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현지에 연이어 수련생이 병업 가상으로 육신을 잃은 일이 나타났다. 내가 알고 있는 정황의 옅은 인식과 착실한 수련에 대해 수련생들과 토론 연구하려 한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는 근원은 무엇인가? 수련생들에게 많은 답안이 있겠지만 대부분 수련생의 답은 일치할 것이다. 바로 신사신법의 문제이며 근원(뿌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뿌리는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뿌리가 움직이기만 하면 가지들은 다 흔들린다.
일상생활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을 대법에 얼마나 썼는지 묻고 싶다. 대부분 사람은 남은 시간에도 많은 일과 자료를 만들어야한다고 여길 것이다. 그럼 법공부는? 매일 한 강의를 유지하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주의력을 집중하여 배웠는가, 법을 외웠는가는 보증하기 어렵다. 법공부(學法)와 법을 잘 배우는 것(學好法)은 한 글자 차이지만 전혀 다르다. 일 하는 것을 착실한 수련으로 여기는 것은 흔히 사람이 신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그다지 신성한 것은 아니다.
우리 먼저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는 일부 표현을 보자.
1. 곳곳에 자료점을 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자료점(資料點: 자료 만드는 곳)을 곳곳에 세우라고 요구하셨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이는 사부님께서 정법시기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인데, 목적은 더 많은 수련생이 주동적으로 진상 자료를 만들고 걸어 나와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는 국면을 열기 위한 것이다. 곳곳에 자료점을 세우면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자료를 내려 받아 소모품을 사서 제작하고 배포하면 된다. 인력 물력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품질과 진도도 파악할 수 있어 중복과 낭비를 하지 않고 정념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안전하지 않은가? 뜻밖의 일이 생겨도(구하는 것이 아니고 뜻밖의 일이 발생하길 바라는 뜻이 아니라 사실이 된 것을 말함.) 다른 사람과 전체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다들 하고 있기 때문에 손실은 개체, 개인에게만 국한될 뿐이고 위험을 최저한도로 낮출 수 있다. 자료점을 세운 후면 스스로 안전 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자료점의 지속적인 운영을 책임져야 하고 기계 및 자금, 소모품, 시간 등을 소중히 여겨야 하기에 유익한 점이 많다.
곳곳에 자료점을 세우지 못했거나 큰 자료점을 세워 빚어진 교훈이 많기에 우리는 구세력의 흑수가 틈을 탈 수 있는 여지를 단절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조건이 구비되지 않았다든가 가족이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자료를 가지는 사람은 기계가 본인 집에 있지 않아 안전하다고 여길 것이고, 자료를 만드는 사람은 가지러 오는 사람이 있어 내가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존께서 명시하신 곳곳에 자료점을 만들라고 하신 법리의 소망과 어긋난 것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무슨 낌새가 있기만 하면 기계와 소모품 등을 감추거나 옮긴다. 풍문이 지나가면 다시 원위치 시킨다. 금방 가지고 왔는데 또 무슨 소식이 있거나 공산당이 민감하게 날을 세우면 또 옮긴다. 이틀이 지나 아무 일 없으면 또 가져온다.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다보면 좋은 기계도 고장이 생길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아예 하지 않아 집에 있는 기계를 장기간 잠재우고 있고 자기 집 기계를 다른 자료점에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사실 그곳에는 기계가 다 있다. 그는 성능을 발휘하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료점에는 필요가 없다. 기계가 본인 집에 있다면 곳곳에 가 자료를 가져올 필요 없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더 좋지 않은가?
2. 안으로 찾지 않고 밖으로 미는 것
C수련생은 세 가지 일을 다 하고 법도 잘 읽는다. 법공부할 때 1시간 반을 가부좌 하고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입원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수련생을 잘 돌보지 못해 마음이 아파 그의 과거를 말하려 한다. 이전에 그의 집에 약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는 본인이 먹은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법공부 할 때 허리에 보호대를 감고 있었다. 이유는 허리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늘 혈압을 쟀는데 한 번은 혈압계가 맞지 않았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병원에 가 접수하고 교정했다. 수련생이 선의로 한마디를 권하기도 전에 그는 많은 이유를 댔다.
그가 늘 하는 한 마디는 ‘아니다’ 이다. 이런 것이 아니고 저런 것이 아니며 자네가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일이 아니다. 그 일은 이렇게 발생한 것인데 그때 나는 어떻게 생각했다. 그 일은 어떠하여 그때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등 어쨌든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들이다. 사람 관념이 명석한 일면이 깨어나는 것을 가로막아 신의 일면이 정법 하는 것을 저해했다. 층층의 작은 힘으로 멸할 수 있는 것을 자양시켜 사악한 큰 마로 되어 육신을 잃게 됐다.
