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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심을 당연히 버려야 한다

글/ 이옌(一言, 해외)

[밍후이왕] 수련인들 속에 있는 공리심을 말하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수련인에게 사람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여 수련하지 않으면 속인 마음이 줄곧 표현되어 나온다. 오늘 한 수련생의 문장에서 공리심이 본인에게 준 부정적인 영향을 보고 이 기회를 빌려 이 문제를 언급하려 하는데 우리가 이 방면에서 자신을 더 잘 수련할 수 있는지 보자.

글을 쓴 이 수련생은 자신이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기 좋아하지만 수련생들과 별로 교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요 원인은 본인이 언변이 없는 것도 있지만 더 주요한 것은 공리심이 너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수련생의 수련 목적에는 공리심이 있다. 인간 세상의 이익을 나는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고급단지에 이사를 가 이익을 도모하러 가는데 빈민굴의 작을 이익을 중시할 사람이 있겠는가? 여전히 구우주 생명의 이기적이고 위사위아(爲私爲我)한 특징을 보류했다. 이 수련생은 애초 수련생들 속에 갔을 때 아주 격동했다. 마침내 본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났다고 여겼는데 얼마 되지 않아 수련생들 중에 많은 사람이 완전히 속인으로부터 발걸음을 뗐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장점이 있긴 했지만 자신은 그들과 간격이 아주 깊어 결국 이 단체를 떠나 지금은 법공부를 통해 법과 사부님과만 소통하고 있을 뿐이다. 동시에 사이트에서 수련생 문장을 보면서 수련을 견지하고 있다.

이 수련생은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지향이 있는 것을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소위 사람마다 지향이 다르니깐. 하늘에도 공리가 있다면 하늘은 더는 내가 동경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신우주는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미래를 모르지만 애초 내가 얻으려던 답을 하늘은 이미 나의 원하던 것보다 훨씬 많이 주었다. 나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 나는 정말 나를 깔보는 수련생이나 많은 다른 수련생보다 못할 수 있겠지만 공리를 가진 높고 낮음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든 우주 혹은 다른 생명이 나에게 어떤 정의를 내리던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마음속의 나는 아주 평범하고도 평범한 생명이다. 어제 공리를 위해 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오늘도 그러하고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여기까지 보고 다른 노수련생은 어떤 생각을 가질지 모르겠다. 이 수련생의 수련에는 그의 국한성이 있긴 하다. 대법제자 수련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럼 수련이 잘된 그 부분은 끊임없이 격리해 두며, 수련이 잘된 그 부분은 끊임없이 격리해 둔다. 수련이 안 된 이 부분은 줄곧 끊임없이 수련하며 최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줄곧 수련하여 전부 다 수련 성취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걸어야 할 수련의 길이다.”[1] 수련이 잘 된 부분은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수련이 안 된 부분은 표현되어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수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방면에서 좀 늦을 수 있고 심지어 공리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이 문제를 보아낸 수련생은 이 모순 앞에서 제고할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마음이 움직였을 때 본인이 닦아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속인 사회에서는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함께 ‘조사정법하고 중생구도 하려는’ 소원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단체로 된 것이다. 이 소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 환경을 이탈해서 마음을 건드리는 모순과 복잡함이 없다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련 환경을 잃은 것이 아닌가? 노수련생은 다 알 것이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모순, 특히 본인은 겉보기에 일리가 있는 것 같고 다 옳고 잘한 것 같지만 상대방은 당신을 괴롭혔다. 마지막에 걸어 지나온 후 뒤돌아보면 모두 당시 그 상대방이 자신의 제고에 가장 도움이 됐을 것이다.

대법의 문은 모든 사람에게 열어놓았다. 우리 대법제자 중에는 확실히 어떤 사람이든 다 있다. 공리심의 기점과 목적은 위사위아(爲私爲我)이다. 많은 수련생이 확실히 이러하며 지속된 시간도 아주 길다. 이 수련생이 일부 수련생에게서 이 뚜렷한 문제를 보고 참을 수 없어 심성관을 일시 넘지 못하고 단체를 떠난 데에는 그가 수련해야 할 점도 있겠지만 관련된 수련생도 자신을 잘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아주 강한 공리심이 있지 않을까? 닦아 버리고 진일보 닦아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첫째는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고 그 다음은 다른 수련생에게 심성관을 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우리에게 거듭 일깨워주셨다. “우선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당신들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할 수 있기에”[2] 신우주의 표준은 무사무아(無私無我)이다. 무사무아에 도달하지 못하면 신우주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고 자신을 잘 수련했다고 할 수 없다. 이 이치가 아닌가?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7-미국 수도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5/3554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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