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당(黨)문화와 깊이 은폐된 질투심을 연마해 없애는 방면에서 조금 깨달은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여러분과 나눠보려고 한다. 층차와 깨달음에 한계가 있으니 정확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의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1. 어려움 중, 고비를 넘기는 중 마음을 닦다
사부님께서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 한 단락 법을 반복적으로 읽었고 외울 줄도 알지만 진정으로 중시하지 못하고 그것을 하나의 집착심으로만 생각하고 없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질투심을 없애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즉 이 마음을 갖고 아무리 많은 일을 했을지언정 결국엔 수포로 돌아가고 헛수련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껏 회사에서 누구와 갈등이 있은 적이 없고 다른 사람이 내게 의견을 제출해도 늘 싱글벙글 웃으며 받아들였기에 자신에게 질투심이 아주 적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어떤 때 아이를 교육할 때나 가족 수련생과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별로 큰일은 아니었다. 어떤 때 가족 수련생과 아직 속인의 정이 있기 때문에 가정의 갈등이 있는 것이고 전반 수련에 무슨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에서 이전에 법을 비교적 많이 외웠고 법공부 팀에서 교류하기 좋아했으며 어떤 때 심성을 잘 지켜냈다고 수련생들이 칭찬도 해줬다. 이렇게 되자 질투심을 없애는데서 더욱 착실하게 연마하지 못했고 또한 제고하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얼마 전에 일하는데 바빴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과 안일심의 방해를 받았고 돌파하려고 해도 아주 어려운 것 같았으며 정진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때 발정념 할 때 입장이 비뚤어지고 어떤 때는 연화장을 벌리지 못한다. 이후에 몸에 병업 방해가 나타났고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체적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내게 구세력은 끊임없이 내 공간장에 아주 소극적인 물질을 주입시켰기에 처음으로 수련이 정말로 매우 힘들고 몸과 마음이 아주 큰 압력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태 중 수련생 A가 날 찾아와 교류했다. 그녀는 “저에 대해 뒤에서 말한 적이 있으시죠? 저는 당신이 저에 대해 뒤에서 말할 때 질투심이 가득 차 있고 절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이 옳고 제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 같았어요”라고 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잠재의식에 바로 ‘정말이에요? 그럼 정말 미안했어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심지어 2, 3년 전에 우리가 막 만났을 때 내가 했던 말들, 그녀에 대해 무슨 좋지 않은 생각을 했던지 생각해봤더니 정말로 이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로 그녀를 질투했었다. 어떤 때 이것은 질투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그것이 나타났을 때 제때에 그것을 잡지 못했고 철저히 그것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질투심은 줄곧 내 공간장에 존재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부풀어나고 있었으며 좋지 않은 물질을 발산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눈물이 났다. 사부님께 ‘잘못했습니다. 질투심을 없애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습니다’라고 했다. 이후에 수련생 A와 또 한 번 솔직하게 교류했고 진심으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녀에게 가져다줬던 상처에 대해 사과했다.
신체에 심한 교란이 나타났기 때문에 자신의 수련 중 나타난 문제를 엄숙하고 착실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드시 하나의 사실, 즉 잘 연마하지 못했고 많은 것은 표면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대면해야 했다. 정말로 질투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깊이 은폐되어 있고 아직도 계속 부풀어 올라오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강한 일념을 내보냈다. ‘제자에게 누락이 있지만 법 중 바로잡을 것이니 절대 그 어떤 생명이 와서 박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어떤 강요된 박해는 다 법에 맞지 않고 절대 승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주변 수련생도 날 도와서 발정념을 했고 자신도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강화함으로써 이번 신체에 대한 교란의 고비를 넘겼다. 이후에 꿈에서 사부님께서 아주 큰 업력을 감당하신 후에야 비로소 내가 걸어지나왔다는 것을 봤다.
내가 진정으로 이 마음을 인식하고 이 마음을 없애며 끊임없이 법 중 바로잡을 때 아주 기묘한 광경이 나타났다. 인생 중의 많은 일들이 영화필름처럼 하나하나 보였다. 심지어 몇 년 전에 발생했던 일, 내가 말했던 말, 움직였던 생각 뒤에 질투심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물건이 이미 표면으로 올라온 것 같았다. 지금 매일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딸에게 선물을 사주고 내게 사주지 않았다. 나는 “왜 저에게 선물을 사 주지 않았어요? 딸이 나보다 당신을 관심하는 것도 아닌데”라고 했다. 이 말이 나오자 질투심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남편이 열쇠로 문을 열지 못하면 짜증을 내며 “왜 당신은 다른 사람처럼 못하죠?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도 다 열 수 있는데 왜 당신만 열지 못해요?”라고 말한다. 말할 때 몰랐는데 이후에 질투심이 남을 깔보게 내게 영향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한 층의 법리를 깨닫고 다시 질투심에 관한 이 한 단락 법을 읽었을 때 또 아주 많은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설법할 때 늘 질투심 문제를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질투심의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1]까지 읽었다.
여기까지 읽고 비로소 원래 내가 잘 연마했고 질투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이 너무 강렬했고 너무 강렬해 스스로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어느 마음, 어느 생각들이 질투심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분별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또 “기공사가 학습반을 열면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도 불복한다. 아, 무슨 기공사인가. 그가 말하는 그런 것들을 난 듣고 싶지도 않다.”[1]까지 읽을 때. 이것은 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때 다른 수련생의 교류를 들을 때 어떤 것은 듣기 싫어했다. 이 한 단락은 바로 날 말하고 있는 것이구나. 이것이 질투심이었구나. 그것을 없애야겠다.
