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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똑발라야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1]고 말씀하셨다. 이는 수련인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다. 사람 마음이 바르지 않을 땐 개인 수련에 누락이 나타나고, 정체 역시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편차가 나타나, 역시 누락을 야기하고 박해를 불러 올 것인즉 단지 박해 형식이 부동할 뿐이다.

법을 함부로 연설하는 이 문제를 수련생들은 모두 알 것인데,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모두 언급하셨고 밍후이왕에서도 통지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구체적인 문제에 봉착할 때면 모르게 되고 심지어 식별하는 개념마저 없어진다. 물론 이는 수련생의 평소 법 공부, 깨닫는 여부에 관계되고 착실한 수련과도 관계 있다.

2017년 우리 지역으로 타지역 연설자 한 명이 왔는데, 현지 수련생이 이 사람을 데리고 우리 지역을 거의 다 돌았다. 최소 7개 성진 법공부 장소에서 연설했고, 매 법공부 장소에서는 기타 법공부 팀 수련생을 모아 방청하게 했다. 하는 말은 모두 사오한 이치였지만 방청자는 알아듣지 못했을뿐 아니라 박수를 쳐서 사오한 자가 더욱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헛소리를 하게 했다. 지금까지도 어떤 수련생은 아직도 이른바 좋다는 상태에 깊이 빠져 있어 수련생이 교류해도 듣지 않는다. 길에 잘못 들어서 끌어당기는데도 돌아서지 않고 갈수록 멀리 간다. 넘어져서 되돌아온다 해도 한동안은 걸려야 할 것이다. 마치 사람이 길을 걷는데 지름길이 없는 것처럼 길을 잘못 들어섰으면 돌아서서 다시 걸어야 하듯 시간을 지체할 것은 분명할 것인즉 이건 손해가 아닌가? 만약 법공부가 착실한 수련자라면 즉각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난법하는 자로서, 다른 공간의 사악이 그녀를 통제하여 수련인을 박해하는 것이다.

물론, 사오한 자가 정체라는 이 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자체가 정체라는 이 장이 바르지 못하고 누락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디에 누락이 있는가? 아마 깨닫고, 안으로 찾는 사람은 몇 명 안 될 것이다. 그저 연설은 난법이란 것만 알뿐이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직접 밖으로 찾고 밖을 향해 본다. 어떤 수련생은 지금까지도 사오한 자의 말을 남에게 들려준다. 사오했음을 알았다면 더는 시장을 주지 말아야지, 사오한 자가 가버렸다고 해서 괜찮은 줄로 여긴다. 이 박해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부님의 정법 구결은 모두 다른 공간의 사악을 겨냥한 것이다. 사악이 사람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음이 바르면 사(邪)한 것이 침범하지 못한다”[2] 번거로움은 모두 사람마음이 바르지 못해서 불러온 것이다. ‘밍후이주간’ 제817회 마지막 한 페이지에 “○○지역 수련생에게 일깨워 준다”의 내용은 우리 지역의 현상과 아주 비슷하다. 어쩌면 역시 우리 지역에 준 일깨움일 수도 있다.

우리 지역 한 수련생이 수련에서 일부 문제가 나타났다. 어느 방면의 문제든, 진짜든 가짜든지를 막론하고, 이 수련생이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정체에 파동이 몹시 컸고, 이런 파동은 지속된 시간이 꽤나 길어 지금까지도 그녀를 용납할 수 있는 수련생이 몇이 안 된다. 대부분 수련생은 그녀를 배척하고 고립시키거나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면전에서 그녀를 비판한다. 사람이 수련하고 있는 만큼 감당능력이 극에 달할 때가 있는 법이다. 이 수련생은 매번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면서 이 수련의 정체를 떠나고 이 복잡한 울타리를 벗어나고 수련을 포기할 생각을 했다. 그녀의 두뇌에는 늘 외래 정보가 반영돼 그녀를 경멸하면서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도 사부님께 요청하고 결사적으로 제재하면서 이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서는 견딜 수 없어서 그녀를 용납할 수 있는 수련생을 찾아가 교류했다. 수련생도 매번 그녀를 격려해 주면서 법에서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막 정신을 좀 차릴까 하는데 어느 날인가 누가 또 그녀를 말로 크게 타격해 쓰러지게 했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났는데 그 다음부터는 신체에 점차 문제가 나타났다. 정신적으로 한 몫 감당하고, 신체적으로 한 몫 감당하다 보니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그녀를 도와주는 수련생도 법에 책임지고 중생에 책임지며, 수련생을 책임지는 기점에서 그녀와 교류했고, 그녀더러 법에서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인식하게 했으며 이 기회를 빌려 잘 수련하게 했다. 오직 그녀가 진수한다면 사부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녀를 도와 이 고비를 넘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필경 아직은 법 속에 있는 만큼, 압력이 얼마나 크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날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고 있으며, 날마다 뼈를 깎듯 안으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과 온 하늘의 신도 모두 그녀와 이 정체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수련생으로 말하면, 사부님께서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특무마저도 다 구도하시는데 하물며 여전히 대법 속에 있는데, 우리에게 아직도 무슨 걱정이 있는가? 우리는 선을 수련하지 않는가? 경찰이 찾아와 소란을 피워도 우리는 그들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 사오하거나 수련을 포기했던 사람도 우리는 매번 찾아가 그들을 당겨오지 않았던가? 어떻게 이 수련생을 포기하겠는가? 우리에게 어떤 이기심이 있는 게 아닌가? 찾아보고 닦고 해보는 것 역시 한 가지 좋은 일일 것이다.

