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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존을 바짝 따르면서 구세력의 배치와 박해를 부정

글/ 후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나는 대법 수련, 대법 실증의 길에 들어섰고 수련상태는 진보가 아주 빨랐다.

99년 7월, 장쩌민이 박해를 발동한 후 사악한 거짓말을 폭로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자료점을 설립했고 나도 자료 제작에 참여했다. 수련생이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던 탓으로 자료점이 몽땅 수색을 당해 몹시 큰 손해를 빚어냈고 나도 납치됐으나 나는 사악의 배치에 협력하지 않았다. 갑자기 중한 병업이 발생해 악인은 나를 집에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고 이후 거주지에서 반년 간 나를 감시했다.

감시를 당하는 기간 그들은 나를 박해 중점 대상으로 삼았다. 610 인원이 늘 집에 와서 위협하자 남편은 딴 사람으로 변해 밤이면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는 병업 상태가 나타나 온밤 보챘다. 밖에 나가면 항상 누가 미행하고 직장, 가족, 친구 등 여러 방면으로 오는 공격과 압력, 게다가 수련생과 연락이 두절되어 나는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홍음-마음고생)를 깊이 느꼈다.

1. 떠돌이 생활을 하던 데로부터 집에 돌아와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

감시가 거의 반년이 지날 무렵 남편은 믿을만한 소식을 들었다. 610이 나를 세뇌반에 납치해 가서 전향되지 않으면 직접 노동교양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마음 속 압력이 매우 심했고 정념이 부족했다. 나는 남편과 상의했다. 사악이 찾아오면 그들과 협력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날 저녁 꿈에 내가 어렸을 때의 초가집 밖 문마저 모두 마오쩌둥의 초상이 걸려 있었고, 게다가 남편은 ‘당(黨)’자가 쓰여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내 공간에는 이미 사악이 가득 했고 남편도 사악과 협력하리란 것을 알게 됐다. 수련 상태가 안정되지 못하자 다른 공간에서 오는 나에 대한 압력이 너무나 컸다. 나는 나에게 사악을 저지할만한 정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악의 세뇌반 박해 음모에 직면해 나는 수련의 길에 오점을 남기지 않고 심신에 모욕과 능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가면 언제면 다시 돌아올 지 알 수 없었다. 수련을 위해 나는 행복한 가정을 버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우월한 사업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세 살 된 자식과 이별하고 눈물을 흘리며 집을 떠났다. 집을 떠난 지 사흘 만에 국가안전국과 610 주임이 1년 반이란 노동교양 통지서를 남편에게 보냈다.

나는 자신에게 반문했다. 왜 어떤 수련생은 수련이 비교적 순조로운데 나는 오히려 이렇듯 큰 타격을 겪어야 하는가. 나는 속으로 꼭 착실하게 대법을 수련하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닦아내리라 결심했다.

떠돌이 기간,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나를 보호해주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환경과 조건을 주셨다. 당시 나는 내가 있는 곳의 모든 자료 공급을 담당했는데 전단지를 비롯해 소책자, 진상지폐, CD, ‘9평’ 그리고 대법서적이었다. 나도 매일 시간을 충분히 이용해 ‘전법륜’을 암송하고, 밍후이왕 당일 문장을 읽어보는 것을 견지했으며 수련상태는 재빨리 조절됐다. 두 번째로 ‘전법륜’을 “나는, 내가 법을 전하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남겨주어, 여러분이 앞으로 수련하는 가운데 여러분을 지도할 법이 있게 하려 한다.”까지 외웠을 때 내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흘러내렸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내 창공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오는 감동이었다! 중생에 대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렸고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호탕한 은혜에 감사드렸다! 나는 속으로부터 영원히 사부님을 따라 수련하리라 결심했다.

대량의 법공부와 교류문장을 보면서 나는 자신의 부족함과 수련상에 존재하는 문제, 그리고 왜 박해를 당하는지와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는데 대해 일정한 인식을 갖게 됐다.

