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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욕을 내려놓고 사람에서 걸어 나오다(1)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은 자고로 문명 예의지국이었고 고대 성현들은 사람의 도덕 수양을 무척 중시했다.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각별히 엄격히 요구한바 나쁜 생각을 하나라도 움직여도 큰 과오로 여겼다. 이는 사람에 대한 단속이자 사람에 대한 보호였다.

이런 보호 덕분에 인류 도덕은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됐고 사람이 성문란으로 자신을 훼멸하지 않게 했다. 실제로 사람은 매우 저능하고 통제력이 약하다. 만약 일찍이 남녀 간 단속을 풀어놨다면 5,000여 년 한 길을 걸어오면서 사람은 아마 오늘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성문란으로 일찌감치 훼멸됐을 것이다. 이는 신의 배치이고 사람에게 대법이 전해지길 기다리게 한 것이다.

지금 사회는 유혹이 너무나 크고 각종 부정적 요소가 모두 나왔으며 곳곳에서 성문란 요소를 볼 수 있다. 색마가 빈번하게 사람을 향해 손짓한다. 한 수련인으로서 이 난세 속에서 수련하는 것은 거대한 유혹과 선택을 마주하는 것이다. 일부 수련자는 이 타락한 조류를 따라 내려가 버렸는데 명리와 색욕을 누리며 자신이 돌아갈 길을 막아 없앴다. 또, 자신에게 무한한 희망을 기탁한 무량한 중생을 훼멸시켰다. 일부 수련인은 자신의 일사일념을 파악해 안정적으로 이 역사상 가장 더럽고 혼란한 시기에서 걸어 나와, 미래의 신생(新生)으로 나아가고 있다.

요 몇 년 나는 일부 수련생이 색욕심을 제거하지 못해 자신을 속인과 혼동한 것을 안다. 그러다 사악에게 박해당하고 감옥에 갇혀 혹형의 시달림을 받고 있다. 또 일부 수련생은 색마에게 잡혀 귀중한 사람 몸을 잃어버렸다.

현재 수많은 수련생이 문장 속에서 이미 청성하게 인식했는데 ‘색’과 ‘욕’ 모두 일종의 마이다. 마의 교란에 직면해 우리는 자신을 방임할 수 없고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수련인으로서 색욕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야 하고 색욕은 삼계 저층에서 사람에게 만들어준 물건이며 한 수련인이 내원한 곳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이런 물건들을 내려놔야 비로소 승화해 올라갈 수 있다.

요 몇 년 수련에서 나는 색욕의 배후에 있는 일부 생명과 요소를 봤고 그것들의 일부 표현도 봤다. 나는 요 몇 년간 보고 깨달은 일부 일들을 적어내 수련생들의 중시를 일으키고 싶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께서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사람의 삶은 영아부터 시작해 점차 늙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눈, 코, 입, 귀, 몸, 대뇌로 세계를 접촉하고 인식하고 사고하며 생활의 낙을 누린다. 자기도 모르게 무수한 집착과 관념을 산생하고 이런 욕망과 집착, 관념이 아주 강대하게 변할 때 거꾸로 감각기관을 점거하고 통제한다. 즉, 육신을 통제한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신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선천적인 본성이 작용을 발휘할 수 없고 후천적인 무수한 관념과 욕망에 좌우지되고 사람 속에 미혹돼 타락과 훼멸로 나아간다.

우리의 생명은 높은 곳에서 왔고 점차 아래로 걸어 내려와 삼계로 진입했다. 육도에서 윤회해 천인, 사람, 동물, 식물, 물질, 귀신 등등으로 전생할 수 있다. 우리는 전생한 뒤 매 한 생에 모두 ‘자아’ 관념을 형성했다. 남자로 전생하면 남자의 물질을 자신으로 여기고 여자의 아담함, 미모와 부드러움을 좋아하고 여인의 신체에 마음을 움직인다. 여성으로 전생하면 남자의 어깨에 기대 고난을 지나가길 희망하고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갈망한다.

