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신을 잘 수련해 병원에서 근무하며 진상을 알리다

글/ 중국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전에 나는 대단히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사람이었다. 항상 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특히 시댁 식구를 깔봤다. 따지기를 좋아한 나는 결혼하기 전 벌써 두 시누이와 맞서 싸웠다. 아들을 낳은 후 남편은 나를 잘 대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류머티즘관절염, 신경쇠약, 위축성 위염이 있었고 밤새 잠들지 못했으며 제일 엄중한 것은 심장박동이 빠른 기외수축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매일 저녁 눈물로 지새웠고 정신은 거의 붕괴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왜 즐겁지 않은지 몰랐지만 속으로 결혼해 아들을 낳지 않았다면 난 우타이산(五台山)에 가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한 동료가 있었는데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면서 심성을 수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연마할 거니 빨리 책을 청해 달라고 했다. 얼마 안 가 나는 ‘전법륜’과 사부님의 기타 설법을 얻었다.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나는 즐거운 사람으로 변했다!

‘전법륜’을 읽은 후 나는 많은 법리를 깨달았다. 나는 직장에서 가져온 수액기, 주사기를 전부 직장에 도로 가져갔고 동료들과 일하면서 따지지 않았고 우수 사원 평가 선정 때도 다투지 않았다. 약을 더 투입하다 부주의로 약을 망가뜨린 일이 있으면 아무리 비싸도 내가 돈을 내 약을 사 환자에게 보충해주었다. 어떤 환자는 본인이 청구해 받을 수 있다면서 본인 이름으로 떼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아 동료는 과에서 모모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180도 변했다면서 좋게 변했다고 말했다. 한 동료는 말했다. “당신이 연공하기 전에 나는 당신이 정말 싫었습니다. 너무 오만했습니다! 지금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 이 공은 좋습니다.” 동료는 바른 말을 한 것이다. 나는 울었다. “원래 이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럼에도 나는 내가 꽃인 줄 알고 있었네!” 나는 꼭 잘 수련해 진정하게 좋은 사람이 되리라 결심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의 병이 다 나았다. 이는 의학상에서 해석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전에 나는 약을 한줌 가득 먹었지만 수련한 후 지금까지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1999년 박해가 발생한 후 나는 과에서 진상을 알렸다. 나는 우리 과에 입원한 환자를 나의 가족으로 여기고 그들을 인내심 있게 대해 그들은 감동했다. 그들은 “당신은 왜 이렇게 좋은가?”고 말한다. 그때면 나는 그녀들에게 나는 파룬따파를 배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파룬궁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믿었으며 후기 삼퇴의 기초를 다졌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당신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이 왜 그걸 배우는가?”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파룬따파를 배워 이렇게 변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진일보 진상을 알렸다.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법을 적게 배웠고 발정념도 적게 했는데, 진상을 모르는 환자가 병원에 신고해 병원 측은 내게 한 달간 급여를 주지 않았다. 이후 출근했을 때 계속 진상을 알렸는데 과 상사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연공하지 않고 환자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보증하면 이 과에 있고 그러지 않을 거면 이 과에서 나가시오.” 당시 나는 말했다. “나는 무슨 보증을 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상사는 절대 근면히 일하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좋은 직원을 밀어내지 않을 테니까요. 스스로 결정하시죠.” 후에 이 일은 지나갔고 상사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환경이 변함에 따라 상사도 나를 도와 말했다. 나는 항상 환자 가족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했고 환자의 심리 압력을 덜어주어 환자는 내가 친절하다고 여겼다. 그 다음 진상을 알리면 자연스럽게 성사됐다.

(1)

어느 해 겨울 심장기능이 쇠약한 70여 세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날 나는 야근이었다. 그 할머니의 며느리는 대변을 파내다 항문을 건드려 출혈이 생겼다. 외과의사에게 물어보았더니 의사는 소독용 솜으로 막아 압박해 지혈시키라고 했다. 할머니 가족은 소독용 솜으로 막았다.