또 이 마음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냈다. 내가 어릴 때 내성적 성격인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이런 성격은 쉽게 질투심을 형성한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것이 내 첫 번째 일이었고 최우수 직원으로 선정됐는데 이유는 성격이 좋고 고객에 대한 태도가 제일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가족에게 화를 내자 가족은 바깥에서는 왜 그렇게 좋은 성격인척 하냐고 했다. 당문화가 주입되고 당문화의 교육환경 중 자란 나는 이중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질투심이 생긴 근원이고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다.
이후에 줄곧 판매 일을 했고 하루 종일 사람과 접촉했기에 자신이 내성적 성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과 질투심을 관련시키지 않았다. 이후에 장기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해 속인 중의 판매 능력을 키워냈다. 속인은 ‘좋은 판매원은 반드시 좌절을 이겨내는 능력이 강해야 한다. 즉 뻔뻔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늘 고객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하기 시작한다. 욕을 많이 듣다보니 능력도 늘었다. 누가 나보고 뭐라고 해도 화를 내지 않고 보통 비평과 질책은 전혀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농담 삼아 넘겼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속인 중 양성한 매끄러운 처세술일 뿐 사실 마음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개변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마음은 줄곧 깊이 은폐되어 있었고 제때에 발견되지 못했으며 또한 제고해야 할 기회를 놓쳤다.
2.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 중 제고
한번은 수련생이 찾아와 나와 교류했는데 나에 관해 말했다. 대략 ‘당신이 법을 그렇게 많이 배우고 그렇게 많은 법을 외울 줄 알아도 소용없다. 착실하게 연마하지 않고 자신을 연마하지 않기 때문에 법을 얻지 못할 것이고 제고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이 말을 듣고 몇 초간 멍해있었다. 내가 그 수련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고 아직 기회가 없어 말하지 못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녀가 나에 대한 견해와 내가 그녀에 대한 견해가 같은지 사고하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집착심이 있는지 봤을 때 사실 내 자신의 공간장에도 그런 물질이 가득 차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이 날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봤을 때 그녀에게 진짜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내가 그녀에게 있는 문제를 보고 자신을 연마하고 제고하라는 것이다.
동시에 나도 장기적으로 자신이 고수했던 관념을 찾아냈다. 즉 언제나 다른 사람을 법으로 가늠하고 요구했다. 어떤 때 법공부할 때 혹은 밍후이 교류문장을 읽을 때 어디까지 읽으면 머리에 ‘어! 이것은 그 누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녀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때 갈등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 입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을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1]라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바로 머리에 떠올릴 수 있으나 대조한 것은 다른 사람이고 자신을 본 것이 아니다.
어떤 때 갈등이 생겨 다른 사람이 나보고 뭐라고 하면 입으로 “알았어요. 다음에 꼭 주의할게요”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즉시 “오늘날의 이 사람은 바로 이러한데, 문제와 마주치면 우선 책임을 떠넘기고, 탓할 것이든 탓하지 않을 것이든 그는 모두 밖으로 미루어 버린다.”[1]라는 사부님의 법을 떠올린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바로 생각나지만 역시 다른 사람을 겨냥했던 것이다. 나는 또 생각했다. 이것은 말한 것과 생각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닌가? 이것은 당문화의 말 따로 행동 따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진(眞)’에 부합되지 않고 또한 질투심의 표현이다. 이후에 이런 생각들이 아주 많고 거의 매일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때 아주 곤혹스러워하면 도와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하기도 하는데 이후에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했다. 그것이 나오기만 하면 부정하고 소멸했다. 지금 그것은 이미 갈수록 약해졌다.
이번의 마난과 교훈을 겪은 후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로움을 깊이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날 대신해 큰 업력을 없애주시는 동시에 정념을 계발해주셨고 수련의 엄숙성을 체득하게 하셨다. 심성을 닦는 방면에서도 다시는 게으르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당문화와 질투심을 없애지 않았고 수구(修口)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업력을 없앨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전체 항목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줬다.
법공부를 통해 당문화가 주입되고 질투심으로 충만된 사람은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진(眞)에 부합되지 않는다. 늘 말 따로 행동 따로 거나 사실을 부풀리고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약속하기 때문에 자신이 한 말을 실행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선(善)에 부합되지 않고 선(善)이라도 위선이고 자신의 선을 표현하기 좋아하며 진정으로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 인(忍)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다른 사람과 일에 대해 용인할 수 없다. 늘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늘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구우주 생명의 이기적인 특성의 체현이다. 사(私)에서 걸어 나오는 과정 중 당신에게 잘 연마하려는 마음이 있고 착실하게 이 집착심들을 대면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다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고 사부님께서 줄곧 날 도와 좋지 않은 이 물질들을 없애주시는 것이다.
지금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모순이 생기면 ‘왜 이런 장면을 보고 듣게 할까’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어떤 사람이 누구를 욕하려 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욕하지 않을 수 있다. 오직 정법수련의 에너지장만이 비로소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불교 중에는 이런 한 마디 말이 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뜻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연마를 잘했고 에너지장이 아주 바르면 이런 일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어느 방면에 잘하지 못했는지 자신을 찾을 수 있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무슨 좋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 보이면 ‘내게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왜 보게 했을까’를 생각하고 먼저 자신을 보면 정말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방법이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이전에 나도 그랬어. 수련 중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의 우주 대법을 정오(正悟)하는 방식과 과정이 있는데 왜 꼭 내 생각대로 해야 하는가? 우주의 법이 그렇게 큰데 무슨 좋지 않은 것을 바로잡을 수 없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고 용인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일을 하고 있으나 마음의 경지와 사유방식은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우주의 법이 날 단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법의 위대함이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8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11/3523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