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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은 철저히 개변되었다

글/ 대륙대법제자 정위(正宇)

[밍후이왕] 나는 대륙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로 올해 42세이며, 1996년에 법을 얻어 수련했다.

나는 엘리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신론 설교의 세뇌를 받아 신불이나 귀신, 영혼이 있다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 심지어 한 때는 예수, 석가모니는 단지 전설 속의 인물이지 진실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불법수련을 걷게 되었을까?

혈뇨와 결석으로 힘들었던 나날

나는 어릴 때, 신체가 좋아 큰 병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1990년 고등학교 일학년 때, 혈뇨 현상이 빈번히 나타났는데, 격렬한 운동을 하기만 하면 혈뇨가 나왔다.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난치병 판정을 받았다. 소변을 볼 때마다 선홍색 혈뇨가 나오면 마음속으로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부모님도 조급해 하시며 나를 여러 병원에 데려 가 검사하고 B-scan초음파를 찍고 심지어 정맥 조영술도 받았으나 혈뇨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혈뇨증상은 이어지다가 1995년 대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심해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원인은 신장결석이었다. 고등학교 때 병원에서 검사했던 자료를 이 병원 의사에게 보여주었더니 그는 이 필름에 이미 결석이 나타나 있었는데, 아마 그때 돌이 너무 작아 의사가 자세히 보아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매우 유감스러워하며 만약 그때 진단해냈다면 이렇게 작은 돌은 배석탕을 마시면 요도로 자연히 배출되었을 수 있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나 결석은 2.7cm까지 자랐다. 수뇨관의 직경을 너무 많이 초과해(정상인의 수뇨관 직경은 0.8cm이다) 결코 배출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의사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수술을 해서 돌을 없애는 것이고 두 번째는 초음파 체외충격 파쇄석술이었다. 신장결석 수술은 대수술이고 칼이 긴데다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모님은 딸이 견뎌내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워 초음파 체외충격 파쇄석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1995년 여름방학 때, 이 파쇄석술이 뛰어나기로 소문 난 다른 도시의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았다. 수술비, 입원비, 식비로 여름방학 때 수천 위안을 썼다. 부모님은 평범한 월급쟁이였기에 90년대에 우리 가정에 이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결석의 고통은 이로써 끝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 의사가 말한 것과 달리 그런 파쇄석술로도 전부 깨끗하게 배출되지는 않았고 단지 일부만 배출되었다. 나머지 일부는 신우(腎盂)에 남았는데, 그것이 핵심이었기에 아주 빨리 크고 더 많은 결석이 생겼다. 의사는 배출된 돌을 가져 가 화학실험을 해 수산칼슘 결석임을 알아냈는데, 이런 결석은 재발이 매우 쉬워 설사 다시 체외 파쇄석술을 하고 수술로 전부 없앤다 해도 또 재발한다고 했다.

의사도 방법이 없어 엄청 많은 초약탕을 장기간 나에게 마시게 했다. 그러나 이런 초약탕은 결석의 성장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결석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대학생활은 다른 학우들 보다 할 일이 한 가지 더 많았는데, 매일 중약탕을 달여 마시는 거였다. 그 해 대학 숙소는 전기 사용 안전 문제로 학생들에게 조리용 전기히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내 병이 심한 것을 보고 과에서 나만 특별히 사용하도록 허락받았다. 매일 밤 공부가 끝난 후에 나는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학우들은 우리 침실을 지날 때면 짙은 약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일로 나는 의기소침해졌고 매우 곤혹스러웠다. 신장결석은 불치병도 아닌데, 왜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하는가? 설마 한평생 약탕기를 달고 살아야한단 말인가? 학우들이 신나게 체육 과목을 듣는 걸 볼 때마다 나 혼자만 조용히 있어 소외감을 느꼈고, 다른 학우처럼 마음껏 뛰고 싶었지만 뛰기만 하며 또 대량의 혈뇨가 나왔다.

탕약을 마시던 기간에 몸은 갈수록 허약해졌다. 탕약 때문이 아니라 체외충격 파쇄석술을 할 때, 초음파가 신장에 심한 내상을 입혔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길을 걸어도 힘이 없었고 수면양이 많이 부족했으며 수업에도 집중력이 떨어져 공부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전에 내 전공과목 성적은 전 학년 중에 3등이었다. 그래서 열등감이 자양되어 온 몸과 마음을 덮어씌웠다.

