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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정념으로 법에서 수련하면 완고한 색욕심도 제거하기 어렵지 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8년 여름 방학, 나는 금방 졸업했고 운 좋게 처음으로 ‘전법륜’을 읽게 됐다. 법을 얻은 순간 내 가슴은 한없이 설렜고 나는 내 인생의 의의와 추구를 찾게 됐다.

하지만 그때 나는 대법 수련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이른 나이에 연애를 하게 됐고 여자 친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였다. 나는 이전에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사부님 저에게 내세(下世)에 수련 기연을 맺어주십시오”라고 빌었다. 법공부를 깊이 하면서 나는 이 생각을 고치게 됐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대법을 수련해 선천적인 자아를 찾으려고 결심했다.

19년간 걸어오면서 색욕에 대한 나의 집착은 가끔은 강해졌다가 가끔은 약해졌다. 나는 나 자신이 정념과 색욕에 대한 마음의 항쟁은 한시도 그치지 않았음을 느꼈다. 가끔 내가 법공부를 잘하면 나는 색욕에 대한 집착이 쉽게 청리됨을 느끼며, 사람의 기본 생활을 간단히 유지하는 것 외의 기타 생활방식은 인생에서 모두 집착이고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며 색욕에 대한 집착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생활방식은 특히 그렇다고 생각됐다.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을 때면 마음속 깊이 아주 강한 색욕심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몇 년간의 수련과 법공부를 거쳐 나는 색욕에 대한 집착의 실질은 한 가지 관념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관념이 형성되면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데,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의 사상을 좌우지할 수 있다. 이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색욕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때 나는 색욕에 대한 집착 자체는 나의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고 내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이 형성된 관념은 형성될 때의 표준으로 문제를 대하는데 그것은 이 표준으로 나를 좌우지하여 색욕이 가져다주는 각종 ‘아름다움’을 가늠케 하며, 나로 하여금 이 여자가 아름답고, 저 남자가 잘생겼다고 느끼게 하면서 그들의 눈빛하나 웃음 하나를 잊을 수 없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사람이 피동적으로 정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 집착할 때면 그것이 당신의 사상 중에서 여러 가지 집착이 생기게 하고, 이로부터 여러 가지 관념, 나아가서 변이된 관념이 형성될 것이다. 당신이 갑자기 어느 한 사람의 동작이나 혹은 형상을 좋아하게 되어 당신은 오랫동안 이런 것을 좋아하는 데 집착할 것이다. 혹은 당신이 이 사람의 태도, 표현을 좋아할 텐데, 시간이 오래되면 관념으로 형성되어 그의 이런 표현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럼 점차 이것이 더욱 강해져 그것이 당신의 사상을 주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한 가지 어떤 것을 좋아해 관념으로 형성될 때 그것은 갈수록 더 강렬해질 것이다. 만약 심태가 변이된 것이라면 서서히 이 변이사상은 확대되어 더욱 변이되는 것으로 발전할 것이다.”[2] “사람은 이때에 이러한 것을 모두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부정확한 인식 때문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인데 그것이 역으로 당신을 주재하고 있다. 당신은 이것이 당신 자신의 사상이라고 여긴다.”[2]라고 말씀하셨다. 색욕심은 일종 자기 느낌을 만족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완고한 관념임을 알 수 있으며 정에서 파생된 일종의 집착이며 사의 표현이다. 선타후아의 정법정각으로 말할 때 이 완고한 관념은 반드시 철저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역사상에서나 고층 공간 중에서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볼 때 사람의 욕망ㆍ색 이런 것을 아주 주요하게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이런 것을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3]라고 우리를 타일렀다. 이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이해는 우주가 법에서 빗나갔고, 법에서 빗나간 주요 원인은 각층 생명은 모두 법의 각층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생명이 법에 부합되지 않게 된 주요한 요소는 매개 생명의 사(私)를 위하는 완고한 관념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생명이 사를 위하는 고정 관념은 색욕심을 통해 집중적으로 반영된다. 사람이 자신을 ‘즐겁게’하는 색욕에 집착하고 만족해하며 색욕이 자신에게 주는 느낌에 집착할 때 사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사심을 보호하고 만족하는 표현이다.

시각을 바꿔 보면 만약 속인사회에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철저히 허영과 향락을 추구하는 색욕에 대한 집착을 제거했다면 나는 가장 완고한 사심을 제거했고 가장 완고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제거한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인식이지만 사람이 명리(名利)에 대한 집착은 사실 사람이 색욕에 대한 집착에 비하지 못하며, 색욕심은 사람에게 더욱 직접적인 충격과 감동을 준다.

