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업 박해
글/ 동화(同化)
[밍후이왕] 많은 수련생들이 ‘구세력의 교란인지 사부님의 배치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써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일부 수련생은 장기간 병업 속에 처해있고 입으로는 반박해라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아주 어찌할 도리가 없어 한다. 또 수련생들은 장기간 경제 혹은 가정에 문제가 생겨 구세력의 박해 속에서 고달프게 몸부림치고 있는데 마치 현상을 인정하지 않아도 안 되고 단지 부분적으로 부정할 뿐이다.
일부 수련생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했지만 장기간 법공부해도 어떻게 돌파할지를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습관화 되어 자연스러워졌다. 구세력의 은밀한 교란에 의식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상 이미 인정했는데 여기서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깨달음의 제한으로 적절치 못한 곳은 여러분들이 시정해주기 바란다.
1.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고 가장 바른 길을 걷자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1]
밍후이왕 ‘우주 중의 녹화를 보다’란 문장에서 사례를 한 가지 말했다. 한 수련생A는 자신이 길을 걸을 때 갑자기 한쪽 다리가 길어지고 다른 한쪽 다리가 짧아져서 쩔뚝거리는 것을 느꼈다. A는 당시 마음속으로 박해를 부정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누구도 나를 박해할 수 없고 구세력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것들을 소멸한다. 나는 사존께서 상관하고 계시고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다.’ A가 마음속으로 계속 신체에서 나타난 상태를 배척하고 두 다리에게 알려주었다. “길을 잘 걸어라, 구세력의 말을 듣지 말고 주원신(主元神)의 말을 들어야 한다. 다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와야 한다.” 걷고 걷다가 ’우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뼈가 원위치에 가고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리를 절뚝거리다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A는 50여 미터를 걸었고 마음속으로 아주 평온했다. 만약 A의 일념이 바르지 않았다면 진짜로 절름발이가 될 뻔했다.
많은 수련생들은 아주 큰 계발을 받았고 수련생A가 이 관을 넘을 때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면서 순정하고 잡념이 없어서 반평생 절름발이로 살아야 할 큰 관을 단번에 넘었음을 인식했다. 안을 향해 자신을 보니 나 자신도 이런 유의 일을 만났다면 이렇게 신속히 승화할 수 있었을까? 어디에서 제고가 필요했는가? 비학비수하면서 자신을 보니 격차를 볼 수 있었고 수련생들의 교류에서 이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2. 첫 일념, 박해를 인정하는 속에서 반박해하지 말아야
수련생B가 말했다. “만약 내가 그 고험을 만났다면 내 첫 일념은 늘 습관적으로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았을 겁니다. 자신에게 이는 교란인가 아니면 접질린 것인가 물어봤을 겁니다. ‘접질렸으니 멈춰서 발을 풀자. 그래도 안 되면 심성에서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찾아보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병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 절대로 병원에 안 가야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수련생C가 말했다. “만약 나라면 아마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다리뼈를 봐야 안심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심성에서 원인을 찾았을 겁이다.”
B, C가 이렇게 표면에서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법에 부합되지만 사실 이미 구세력의 교란 박해를 승인했다. 박해를 인정하는 중에서 반박해하고 있고 이미 정법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다.
‘전법륜’ 제4강에서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야기가 있다. “그 수련생이 땅에서 천천히 일어난 후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들은 가보세요. 먼지를 툭툭 털며 남편을 이끌고 갔다.”
우리는 여기에서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는 한 층의 내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업이 습격하면 대법제자들의 첫 일념은 마땅히 마음속에서 자신은 괜찮다고 인정하고 박해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며 구세력이 이렇게 교란하는 것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로써 철저히 부정해야 관을 철저히 넘길 수 있다. 이렇게 첫 일념을 품어야 비로소 대법요구에 부합된다.
교통사고 등 목숨을 빼앗으러 온 큰 관을 마주하고 대법제자의 첫 일념이 만약 ‘내가 왜 이럴까? 왜 목숨을 빼앗으러 온 구세력이 어떻게 배치했는지 보자. 그것들이 이렇게 배치한 것이 법에 부합되는가. 그것들과 소통하고 선해가 안 되면 다시 반박해하자.’ 만약 이렇게 한다면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첫 일념이 맞지 않고 먼저 박해를 승인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마비되는 지는 법리에서 언제쯤 바로 잡히는 가에 달렸다.
