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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인은 지도자가 아니고 교사도 아니며 학부모도 아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수련하고 있으므로, 사람에게는 사람 마음이 있으며, 사람 마음에는 직업적 습관이 있으며, 직업이 조성한 집착과 양성된 습관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모두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1] 지금 대륙 많은 협조인은 모두 사악한 환경에서 모 방면에서 표현이 돋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런 환경에서 수련생들이 인정한 것이다. 예를 들면 속인 회사에서 지도자를 맡았던 사람이나 학교에서 교사직 맡았던 사람이나, 혹은 가정에서 일정한 지위와 능력이 있는 ‘유능한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속인 중의 출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속인 중에서 맡은 역할은 많은 관념을 형성한다. 수련 중에서 이런 관념을 협력하는 일에 가져올 수 있다.

협조인은 지도자가 아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머리가 없으면 가지 못하고, 새는 머리가 없으면 날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무리에서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있다. 이것은 지도자 관념을 형성한다. 하지만 수련은 다르다. 특히 대법 수련은 “우리는 조직형식이 없는 한 갈래 대도무형(大道無形)의 길을 걸으며, 돈을 저금하지 않고 물건을 장만하지 않으며 관직을 주지 않고 직무(職務)가 없다.”[2] 사부님께서 법을 명백하게 밝히셨다. 많은 수련생은 이런 관념을 닦는 것을 소홀히 했다.

필자는 속인 사회에서 오래 동안 기업 지도자 간부를 맡은 적이 있다. 대법 수련 후 법리에서 수련은 관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속인 관직에 담담해졌다. 특히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대법에 대한 박해 초기, 사악은 간부 대열에서 나를 제명하는 방법으로 압박해 신앙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모두 성사되지 못했다. 나는 관직을 더 하려는 생각이 없었기에 이 방면에서 수련을 중시하지 않았다. 관료사회와 속인 중에서 현성된 관념은 줄곧 존재했고 자신도 모르게 수련환경에서 협력하는 일과 법을 실증하는 일을 지도자 업무로 보았다. 특히 몇 년 전 매번 정체 협력 항목이 있을 때 만약 협조인이 항목과 건의를 제기하면 수련생이 무조건 협조하기를 바랐다. 어떤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잘 협력하지 않으면 속으로 불평했다. 마치 지도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부하처럼 생각하고 기회를 찾아 질책하고 징벌하려는 마음이 자꾸 나왔다. 매번 다른 사람에게 현지 수련생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들으면 마치 내가 ‘지도’를 잘하지 못한 것처럼 느꼈으며 듣기도 싫고 불복했다.

지도자를 했던 사람의 관념은 쉽게 권력욕이 생긴다. 한 가지 일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012년 한 수련생이 납치된 후 현지의 몇 명 협조인은 가족과 함께 경찰국에 가서 수련생의 행방을 물었다. 돌아올 때 악인이 미행했다. 그들이 그중 한 협조인 수련생 집에서 교류할 때 악인에게 납치됐다. 다른 지역의 모 협조인이 듣고 나를 찾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협력한 것인가요? 그 지역 협조인은 왜 모두 납치됐나요?” 나는 반박했다. “그들을 내가 모두 ‘보냈다’고 말하는 건가요? 정말로 저를 높이 보시네요. 우리는 모두 수련생입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의 길을 배치할 수 없어요. 제가 수련에서 격차가 있고 잘 협조하지 않았다면 저는 받아들여요. 제 능력으로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어요. 그러면 당신이 조율해 봐요.” 당시 생각지 않고 한 말이다. 그녀는 듣고 진지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하지만 명분은 당신이 담당해야 해요.” “저는 무슨 명분이 없어요. 당신이 하세요. 저는 전력으로 협력할게요.” 당시 이렇게 말했지만 수련생이 간 후 내심은 공허했다.

며칠 후 현지의 한 협조인 수련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며칠 전에 변호사 의뢰 비용을 가져가려 한다며 내가 이젠 협조인이 아니라고 특별히 성명했다. 그녀는 새 협조인에게 가져다줘야 한다고 했다. 이 돈을 아직 사용하지 않아 그녀에게 돌려줬다. 그녀가 간 후 나는 속으로 불평했다. 나는 수련생 아내에게 말했다. “그녀가 수련인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소인배가 아닙니까? 돈은 나에게 준 것도 아닌데 어디에 놓으면 어때? 돈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다행이네. 돈을 사용했다면 내가 배상해야 했겠네.”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여기에 당신이 수련할 점이 있어요. 당신에게 불평하는 마음이 있어요. 이런 일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아요.” 그날 법공부를 할 때 안으로 찾았더니 이것은 질투심이었다. 협조인을 지도자로 보는 관념이 있기에 협조인을 하지 않으면 권력을 잃은 것 같은 쓸쓸한 감이 드는 것이다.

몇 년 전 외지 협조 수련생은 나와 핸드폰으로 진상을 널리 알리는 교류를 하며 물었다. “당신들도 핸드폰이 필요한가요?” 나는 핸드폰 한 대 가격이 얼마인지 수련생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물어볼 필요가 뭐 있어요? 이런 작은 일은 당신이 결정해도 되지 않나요?! 우리는 돈을 받지 않아요. 공짜로 800개 줘도 몇 만 위안 밖에 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안 될 게 뭐있어요? 우리는 모두 바른 일을 하는 것이고 현지에서 모두 내가 결정해요”라고 말했다. “우리 지역 주간 내용은 보충문제도 모두 내가 편집하고 다른 사람이 심사할 필요가 없어요.”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꼈다. 그와 간단히 교류했지만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후 그가 납치됐다고 들었고 나는 후회했다. 안으로 찾으니 당시 그와 교류를 똑바로 하지 못한 것은 자신도 협조인을 지도자로 봤기 때문이다. 협조인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다. 수련생을 도와 바르지 못한 사상을 바로 잡지 못했다. 그 수련생은 지금까지 감옥에 불법 수감돼 박해를 받고 있다.

