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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난 속에서 사부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어느 지역의 한 수련생이 병업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수련생은 1999년 이전에 현지의 보도소 소장이었다. 전에 홍법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고, 99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에도 줄곧 단호하게 걸어왔다. 세 가지 일도 하고 있었고 또 한 법공부 팀의 소집자였다. 그러나 이 2년 동안 가정에서 아주 큰 마난을 만났는데, 재혼한 남편과 딸이 그녀에게 매우 잘못된 일을 했다. 그녀의 집도 딸과 사위가 강제로 독점했는데, 이 수련생은 아주 큰 상처를 입어 그들에 대한 원한과 혐오의 마음을 내려놓기가 아주 어려웠다. 후에 수련생은 병업 상태가 나타났고 표현되는 것이 암이었다. 갖은 마난을 겪고서 수련생은 결국 가버렸고 이 일을 알고 있는 수련생들은 모두 가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이 수련생의 사망은 확실히 거대한 손실이었는데, 이 수련생은 현지에서 아주 지명도가 높아 수련생의 사망으로 많은 세인들이 곤혹스러워 했고 한동안 현지에서 풍문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매우 많은 부면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일부 단호하지 못한 수련생들은 이 일에서 각종 사람마음을 표현했고, 이 수련생의 법공부팀에서 일부 사람들은 모모모가 이렇게 단호해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만하자, 나도 숨거나 혹은 자신에게 후퇴할 수 있는 길을 하나 남겨놓는 것을 고려해야겠다고 말했다.

명백한 수련생은 이 일을 말할 때, 모두 구세력의 배치가 너무나 악독하다는 것을 절감했는데, 대법제자를 훼멸하는 동시에 많은 세인들을 훼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후에 주변의 수련생들이 표현하는 동요의 상태에서 우리는 구세력의 악독한 배치가 성사될 수 있었던 원인은 이 수련생 자체가 그런 원한 등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못해 구세력이 오래전에 배치한 거대한 난을 넘어가지 못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타 수련생들의 각종 바르지 못한 상태, 예를 들면, 그 사람을 본보기로 보고 따라가며, 사람을 배웠으나 법을 배우지 않은 것 역시 구세력이 이 수련생을 박해할 수 있는 구실 중의 하나였다. 구실은 다름 아닌, 그녀 주변의 수련생들이 법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았으며 법에 대해 단호한 마음이 없어서였다. 주변 사람들을 고험하고 사람마음을 폭로하게 하여 그들을 제고시키기 위해 그녀를 가게 해야만 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마난을 걸어 지나오면서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는 대법제자들은 모두 구세력의 이 한 세트의 수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수련생이 구세력의 박해로 인간세상을 떠난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실질적인 손실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미혹되고 동요되는 수련생 또한 거대한 마난 속에 처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늘 이 교류문장을 써냄은 이 일에서 일부 문제를 보고 이해한 것을 말함으로써 자신과 기타 수련생들을 일깨워주고 그 속에서 교훈을 취하고 자신을 깨우고자 함이다. 실질적으로 수련하는 중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여 더욱 많은 손실을 피면해야 한다.

내막을 아는 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이 수련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병원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사부님을 따라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적으로 개별수련생에게는 내가 이렇게 많이 하고 이렇게 잘했는데도 어찌하여 이 모양이냐고 했다고 한다. 그녀와 접촉했던 다른 한 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지금 뿐만 아니라 2년 전에 그녀는 일부 작은 병업상태가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하여 이 수련생은 당시 아주 놀랐으며 선의적으로 그녀를 일깨워주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개변이 없자 이 수련생은 더는 그녀와 접촉하지 않았으며 그 후 상황은 모른다고 했다.

이런 정황을 듣고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원래 수련생은 장기적인 자아 속에서(이 수련생 주변에는 장기간 그녀에게 의지하고 그녀를 공양하고 일마다 그녀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 마난 속에서, 청성하지 못함 속에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점차적으로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련생은 이미 이런 염두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분간할 수 없었고, 사악이 그녀의 사상 속에 주입한 이런 사상들을 자신의 것으로 여길 때 사악은 그녀를 박해할 수 있는 구실을 더욱 잘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이때에 사부님께서는 얼마나 상심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돕고 싶어도 또 도울 수 없으니 그것은 어떠한 가슴 아픔이었겠는가.

이 일로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몇몇 수련생이 지금까지 각종 박해 속에서, 아주 큰 마난 속에서, 사오 중에서 수련을 포기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데 모두 유사한 얘기들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즉, 나는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하여 이 모양이 되었는가? 나는 이렇게 잘 수련하고 많이 헌신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처참하게 박해 당하는가?