가끔 내가 색욕심을 제거할 때 색욕심이 내 머릿속에서 ‘색욕심이 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색욕심을 진정으로 자신 내심 깊은 곳에서부터 철저히 제거해 버릴 수 있을까?’라고 반영한다. 심할 때는 분명히 색욕은 있어서는 안 되는 난잡한 생각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생각에서는 그것을 버리려 하지 않고 심지어 ‘내가 색욕에 대한 집착이 없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올라오면서 색욕이 주는 각종 느낌을 고수하며 머릿속에서 색욕을 만족시키려는 절박한 욕구가 나타난다. 내 자신이 색욕심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 즉시 그것을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발정념으로 제거하는 동시에, 색욕심에 저항할 때 나타나는 각종 고통을 자발적으로 감당하고 참으며 넘어가면 일체가 다 개변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색욕에 대한 집착뿐만 아니라 어떠한 집착심을 버릴 때도 모두 마찬가지인데 집착심을 저항하고 배척할 때는 전부 고통스러운데 피부에 바짝 달라붙은 진흙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지난 뒤에는 홀가분하다. 이때 절대 집착심을 방종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며 정념을 견지하고 이것은 집착심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확고한 정념으로 법에서 수련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점점 더 삼계(三界)의 험악함을 느낀다. 삼계는 사실 하나의 기기이고 하나의 단약을 만드는 용광로인데 삼계는 주로 정, 욕, 색으로 구성됐다. 삼계의 각종 요소는 모두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단약을 만드는 용광로에서 금단으로 연마되지 못하면 용광로에 의해 완전히 녹아버릴 것인데 이것은 오늘날 수련인이 처한 실제 상황이다. 법에서 수련하여 원만하지 못하면 영원히 삼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소멸될 것인데 자신과 자신의 중생을 볼 면목이 없으며 자비롭게 우리를 제도하신 사부님을 뵐 면목은 더욱 없다.

현재 삼계의 각종 요소는 매 사람의 일사일념이 법에 있는지 충분히 검증해 낼 수 있다. 왜 어떤 수련생은 삼계 내의 각종 집착심을 투철히 볼 수 있는가? 왜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이 엄청 쉬운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법에 항상 있지 못했고 항상 법에서 수련하지 못했으며, 법공부를 자주하지 못했기에 강대한 정념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항상 법에서 수련하고 늘 법에서 자신을 비춰본다면 마찬가지로 각종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쉽다고 느꼈을 것이다. 수련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자신을 오랫동안 좌우지하는 관념을 제거하는 것인데, 많은 경우 이러한 관념은 나의 생각에 스며들어 나의 일부분이 됐다. 그리하여 관념을 제거할 때, 집착심과 법에서 양자택일 할 때 나는 집착심(법에 부합되지 않는 관념)에 대해 애틋한 생각이 들면서 집착심을 버리려면 고통스러우며 집착심을 제거할 때 질질 끌게 된다.

가끔 색욕심 또는 기타 집착심을 제거하려 할 때 그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고 가셔지지 않으며 계속 마음에 남아있는 느낌이 드는데 이때 우선 자기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으로 그것을 포기했는지 봐야 한다. 만약 내가 진정으로 포기했지만 그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그것을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거나 또는 구세력의 교란으로 생각하고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제거하면 된다. 색욕심을 제거하려면 몇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자기 마음은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 색욕에 대해 숨어있는 추구 또는 남기려는 한 가닥 의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확고한 정념으로 법에서 수련한다. 법공부를 자주 함으로서 항상 강대한 정념을 갖고 있으며 색욕심이 수련자를 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자신이 색욕심을 배척할 때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기타 생명이 나의 사상 중에 색욕심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제거한다.

네 번째, 색욕에 대한 완고한 집착에 부딪히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3]를 생각하고 내가 색욕심이 없다면 보다 좋고 고귀한 생활을 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이 완고한 후천적 관념을 철저히 제거한다.

사실 색욕은 삼계 내에 있는 저층생명의 생활방식인데 마음이 삼계에 있으면 색욕심의 지배를 받게 된다. 만약 삼계의 경지를 벗어나게 되면 색욕심은 난잡하고 사람을 구속하는 저층 요소임을 발견한다. 만약 각도를 바꿔 색욕심 밖에서 그것을 보면 우리는 확 트이고 밝아지는 느낌이 들것이다. 대법은 생명에게 더욱 좋은 생존환경을 개척해 주었는데 그러한 환경은 모두 색욕이 조성한 환경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정법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데 나는 자신이 더욱 정진해 진정으로 매 하나의 완고한 집착과 관념을 제거해 자기 수련을 잘하는 동시에 인연이 있는 더욱 많은 사람들을 구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확고한 정념으로 법에서 수련하면 완고한 색욕심과 기타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색욕 또는 기타 관념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버리려 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배하는 이러한 관념을 개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과 사의 대결에서 자신의 고정 관념을 개변하지 않으면 그 관념은 우리를 개변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법과 갈수록 멀어지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전에 했던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관념을 버리고 어떠한 완고한 집착도 모두 제거하면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이것은 정화하는 과정이기에 우리는 영원한 행복과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을 얻을 것이며 우리 생명이 생긴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이 줄곧 색욕에 지배된다면 철저한 파멸에 직면할 것이다.

수련을 결심한 사람은 확고한 정념으로 법에서 수련하면 완고한 색욕심이라도 제거하기 어렵지 않다

이는 개인적인 체득인바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권2)’[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서부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5/3554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