가짜 기공과 인생에 대한 사고

결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민간요법을 해 보았고, 심지어 난잡한 기공도 연마한 적이 있었다. 결국 돈만 많이 쓰고 돌은 몸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튼튼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기억하기로 한 번은 어느 한 기공사가 나에게 ‘담기 좋은 자루’라고 했고, 나는 그에게 공을 내보내 나를 치료해 달라고 했다. 그는 공을 내보낸 후에 치료되었다며 나에게서 300위안(한화 약 51,000원)을 받아갔다. 그 후에 나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으나 돌은 여전히 있었다. 나는 필름을 그 기공사에게 가져가서 보여주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 기공사는 환불을 요구하는 줄 알고 화를 내며 필름을 한쪽으로 밀고 “병원에서 잘못 검사한 거다. 돌이 없다면 없는 줄 알아라. 한 푼도 환불하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그런 무뢰하고 난폭한 태도에 나는 놀랐다. 이런 기공사가 흔히 말하는 덕이오, 좋은 일을 하시오 라는 것은 입에만 발려있는 것이다.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고 약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 중에서 나 역시 인생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병이 없었다면 순풍에 돛 단 듯이 공부하여 졸업하고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도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듯한, 사람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확실히 곤혹스러웠다.

이러한 의혹을 풀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많은 책을 보았고 학술보고회에 가서 전문학자의 강의도 적지 않게 들었으나 신복할 만한 답은 찾지 못했다. 당시 자신은 홀로 고독하게 비바람 속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목표도 없고 방향도 없다고 느꼈다. 비록 주변에 교수님과 학우들이 있으며 가정에는 부모님이 계셨지만, 항상 고독하고 고뇌했으며 멍하니 지냈다! 그 시기의 나의 생활과 심태를 색채로 형용하자면, 그것은 바로 암흑이었는데, 극도의 암흑이었다.

그런데 높고 아득한 하늘에서 마치 한 목소리가 나에게 멀지 않은 장래에 한 사람이 출현하여 나의 인생을 철저히 개변시킬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하여 철저히 개변되었다

대학 3학년 때인 1996년 6월, 우리 과에 청강하는 한 여학생이 왔는데, 우아하고 조용했으나 청강생이라 다들 그녀와 사귀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다른 학생이 그 청강생이 기공을 연마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흥미가 일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그녀를 찾아 물어보았다. “너 기공을 연마하니?” 그녀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무슨 공인데?” 라고 물었다. 그녀는 종이와 펜을 들고 내게 세 글자를 써주고는 “바로 이 공이야.” 라고 말했다. 내가 보니 ‘파룬궁(法輪功)’ 세 글자였다. 이 세 글자를 보고 나는 마음속에 진동이 일며 또 물었다. “나도 배울래. 너 나 가르쳐줄 수 있니?” 그녀는 할 수 있다며, 나에게 저녁에 연공장인 대운동장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학비는 얼마야?” 라고 물었다. 왜냐하면 전에 어떤 공을 배우든지 모두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태연히 웃으며 “학비는 받지 않아.” 라고 했다. 나는 ‘이거 너무 좋다!’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와의 이 몇 마디 간단한 대화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서서 나의 인생이 철저히 개변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연공장으로 갔다.

연공장에 도착하자 어찌된 일인지 매우 편안함을 느꼈고 내심으로부터 상쾌함을 느꼈다.

연공장을 한 번 둘러보니 20여명이 있었는데 학생과 교수, 노동자와 주부, 등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두 오랜 친구처럼 나를 대했고 나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고 동작을 고쳐주었다. 어떤 아저씨는 자신의 방석을 나에게 주고 가부좌를 가르쳐주었는데, 조금도 낯선 느낌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여기는 정토(淨土)다…….’

