마 더욱 잘 될 것이니 조용히 있자고 생각한 것이지요.”

E의 말을 이어받아 “저도 E의 말에 동의합니다. 수련인은 일에 부딪히면 확실히 안으로 찾아야 해요. 중생이 진상자료를 버렸다는 것은 꼭 우리가 수련해 제고할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D수련생이 말한 것도 법에 부합되는 일면이 있습니다. 만약 진상자료를 찢어버리는 사람은 사악의 해를 깊게 입었거나 구도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현상에 따라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어요, 일리가 있지 않나요? 만약 먼저 다른 사람을 부정하지 않고 원융하고 보충하는 각도에서 생각한다면 D가 말한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겁니다. 구도될 수 없는 사람은 꼭 있으니까요. 그가 사악의 조종을 당해 나쁜 일을 했지만 우리는 더욱 잘해야 하죠. 동시에 저도 한 마디 보충할게요. 당신이 앞에서 말한 안으로 찾는 교류를 보충한다면 D는 당신이 자기와 맞서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그리고 또 그녀에게 우리 지역에 발생했던 실례를 들려줬다.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도 정체에 협력할 때 각자 자아를 어떻게 내려놓았는지를 교류했다. 모든 대법제자는 법 중 하나의 입자이고 합치면 하나의 정체다. 수련생들이 협력해 일을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마땅히 대법을 첫 자리에 놔두고 평온한 마음으로 각자 대법 중에서 닦아낸 지혜를 보여줘야 하고 서로 일깨워주며 원융하고 보충해야 하고 지나치게 개인의 인식을 강조하고 고수해서는 안 되는데 사부님께서 우리가 잘하도록 꼭 도와주실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진짜로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접촉한 대륙 각 지역 협조인을 봤을 때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좋다고 생각한다. 10여년 정법수련 중 수련생 여러분은 정말로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중국 공산당 장쩌민 깡패 집단이 모든 자원을 이용해 박해하고 대법에 먹칠하는 사악한 형세 하에서, 사악에게 통제당한 중국 공산당의 공검법 공무원들이 대법제자의 협조인을 ‘두목’으로, 주요 박해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협조인은 큰 압력을 무릅쓰고 겹겹의 방해를 뚫고 지나왔으며 법을 더욱 잘 실증하고 거짓말의 피해를 입은 중생을 구도하고 협조 범위 내 수련생을 도와 걸어 나오게 하기 위해 법공부 팀과 자료점을 설립하고 진상을 알리며 곳곳에 꽃을 피게 했으며, 반박해하고 수련생을 구원하는 중 자신을 수련하고 사람을 구했다. 큰 어려움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거의 모든 사람이 평범치 않은 체득과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했는지는 사부님께서 알고 계시고 뭇 신들이 보고 있으며 협조 범위 내에 있는 수련생들은 더욱 깊은 체득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잘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와 끊임없는 점화의 결과다. 그러나 협조인은 일반 수련생처럼 모두 수련 중의 사람이라 법에서 깊게 깨닫지 못한 것이 있고 일을 잘하지 못할 때가 있으며 심지어 착오를 범할 때도 있기에 다른 수련생이 부족함을 지적할 때 잘못이 있든 없든 마음이 움직이는 그 시각을 제때에 틀어쥐고 안으로 찾으면 모두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다. 이것은 부가적으로 얻는 것이므로 꼭 소중히 아껴야 한다.