장기간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기고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안을 향해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사악은 마난 속에서 그(그녀)의 이지를 격리시켜서 원인을 찾을 수 없게 하고,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더욱 찾을 수 없게 만든다.

미혹 속에서 생각이 막혔을 때 일부 사람들은 사부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점차적으로 잃게 되고 안을 향해 찾을 줄 모르고 찾으려고 하지 않으니 필연코 밖을 향해 찾는 마도로 걸어가게 된다. 거기에 구세력이 고의적으로 그(그녀)를 인도하여 더욱 많은 가상을 보게 하고 당한 고달픔을 우연한 것으로 보게 하며 모두 자신에 대한 불공평으로 여기게 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자신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또 사부님께서 정말로 이렇게 위대하실까 라는 생각을 하며, 심지어 사부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구세력의 천방백계의 미친 듯한 박해 속에서 일단 사부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잃게 되면 잇달아 오는 마난은 넘기가 더욱 어렵다. 일부 사람은 말로만 이렇게 말한다. 신사신법하여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그가 내심에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사람은 볼 수 없지만 우주 중에서는 모두 똑똑히 볼 수 있다.

또 일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찌하여 아직도 결속되지 않는가? 이렇게 끝없는 박해는 언제 마감되는가? 일부 사람은 기타 사람들이 잘 못한다고 원망하고, 이렇게 차하게 수련하고, 나오지 못하며 정법의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자신을 지치게 만들고, 따라서 자신도 재수가 없어 고생을 한다고 한다. 일부 사람은 감히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언행에서 전부 원망이고 자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많은 고생을 했다고 원망한다. 변상적으로 사부님을 원망한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2017년 결속에 집착하는가. 일부 사람은 매년마다 모두 결속에 집착하는데, 그것은 또 자신이 많이 당했고 많이 일했으며 고생을 너무나 많이 했다고 여겨 사부님과 흥정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인간세상은 너무나 미혹스럽다. 사람의 한 쌍의 육안은 너무나 아둔하여 이 작고 작은 물질공간 속에서 각종 이익과 유혹, 원망들은 현실적이고 강렬하며 잔혹하다. 이 말겁의 최후에 인간세상의 업력은 너무나 크고 커서 각종 표현이 복잡하고 타락되었으며, 이 미혹의 인간세상은 마치 큰 염색독과 같아 우리는 매분 매초마다 모두 이 속에 파묻혀져 있다. 매분 매초 모두 오염되고 있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수련해 나와야 하는데, 그것은 진짜로 쉽지 않고 수련해서 나오는 것이 비로소 가장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을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세파에 따라 타락하고 잇달아 가라앉게 된다. 장기간 박해를 당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 정진의 의지를 느슨히 했고 구도중생의 큰 염원을 잊었으며 세간의 물질 가상들을 중히 보게 되었다. 사람 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고 느껴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물질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편안함과 안일함을 탐하고 아주 많은 시기에는 욕망과 이익의 중시가 성불하고자 하는 염원마저 초과해 버렸으며, 시초에 법을 얻을 때의 희열을 잊고 내심에서 반본귀진 하고자 했던 진짜 염원을 잊었다.

우리가 자신의 일시적 고통에 집착하여 더욱 많은 생사귀로에 처해 있는 생명들의 진정한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대할 때, 사상 속에서 사부님과 조건을 말할 때, 우리를 자비롭게 구도해주시는 사부님을 원망할 때…. 온 하늘의 신불들은 노하며 이러한 생명을 지켜보고 있는데, 생각해보라. 이러한 마음으로 어찌하여 신 우주에서 위치가 있을 수 있고 발붙일 곳이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돕겠는가? 이때에 또 구세력의 배치와 박해를 부정한다고 입으로 더 말해도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감은(感恩)을 말하고 있다. 감은을 말한다면, 사부님께서 장래에 신우주 중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수영(殊榮)과 영예를 주실 지에 대해 먼저 말하지 말자(먼저 간 대법제자 그들이 얻은 것은 모두 기타 생명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모두 시초에 대법수련에 걸어 들어오기 전의 고통과 희망이 없었다는 것을 잊었다. 병에 시달려서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사람들 속에서의 다툼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피곤하고, 사랑, 원한, 정, 칠정육욕에 시달려서 사는 것이 죽기만 못했었고, 고해 속에서 가라앉고 몸부림치고 희망과 미래가 없었고……

명백히 말하면,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우리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치병과 각종 지병 속에서 인간세상을 떠나야 했고, 육도윤회 속에서 업을 더 많이 지어 지옥에 가서 고생하며, 심지어 최후에 소훼되어 영원한 고통 속에서 생명은 없어져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주셨고 지옥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워주셨고 우리에게 하늘로 돌아가는 대법을 가르쳐주셨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금빛 찬란한 신체(神體)를 주셨고, 우리는 오로지 조금만 헌신하면 우리에게 천백 배보다 더 끝없는 보답을 주시는데, 우리에게 이 일체를 주신 것은 모두 가장 자비로우신 사부님이시다!