바로 이렇게 매일 저녁 연공장에 가서 공을 배우고 연공했다. 연공장은 대운동장 끝에 있었고 바로 옆에는 큰 풀숲이었다. 당시 날씨가 더워, 풀숲은 모기의 낙원이었고 정공을 연마할 때는 우리를 물었다. 그러나 가부좌를 하기만 하면 전신은 에너지로 충만되었고, 에너지가 체내에서 돌고 있음을 뚜렷하게 느꼈다. 이 에너지장은 대단해 모기들은 우리를 결코 물지 못했다. 어떤 때 나는 연마 중에 모기가 온 것을 느껴 눈을 뜨고 보았는데, 그 모기는 내 무릎 주위를 돌며 몇 번을 물려고 시도했지만 닿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연공하고 10여 일이 지난 후에 나는 신장 부위가 이따금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차가운 기운이 쏴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듯해 노 수련생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만약 신장에 병이 있다면 바로 사부님께서 신체를 청리해 주신 거라고 했다. 나는 신장 결석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번 해보라며, 아마도 사부님께서 이미 당신에게서 청리해주셨을 거라고 했다. 이튿날 나는 병원에 가서 B-scan초음파 사진을 찍었는데, 와! 돌이 없어졌다! 또 다시 복부방사선촬영(복부엑스레이촬영)을 한 번 했는데, 역시 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속의 그 기쁨이란, 마침내 나를 괴롭히던 10여 년의 돌에서 벗어났다!

당시 나는 이 좋은 소식을 수련생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놀라지 않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이런 일이 그들 자신이나 혹은 주위 사람에게 너무 많이 일어나 무슨 신선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수술도 하지 않았고 돌이 배출되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돌은 어디로 갔나요?”라고 물었다. 한 물리학과 학생이 돌은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가져가셨다고 말했다. 나는 무엇이 다른 공간인지 잘 몰랐다. 그는 나에게 책 속에서 무엇이든 다 명백하게 말씀하셨으니 책을 보라고 했다. 비록 ‘전법륜(轉法輪)’을 읽었지만 나는 흥미 있는 부분만 골라 보았었다. 예를 들면, 병 치료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나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책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법륜(轉法輪)’을 본 후에 나의 인생을 곤혹스럽게 했던 문제에 대해 모두 명백해졌다. 나는 나의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었고, 나는 만약 내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 수련 후에는 또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나는 내가 왜 세간에 왔는지 알게 되었고, 나는 인생의 목적과 의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정말로 개변되었다. 방향과 목표가 생겼으며, 건강하고 충실해졌으며 낙관적이고 자신감이 생겼으며 향상하게 되었다.

파룬불법(法輪佛法)은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었고, 마지막 2년의 대학 공부를 하면서는 혈기가 왕성했고 반응도 민첩했으며, 1997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교사 직업을 가진 후 나는 곳곳마다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동료와 자신의 학생들을 선하게 대했다. 나는 전교에서 유일하게 학부모가 주는 선물과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였고, 또한 유일하게 돈을 받지 않고 학생에게 보충 수업을 해주는 교사였다.

사악한 소인 장쩌민이 비열한 질투심으로 발동한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 이후에 나는 수천수만의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참혹한 박해를 당했는데, 여러 차례 불법적으로 감금, 구류, 노동교양, 판결을 당하고 아울러 교사 직업도 잃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겁난에서 구사일생으로 출옥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친척과 친구는 내게 “하나의 신앙을 위해 너는 이렇게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이 감당했어. 어째서 너는 그렇게 융통성도 없이 파룬궁을 포기하려 하지 않니?” 라고 묻는다. 이런 문제에 대해 나는 반대로 그들에게 물었다. “만약 한 공법이 있는데, 오랜 세월 당신을 고통스럽게 한 병과 통증을 돈 한 푼 쓰지 않았는데도 없애주고, 원래 약탕기와 평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에게 온 몸에 병이 없는 건강하고도 가벼운 사람으로 바꿔주었다면, 당신은 포기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공법이 당신을 편집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에서 활달하고 자신감 있으며 무사(無私)한 사람으로 바꿔주었다면, 당신은 포기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공법이 당신이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 광명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면, 설령 가장 참혹한 중국 공산당의 감옥일지라도, ‘진∙선∙인(眞∙善∙忍)’ 진리의 빛으로 그곳의 가장 암흑적인 감금을 베어 없앨 수 있다면, 당신은 포기할 수 있겠는가?

친구여, 이지적으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왜 이렇게 참혹한 박해를 당하고도 수련생들은 여전히 정의를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수련의 길에서 나아가는가? 그것은 왜냐하면 바로 파룬따파는 진정한 고덕대법이기 때문이다. 파룬따파는 정말 좋다! ‘쩐, 싼, 런(眞∙善∙忍)’은 정말 좋다! 파룬따파는 정말로 매 한 사람, 매 한 민족, 매 한 지역, 매 한 국가에 무한한 아름다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원문발표: 2017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8/3507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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