책임자도 좋고 협조인도 좋고 개인수련에서는 일반 수련생과 다름이 없고 높고 낮음의 구별이 없으며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신의 서약을 실행할 뿐이다. 만약 협조 범위 내의 수련생 전체를 하나의 진주 목걸이로 본다면 협조인은 진주를 꿰매는 ‘선’이다. 협조인은 하나의 선으로서 마땅히 노력해서 모든 진주를 꿰매 하나의 목걸이로 만들고 모든 진주들이 작용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선’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정체 중의 모든 진주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현실 중 협조인은 법공부 팀을 설립하는 것을 통해 수련생들이 단체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환경이 있고 수련생이 배운 장점을 발휘하고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편리를 제공해줬으며 수련생과 교류할 때 쓸데없이 부풀리지 않고 모든 수련생이 마음껏 말할 수 있게 했다. 갈등이 생겼을 때 협조인 탓이든 아니든 언제나 안으로 찾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여도 자신을 그 중에 놔두고 깨달아보고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게 했다. 수련생이 어려운 고비에 부딪히거나 잘하지 못했거나 박해를 당했을 때 처지를 바꾸어 놓고 수련생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고, 수련생들과 협조해 함께 마난 중에 있는 수련생에게 발정념을 해주게 협력함으로써 어려움 속에 있는 수련생이 빨리 교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어떤 수련생이 게으를 때 시간을 짜내거나 다른 수련생에게 연락해 그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게 하며 함께 정진할 수 있게 했다. 명령을 내리지 않고 협력이 필요한 환경 중 손을 놓고 수련생이 법 중 자신의 길을 걷게 하며 스스로 묵묵히 협력해주는 역할을 하고 각자의 격차를 찾아내고 의지하지 않으며 숭배하지 않고 협조 범위 내에 있는 수련생이 모이면 하나로 되고 흩어지면 입자로 될 수 있게 했다.

협조 수련생은 정체 중 문제에 부딪히거나 고험을 당할 기회가 아마 일반 수련생보다 많을 것이다. 우리가 질책, 원망, 억울함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서라도 어렵다고 물러서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우리가 정법할 수 있게 주변 수련생을 잘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환경 속에서 빨리 성숙되게 하기 위해 아주 큰 대가를 치르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다시는 협조하는데 참여하지 않겠다.” 라는 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수련생이 이런 말을 하지 않길 바란다. 필자는 협조를 했었던 수련생 몇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모두 반복했던 적이 있고 수련생들의 소감은 아주 비슷했다. 즉 자신이 감당하는 책임에 일단 쉽게 포기한다고 말한다면 다시 계속 책임을 지려 할 때면 겹겹의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오늘 인간세상에서 조사정법하고 협조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영광이고 또한 자신이 맹세한 소원이기도 하다. 윤회는 이번 생에 협조인을 잘하기 위해 닦아놓은 기초다. 그러나 구 우주에는 상생상극의 이치가 있어 생명에 양면성을 결정했고 협조 능력을 쌓는 과정 중 좋지 않은 요소도 서로 함께 있으므로 서약을 실행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동시에 결점을 보완해야 한다. 개인적인 이해로 이것이 바로 협조하는 수련생이 가야 할 길이다.

협조인에게 존재하는 일부 문제는 사실 사람의 마음과 관념을 없애버려야 벗어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한 환경에 처해 생긴 올바르지 못한 상태가 습관이 됐다. 만약 법 중에서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다면 의식하기 힘든 것이다. 설령 어떤 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뛰쳐나오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수련생은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해 정체에 불필요한 손실을 가져다줬다. 협조인 본인도 어떤 경우는 병업형식으로 박해당해 심지어 육신을 잃어버렸고, 어떤 경우는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또 어떤 경우는 납치당해 불법적인 중형을 선고받았다. 정법수련 중 만약 정체의 각도에서 보면 협조인의 수련상태는 일부 지역의 정체에 대한 영향이 확실히 크다. 어떤 것은 직접 한 지역의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실제적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본문에서 열거한 사실은 일부 지역과 수련생이 연관되기 마련이다. 필자는 다른 수련생들에게 상처주지 않길 바란다. 만약 정확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수련생의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우리가 법공부를 잘하는 기초에서 각자 존재하는 문제를 용기 있게 대면하고 빨리 법 중에서 바로잡으며 협조하는 일을 잘해 사존께서 위로를 많이 받으실 수 있고 노고를 적게 드리며 후손에게 참조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길을 남겨주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4년 뉴욕 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20/3512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