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파룬따파를 20년 간 수련했다. 어느 법회부터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수련생의 격려로 나는 법회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대개 7,8번 썼다. 문장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매번 법회 문장을 쓰면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찾을 수 있고 매번 조금씩 제고됐다. 아래는 법회문장을 쓰면서 질투심과 과시심을 찾은 과정을 글로 적었다.
질투심을 찾은 과정
먼저 법회문장을 쓰기 전에 글 쓰는 것을 배우기 위해 수련생 문장을 대량으로 읽고 어떻게 썼는지 보았다.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밤중까지 썼으며 아주 힘들었다. 이런 일을 쓰면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어떤 일을 쓰든지 만족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쓸까? 어떤 일이 가장 두드러진 것일까? 이렇게 쓰고 찢어버리고 찢고 또 쓰고 결국 쓰지 못했다. 자신이 배운 것이 적기에 먼저 다른 수련생이 쓴 문장을 좀 더 배우기로 했다. 다른 수련생의 문장을 보니 세상을 놀랄만한 일은 없고 모두 평범했다. 나도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왜 써내지 못할까? 승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노력해도 쓰지 못하고 승복하지 않는 마음도 포기하게 됐다.
어느 날 법공부를 할 때 “기공사가 학습반을 열면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도 불복한다. 아, 무슨 기공사인가. 그가 말하는 그런 것들을 난 듣고 싶지도 않다. 기공사는 정말로 그가 말하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그 기공사는 그 자신의 한 문(門)의 것을 말하는 것이다.”[1]를 배웠다. 나와 대조해 보았다. 이것은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질투심이 아닌가?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는구나. 그때부터 나는 수련생이 말한 ‘법에서 법을 이해해야 한다’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됐다. 뒤돌아 수련생이 쓴 문장을 보다 감동받아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같은 문장도 서로 다른 심태를 지니고 보면 이렇게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안으로 찾음’의 신기함을 느꼈다.
과시심을 찾은 과정
법회 원고 통지에서 자신을 실증하는 것을 쓰지 말라는 지적을 보고 나는 ‘자신을 실증함’과 ‘법을 실증함’의 구별점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법을 실증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일사일념에서 자신을 찾았다. 자신의 출발점은 ‘나’에서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어떤 일은 내가 어떻게 한 것이고 얼마만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얼마나 고생하며 한 것이며 어떻게 멋지게 해냈는가를 쓰려 한 것이었다. 수련생에게 자신이 잘한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잠재의식에서 타인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려 한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당문화의 ‘회의(開會)’가 아닌가? 이것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써야 ‘법을 실증’하는 것인가? 우선 구상할 때는 관념을 바꾸고, 수련 과정에서 무슨 어려움에 부딪히면 법의 지도 아래 어떻게 했는지 썼고, 법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썼다. 최후로 법은 어떻게 펼쳐졌으며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썼다. 이때 다시 수련생의 글을 보니 자신과 수련생의 격차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천지 차이였다. 하지만 ‘근원’을 찾지 못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마음인가? 사부님께서 내게 이런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에게 점화해 주셨다. 한 단락 법을 배울 때 “당신의 공능이든 당신의 개공이든 당신은 대법(大法)수련 중에서 얻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법(大法)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고 당신의 신통을 중요한 위치에 놓거나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大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1]가 보였다. ‘과시심’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됐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펜을 들고 법회에 참가하자. 사부님께 심려를 덜 끼쳐드리자!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8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19/3527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