우리는 법을 실증 하는 중에서 그렇게 조금만 했고, 행할 때 만약 사부님의 배치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이뤄낼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보호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시시각각 모두 생명의 위험이 있다. 구우주 중의 원한들은 뿌리와 가지가 얽히고설키어 그물처럼 끝없이 크다. 그 속에서 어떠한 생명도 그 그물을 풀 수 없고 제거할 수 없는데, 만약 사부님께서 구도하러 오시지 않았다면 구우주 중의 어떠한 생명과 요소들은 모두 철저히 훼멸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 속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우리는 그렇게 약간의 일을 했고, 사실 모두 자신을 위해 한 것이고 그것은 시초에 사전 서약에서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이며 아울러 우리는 이를 위해서 중한 맹세를 했었다. 서약을 실현하지 못하면 반드시 형신전멸 된다. 자신을 위해 그렇게 약간의 일을 하는 것이 뭐가 대단한가? 일부 사람들은 일을 조금 더 했다고 하늘과 땅을 향해 전부 원망하고 불만이 가득하다. 어떤 사람은 일을 조금 했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자신을 아주 크게 보는데 사실 성취를 말하지 않더라도 사부님의 구도, 감당, 도움이 없었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생생세세에 지은 끝없는 업력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지옥에 내려가서 소훼될 몫밖에 없는 것이다.

사부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너무나 무섭고 이지적이지 못한데, 이런 사념들을 늘 분간하지 못하고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길 때, 구세력은 감히 이런 생명들에 대해 독하게 손을 뻗친다. 구우주의 생명은 대법제자의 잘 수련되어 격리된, 이미 새우주로 간 부분을 보지 못하기에 그것들은 이런 사람들은 전혀 수련인이라고 여기지 않고 좋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감히 행한다. 비록 그것들이 참여하여 들어오기만 하면 잘못이고 바로 죄이며 이런 생명을 훼멸하는 구세력도 똑같이 훼멸당하지만, 그것들이 이치를 정하고 행할 때는 사부님과 뭇 신들은 도와주려고 해도 도울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 했고 이렇게 크게 헌신했는데도 박해당한다고 계속 곤혹스러워한다. 물론 원인은 아주 복잡하지만 자신이 잘 했다고 느끼는 것은 사악이 당신 사상 속에서 사기를 치는 것이고 반영되어 나온 가상일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항상 안을 향해 찾으려고 하지 않고 보게 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장점뿐이며 모두 남보다 더 잘했고 높이 깨달았다고 하는데 또 무엇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아도 모두 자신의 노고와 공로가 크고 마땅히 앉아서 원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마난이 나타나면 바로 미혹되고 실의를 느끼며 아주 큰 타격을 받는다.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느껴 안을 향해 찾지 않을 때가 사악의 교란이며 사악이 우리 머릿속에 반영시킨 가상이다. 자만하는 마음이 생기기만 하면 수련은 멈춰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아가 커지면 그것은 바로 마난 속에서 훼멸로 걸어가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한 가지 현상을 보게 되었는데 착실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중생구도에 게으르지 않는 수련생일수록 더욱 겸손하고 자신이 더 부족하다고 느낀다.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을 수 있고 진정으로 법에 동화하여 법에서 끊임없이 제고하는 수련생들은 진·선·인(眞·善·忍)의 특성이 갈수록 그들의 몸에서 체현되고 지혜는 갈수록 높아져 우주의 진상을 더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과 대법의 위대함, 그리고 사부님 정법의 노고와 우리와 중생을 구도하시는 어려움을 더욱 체험할 수 있고 감은에 대해 더 알게 되는데, 이때에 표현되어 나온 겸손함은 생명의 지혜가 증가하고 성장할 때의 필연적인 표현이다.

