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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재난에 오직 사부님만 믿어

글/ 중국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7년 법을 얻어 지금까지 20년이 됐다. 20년 수련의 길에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호 하에 나는 예전의 환자에서 건강한 사람이 됐고 박해로 거의 마비가 됐던 몸이 지금은 아픈 데가 없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해주신 감당과 자비는 어떠한 감은의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여기에서 사부님께서 나와 가족을 가호하시어 생사관을 넘은 사례 중 두 가지를 골라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표현하고자 한다. 동시에 세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면 얼마나 신기하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하고 싶다.

1. 목숨 노린 차사고 중상 완쾌되다.

2016년 4월말 어느 날 나는 한 수련생과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다. 저녁 무렵 마지막 자료를 배포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원래 기름이 있다고 표시됐던 오토바이에 갑자기 기름이 없어졌다. 부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집으로 향했다.

수련생은 나를 태웠고 뒤에 앉은 나는 그녀의 오토바이가 계속 길옆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현성에 거의 왔을 때 오토바이는 길옆에 자라고 있는 구기자 사이의 깊은 도랑에 떨어졌다(나중에 알았지만 도랑 깊이는 4m이고 아래는 전부 모난 돌멩이였다). 떨어지는 순간, 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기절할 것 같았으며 가슴과 오장육부가 폭발돼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의식이 있었고 생각했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여 현에서 나름 명성이 있는데 중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이때 나는 숨이 없고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조금 남은 사유 중의 정념이 나에게 알려 주었다. ‘연공인은 아무 일도 없다.’ 잇따라 한 갈래 기가 밀려 왔고 단번에 청성해졌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나지 못했다.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나는 수련생이 조급해 할까봐, 그리고 동시에 ‘전법륜’ 중의 한 구절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는데”[1]가 생각나 말했다. “괜찮아요.” 사실 나의 몸은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수련생은 사람을 부르러 올라갔고 나는 아래에 누워 법을 읊고 발정념을 했다.

매우 오래 지나서야 사람이 온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 기가 아래로 좀 내려간 것 같았고 숨이 그리 막히지 않았다. 그들은 택시를 부르려 했지만 나는 거절하고 오토바이로 사고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수련생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수련생의 집에 들어서자 뱃속에 있던 기가 위로 솟구쳐 위안에 있던 것을 전부 게워냈다. 수련생은 나를 침대로 부축하다가 등 뒤의 옷깃을 들춰보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등 쪽에 움푹 파인 곳이 있었어요?” 나는 대답을 안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연속 세 번 물었지만 나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나의 등과 가슴뼈가 모두 삐었다. 허리 부분의 움푹하게 파인 곳은 떨어질 때 도랑의 돌멩이에 부딪쳐 허리뼈가 부러지면서 꺼져서 생긴 것이었다. 등의 혹은 갈비뼈가 부러져 한곳에 모인 것이다. 앞가슴 부위의 오른쪽 갈비는 밖으로 뻗치고 왼쪽 갈비는 안으로 꺼져 있었다.

수련생이 나에게 밥을 주었지만 먹을 수 없었고 물도 마시지 못했다. 나는 흉강속이 가득 찼다는 것을 알았다. 안의 장기가 부어서 자그마한 틈도 없었다. 이틀 후 국과 만두를 조금 먹을 수 있었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나는 곧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다른 사람에게 시중들게 할 수는 없지. 집으로 돌아가야 돼.’

사흘째 집으로 돌아갔는데 한번 눕자 일어나지 못했다. 누워있는데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발정념을 하고 싶었지만 똑바로 앉지 못해 남편에게 이불과 베개로 받쳐 달라 하고 팔로 다리를 짚고 발정념을 했다. 그래도 앉아있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었다. 온 몸의 뼈가 다 아팠다. 수련생들이 나를 보러 와서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고 격려해 주었다. 내 마음은 분명했다. ‘오직 사부님만이 나를 구해주실 수 있다’

7일째,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정념정행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일어날 수 있게 가지해주십시오. 저는 수련하지 않는 가족과 속인이 저를 오해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일어났고 남편에게 밥을 지어주었다. 너무 아프면 잠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대략 20일 후 나는 수련생 집에 자료를 가지러 갔다. 걸어가자니 허리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생각했다. 잘 걷지 못하면 자전거를 타고 가야지.

음력 4월 초여드렛날 사부님 생신을 쇠고 음식을 많이 먹었다. 사고 난 후 가장 많이 먹은 날이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하루 회복됐고 근래에는 등뼈도 원위치로 돌아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안다. 이번 사고는 나의 목숨을 앗아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다. 사부님께서 반드시 나를 도와 이 고비를 넘을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을 안다. 육체적인 고통을 좀 받는 게 뭐란 말인가!