이 수련생이 어떤 착오를 범했든 우리는 그녀를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수련인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떤 태도인가에 대해서는 사부님께서 그녀를 관할하고 계시며, 그녀 자신도 또 정말로 수련하려하므로 사부님께서는 그녀를 귀정하실 것인데, 우리가 그녀 수련에 마음을 썩일 필요는 없다. 그녀의 몸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우리는 안으로 찾는 데 주의를 돌려야 하고, 정체에 영향력 있는 이런 수련생이 나타난 것은 정면이든 부면이든 우연일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 정체를 향하여 온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정체상으로 보면 대부분 수련생에게는 모두 크게 작게 의뢰심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협조인을 찾아내려 하겠는가? 그저 스스로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다. 수련인이 무슨 문제를 듣거나 본 것이 모두 우연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으려 하지 않을 뿐이며, 흔히 모두 문제를 협조인에게 밀어놓으려 할 뿐이다. 사람마다 모두 협조인이고 모두 말할 줄 안다. 하지만 진정으로 문제에 부딪쳤을 때면 이 말을 잊어버린다. 당신더러 듣게 하고 당신더러 보게 한 것은 어쩌면 사부님 안배로서 이 일에서 당신더러 심성을 제고하고 더욱 큰 위덕을 쌓으라고 한 것이며. 이 일을 통하여 당신은 그 집착심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수련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왜 하필 이 일을 당신더러 듣게 하고 보게 하고 다시 당신더러 협조인에게 밀어버리게 하겠는가? 협조인더러 직접 하라 하면 그만이 아닌가.

왜 한 무리 한 무리 협조인이 이렇게 비참하게 박해 받는가? 이렇게 받들고 따르며 의뢰하는 것과 관계 없는가? 협조 문제에서 수련생이 장시기 깨닫지 못하여 협조인을 기어이 참을 수 없고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으로 밀어놓아 그녀를 그렇듯 크게 넘어지게 하고 심지어 그녀를 망쳤다. 이런 행위는 자신이 제고해야 할 때 오히려 자신이 깨닫지 못한 이유로 제고해야 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매 한 번의 수련 기회를 놓치면 놓친 것으로 더는 다시 있을 수 없다. 당신은 스스로 협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자신을 낮게 보거나 아니면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게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각종 방식으로 대법제자를 단련시켜, 우리 모두 정법의 노정을 따라 가, 당신이 앞으로 당신 세계의 훌륭한 주나 왕이 될 수 있기를 바라신다.

어떠한 일이든 오직 당신이 하려고만 한다면 사부님께서는 당신을 성취해 주시며, 당신이 좀 더 많이 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확장해 주신다. 나에게 직접적인 체험이 있다. 사실 협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우리는 모두 부동한 천체에서 왔으므로 일하는 방식도 틀림없이 달라 모두 자신의 독특한 것을 지니고 있다. 만약 우리 현지 수련생이 모두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내가 협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만 밍후이왕을 통했을 뿐이다. 오직 우리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지혜를 열어주실 것이며, 일에 부딪치면 법에서 깨닫고 법에서 수련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 안 되면 부분적으로 하라”[3]. 사람을 따라 배우지 말고, 더욱이 사당의 그런 모델을 가져다 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 지역에 이런 상태가 나타났는데, 수련할 줄 아는 사람은 제고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한 부의 우주 대법을 같이 수련하고 있는데 남이 되면 당신도 될 수 있으니 반드시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래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대로 해야만 수련의 길에서 편차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수련생을 질책할 마음이 없고, 수련생을 감싸줄 마음도 없다. 바로 “○○지역 수련생에게 일깨워 준다”란 글에서 말한 것처럼 “위난 때 수련생을 끌어당겨 주는 것”은 당신이 바로 법에 책임지는 것이고, 정체에 책임지는 것이며 당신도 제고되고 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궁-제5장 의문 문답 풀이’[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문장발표: 2017년 9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15/3537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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