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협조인은 본보기가 아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협조인을 본보기로 삼는 것 역시 당(黨)문화에서 온 관념이다. 당신이 협조인이 됐다면 반드시 뭐든지 다 할 줄 알고 잘해서 수련생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협조인이 될 자격이 없고 일단 잘하지 못했다면 협조인 역할을 잘 못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필자에게도 이런 관념이 아주 강했다. 그래서 개인 수련부터 시작해 자신에게 뭐든지 다 잘해 수련생 앞에 설 것을 요구했다. 사실 협조인이 앞에 서는 것은 맞지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는 마음은 옳지 않다.

1999년 7월,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나는 현지에서 맨 처음 구치소로 납치돼 박해받았다. 당시 깨달은 것은 공산당이 나를 이른바 ‘두목’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후에 한 가지 일을 통해 자신이 박해받은 다른 원인을 알게 됐다. 2004년 말, 소굴에서 뛰쳐나온 후 협조인 수련생과 자료점 수련생 사이의 모순이 아주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협조인 수련생은 자료점 수련생이 일하지 않아 많은 수련생들이 오랫동안 받을 자료가 없다고 했고, 자료점 수련생은 협조인 수련생이 자료점의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일을 배치했기에 그들이 바빠 법공부, 연공할 시간도 없다고 했다. 교류를 통해 아직 현지 자료점이 곳곳에 꽃을 피우지 못한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생이 곳곳에 자료점을 세우지 못한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으로 집에 컴퓨터와 프린터가 있으면 마치 시한폭탄처럼 위험하다고 여긴다. 그 다음은 ‘어렵다’는 생각인데 컴퓨터, 프린터 이런 첨단 제품은 일반 사람들이 배울 수 없다고 여겼다. 어떤 수련생은 협조인도 집에 가정 자료점을 세우지 않은 것을 보고 자기 집에 조건이 돼도 세우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1년 지속되자 나는 우선 우리집부터 ‘작은 꽃’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달아 노트북과 프린터를 샀고 수련생을 청해 가르쳐달라고 했다. 이 기술 수련생은 우리집에 가정 자료점을 세우겠다는 말을 듣자 화를 내며 내게 말했다. “당신은 우두머리가 되려 하나요? 당신 집 상황이 어떠하고 당신 신분이 어떠한지 알고 있나요? 지금 자료점도 집을 세 맡아 하고 있는데 당신 집에서 어떻게 하나요? 설사 당신의 정념이 아주 강하더라도 누이(내 아내)도 고려해야죠.” 우리는 이 때문에 논쟁이 일어났고 나는 말했다. “당신 뜻은 내가 구치소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고 여전히 병보석 치료단계에 있기에 시 공안·검찰·법원, 구역 정법위원회, 610(파룬궁 박해전문조직), 파출소에서 연달아 우리집에 와서 자주 소란을 피우는데다 내가 공산당이 주목하는 대상이기에 우리집에 자료점을 세우기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죠? 하지만 현재 하려는 사람이 없어 곳곳에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한참 시비를 하다가 수련생은 떠났다.

수련생의 생각을 들은 후 나는 승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두려운 마음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에 아내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아보았다. 비록 가정 자료점을 세우는 건 틀림이 없고 곳곳에 꽃을 피우는 데는 내 책임도 있지만 왜 수련생은 나보고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 한다고 했을까? 맨 처음 자료점을 세우려 했을 때 다들 가정 자료점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어 내가 우선 여러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이건 남의 본보기가 되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예전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대법제자들의 수련은 본보기가 없으며, 길은 당신 자신이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1] 매 수련생이 무엇을 하든 모두 각자 경지에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3일 뒤 그 수련생이 또 왔다. 나는 이 일에서 안으로 찾은 과정과 소감을 그와 교류했고 곳곳에 꽃을 피우는 것이 대법제자의 책임이기에 우리집에 한 떨기 꽃을 피우는 것도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들은 후 수련생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자주 사용하는 기술을 나에게 아주 열심히 가르쳐주었다.