그러나 B, C의 위의 사상은 사실상 바로 이러했고 첫 일념은 박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박해 속에 빠져서 물었다. ‘내가 왜 이럴까? 왜 이런 일에 부딪혔을까?’ 속인의 그 ‘다리 접질림’에서 원인을 찾고 모두 그 속에 빠져서 박해의 증상을 승인했다. 승인한 성분이 많을수록 더 깊이 빠져들고 관을 더 넘기 어렵다. 아주 많은 시간을 지체할수록 스스로 고생을 찾으면서 수련하는 것과 같으며 정법대도가 아니다.
3. 박해에 빠져서 분석 총결하는 것은 정념이 아니다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말한다. “병업이 왔는데 만약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소업이면 나는 감당하고 만약 구세력이 배치한 교란이면 나는 부정하겠습니다.” 관건은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 교란 하에서도 모두 구체적인 사건 속에 파고들어 자신을 교란하지 말아야만,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고, 게다가 위덕도 더욱 크다.”[2]
필자의 이해로는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가서 분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 층차 속에 미혹되면 영원히 분간하지 못하고 사부님의 배치를 당신은 볼 수 있는가? 영원히 보지 못하고 분간하는 자체가 바로 속인 마음이고 분간하기만 하면 법에서 벗어나고 그 속에 빠지며 안에 빠져들어 나오지 못한다.
수련생 B, C의 첫 일념은 그 속에 빠져서 분석하고 바로 구체적 일에서 나오지 못하면서 또 교란인지 접질림인지를 구분했다. 소도(小道)일수록 강조하는 것이 더 많은데 모두 제거해야 할 관념이다.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승인하는 것이고 이러한 결과는 바로 승인하는 정도만큼 병업에 빠지는 것으로 사부님의 배치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 속에 빠져 다시 부정하는 것인데 어찌 철저히 부정할 수 있는가? 또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지체했다.
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수련생을 제외하고 사부는 99년 7·20 이후에 당신들에게 개인 수련을 위한 어떠한 관(關)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개인수련은 전면적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3]
이 한 단락 설법과 대조하면 여러분들은 깨닫게 되는데, 수련생A가 부딪힌 난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니라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것이다. 단지 사부님께서 장계취계로 제자에게 위덕을 수립하는 기회를 주신 것이고 A가 바르게 행해 첫 일념에 철저히 부정했다. 전혀 가서 분석하지 않았다. 구세력은 전혀 존재하지 말아야 했는데 또 그것의 배치를 분석해서 뭐하는가?
수련생A가 강제로 가한 병업관을 신속하게 넘고 그가 분석하고 총결했는가? 분석할 필요가 없으며 관을 넘은 경험을 순식간에 총결하고 완성하면 바로 구세력을 철저히 부정한 것이다.
정법시간이 갈수록 급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하며 정진하는 대법제자들은 매 분마다 모두 법속에 들어가서 조사정법하고 있는데 어찌 또 한가하게 구세력의 박해 배치를 분석하는가? 그것들은 전혀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했고 대법제자가 분석할 자격이 없다. 그것들을 놓고 말하면 철저히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뿐이다. 만약 이 한 점을 해내면 구세력은 당신에 대해 간담이 서늘한데 왜 발정념할 때만 이 한 점을 해내고 평소에는 이 한 점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이 정념이 없으면 구세력 잔여세력은 당신 주변에서 자유롭게 오가고 박해를 가하는데 그것이 바로 박해에 대한 인정이 아닌가.
4. 첫 일념이 다르면 병업 결과가 다르다
‘전법륜’ 제4강에서 말씀하셨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이 한 단락 법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실제 수련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나타난다.
(1) 수련생D, 늘 4-5일 걸린 병업을 15분 만에 해결
수련생D는 한 번은 병업이 갑자기 습격해왔고 독감 증상이었다. 머리가 극도로 아프고 콧물이 나며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전에는 이런 병업이 오면 바로 누워서 4, 5일이 지나야 했는데 구세력의 병업교란을 철저히 부정하겠다고 깨닫고 당시 일념이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였다.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했으며 15분 뒤 병업 증상이 모두 사라졌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계속했다.