더욱이 말겁 난세에서 사람 간의 인연 관계는 아주 복잡하며, 시대의 타락으로 남녀 간의 유혹이 여지없이 펼쳐져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온다. 수련인이 속인 사회에서 수련함에 어느 시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자기 수련 중의 한 가지 큰 액운이 될 수 있다.

삼계 윤회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아직 전생하기 전에 신은 이미 어느 곳의 한 가정에 우리의 위치를 하나 마련해주었다. 우리는 이 가정으로 전생해왔고 가족이 있다. 성장 과정에서 동창생, 친구, 자신과 인연 있는 일체 사람이 모두 나타난다. 후에 자신의 가정을 만들고 한 새 생명이 오기를 기대한다. 인생은 인연의 연속에 불과한데 선연이든 악연이든 인연이 있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고 인연이 없으면 만날 수 없다. 인연이 맺어지고 끝나는 중에 우리는 인연을 맺고 소원을 이루는데, 업을 갚고 또 무지 속에서 계속 업을 지어 가라앉는다.

대법제자는 행운스럽게 대법을 얻었고 생명의 참뜻을 깨달았다. 생명 깊은 곳에서 오는 일종 청성과 희열이 있다. 이 세간에서 우리를 가로막을 것이 없다고 느끼는데 우리는 용맹정진해야 하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세간은 지극히 타락한 말세이고 각종 각양의 저애 요소가 모두 운집해 각 단계에 나타나 우리를 교란한다. 이런 저애 속에서 가장 심한 것이 바로 색욕의 교란이다. 그것은 정말로 일부 수련인들을 끌어내렸다.

인류사회에서 사람은 부부간의 욕망을 본능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부부간 욕망의 존재는 사람에게 강제로 가한 것이고 그것은 사람의 일종 생존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이 방면의 일은 삼계의 생명이 담당한다. 생식 기관의 생리반응은 자신의 주왠선(主元神)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일부 사람은 이미 감지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고층차에서 보면 속인은 사회 중에서 그야말로 흙을 주무르면서도 더러운 줄 모르고, 땅에서 흙을 주무르며 놀고 있다고 한다.”[1] 고층에서 신은 이렇게 인식하고 느낀다. 오로지 사람만이 이것이 편안하고 향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입체적으로 이 세계를 보면 사람의 배후에 수많은 요소가 사람을 통제하고 사람을 좌우지함을 발견한다. 사람은 피동적이다. 자유롭지 못하고 또 아주 가련한 것이다. 아울러 사람 속의 이치는 모두 반대다. 각종 문화가 성욕, 정욕을 묘사하는데 이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고 도덕을 더욱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게 했을 뿐이다.

사람의 색욕은 사실 생생세세 윤회 속에서 구세력이 체계적으로 배치한 것이고 사람에게 강제로 가한 것이다. 그것의 내원은 그리 높지 않고 뿌리도 깊지 않다. 바로 삼계 내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 이 육신을 통제하고 사람은 육신의 감수를 받아들인다. 색욕은 의지력이 강하지 않은 수련인에게 아주 큰 살상력이 있다.

우주 저층에서 생활하는 우리로서 대법 수련 속에 걸어 들어와 삼계 각종 요소의 속박 하에 보기에는 사람과 그리 큰 구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 법을 얻고서부터 이미 사람과 층차가 갈렸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명의 경지를 승화시켰고 삼계의 속박 요소를 돌파했고 생명이 자유로움과 해탈로 나아갔다. 색욕은 반드시 수련해서 제거해야 한다.

삼계에서 남녀지사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생명이 있다. 색심이 나오기만 하면 당신은 바로 구하는 것이라, 이 방면의 생명과 요소가 곧바로 오고 욕망을 강화시킨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자신으로 여기면 당신은 색마에게 단단히 통제 당한다. 그것들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층층이 당신을 통제해 당신을 이끄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나쁘다.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면 그것들은 색마 체계로 귀속시킬 수 있다.