신탕런TV 위성을 대륙에 개방하고 채널을 수신하던 그 해, 대륙에서는 대대적으로 신탕런TV 위성수신기(이른바 ‘큰 가마’)를 설치했다. 아주 책임감 있는 한 협조인 수련생은 나를 찾아와 자기는 협조인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원인을 묻자 그녀는 말했다. “각 지역 수련생들이 모두 신탕런을 설치하고 있지만 내가 책임지고 협조하는 범위에서만 신탕런을 설치한 집이 몇 집 되지 않습니다. 한 수련생은 나를 찾아와 이 지역 수련생들이 신탕런을 설치하지 않는 것은 나 때문이라고 했어요. 내가 협조인이지만 우리집에도 설치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설치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죠. 사실 나는 정말 설치하고 싶어요. 하지만 남편이 기어이 허락하지 않으면서 ‘누가 원하면 그보고 설치하라고 하고 당신은 더 이상 앞에 나서지 마’라고 합니다. 일단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니 나도 억지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아들, 사위를 찾아 그들에게 알려주면서 그들보고 설치하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함께 나에게 말했어요. ‘어머니, 어머니가 수련하는 건 우리가 다 지지하지만 우리에게 그 간판을 걸어주지는 마세요.(원래는 가게 문 앞에 판매 상품 표지를 걸어놓는 것을 얘기하는데 지금은 듣기 좋은 구실을 대는 것을 비유)’ 그러므로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신탕런을 보는 데 영향주기 싫어요.” 수련생 말을 알아들은 후 나는 말했다. “수련에는 본보기가 없고 협조인도 반드시 본보기가 되라는 법이 없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련생은 앞질러 말했다. “당신이 한 말을 나도 이해해요. 하지만 나는 본보기가 될 마음이 없어요. 나 이 할머니가 누구에게 본보기가 되겠어요?”

수련생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보고 나는 남의 본보기가 되는 이 문제에 관해 내가 법리에서 깨달은 점, 몇 해 동안 이 사람 마음을 버리지 못해 고달팠던 것과 본보기가 되려는 마음에서 뛰쳐나온 소감을 얘기했다. “당신에게 본보기가 되려는 마음이 없다는 건 당신 본심의 말이에요. 사부님께서는 이미 법에서 똑똑히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련생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이 당신을 본보기로 여기지 않았나요? 우리가 수련생 말에 이끌릴 수 있는 것은 잠재의식 속에 본보기가 되려는 관념이 있기에 자신이 수련생의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했다고 걱정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신탕런을 설치하는데 영향 주었다고 생각하죠. 가족들의 반응, 예를 들면 남편이 당신보고 앞장서지 말라고 하고, 아들, 사위가 당신보고 간판을 걸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당신보고 본보기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듣고 나서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주 걱정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깨달아요. 신탕런의 설치 여부는 누가 이끄는 문제가 아니며 협조인은 응당 해야 할 일만 하면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여러 사람을 소집해 한 곳에 모이게 한 후 이 문제에 관해 다들 법에서 교류하도록 합니다. 신탕런 수신기를 설치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한 신탕런을 설치하는 수련생을 청해 소감을 얘기하도록 합니다. 수련생들이 누구 집에 신탕런을 설치하면 그가 혜택을 입고, 누가 널리 보급하면 그가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 다들 신탕런을 보급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때 더 이상 누가 말하지 않아도 주동적으로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전력을 다해 수련생의 신탕런 설치를 위해 편리한 조건을 제공해주면 됩니다.” 이후에 이 지역에서 몇 차례 교류회를 열었고 신탕런을 설치한 수련생이 정말 갈수록 많아졌다.

현재 본보기 관념을 갖고 있는 수련생이 여전히 아주 많다. 특히 날마다 바빠서 법공부, 연공할 시간도 없는 협조인들은 대부분 본보기가 되려는 마음에 이끌려 하루 종일 바삐 보낸다. 자신이 잘하지 못해 정체에 영향을 줄까 봐 우려해서다. 하지만 대륙처럼 박해가 여전히 지속되는 환경에서 자료점을 곳곳에 세우든, 반(反) 박해하여 수련생을 구출하고 그 과정에서 협조해 사람을 구하든,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진상전화를 걸며 신탕런 설치를 보급하든 이 모든 것이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사람을 구하는 항목이다. 만약 모든 곳에서 본보기가 되려고 한다면 설사 수련자가 뛰어나다 해도 이러한 ‘본보기’는 잘 해내기 아주 어렵다. 어쨌든 사람이 수련하고 각자 가정, 직장, 회사에서 맡아야 할 역할도 있으며 더욱이 수련에는 본보기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많은 협조인들이 납치되거나 병업 형식으로 박해받았는데 대부분 바빠 법공부와 착실한 수련이 따라가지 못해 사람 마음이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본보기 관념은 더욱 많은 수련생들이 독립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자신의 길을 걷는 데 영향을 준다. 그래서 구세력은 이걸 꼬투리로 삼아 틈을 타 박해한다.