외지의 D수련생은 병업 가상이 나타난 후 몇몇 수련생이 그녀를 도와주려고 그녀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했다. 그녀는 대수로워하지 않아 하며 “나에게 뭘 찾으라고 하는 겁니까? 난 아주 잘하고 있고 별일 없는데!” 라고 말했다. 몸이 그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자아를 견지하면서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다. 법보를 버린 것이 위험하지 않은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E수련생을 보자. 우리 법공부 팀에는 가부좌를 제일 짧게 하는 사람도 1시간은 견지할 수 있다. 한 번은 그녀 집에 갔을 때 내가 말했다. “E 씨를 제외하고 법공부 할 때 거의 다 1시간 반을 가부좌하는데 우리 좀 고생을 하더라고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수련생은 좋다고 말했다. 일주일 후 1시간 반을 돌파했다. 말한 대로 행하니 탄복하게 된다. 똑같이 선을 권했는데 어떤 사람은 어렵지만 쫓아가려 애써 다시 정진할 수 있었다.
3. 협조인을 의뢰하는 마음을 닦아버리다
18년 동안의 비바람을 겪으면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성숙되게 단련시키셨다. 목적은 우리 모두 혼자 한 방면을 담당하고 전체를 형성한 후 능력이 더 강해지라고 하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협조인을 찾아야 하는가? 본인이 법리에서 잘 처리할 수 없는가? 본인의 길을 닦아내지 않고서야 되겠는가? 항상 지팡이를 찾을 생각만 해서 되겠는가? 그 길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것이지 협조인 수련생에게 배치 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협조인이 수련을 잘 하여 정념과 장이 강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닦아낸 것이다. 협조인은 우선 수련인 이기에 잘 수련하지 않으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어느 문장에선가에 협조인은 책임자도 가장도 교사도 아니라고 말했다. 협조인도 심태를 바로잡아야 하고 자세를 낮추어 단체에 용합되고 법에 용해되어야 심성을 제고할 수 있고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모두 협조인을 찾아간다면 이 수련생의 시간과 정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닌가? 어떤 때 마음을 법에 두지 않으면 법 읽을 때 정신이 딴 데로 가 글을 빼먹거나 보태 읽거나 줄을 건너 뛸 수 있고 생각이 또렷하지 않다.
의뢰하는 마음과 숭배하는 마음 때문에 협조인에게 환희심과 과시심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더 큰 손실을 빚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에 그 사람의 요소도 있지 않는가? 나와 관계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그런 사람은 본인이 달가워서 한 것이 아니냐고 말 할 수 있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이 수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악마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이고 엄중하게 말하면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거꾸로 협조인에게 집착심이 있어 수련 상태가 좋지 않으면 찾아간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는 사람을 해치고 자기를 해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문제를 발견했을 때 질책과 원망을 하지 않고 책임을 미루고 피하지 않으며 사심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협조하고 잘 하기를 노력한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4. 프로그램과 사회자에 집착하는 문제
아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매 회 놓치지 않고 보고 아주 말을 잘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프로그램의 취지는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우리 대법제자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를 구할 수 있는 분은 사부님뿐이다. 대법제자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일체에 대해서 법을 사부님으로 삼아 가늠해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단체 법공부를 하기 전에 한 단락 보고 지금은 어떤 형세라느니 누구누구가 또 무슨 말을 했다느니 내가 볼 땐 어떻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같은 프로그램을 본 사람은 옆에서 보충하고 호응하기도 한다. 그 프로그램은 수련하지 않는 속인이나 수련생 가족에게 보여준 것이다.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이 박해의 진상을 알고 미혹된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일부분은 수련생의 필수 과목이 되었다.
그 시간이 되기만 하면 어떤 수련생은 정중하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뜻인즉 프로그램이 곧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수련생 집에 교류하러 갔는데 수련생이 왔는데도 그는 심드렁하게 자꾸 좀 기다리라면서 곧 시작된다고 말했다. 모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심성을 교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가? 이것은 개별 사례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모 프로그램에 몇 시간을 허비한다. 그 속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를 다 알고 아주 재미있게 말하면서 희색이 만면하다.
다음은 우리 함께 사부님의 착실한 수련에 관련된 일부 법리를 보자.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大法)의 전통을 유지하고 대법(大法)의 수련원칙을 수호하며 착실한 수련을 견지함은 매 대법제자의 장기적인 고험이다.”[2]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3]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4] 사실 해내야만이 착실한 수련이다가 관건적인 부분이다. 그럼 어떻게 착실하게 수련하겠는가? 우선 신사신법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뭘 하라고 하시면 뭘 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듣는 착실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본인이 이전에 잘 하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것을 지금은 그것을 잘 하면 된다. 자료점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조건이 되면 자료점을 세우고 다른 사람이 말을 못하게 하는 점은 그 사람이 말하게 하고, 협조인을 의뢰하는 사람은 자신을 많이 수련하여 자신의 길을 걷고 새벽 연공을 못하는 사람은 게으른 마음, 안일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고 법을 사부님으로 삼아야 하는 등이다.