사람의 신체 속에는 신이 사람에게 만들어준 허다한 것들이 있고, 윤회전생 속에서 형성된 각종 관념과 업력이 있으며, 사람의 기억 혹은 인체의 밸브를 여는 열쇠가 있다. 어느 시기에 도달하면 사람에게 무엇을 열어준다. 사람 표면의 이 신체 본신에 일부 아주 강한 물질욕구와 메시지가 있으며 더욱이 십악독세에서 수많은 나쁜 요소에 통제되고 오염되고 있다.

수년 전 나는 삼계에서 전문적으로 남녀지사를 관할하는 마선(魔仙)을 보았는데 그들은 욕계에 속해 있다. 남자 마선의 형상은 방탕이고 여자 마선의 형상은 요염이었다. 남녀 간의 욕망 염두가 일어나고 이 일을 하고자 구하면 곧바로 그들은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들 손에는 정욕병이 두 병씩 쥐어져 있다(왼손에 든 병에는 정이 담겼고 오른손에 든 병에는 욕이 담겼는데, 농도가 아주 큰 물질이다). 여 마선의 왼손 정욕병 속의 정(분홍색 물질)이 피어나오면 마치 분홍색 모래와 같이 여인을 감싸는데 이때 여인의 표현은 평소와 다르다. 남 마선의 왼손 정욕병의 정(짙은 분홍색 물질)이 피어나와 남자를 감싸면 이 때 남자의 표현도 평소와 달라진다. 이때 분홍색 물질은 남녀를 서로 흡인하는데 생각이 흐트러지고 정에 미혹된다.

다른 공간의 생명은 정욕 물질로 사람을 유도하고 통제하는데 이때 사람은 이지적이지 않고 심지어 발광하며 힘껏 날뛰는 것이 모두 그 고깃덩이고 육신을 오염하고 있으며 과정은 더러운 것이다. 이 과정 중에서 부동한 층차 중의 생명이 사람의 정화를 흡취하고 만족하고 있는데, 사람은 오히려 육욕(肉欲)의 느낌을 자신으로 여기고 성욕의 감수를 추구하며 아주 좋다고 느낀다.

정욕을 주관하는 신은 다른 공간에서 또 이런 물질 중의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회수한다. 현재 사람이 사용하는 일부 변이된 약품은 자신을 변이시키고 또 회수한 것이 갈수록 더 나빠지게 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런 정욕 물질은 교차적으로 오염시키고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갈수록 감수를 추구하게 하고 갈수록 최저선이 없게 만들어 야수로, 마(魔)로 변하게 한다.

다른 공간의 이런 생명에게 통제당하는 것은 수련인에 대해서 일종 모욕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런 것들에게 통제당해 스스로 해탈하지 못하고 또 이런 것들을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여기는 자연은 존재하지 않고 필연이다. 나타난 것들은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생명이 이런 것들에게 통제당하고서 어찌 자유롭겠는가? 또 우둔하게도 자신을 동물로 여긴다. 과정 중에서 내보내는 목소리는 다른 공간에서 볼 때 동물이 욕망을 발설한 후 내보내는 목소리이고 색마의 목소리며 아주 좋지 못한 것이다.

속인사회에서 또 저령이 직접 인체에 올라가는 것도 있다. 가위눌림이라는 현상이 있는데, 사람이 잠잘 때 눌린 느낌이 들어 움직일 수 없고 남들이 불러도 그를 깨우지 못한다. 사람이 가위눌리면 입에서는 기이한 소리를 내는데 다른 공간의 생명이 내보내는 것이고 아주 무서운 형상의 생명이다.

최근 밍후이 교류문장 ‘여자감옥에 수감된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할 때 본 것’에서 수련생은 가위눌림을 적었다. 이 마수가 직접 신체에 올라가 수련생을 박해하고 수련을 방해하는데 역시 색마의 일종 형식이다.