동시에 더욱 제고할수록 이전의 부족한 점을 볼 수 있고 현재의 층차를 초월할 수 있으며, 비로소 현재 층차의 부족한 점을 보아낼 수 있다. 현재 층차 속에서 배회하면서 어찌 현재의 부족한 점을 볼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제고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이전의 잘못을 끊임없이 보아낼 수 있다. 끊임없이 일락천장으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속인이야말로 늘 자신은 ‘한 떨기 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한테 어떠한 잘못도 없다고 느끼는 수련인, 층차를 전혀 제고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보지 않았는가. 사오한 그런 사람들은 기본상 모두 자신이 누구보다도 모두 ‘높게 깨달았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때문에 자기 사상 속에서 늘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생각하며 헌신이 크고 가장 높게 깨달았다는 염두가 늘 반영될 때 반드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자신의 수련에 이미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설명하고 그것은 사악이 사기치는 것이고 그것들은 이 수련인을 박해하려는 ‘사전 작업(前奏)’이며 당신으로 하여금 자심생마하여 철저히 떨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안을 향해 찾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가로막는 것이다.

이런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은 생각지 못한 마난이 일단 나타나면 쉽게 심리적 평형을 잃고 미혹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이때 사악은 또 그의 사상 속에 이런 불 평형을 강화시킨다. 당신이 보라, 당신이 이렇게 잘했고 이렇게 크게 헌신해도 또 박해를 당하는데 당신 사부님은 당신을 상관하지 않고 당신을 돕지도 않고 있다. 사악은 또 속인의 입을 빌어서 당신을 동요시킨다. 당신들처럼 이렇게 걸어 나오고 잘한 사람들이 전부 당했는데, 당신들 사부님은 어찌하여 당신을 보호하지 않는가? 이런 말들은 검은 소굴의 나쁜 사람들이 늘 하는 말들이 아닌가?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심리적 평형을 잃게 하고 당신의 질투심을 끌어내어 당신으로 하여금 불공평을 느끼게 하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가로 막아 당신으로 하여금 사부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잃게 한다.

여러 해 동안 줄곧 이런 말이 있었다. “더 잘할수록 더욱 박해 당한다.” 이는 일종의 사설(邪說)이며, 표면만 보고서 미혹되어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게 하는 일종의 사오이다.

사실 우리가 진짜로 잘 했을 때, 사악은 감히 와서 박해하지 못한다. 사부님 법신이 계시고 호법신이 수시로 보호하고 있으며 진정으로 잘 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오겠는가? 우리가 사악에게 사기당해 일찍이 법에서 이탈하고도 자신은 잘 했다고 느낄까봐 두렵다. 물론 잘하지 못해도 구세력이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 밖을 향해 찾고 자심생마의 길에서 되돌아보지 않아 난이 커지면 넘어가지 못하고 사부님을 원망할까봐 두렵다.

사실 오로지 우리가 사부님께 죄송할 뿐이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미안해하실 건 없는 것이다.

더욱 큰 마난을 만날지라도 오로지 우리가 자심생마, 자아 확장(自大), 강력한 자아를 제거함에 주의하며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이 마음에 들어오게 하여 교란을 배제하고 안을 향해 찾으면 반드시 마난 원인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오로지 사부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견지하면 반드시 마난을 해체할 수 있는 정념을 얻을 수 있다.

한 수련생의 교류를 들었는데 그는 전에 마난 속에서 절망하고 소침하며 곤혹스러워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악은 기회를 타서 그의 사상에 ‘사부님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란 사념을 강화시켰다. 그로 하여금 사부님을 원망하고 더 나아가 그를 철저히 훼멸시키려고 했지만 이 수련생은 더 힘들어도 법공부하고 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공부가 머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외웠다.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왔을 때 사부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를 주셨고 그는 내심에서 이 일념이 일어났다. ‘내가 사부님께 죄송하면 죄송했지 사부님께서 나에게 미안해 하셔야 할 건 없다.’

수련생이 말하기를, 그가 내심에서 이 일념을 내보낼 때 모든 좋지 못한 상태가 즉시 강대한 에너지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한다. 마난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후에 수련생은 사상 속에서 사부님을 원망하는 사념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즉시 그 한 마디를 반복적으로 묵념했다. ‘내가 사부님께 죄송하면 죄송했지 사부님께서 나에게 미안해 하셔야 할 건 없다.’ 곧바로 정념이 일어나고 사악은 제거되었다.

사부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있는지를 보고, 순조로울 때뿐만 아니라, 가끔은 마난 속에서 좌절할 때, 이때에 우리 주의식이 아주 강하게 각종 나쁜 사상, 사상업, 좋지 못한 관념의 교란을 배제할 수 있는지를 본다. 아울러 우리 주의식이 강해질 수 있는지는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아주 관건이며, 법은 우리의 주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시기일수록 더욱 공력을 들여서 법공부를 해야 하고 외워도 좋고 통독해도 좋은데, 반드시 법공부는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시시각각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닦아야 한다. 그래야 관건시기에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을 수 있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

더 큰 마난, 더 긴 마난을 겪더라도 모두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해야 하고, 모두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단호히 믿어야 한다. 병업상태 속에 있는 수련생은 나도 사부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또 사부님을 믿었으며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청했는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마난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 하느냐고 말한다. 이때 수련생들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세히 생각해볼 것을 건의한다.