다음 두 가지 방면에서도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5. 정념이 있어야 정행할 수 있고 이치가 명확하면 깨달을 수 있다
법리가 또렷하고 정념이 있어야 정행할 수 있고 이치가 명확하면 깨달을 수 있다.
노년 수련생 F는 다리 부종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와 수련생 정념의 가지로 9일 밤낮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지만 생사의 고비를 넘었다. 그 다음 아무 일 없자 본인에 대한 요구를 늦추었더니 신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 하반신이 굳어졌고 얼굴색이 창백했으며 혈색이 없었다. 눈에는 생명에 대한 갈망과 사부님과 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보다는 구세력의 박해에 어쩔 수 없어하는 막막함이 가득했다. 낙심하고 외로워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나도 보기가 딱해 그녀에게 말했다. “신사신법을 굳게 지키면 넘기지 못할 관이 없습니다.”
수련생이 그녀에게 정념이 강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녀는 좋다고 말했고, 수련생이 그녀에게 법을 많이 배우고 연공을 많이 해야 된다고 말해도 그녀는 좋다고 말했다. 수련생이 그녀에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도 그녀는 줄곧 좋다고 하면서 다 따라했다. 그러나 한 마디 말에서 그녀의 그때 심태가 드러났다. “나는 구세력에 대해 방법이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제거해 주길 기다립니다.” 그녀가 말한 소위 좋다는 모두 수련생이 선을 권함에 응한 것일 뿐 진실한 표현은 아니었다.
그녀는 직접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사부님께 빌어도 보고 수련생들이 말한 세 가지 일을 견지하라는 것도 멈추지 않았는데 왜 호전이 없을까? 소용이 없을까?” 구하려는 마음과 빨리 나아지려는 마음을 품고 어찌 좋아질 수 있겠는가? 관념을 가지고 집착을 버리려 하면서도 집착을 가지고 법공부를 한 것이지 내심이 강대해진 것이 아니고 자아 개변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유위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닌데 어찌 버린다고 해서 바로 버릴 수 있겠는가? 집착심이 장기간 쌓여 구세력이 박해할 빌미가 된 것이다.
그녀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십 여 년 동안 무슨 관을 넘은 적이 없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수련생이 본인에게 준 심성 시험은 관을 넘은 것이 아닌가? 모녀의 정을 내려놓지 못한 것은 관이 아닌가? 그녀는 아니라면서 이건 관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관이 아니면 무엇이 관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지금과 같은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큰 어려움 큰 고비를 관이라고 여기고 평소 심성 수련을 홀시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정말로 잘 걷지 못했고 끊임없이 각양각색의 착오를 범했으며 심지어 습관화되었고, 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난이 와도 문제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며 습관이 되었고 모두 작은 일로 느꼈다. 수련이라, 무엇을 누락이 없다[無漏]고 하는가? 작은 일은 없다.”[5]
사람 사상에 신념(神念)이 가득하면 신불이 우리를 가지해주는데 사악이 어디에 점한 곳이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왜 우리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하였겠는가? 우주 대법을 많이 담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곧 신이 될 사람을 구세력이 통제할 수 있겠는가? 무슨 “여기가 안 되고 그것이 좋지 않고 감당하기 어렵고 불편하다.”와 같은 잡념에 좌우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런 관념 자체가 수련생의 진아(眞我)를 미혹하고 그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한다. 그녀가 빨리 진아를 찾아 정념이 강해지길 바란다.
G수련생은 병업 가상이 생긴 후 상태가 좋았다 나빴다 했고 수련생은 있어도 정념은 없었다. 그녀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면 그녀는 “나를 해치지 말라.”고 말했다. 밥을 먹으라는 것을 그녀는 해치는 것이라 여기면서 이런 말을 하니, 그녀는 온몸에 힘이 없어 침실에서 거실에 나오는 짧은 거리도 부축해야 했고 조금만 앉아 있어도 소파에 기대야 했다. 신체가 허약하여 볼품이 없었다. 수련생이 가면 소침해지고 자아를 잃어 가족이 병원에 보냈는데 짧은 며칠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괴로울 때 그녀가 입에 달고 있던 말은 “살고 싶지 않다. 사부님 뵈러 가야겠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정념인가? 이는 마가 그녀를 해칠 구실이 되지 않았는가? 마가 그녀를 가만둘 수 있겠는가? 이는 정말 망상 때문에 마가 찾아온 것이고 육신을 잃었으니 어찌 귀진(歸眞)할 수 있겠는가? 큰 파도가 모래를 씻어낼 때 사람마음이 너무 많아 신이 되기 어렵다.