나는 이미 자신이 걷고 있는 떠돌이 생활은 구세력의 배치이며 나는 반드시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부정하고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와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비록 내가 당시 한 집에 있으면서 대법 일을 한지 2년 남짓 됐고 게다가 아주 안전했지만 당시 사부님께서 이미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고 사람마다 모두 나와서 진상을 알리라고 요구하셨으니 나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고 정법 노정을 따라잡으며 자신을 봉쇄하지 말아야만 마음과 행위상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내렸을 때, 나의 이 결정은 즉각 수련생과 친구의 반대를 받았다. 내가 이지적이 아니라면서 집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대법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망설이면서 자신이 극단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하셨다. 나는 이미 자신을 봉쇄했던 방안에서 걸어나와 밖으로 통하는 출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생과 협력해 함께 나가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항목을 하게 됐다. 밖에서 정정당당하게 대면 진상을 하는 시일이 계속됨에 따라 내 수련 상태도 점점 더 좋아져 마음속 깊이 숨어있던 공포 요소가 점차 사라지고 정념은 갈수록 강해져 수련 상태도 용맹정진하게 됐다.

어느 날, 나는 진상을 알리다가 파출소 경찰의 딸을 만나게 됐는데 그녀는 즉시 나를 고발했다. 이후에 우리는 현지 파출소로 납치됐고 경찰은 각종 방식과 정보 경로를 통해 내 개인 신분과 배경을 조사하고 내가 불법 노동교양 1년 반을 판결 받았으나 줄곧 외지에 숨어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지금 그들은 내 몸에서 진상 핸드폰, 전화카드, 호신부, CD와 자료 등을 수색해 냈으므로 현지 파출소 및 나의 호적 소재지에서는 나에게 중형을 언도하려 음모했다. 공안국 사무실에 머물었던 그날 밤, 나는 지난 일을 되새겨 보면서 생각했다. ‘왜 나는 또 납치됐을까?’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다. 나에게 남편에 대한 색욕심과 질투심이 있었기에 비로소 이번 박해를 당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나는 확고하고 강대한 발정념을 밤새도록 했다. 천목으로 흑판처럼 커다란 검은 막이 지워지는 것을 보았다.

이후에 나는 구치소로 납치됐다. 당시의 처지에 직면해 두려운 마음과 걱정이 생겨나자 나는 법속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는 법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사악을 폭로하고 박해를 반대하면서 사악에 협력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모두 가상이고 일체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옥은 대법제자가 있을 곳이 아니며 나는 나가서 서약을 실현하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확고하게 강대한 정념을 발하면서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했다. 이 확고한 정념으로 내 마음은 밝아졌고 각종 압력과 우려는 연기처럼 사라졌으며 마음이 침착해졌다. 대법제자가 이곳에 온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니 나는 감방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켜야겠다. 이 일을 마친 후 사부님께서는 내 몸에 엄중하고 위독한 질병 가상을 연화해주셨다. 심각한 칼륨 부족으로 얼굴색이 변하고 심한 심장병으로 사지가 무력해 걸을 수 없었다. 이런 형편이라 감옥은 받지 않았고 계속 박해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경찰이 나에게 서명하라고 할 때 내 얼굴이 순식간에 삐뚤어지면서 변형됐다. 가족은 당황해했고 그들도 흐지부지해서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 이렇게 나는 드디어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타파하게 됐다.

내가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은 승진했고 각 항목의 연 수입은 배로 늘었다. 혈육들도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알게 됐으며 사악도 다시는 나를 찾지 않았다. 이 몇 년 동안 나는 아주 순조롭게 줄곧 사부님 안배하신 법 실증의 길에서 걸어갔다.

나는 3년이나 떠돌이 생활을 했다. 당시 사악은 내 사업을 불법 해고하고 도처로 나의 행방을 찾아다녔으며 친척 친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고, 남편 및 가족은 나의 이런 나날이 언제면 끝이 날지 답답해했다. 나 자신도 아이와 가족에 대한 걱정이 태산처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이 3년 동안의 단련 속에서 사부님과 대법은 나에게 사람마음을 내려놓게 하여 고비를 넘게 해주었다.