협조인의 이런 본보기 관념은 잘해야 한다고 자신을 핍박할 뿐만 아니라 수련생 가운데서 본보기를 찾고 본보기를 세울 것이다. 몇 년 전, 누가 어느 방면에서 잘하면 나는 늘 여러 장소에서 크게 칭찬했고 심지어 더욱 완벽하도록 과장해 말하기도 했다. 목적은 여러 사람들을 독촉해 빨리 제고하려는데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의 발생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현지 수련생 A는 반(反) 박해와 수련생을 구출하는 항목에 참여했고 아주 열심히 했다. 변호사와 소통하든 수련생 혹은 가족들과 교류하든 모두 가급적 선한 마음을 지니고 했다. 그래서 나는 늘 여러 장소에서 그녀를 언급했다. 비록 A수련생이 여러 번 유명해지기 싫다고 나에게 귀띔했지만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고 수련생이 겸손하다고만 생각했다. 이후에 B수련생은 나에게 찾아와 A수련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당시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B수련생에게 질투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B수련생이 떠난 후 나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안으로 찾아보았다. 나에게는 명을 구하는 마음, 더욱이 본보기를 세우려는 마음이 있었다. 설사 B수련생에게 질투심이 있다 해도 여기에는 내가 잘하지 못한 요소가 있었다. 이후에 A수련생이 납치돼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더욱이 이런 관념을 닦아버리려고 노력했다. 가끔 입이 근질거려도 가급적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표현하려는 기점이 무엇인지, 만약 말해서는 안 되면 말하지 않았다.

어떤 협조인은 빈번하게 법회를 조직한다. 법회를 여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지명’하거나 ‘지명하여 임무를 부여하는’ 교류 혹은 어느 수련생에 대해 과장해 칭찬하는 행위는 겉보기에 교류를 통해 정체 제고의 목적에 도달하려 한다고 강조해도 그 안에는 본보기를 수립하려는 관념이 드러나 있거나 숨겨져 있다. 이는 모두 대법 수련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다.

한 외지 수련생은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 현지 수련생들은 연이어 병원에 보러 갔고 일부 수련생은 보러 갔을 때 거듭 표시했다. “당신은 빨리 나아야 합니다. 수련생들은 당신을 떠나지 못하고 대법도 당신이 필요하며 당신 신체는 이미 당신 것이 아닙니다.” 듣기에는 고난에 처한 수련생을 격려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의존하는 마음과 숭배하는 마음이 폭로돼 나왔는가. 당사자 수련생도 이걸 인식하지 못했기에 수련생들의 말을 들은 후 아주 기뻐하며 그들에게 시름 놓으라고 이틀 후면 퇴원할거라고 말했다. 결과 이틀 뒤 퇴원은커녕 상태가 더 심해져 어쩔 수 없이 큰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물론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지켜주시고 게다가 그 자신도 안으로 찾았기에 아주 빨리 위험에서 벗어나 회복됐다. 다른 수련생들이 그녀를 수련의 본보기와 의존 대상으로 여긴 것을 그녀가 지금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사실 협조인 수련생이 입원했다는 것은 협조인 수련생 혹은 정체에 분명히 누락이 있기에 사악이 빈틈을 탄 것이다. 이때 협조인이든 주위 수련생이든 모두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 강대한 정념의 장을 형성해 사악을 해체하고 박해를 부정하며 고난에 처한 수련생을 가지해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게끔 해야 한다. 하지만 협조인 수련생과 일반 수련생 사이에 형성된 비정상 관계는 이 협조인 수련생을 박해의 심연으로 내밀었다. 또한 숭배와 의존은 구세력에게 박해를 강화할 수 있는 구실을 주기도 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7-미국 서부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29/35432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