2. 구사일생한 손녀

나에게 쌍둥이 손녀가 있다. 7개월 반에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산후 20일에 뇌 마비와 선천성 심장병, 폐 감염 등 질병을 발견했다. 시 병원에서 한 달간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생제 투여로 머리가 크고 몸이 부어 4, 5개월 된 것 같은 아이를 보고 매우 괴로웠다. 이렇게 많은 질병중의 어느 한 가지라도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오직 사부님만이 구하실 수 있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의 동의하에 며느리는 건강한 아이를, 나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우리의 수련생활은 시작되었다.

앞서 몇 년은 손녀의 병이 도지기만 하면 나는 아이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주고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요청 드렸다. 이렇게 약 한 알 안 먹고 병원 한 번 안 가고 신사신법하는 결심으로 아이는 기적같이 4살 반이 됐다.

그런데 금년에 아이는 재발해 걸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내 사상 중에 바르지 않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매우 좋지 않는 후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3월 20일 오후 아이는 물만두를 많이 먹었다. 밤중에 배가 아프고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각해 졌다. 날이 밝아 내가 발정념을 할 때 아이가 ‘우우’ 소리 지르더니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주방에서 밥을 짓는데 아이가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얼른 방에 들어가 보니 또 경기를 일으켰다(이전에 재발만 하면이랬다).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있었다. 나는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의 어린이 제자를 구해 주세요!” 그리고 남편에게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가져다 달라고 하여 아이의 귓가에 대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했다. 아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또 사부님께 가지를 요청했고, 아이는 차츰 나아졌다. 오후 2시에 또 한 번 경기를 일으켰고 역시 사부님께서 고비를 넘게 도와 주셨다.

이튿날 아이는 경기는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며칠 전에 아이는 기침을 좀 했지만 심각하지 않았다. 반나절에 한 번이기에 나도 개의치 않았다). 이때 아이의 폐와 기관지에서 ‘쌕쌕’, ‘고롱고롱’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심장이 매우 높게 뛰었는데 가슴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컥컥’ 거리면서 숨을 쉬지 못했다. 속옷을 들추고 고개를 숙이자 갑자기 아이의 폐 상황이 똑똑히 눈앞에 나타났다. 폐의 색깔은 흙과 같았는데 감염된 고름이었다. 가운데 작은 구덩이가 있고 구덩이에 피가 좀 보였다. 단지 몇 초 만에 화면이 없어졌다. 나는 아이의 이번 발작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사부님이 계신다. 사부님께서 틀림없이 관여하실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귀염둥이, 괜찮아, 사부님께서 처리해주실 거야. 너는 분명히 괜찮을 거야. 그저 조금 있는 검은 기만 내보내면 곧 낫는단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어떠한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가지를 요청했다. 아이에게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들려주었다.

사흗날 아침 일어나서 아이는 잠깐 놀더니 또 이튿날과 상황이 같았다.

나흗날 아이는 식은땀이 나고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심박 수도 느려지고 폐는 전과 같았다.

닷샛날, 아이의 상황은 나흗날보다 더 심각했다. 기침은 조금 가벼워 졌지만 몸의 체온은 내려가고 있었다.

엿샛날, 아이는 온 몸이 식었고 맥이 잡히지 않았다. 심장이 뛰지 않았고 작은 얼굴은 색이 변했으며 피부도 늘어진 것 같았다. 다만 기침만 많이 가벼워졌다. 이때 나는 좀 당황해 마음을 움직였다. 만약 누군가가 병원으로 옮긴다면 나는 막지 않을 거야. 이 생각이 스쳐 지나자 나는 즉시 경각하고 자신을 나무랐다. ‘허튼 생각을 하다니! 정념 정행해야지.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병원으로 옮긴다고? 나을 수 있나? 어디에도 안 가! 사부님께 맡길 거야!’

이렛날 아이는 일어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요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물과 우유만 조금 마셨다. 몸은 여전히 매우 나른해 보였지만 모든 증세는 다 사라졌다.

여드렛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갔다.

이 한 주 동안 나는 가정과 친척 친구 여러 방면의 압력을 무릅쓰고 아이와 함께 힘겨운 7일을 보냈다. 만약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나와 함께 하시어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힘을 주시지 않았다면 나 혼자서? 이 고비를 넘으려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100% 신사신법, 정념정행하고 시시각각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 옆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면 넘지 못할 고비가 없고 넘기지 못할 관이 없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7년 8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1/3519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