1. 자신이 진짜로 사부님을 완전히 믿었는지, 사상 속에 또 현대과학, 현대의학에 대해 의지하는 것이 숨어있는지, 또 사상 속에 자신에게 한 갈래 ‘후퇴길’을 남긴 것은 아닌지. 만약 사부님께 빌어도 안 되면 또 각종 방법으로 ‘병 치료’를 할 것인지? 병에 대한 관념이 아직 다소 보류되어 있다. 때문에 어떠한 병의 관념이 튀어나와도 모두 즉시 제거해야 하며 자신에게 ‘후퇴길’을 제공하는 어떠한 사람과 사물들은 모두 당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 것을 교란하는 고험이다. 모두 이것이 마난임을 똑똑히 보아내야 하고 정념으로 부정하고 제거해야 함이 필요하다.

2. 우리가 사부님의 도움을 청하는 기점은 무엇인가? 현재의 번거로움과 고통을 제거하고 이후 생활 속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인가? 이 기점은 사람의 각도에서 출발한 것이고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대법실증을 위한 것인가? 나에게 정상적인 건강한 상태가 있는 것은 법을 더욱 잘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으로서, 세인과 중생을 생각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악이 만들어낸 가상에 의해 훼멸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는 수련의 각도에 입각하여 남을 위한 것이다.

수련을 이렇게 오래했고 진짜로 수련의 개념이 있는 것인가? 진짜로 반본귀진하여 천국세계 진정한 고향으로 가려는가 아니면 겨우 좋은 신체가 있는 속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데 만족하려는 건가? 목표가 다르면 구별은 너무나 다르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진정으로 수련하려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지 한 속인을 함부로 도울 수는 없으시다. 부동한 기점으로 효과는 긍정코 다르다.

우리는 마난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정진할 수 있어서는 안 되는데, 정진에는 조건이 없고 수련에도 조건이 없다. 당장 정진하기 시작해야 하고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겨야 한다. 이 시기에 튀어나오는 각종 사람마음, 예를 들어, 원한, 쟁투 등등을 닦아서 제거해야 한다. 이 원망하는 마음을 작게 보지 말라. 한 번 또 한 번 기회를 잡아서 그것을 단호하게 제거하지 못하고 많이 누적되면 미시하에서 산보다 더욱 크고 화강암보다 더욱 단단해진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이것을 원망하게 하고 저것을 원망하게 하여 결국 언젠가는 사부님을 원망하게 만든다. 이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구체적인 모순 속에 빠지지 않고 가상 뒤의 실질을 똑똑히 보고 자비로 다른 생명들을 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내보낸 정념은 강하고 사부님께서는 비로소 우리를 위해 각종 원한과 억울함을 선해해 주실 수 있으시다.

수련하고 수련하지 않고, 안을 향해 찾고 찾지 않고는 우리로 하여금 수시로 두 갈래 길을 마주하게 한다.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실질적으로 수련하지 않으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다. 일시적으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도 두려워하지 말라. 앞전 일각(一刻)에 길을 잘못 갔다가 다음 일각(一刻)에 깨닫고 안을 향해 찾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첫 걸음을 잘못 걷고 두 번째 걸음에 되돌아올 수 있고 두 번째 걸음을 잘못 걸었어도 세 번째 걸음에 역시 되돌아올 수 있다. 이전에 잘 하지 못했으면 지금 잘 하고 이번에 잘 하지 못했으면 다음에 잘 하면 된다. 넘어지면 신속하게 일어나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정확한 길에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구세력이 배치한 기로에서 얼마나 멀리 걸어갔든 지간에 오로지 자신의 잘못을 감히 정시하고 내심에서 고치려고 하고 안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실질적으로 수련할 수 있으면 손을 사부님께 내민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의 길에서, 훼멸의 길에서 단번에 끌어주신다.

반드시 사부님을 단호히 믿어야 한다. 사부님의 자비와 홍대한 관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데,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한 대법 수련인이 각종 장애를 돌파하고 마난에서 걸어나오는 것이며 정법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어 결국에는 원만으로 향할 수 있는 근본이다.

원문발표: 2017년 8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8/3521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