나는 사무실에 돌아간 후 심장이 그렇게 나쁘고 변도 배출하지 못하는데 이 밤을 노인이 어떻게 지낼까? 병세가 더 심해지겠는데 생각하고 면봉을 가지고 가 할머니 가족에게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할머니 가족은 무슨 말을 해도 동의하지 않았고 환자는 더 미안해했다. 나는 미안해하지 말라 하고 환자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말했다. 환자는 허약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면봉으로 출혈된 곳을 찾아 가볍게 누르고 속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웠다. 잠시 후 피가 멎었다. 나는 내가 직접 환자 변을 파내주기로 하고 할머니에게 내가 변을 파내주겠다고 말했다. 환자와 가족은 다 만류했고 그때 나와 교대 근무하는 의사는 눈을 크게 뜨고 몸을 돌려 나갔다. 나는 환자에게 심호흡을 하면서 온힘을 다해 변을 보라고 하고 왼손으로 항문을 보호하고 오른 손으로 변이 나왔을 때 파냈다. 모두 네 번 파내자 환자는 변을 다 보고 밤에 편안하게 잤다. 의사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할 수 없다. 이 환자의 큰아들은 사업하는 사람이었는데 돈이 아주 많았고 지극히 효도했다.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할머니의 큰며느리는 나를 그녀 병실에 불러놓고 나의 주머니에 100위안짜리 지폐 한 묶음을 넣어주었다. 얼만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에게 돌려주면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나는 당신들을 다 가족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할머니 며느리는 말했다. “나도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이 한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너무 미안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럼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그렇게 빨리 지혈된 것은 모두 기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다 납득했다. 노인은 아들 다섯, 딸 하나가 있었는데 모든 가족이 다 나와 만나 20여 명이 모두 삼퇴했다.

(2)

그때 난 밍후이 라디오를 들으면서 방송하는 수련생의 말이 온화하고 편안함을 느끼고 나도 말투를 고치기로 결심했다. 하루는 병실에 70여 세 되는 할아버지가 왔는데 나는 인내심 있게 그에게 병 관련해서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그가 퇴직한 늙은 교사라는 것을 알고 나는 그의 일을 칭찬하고 문화대혁명 때 교사를 박해했던 사실을 말했다. 이에 노인은 육친을 만난 듯 무슨 일이나 다 나에게 물었다. 나는 모두 인내심 있게 대답해줬다.

사흘 후 그는 나에게 “당신은 왜 이렇게 좋은가?”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좋게 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아내도 대법제자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연공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는데 후에 어느 날 산책하다 갑자기 한 수련생이 그의 앞에 다가가 직접 탈당하라고 말해 노인은 아주 화를 내며 탈당도 하지 않았고 할머니도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할머니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고 말을 많이 하면 심장병이 도지곤 하여 할머니 수련생은 정의 교란을 받고 수련하지 않았으며 두 여동생도 수련하지 않고 불교로 갔다. 나는 인내심 있게 왜 탈당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노인은 알아듣고 기뻐하며 사당의 모든 조직을 탈퇴하고 할머니의 연공도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또 노인에게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와 함께 ‘전법륜’을 보라고 격려했다. 노인은 동의했다. 그는 관상동맥 방사선 사진을 찍었는데 원래 스텐트를 삽입해야 했다. 그러나 관상동맥 심장이 좋게 되어 스텐트를 삽입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의사는 당신은 70세가 넘는데도 심장이 이렇게 좋네요.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서 바로 퇴원하라고 말했다. 노인은 매우 기뻐했고 노년수련생도 내게서 수개표를 가지고 집에 가 글씨를 고치고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왔다.

(3)

한번은 복도에서 50여세 되는 여성이 우는 것을 보고 나는 다가가 왜 우냐고 물었다. 그녀는 며느리가 임신 7개월에 조산해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는데 의사는 그 아이가 살기 힘들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면 아기가 평안할 것이라며 또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키고 이 일을 잊어버렸다.