한 편의 문장에 수련생이 어떻게 구세력의 박해를 간파하고 병업 가상을 넘었는지를 말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아주 괴로울 때 매일 법 3강의를 배웠는데 노년수련생의 법공부하는 속도로 읽어 5시간 정도 걸렸고 5장 공법을두 번 하는데 4시간이 걸렸다. 발정념과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하루 종일을 그녀는 법속에서 단련했다. 그 사악이 빈틈을 타 계속 나쁜 짓을 하고 싶어도 대책이 없었다.
우선 그녀에게 정념이 있었다. 마음속에 법이 있고 사부님을 굳게 믿으면서 박해를 승인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을 걸었다. 다음은 그녀가 정행했다. 해야 할 일을 했고 하겠다고 말했으면 했고 매일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박차를 가하면서 줄곧 게을리 하지 않고 견지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종일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그런 흑수, 썩은 귀신을 청리했고 정념정행으로 사악을 약화시켜 며칠 만에 고난을 넘었다.
6. 일사일념을 잘 닦아야 한다.
사부님께서 왜 우리에게 일사일념으로 닦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 개인적으로 시시각각 심성을 닦아야 하고 일사일념은 제자의 착실한 수련을 검증하는 표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사일념을 잘 장악하려면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 배워야 한다. 머리에 대법을 많이 담으면 후천 관념이 대법제자를 좌우지할 수 없고 외래 정보도 대법제자를 교란하지 못한다. 시시각각 우주 특성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사물을 판단하면 대법제자의 가공공장인 대뇌에서 걸러 나온 것은 모두 정념이고 하는 말, 하는 일은 모두 법에 있다. 물론 생각, 행동도 모두 법에 있다. 정확하지 않은 관념은 법의 강대한 작용 하에 끊임없이 제거되고 깡그리 소멸될 것이다.
일사일념을 잘 닦고 주의식이 강하면 시시각각 진짜 나와 가짜 나를 식별하여 사상 내원, 목적과 본질을 판단하게 되는데 수련생을 어디로 이끌겠는가? 뿌리를 파서 청리하고 부정하며 기다리지 않으며 의지하지 말고 감추지 말아야 한다. 대법제자의 마음, 자비로운 신념, 착실하게 신으로 변하는 사람의 자태로 만사만물을 웃으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옳지 않은 염두를 발견하기만 하면 바로 부정하고 일을 잘 하지 못하면 자아를 일깨워주어 일 속에 빠지지 말고 줄곧 자책하지 않으며 용맹하게 정진하여 따라가야 한다. 다른 사람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 평온한 모습으로 듣고 기뻐하고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자신의 득실을 담담히 보고 깊이 있게 이기적인 가짜 나를 파내야 한다. 특히 깊이 숨어있고 발견하기 어렵고 닦아내지 못했거나 파생되어 나온 집착을 파내야 한다. 어떤 때 발견하기 어려운 교란, 예를 들면 연공하면서 어떻게 자료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고 발정념 중에 모 항목을 어떻게 운행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보기에는 대법의 일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특정된 환경, 특정된 시공에서는 교란의 일종이기에 사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신목여전(神目如電)과 천지지지(天知地知) 도리를 잊지 말자. 집착이 있으면 쉬쉬하지 말고 감추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집착을 발견했을 때 변명하거나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은 취하지 말아야 한다. 일에 부딪히면 먼저 책임을 밀어내고 다른 사람이 보면 흐리멍덩한 척 하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본인이 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체면을 중히 여기고 창피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책임을 떠미는 이런 것은 모두 집착심이다. 이것이 좋은 일인가? 무슨 일인들 사부님을 속일 수 있겠는가?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면 끊임없이 자신을 파보고 한 무더기 마음을 찾아내면 그것을 제거하려는 결심을 내려야 한다. 본인에 대한 요구를 엄격하게 하고 다른 사람만 수련시키고 본인은 수련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런 한 마디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이 돌아가서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기를 희망한다.” 이것은 사부님의 중대한 부탁이다. 우리는 마음에 새기고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
이 문장은 나 자신에게 쓴 글이기도 하다. 나에게 아직 많은 집착심이 있는데 닦아버리지 못해 더 잘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세 가지 일을 견지하고 반복적으로 하고 더 정진해야만 마음이 편안하다. 정법이 끝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착실하게 수련하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9’ ‘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속인 마음을 버리고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자(放下常人心堅持實修)’[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1’ ‘무엇이 대법제자인가’[4]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 ‘착실한 수련’[5] 리훙즈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5/3554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