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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비는 낮은 곳으로 떨어져 만물을 적시고 햇빛은 산천을 비추며 보답을 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 다 세상의 명리밖에 있고 세간의 득실과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에 들어가지 않아야 밖으로 해탈할 수 있고 이익지심이 있으면 반드시 재물에 끌려가고 욕망이 있으면 반드시 정사(情絲)에 사로잡힌다. 수련자가 만약 아직 사람 마음이 있으면 세간의 어떤 물건에도 끌려갈 수 있다.

우리는 사람 속에서 수련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런 복잡한 환경에서 해탈해 나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보고 문제를 고려하는 기점은 영원히 사람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청풍이 물위를 거닐 듯 산림을 지나지만 바람은 그곳에 빠져들지 않는다. 오고 갈 때 세간의 어떤 물건도 가져가지 않고 수련하는 사람은 세간에 있지만 마음은 그 속에 없고, 사람 속의 어떤 물건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렇게 수련해야 자유로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 속에서 수련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속인과 어떤 형식상의 구분이 없이 단지 법공부를 하고 사상 속에서 끊임없이 승화해 점차 사람의 사상관념과 사유방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수련하면 속인의 복, 사람 속의 아름다움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수련의 목적은 이런 것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 높은 층차로 승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사상이 사람 속에 있다. 내가 좀 잘 수련했기에 내 몸은 마땅히 좀 더 좋아질 것이고, 내가 잘 하면 마땅히 일정한 복을 받을 것이며, 내가 많은 사람을 탈퇴시키면 나의 장사는 마땅히 더욱 번창할 것이고, 내가 대법을 굳게 믿기에 우리 집안은 순조롭게 변할 것이다 등등이다. 이런 것은 모두 초범적인 수련과 사람속의 득실을 연결한 것이다. 사실 그들 둘은 어떤 관계도 없다. 하지만 어떤 수련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특히 사람 마음이 중한 수련인은 무의식 중에 수련을 사람 속에서 좋은 점을 얻는 일종 방식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수련으로 신과 값을 흥정하는 식이고 기점을 사람 속에 맞춘 것이며 사람 속의 물건을 얻기 위해 수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과 물론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된다.

진주 상자를 사고 진주는 되돌려 주는 이야기와 같다. 구매자의 취사선택이 적당하지 않아 포장만 사고 진주를 버린 격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수련인은 원신의 운반체인 육체 및 육체가 존재하는 공간의 모든 것을 너무 중히 보는 것이고, 반대로 반본귀진해야 수련의 근본이라는 것을 잊은 것과 같다.

수련은 얼마나 신성하고 얼마나 엄숙한가? 그러므로 일할 때의 동기 및 일하는 기점(당신이 아주 잘한다는 일을 포함해)을 엄숙하게 찾아봐야 하고 사람 마음의 사욕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바르고 좋게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 약간의 체득이며 적절하지 않으면 수련생이 자비로 시정해주시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9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28/3542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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