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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을 수련해버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하기 전에 질투심이 꽤 강해 늘 실의에 빠지고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그를 위해 기뻐하지 않고 배 아파했고 다른 사람에게 결점이 있다는 것을 들으면 속으로 자신이 그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못한 점이 있으면 속으로 남을 깔봤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랬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질투심의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1]

며칠 전에 질투심은 내 몸에서 또 한 번 표현됐다. 혼자 속을 끓였고 수련생 A와 충돌하지 않았다.

수련 20년 내, 나와 A는 만나서부터 마음이 맞아 몇 년의 간난신고를 겪으며 줄곧 잘 협조했다. 그녀의 성실과 선량, 너그러움과 포용력은 주변 사람들을 감동케 했고 법에 대해 확고하게 믿는 모습에 어떤 일도 감당해 낼 수 있어 점차 나는 의지가 됐다. A도 정말로 내게 많은 부족한 점을 지적해줘서 수련의 길에서 나에 대한 도움이 아주 컸다. 수련생의 정이 중하게 생겨나, 며칠 안 보면 서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의뢰심, 수련생의 정을 없애고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를 한번 배치해주셨다. 후에 우리도 이 사람의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점차 적게 만났고 급히 만날 일이 없으면 A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이 구체적인 과정은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며칠 전 속으로 그녀에 대해 불만이 생겼고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화가 치밀었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2]라고 하신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이것은 질투심이 아닌가? 질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원만할 수 있겠는가? 왜 질투할까?

원인을 찾아봤다. 작년에 A에게 한 자료점을 맡으라 하고 복사용지를 가져다줬다. 복사용지가 떨어지려고 할 때 보내줘 진상자료와 주간을 만드는 데 영향이 없게 했다. 이번에 또 복사용지를 보내줄 때가 됐는데 무슨 영문인지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A가 오랫동안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 다른 수련생과 함께 매일 A3 스티커를 붙이러 갔는데 속으로 섭섭했다. 난 A의 중시를 받고 싶었다. 이것은 명을 구하는 마음이고 A에 대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A는 손녀를 돌볼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도 돌보고 밥도 하고 진상 자료도 만들고 배포하고 사람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바빠 시간이 없다. 나도 일이 많지만, A처럼 많진 않았고 그녀보다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고 정념도 그보다 강하지 못해서 법에 대한 그녀의 이해와 체득을 자꾸 듣고 싶었다.(이것은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은 표현이다) 그래서 속으로 섭섭했다. 결국엔 여전히 이기심이다.

질투심이 수련생과의 간격이 생기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보내주자, 그래서 사람이 적은 시간을 찾아 보내줬다.

복사용지를 보내줄지 말지를 이틀을 고민했다. 한번 보내주는 데 1시간 걸리고 한 박스를 3층까지 갖고 올라가는 것도 꽤 힘드니 A 혼자 가져가라고 하자. 그러나 또 생각을 바꿨다. 난 오토바이를 타 편리하지만, 그녀는 자전거라서 한 박스 종이를 싣는 것이 꽤 힘드니 내가 가는 것이 낫겠다. 만약 우리 사이에 간격이 생기면 마침 사악의 속임수에 빠지는 것이고 사부님께서는 얼마나 슬퍼하시고 중생이 얼마나 실망하고 우리 둘 주변 수련생들이 또 얼마나 슬퍼할까! 그래서 질투심을 내려놓고 자아를 내려놓고 좋지 않은 요소가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 사람이 적은 틈을 타서 종이를 보내주고 프린터 종이박스에 가득 채워 넣고 레이저 프린터에 검정 토너를 채우고 컬러 잉크젯 프린터에 부족했던 노란색 잉크도 추가했고 잘못 설치한 토너를 바로잡고 진상 자료도 좀 만들었다.

돌아올 때는 평형을 잃었던 그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비록 점심을 먹지 못했지만 속으로 아주 편안했다. 이번 질투심을 없애는 과정의 일이 크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고 수련생 누구도 모르고 다만 사상 속에서 좋지 않은 생각과 싸웠고 마지막에 법 중 연마해낸 정념이 사악한 생각을 이겨냈을 뿐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만약 대법의 지도가 없으면 돌멩이 같은 질투심은 전혀 없앨 수 없다.

이 교류문장을 쓰려고 할 때 질투심이 있다는 것만 인식했는데 쓰는 과정 중 또 질투심 배후에는 명을 추구하는 마음이 은폐되어 있고, 명을 추구하는 배후에는 ‘자아’가, 자아 배후에는 위사위아의 이기심이 은폐돼있다는 것을 깊이 파냈다. 사(私)는 구우주의 속성이기 때문에 이기적인 마음을 수련해버리지 못한다면 무사무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고 대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할 수 없다.

법 중에서 수련하자 사부님께서 또 우쭐대는 마음을 없애고 겸손한 것을 배우고 억울한 마음, 가족에 대한 감정, 외로움, ‘병’의 개념, ‘생사’의 개념, 두려움 등을 없애라고 점화해주기도 하셨다. 이 사람의 마음들은 결국엔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이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문장발표: 2017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11/3491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