우리 주변 시현의 한 협조인은 속인 중 지도자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지도자 관념이 무거웠다. 그녀는 나를 그의 상사로 대했다. 한번은 그들의 다른 한 협조인이 나와 그들 지역에서 발생한 한 가지 일을 교류했다. 나는 마땅히 이런 일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 지역에 가서 몇몇 협조인과 교류했다. 이후에 그녀는 크고 작은 회의에서 말을 돌려 먼저 나와 교류한 수련생을 질책했다. 원인은 그 수련생이 그녀를 지나쳐 나에게 그 일을 직접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동안 정돈 후 일부러 나를 찾아와 그 일을 보고했다. 당시 나도 이 방면의 관념을 닦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다만 그녀의 행동이 좀 불편했다.

협조인을 지도자로 보는 것은 협조인 수련생에게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라 일반 수련생도 같은 관념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협조인의 ‘관료주의’를 조장한다. 어떤 협조인은 자료점의 운영, 대법 자원의 관리, 진상전화 카드의 배치, 수련생을 도와 법공부 팀을 배치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권리로 여긴다. 한 현소재지의 협조인은 몇몇 수련생이 사람을 찾아 컴퓨터와 프린터를 구매하자 그들을 도와 프린터를 사준 수련생에게 강제로 반환하게 하며, 그들의 심태가 꽃을 피우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론 협조인의 행동이 통할 수 있는 것은 협조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수련생도 ‘이끌려’ 가는데 습관이 됐다. 지도자가 책임지지 않으면 무슨 대법 일을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알려주셨다. “누구든지 막론하고, 대법제자 속에는 벼슬이 없고, 책임자도 연락인일 뿐이며, 매 사람이 모두 수련 중이다.”[3] 누가 무엇을 담당하든지 어떤 역할을 하든지 내세에 발한 소원이 다르고 조사정법할 때 일하는 분야가 다르다. 예를 들면 협조 일을 하거나 기술 일을 하거나 대면에서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모두 속인 중의 능력으로 표현되고 이 능력의 크고 작은 것은 수련의 층차, 경지와 그리 큰 관계가 없다. 모두 자신의 장단점에 따라 세 가지 일을 하며, 조사정법을 하고 서약을 실행하고 있다. “누구도 대법(大法)을 도맡을 수 없다.”[4] “사실 책임자도 수련인으로서, 그는 단지 단체 활동에서 여러분들을 조직하여 대법제자 활동에 참가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일부 일들은 아마 전면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5] 더욱 많은 수련생이 보충하고 원융해야 하며 수련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두 각자의 작용을 발휘해야 한다.

협조인은 교사가 아니다

어떤 협조인의 속인 직업은 교사다. 흔히 선생님과 학생의 관념을 지니고 협조하는 일을 한다. 협조 범위 내의 수련생을 자신의 학생처럼 ‘관리’한다. 특히 대륙 사당문화의 환경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지나치다. 학생은 독립적인 인격이 부족하고 독립적인 사유가 부족한 기형적인 교육을 받았다. 학생이 선생님에 대한 의뢰심과 숭배심이 강하다. 이런 관념을 지니고 협조인이 일을 배치하면 학생처럼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완성하는 식이다. 심지어 한 가지 일에서 법에서 어떻게 깨닫고 어떻게 했는지 협조인이 먼저 표준 답안을 줘야 된다. 협조인은 모든 일에 초조하고 수련생에게 믿을만한 표준 답안을 주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한 협조인은 속인 중의 교사다. 수련생의 세 가지 일을, 어떻게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며 진상을 알리는 것을 선생님이 수련생에게 숙제를 내주는 식으로 배치한다. 심지어 현수막을 거는 시간, 진상 스티커를 붙이는 위치와 수량, 어느 자료점은 무엇을 하고 법공부 팀에서 무엇을 배우는 것을 모두 그녀가 조율, 고려해야 하며 상세한 배치를 해야 한다.

이런 범위에서 ‘학생’으로 습관이 된 수련생은 협조인 수련생의 말을 ‘법’처럼 대하는데 교류과정과 언행에서 볼 수 있다. 모모 현조인은 어찌어찌 말했다는 이런 식이다.

이런 환경에서 협조인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으로 찍히게 되면 다른 ‘학생’들의 공격을 받기 마련이다. 심지어 수련생 중에서 패거리를 만들어 사악에 시장을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다른 의견이 있는 수련생을 배척한다. 많은 간격은 바로사람이 사람의 이런 관념을 지키려는데서 생긴 것이다.

협조인은 학부모가 아니다

어떤 수련생은 지도자를 한 적도 없고 교사직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가정에서 권위가 있고 발언권이 있는 사람이다. 가정주부와 학부모의 관념을 대법 수련의 협조하는 일에 가져온다.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하고 수련생을 세심하게 보살펴준다. 협조인에 의뢰심이 생긴 수련생은 사양하지 않으며 자료가 없어도 협조인을 찾고 심성관을 넘기지 못해도 협조인을 찾는다. 수련생 집안 대소사는 모두 협조인을 찾아야 하며 어떤 사람은 아침밥을 먹지 못해도 협조인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 반대로 이런 수련생은 협조인을 극히 수호하고 누가 협조인이 문제가 있다고 들으면 즉각 나서서 반박한다. 이런 수련생은 대다수 의뢰심이 강하고 성숙하지 않다. 이런 사례는 아주 보편적이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북경 노수련생에게’[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집착을 더 없애자’[5]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26/3529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