하루는 내가 금방 처치실에 들어갔는데 한 여성이 흥분해하며 나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제 손자를 구해주셨잖아요.”라고 말했다. 이때 많은 사람의 눈길이 나한테로 쏠렸다. 바로 그 1.45kg의 미숙아 할머니였다.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워 아주 컸고 병원에 주사 맞히러 왔다는 것이다. 아이 어머니도 왔기에 나는 아기 엄마에게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키고 그들에게 대법 사부님께서 아이를 구해주셨다고 알려주었다.

또 다른 1.35kg 미숙아도 집에서 이미 포기해 소아과로 가지 않았는데, 나는 그 아기에게 말했다. “아가야, 굳세야 한다.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해야 한다.” 또 아이에게 작은 옷도 주고 직접 입혀주었다. 아기를 안은 노인은 오성이 아주 좋아 즉시 “리대사님 우리 아기를 보호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4개월 후 아이가 병원에 와 신체검사했는데 아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나를 찾아와 말했다. “우리 엄마가 꼭 당신에게 우리 아이를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5kg이 넘는 희고 포동포동한 남자아이였다. 사존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중생이 대법이 좋다는 것만 믿어도 복을 받는다.

직장 일에서 나는 엄격하게 나를 요구했고 사례금을 받지 않았다. 두 번인가 환자가 현금을 준 것을 나는 입원한 선금에 넣어주고 환자나 가족을 다시 만났을 때 선금 영수증을 환자에게 주면서 그들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시정부 관료와 연줄이 있었다. 처음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말에 놀랐는데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린 후 그들은 당신은 정말 당신 사부님의 좋은 제자라고 말했다. 때문에 나한테 온 환자들은 다 진상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환자가 진상을 듣지 못하고 퇴원하면 나는 아주 괴로웠고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되지 않으면 또 입원해 먼저 번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진상을 듣고 삼퇴를 했다.

나는 진상 알리기를 직장 근무와 결합했다. 사부님께서도 나의 기술을 가지해 주어 환자들은 나를 아주 믿었다. 어떤 때 병원에 와서 내가 당직인 것을 보면 시름을 놓았다. 매번 그들은 내가 보지 못했던 가족을 데리고 왔는데 나는 열정적으로 “이 분을 어떻게 부르면 되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나이에 따라 친절하게 그들을 부르면서 거리감을 좁히고 아주 빨리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온 가족 3대에게 다 알릴 때도 있었다.

(4)

나는 교대할 때 휴식 시간을 이용해 거리에 나가 진상 소책자를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직접 탈퇴를 권했다. 이는 나에게 많은 마음을 버리게 했다. 두려운 마음,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 고생하기 싫어하는 마음. 후에 나는 낮에 출근할 땐 점심시간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나는 매일 아침에 점심 도시락을 사고 일찍 직장에 출근해 점심에 가지고 나갈 것을 담아놓는다. 매일 점심밥을 다 먹고 즉시 약속한 장소로 가 수련생을 기다렸다가 함께 진상 알리러 갔다. 가면서 말하고 배포하고 다니면서 발정념 했다.

엄한혹서에도 우리는 견지했다. 어떤 때 누가 일이 있어 나오지 않아도 혼자 견지했다. 매일 큰 가방 가득 가지고 갔다가 빈 가방으로 돌아왔다. 매일 나갈 때마다 생각했다. 너무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돌아올 때 자료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보면 적게 가지고 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점심에 나가는데 가장 많을 때는 십여 명을 탈퇴시키고 적을 땐 몇 사람을 탈퇴시킨다. 우리는 표면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열심히 하자고 서로 귀띔했다. 우리는 쇼핑할 시간이 없어 비싼 옷을 살 때가 적었다. 나는 언니 수련생이 저렴한 야채를 사먹고 남은 돈으로 자료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당시 우리 두 사람은 매일 점심에 40개의 션윈시디를 배포했는데 다른 것은 계산하지 않더라도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만 수련생은 모두 본인 돈으로 만들었다.

원문발표: 2017년 8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2/3508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