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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 있으면 구세력이 틈을 탄다는 관념을 바꾸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단체 법공부를 하는데 너무 졸렸다. 이런 상태를 부정해 보려고 애썼고, 자신의 주의식을 강화하려 했지만, 정신을 차렸다가도 다시 흐리멍덩해지고 너무 힘들었다. 나는 구세력이 내 수련의 누락을 이용해 내가 법을 배우는 것을 교란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때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점심때 바삐 보내느라 쉬지 못하고 바로 오후 3시에 법공부를 하고 있으니 졸리지 않겠는가?

우리 가족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는데 특히 다년간 습관이 하나 형성됐다. 우리는 모두 오후에 법공부하기 때문에 오후 법공부 때 졸지 않으려고 점심을 먹고 1시간 남짓 낮잠을 자곤 했다. 이 염두가 나오자 비로소 이건 진정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고 속인의 생각임을 깨닫게 됐다. 내가 이것을 마음에서 정말 인식했을 때, 몸이 움찔하면서 일부 물질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졸음이 즉각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법을 보니 그렇듯 따스했고 법의 내포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 ‘전법륜’의 함의를 조금 알게 됐다. 머릿속의 관념은 모두 물질 존재인데 이런 불순한 물질을 지니고 신체가 고도로 정화되는 데 도달할 수 있겠는가? 법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 일을 계기로 삼아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하고, 이런 변이된 관념을 깊이 찾아보았다. 나는 왜 지금 중국에서 이렇듯 광범위한 교란과 문을 두드리는 행동으로 박해가 나타났는지 반성해봤다. 처음엔 나도 일부 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우리 정체 수련에 누락이 있어 구세력에 기회를 준 것으로 여겼다. 그 중에서 주된 것은 속인에게 의탁하는 심태와 시간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 때 나는 그냥 안으로 찾았다. 왜 우리에게 집착이 있으면 구세력이 박해하려 하는가? 아주 깊이 숨어 있는 관념 하나를 찾아냈다. 수련에 누락이 있으면 구세력이 곧 틈을 탄다는 관념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법 중에서 구세력을 승인하지 않으시는데 이런 관념은 법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런 관념이 왜 생길까?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구세력이 어떻게 정법을 대하고 어떻게 대법제자의 수련을 대하며, 어떻게 사유하고, 대법제자에게 구세력을 분명히 인식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벗어나는 것이 구세력을 승인하는 게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대법제자에게 누락이 있으면 그것은 틈탈 기회를 노린다.” 는 이것은 구세력의 사유 방식이 아닌가? 그러나 많은 수련생이 모두 이런 인식을 묵인하고 있다. 수련생에게 박해가 나타날 때의 첫 번째 염두가 바로 구세력이 틈을 탔구나, 어서 수련생에게 안으로 찾게 해야지 하는 것이다. 물론,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해야 하고,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면서 안으로 찾아서는 안 된다.

왜 법공부 하는 중에 사부님 법을 오해하는 이런 상황이 나타났을까? 나는 자신에게 법공부와 수련 중에 아주 깊은 불순한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는데, 바로 수련과 법 실증에서 무엇을 하면 저항력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구우주의 상생상극 이치에서 온 것이다. 구우주는 일정일부(一正一負)로 구우주의 일체를 균형 잡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구우주의 기본 속성인 이기적인 데서 비롯된다. 이런 낡은 속성을 갖고 어떻게 대법의 법리를 인식할 수 있겠는가. 이는 법공부에서 매우 뚜렷한 하나의 문제다.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모든 중생이 정법이라는 이 일에 대해 죄를 짓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대법에 동화하며, 대법으로 일체 생명간의 원망을 선해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법에서 모두 알게 됐다. 생명 간에 상호 보답하는 것이 아니다. 구세력이 생명의 역사상 이런 원한을 이용해 정법에 마난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대법제자 수련에 누락이 있다는 이유로 기회를 틈타 대법을 고험하고 생명을 훼멸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이 일을 통해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과 관련해 새로운 인식이 들었다. 내가 처음에 그런 것을 승인하지 않은 것은 구세력에 맞서는 것으로, 나는 아예 승인하지 않고 곧 법공부를 할 것이다. 맞서는 자체가 이미 자신을 구세력과 한 층차에 놓은 것이다. 가령 구세력의 배치를 돌파한다고 한다면 자신을 구세력의 아래에 놓아야 하는데, 그럼 이건 구세력을 승인하는 것일 뿐 아니라, 발견하기 어려운 구세력의 배치다. 해놓은 일체가 모두 사람의 방법이거나 구우주의 이치일 것이다.

다들 법에서 알다시피, 사부님께서는 정법하러 오신 것이고 대법제자는 조사정법을 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번 정법에서 전 우주의 중생을 구도하고자 하신다. 하지만 구우주의 생명이 사부님의 정법 가운데서 구도될 수 있는지 여부는 생명이 자신을 개변하고자 하는지 여부에 달렸다. 대법제자의 수련도 마찬가지다. 사부님께서는 정법가운데서 법으로 오직 우리 자신이 노력하고 추호의 보류도 없이 자신의 인식을 개변하여 바로잡는다면, 일체 대법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물질과 요소를 정화해 주시어 우리를 대법에 동화하게 해주신다. 이는 곧 우리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오직 안으로 자신의 원인을 찾고 동시에 단호히 그것을 갖지 말 것을 요구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이런 폐물을 없애주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를 가로막는 구세력을 제거해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세력의 배치를 벗어나 바로 대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다.

대법은 바로 수련이고 대법 수련은 직지인심이며, 정법하시는 분은 오직 사부님뿐이라는 나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이러면 우리는 일정일부로 균형 잡는다는 일체 낡은 법리에서 뛰쳐나와, 중생이 정법에 죄를 지어 도태 당한다는 낡은 배치 속에서 대항 식으로 수련하기를 버리고, 구세력이 강요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수련은 정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며, 단지 구우주의 생명 성취 방식에 대한 한 가지 실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새로운 단계에서 작게 인식한 것이니 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8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30/3531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