만약 입체적으로 삼계의 각 층차를 볼 수 있다면 부부생활에서 좋은 점을 얻으려는 각 공간의 생명이 너무 많고 나쁜 짓을 하려는 생명도 허다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류문장에서 수련생은 색마가 수련인의 민감 부위를 향해 공을 내보내 신체의 강렬한 반응을 조성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일부 색마는 직접 신체의 민감 부위를 밟거나 혹은 사람 신체에 색욕 물질을 배설해 인체가 반응이 있게 한다. 만약 더 깊게 보면 색마가 사람의 기관에 들어가 사람을 통제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일을 하고 싶게 하고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일부는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보지 못하는 수련생이라면 또 자신이 진짜로 이런 강렬한 욕망이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색마가 사람의 사상활동과 행위를 통제하며 사람에게 일종 착각을 조성할 수 있다. 사람의 감각기관이 어떻게 느끼건 간에 사실 모두 가장 더러운 오물에 오염되고 있다. 두려울뿐더러 아주 구역질난다. 색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색마 썩은 귀신 세계 속에 끌려간다.

한번은 회사 동료와 함께 외식하는데 모두 식탁에서 사회 속의 각종 타락한 색욕 관련 일을 토론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매 사람의 배후에 모두 음란하고 사악한 색마가 있는 것을 봤고 사람이 통제당하고 있었다. 사람에게 음란한 일을 생각나게 하고 떠벌리게 했다. 나는 아주 무서운 느낌이 들어 곧바로 사람을 조종하는 색마를 제거한다는 일념을 내보냈다. 1분도 안 돼 한 동료가 말했다. “식사 끝나면 이만 헤어지죠.”

모두 색이라는 글자 위에 칼 한 자루가 있다고 하지만 몸, 입, 의념에서 자신을 단속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지금 성문란이 오픈돼있고 일부 여성들은 거리에서 노출이 심하게 하고 다니는데 일부 사람들은 또 눈이 반응해 따라다니고 색념을 움직이며 허튼 생각을 한다. 또 음란한 일을 흥미를 갖고 말하는데 사실 이미 업을 지었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색욕의 음란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할뿐더러 생각조차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신의 눈은 전기와 같아 색념이 일면 죄업이 곧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은 고층에서 왔고 본원 경지는 청정하고 자유롭다. 후천적인 색욕은 지극히 더러운 옷과 같은데 수련하려면 반드시 철저히 깨끗이 씻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더럽고 후천적으로 오염된 산물이며 사상업력의 표현일뿐, 진정한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사람들은 생체시계 문제를 말한다. 생체시계는 신이 각종 생물에게 정해준 활동 시간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됐는데 새벽형 인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잠을 아주 늦게 자는데 밤 고양이 형이라고 한다. 일부 수련생은 자기 생체시계가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데 사실 모두 신의 통제 속에 있다. 가끔 당신이 일종 습관을 바꾸려면 어떻게 노력해도 결국 성공하지 못하는데 일종 강대한 힘이 당신에 대항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세력이 배치한 기제가 일으킨 작용이라고 여긴다. 이런 기제를 수호하는 그런 신들이 당신을 통제하고 있으며 당신과 대항하고 있다. 심지어 기제 자체가 바로 신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똑똑히 간파해야 하고 그것을 초월해야 그것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매우 좋지 않다면 당신은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

매 생명은 세간에 출생할 때 모두 그가 올 때의 소원이 있다. 세간의 정욕 이런 조잡하고 더러운 것이 어떻게 생명의 내심 깊은 곳에 있는 반본귀진의 진짜 소원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한 교류문장 제목은 ‘작은 똥구덩이를 내려놓지 못하면 큰 똥구덩이를 떠날 수 없다’인데 이렇게 말했다. “남녀 간에 이른바 고상한 사랑, 진실한 그리움, 그럴듯한 호감, 내심으로부터 좋아하고 우상처럼 우러러보고, 사무치는 애틋함, 음란한 생각, 환상 등등 결국엔 모두 그 분뇨 구덩이에 들어간 게 아닌가?” “나는 내심에서 이 작은 똥구덩이를 내려놓지 못하면 큰 똥구덩이에서 나올 수 없고 분뇨 구덩이에서 훼멸돼 똥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련생은 글에서 절대로 똥을 푸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신체에서나 사상 상에서 절대로 똥 푸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표명했다.