이 3년 동안 나는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면서 ‘전법륜’을 7번 외웠고, 어떻게 구세력을 부정하고 반박해하며 각종 사람마음을 버리는 문장을 대량으로 읽어 심성은 극히 큰 제고를 가져왔다. 동시에 대량의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면서 사부님 정법 노정을 바짝 따랐다. 앞으로 내가 능히 용맹정진하여 확고하게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확고하게 걸어갈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닦아주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라, 이 몇 년 이래 우리들이 걸어온 길을, 정말로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많은 일이 보기에는 무질서하지만, 실제로 모두 질서가 있는 것이고, 법을 바로잡기 위해 남겨놓은 최후의 역사는 한 걸음 한 걸음 당신들을 위하여 펼쳐지고 있다.”[2]

2, 수련생을 도와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

우리 현지에 교육 기관에서 퇴직한 여 수련생이 있는데 그녀는 여러 번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고, 여러 번 수감을 당했으며,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그녀가 대법에 대해 아주 확고했으므로 사악은 그녀를 중점적으로 통제했다. 그녀는 독거노인이었기에 610은 교육국과 결탁해 그녀를 양로원에 여러 해 연금하고 그녀의 봉급을 전부 차압하고는 매달 겨우 50위안만 주었다. 더욱 사악한 것은 교육국은 그녀의 봉급으로 한 사람을 고용해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 비록 이 수련생은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는 환경을 개척했지만 반드시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수련생은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길로 걷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고 자신의 상태가 그래도 괜찮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려운 마음까지 있었는데 여러 해 동안 습관이 돼버렸다.

나는 이 상황을 알고 나서 즉시 우리 지역 수련생과 교류 상의했다. 노인 수련생의 두려운 마음이 비교적 심하고 정념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는 전체적인 힘을 이용해 그녀의 반박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양로원에서의 그녀의 생활 형편, 경제 조건, 단속 조건, 봉급 차압 상황 등을 파악하고 한 수련생이 현지 사악을 폭로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문장을 써서 민정국, 정부 기관, 교육국, 공안국에 보내 폭로했고,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독거노인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데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각 기관에 호소했다.

그러나 일은 타당하게 해결된 것이 아니라 본래보다 더욱 꼬여서 610은 교육국과 결탁해 노인 수련생을 비밀리에 더욱 외진 편벽한 양로원으로 납치했고 그녀에게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게 하면서 저녁이면 문을 잠갔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는 자료를 다시 수정해 사악의 폭로를 더욱 강화하고 폭로 자료를 10여만 개의 MMS로 만들어 각급 정부, 공안, 검찰, 법원, 사법, 교육계 및 관련 각 기관에 발송했다. 동시에 진상 자료와 폭로 자료를 함께 양로원 및 주변 환경에 배포했고 이후에는 전 현에 대량 배포했다. 사례가 전형적이고 세인의 정의와 양심이 깨어났으며 또한 파룬궁 진상도 알게 되어 일순간 외부 여론이 들끓었고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비난을 610과 교육국 어느 사람의 사악한 행위에 퍼부었다. 많은 어질고 선한 사람들은 호소하면서 노인 문제를 타당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외부의 압력으로 610 인원은 양로원에 가서 노인 수련생을 방문했으며 노인 수련생 방에 있는 10여 권의 진상 자료(양로원에 배포했던 진상 자료를 노인들이 다 보고는 이 수련생에게로 다 가져옴)를 보고 610 주임이 들고 보기에 노인 수련생은 말했다. “다 가져다 보세요.” 610 주임이 말했다. “여보세요, 당신은 유명인이 됐어요.” 그리고는 당장 수련생을 집에 돌려보냈고 아울러 그녀 봉급을 회복시켜 주었다. 노인 수련생은 집에 돌아온 후 정정당당하게 진상 알리는 행렬로 걸어 들어왔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수련경험>정념으로 박해를 해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21/3509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