색마의 면모는 일반인이 절대로 쉽게 간파할 수 없는데 그것은 인류의 신체를 잡고서 사람의 사유를 통해 사람을 통제하고 있으며, 에너지를 끊임없이 보충받아야 한다. 부부생활, 이성 간의 육체적 접촉이건 수음이건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보충해준다. 남녀 간에 눈빛을 교환하고 음탕한 의념과 매체의 색욕 컨텐츠(색정적 화보, 간행물, TV, DVD, 영화, 드라마, 인터넷) 등등 당신이 이런 것들을 보기 좋아한다면 간접적으로 ‘색욕생명’에게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것이다. 색마는 목마르고 배고파 참지 못할 때 사람에게 일종 생리상의 반응을 조성한다. 흥분, 갈망, 이러한 일을 급하게 하고 싶게 만든다. 정욕이 육체에 가져다주는 ‘감수’를 사람은 또 아주 좋다고 느낀다. 사람은 버리기 싫다고 느끼는데 사실 색마가 가지 않으려 하고 죽지 않으려 하고 인체를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색마가 또 당신 대뇌에 당신이 이전에 그런 일을 할 때의 일부 색욕 ‘세부절차’를 반영하게 하고 당신이 음미하게 하고 ‘달콤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며 심지어 버리기 싫도록 한다. 왜 일부 사람은 안마원, 족욕관, 미용실 등 색정적 장소를 지나갈 때 늘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해야 하는가? 당신 공간장 속 ‘색욕생명’이 같은 유형을 보았고 그것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상태 속에서 배회하면 그것은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간접적으로 에너지를 보충받을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당신의 일체 색욕 행위를 계속 좌우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또 그것을 신체의 정상 반응으로 여기고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사람의 정(情) 연분에서 남녀 색욕의 정은 가장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체면도 없고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다. 즉 마약과 같아 사람에게 인이 박이게 한다. 미혹되어 씬씽(心性)을 상실한 남녀는 마치 나방이 불에 뛰어들듯 생명을 태워버린다. 이 정은 오히려 가장 의지할 수 없고 가장 이기적이며 또 사람으로 하여금 사고력을 잃게 만든다. 들볶다 연분이 연기처럼 사그라질 때가 바로 헤어질 때다.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사람의 가죽은 아주 오랫동안 더러워진 분뇨 구덩이와 같다고 했다. 누적된 오염물질도 무척 두텁고 단단해, 자신이 오염시킨 공간장은 한두 번에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전생에 가져온 색욕업력은 재빨리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로지 법 속에서 끊임없이 씻고 승화해야 비로소 이런 오염을 제거할 수 있고 비로소 자신을 승화할 수 있으며 비로소 법이 수련인에게 가져다준 희열, 장엄함, 수승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감수는 물질과 인체의 향수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저급한 감수를 훨씬 초월했다.

법 얻기 전후를 보면 우리는 심태에서 모두 아주 큰 변화가 있었다. 법을 얻기 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마음은 즐거움으로 충만됐고, 나의 마음은 상처로 가득 찼고, 나의 마음은 원한이 가득 찼고, 나의 마음은 방황으로 충만 됐다.” 이런 말들은 평범해 보인다. 왜냐하면 다들 그랬기 때문이다. 법을 얻은 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마음은 즐겁고 평화롭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의 마음은 색욕으로 충만되었고 질투로 가득 찼고 원한으로 가득 찼고 나의 마음은 돈으로 가득 찼다.”라고 한다면 무척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수련의 시간도 짧지 않기 때문이다. 사존께서 법리와 천기를 모두 알려주셨지만 우리는 또 언제 가서야 속세의 더러워진 오물을 단단히 부여잡은 손을 놓고 자비롭게 중생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을 것인가?

색마를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경지를 하루 빨리 제고시키는 것이다. 시시각각 (혹은 늘) 강대한 정념을 유지하고 이런 생명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일단 이런 ‘생명’이 자기 공간장에 나타날 때는 마침 그것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때다. 그것이 자기 사상 속에 나타나는 것을 승인하지 말고 또 그것이 신체상에서 반응하는 것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지 말고 즉시 발정념해 제거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계속)

문장발표: 2017년 8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15/3525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