(2) 수련생E, 병업이 오면 바로 휴식하고 법공부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며칠 미룬다
늘 대법에 협조가 필요한 업무가 생기면 수련생E는 병업가상이 왔다. 그녀의 첫 일념은 늘 이러했다. ‘안 된다. 대법을 실증하는 업무를 며칠 쉬자.’ 이 생각 자체가 바로 구세력 박해에 대한 인정이고 가끔 첫 번째 반응은 머뭇거리다가 이번에 자신이 가능한지 보고 가능하면 하고 안 되면 그만둔다. 이렇게 다음날 안 되면 또 휴식하러 가고 이것도 강제로 가한 병업을 승인하는 것이다.
(3) 수련생F, 절대로 대법 일을 지체하지 않고 병업을 마다하고 일하다
가끔 병업가상이 수련생F에게 몰려왔지만 F는 줄곧 단호했다. 절대로 대법의 업무를 지체할 수 없고 한 편으로는 법을 위해 헌신하고 한 편으로는 소업했다. 비록 병업에 일을 지체하지 않았지만 필경 병업가상을 철저히 부정하지 않았고 대법 업무에 다소 영향을 주었다.
(4) 수련생G, 병업을 만나자 누워서 소업하다
‘점오상태에서 본 장기병업(12)’에서 일종 보편적인 현상을 말했다. “다른 수련생들은 개의치 않아하며 억지로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는데 2,3일이면 지나간다. 그러나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지 않고 법만 들었다.(끊임없이 정신이 딴 데로 갔다) 10일 15일이 지나서 결국 지나갔다. 이렇게 고달프게 관을 넘는 것은 심성을 제고하지 않는 방법이고 마치 과거 세간소도와 같은바 직지인심의 대법수련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고생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또 세간소도보다 못하고 법에 대한 이해도 깊을 수 없어 장기간 감성적인 인식에 머물렀다.”
수련생G는 바로 이런 유형이었고 병업이 오면 마음속으로 ‘구세력 배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를 읽는다.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G가 병업에서의 모든 표현은 연공하지 않고, 누워서 책을 보려고도 하지 않으며 설법만 들으려고 하며 수시로 졸고 수시로 ‘나 괴로워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정념정행이 조금도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병업이 나타난 본인의 수련은 어떠한가? 그가 이런 상태에서 그렇게 강한 정념으로 걸어 지나올 수 있는가? 정말로 자신을 신(神)처럼 여기면서 모든 것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내가 오늘 밍후이왕의 보도를 보니, 한 수련생이 다리를 다쳐 분쇄성 골절이 되었지만, 또 깁스를 하지 않았다. 이 수련생은 자신이 불구가 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조금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매일 법 공부를 했다. 정념이 아주 충족하여 조금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연공을 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분쇄성 골절에도 깁스를 하지 않은 것은, 감옥에 있는 병원에서나 하는 짓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나는 다리를 틀고 연공할 것이라고 했다. 아파서 안 되어도 여전히 견지했는데 나중에는 다리를 틀어도 아프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좋아졌다. 지금은 또 뛸 수 있고 달릴 수도 있으며, 아무 일도 없이 정상인과 똑같다고 했다. (박수) 당신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구세력은 절대로 감히 그를 움직이지 못한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관을 넘는 중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무엇을 정념이라고 하는가? 이것이 바로 정념이다.”[4]
여기 수련생 B, C, D, E, F, G는 모두 1997년 이전에 법을 얻은 노 대법제자들이고 G는 매달 한두 번씩 병업이 오면 넘어가고 3,4일에 업을 제거하고 또 아무 일 없는 사람과 같다. 또 자신이 특수하다고 여기고 사부님께서 이렇게 배치한 것일 수 있다고 여겼다. 정념정행이 없고 사악에게 박해의 구실을 잡혔다. 그녀를 박해해 정념을 나오게 하려 했다. 물론 구세력이 이렇게 하는 것은 범죄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치를 잡았고 이때 발정념해서 박해를 부정해도 큰 작용이 없다. 왜인가?
5.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구세력은 모두 손을 뻗칠 자격이 없다
구세력은 구우주의 이치에 따라 일을 행하는데 그것들이 대법제자를 관리할 자격이 있는가? 자격이 없다. 대법제자가 누락이 있고 잘 수련하지 못해도 그것들도 손을 뻗칠 자격이 없는데 사부님께서 상관하시기 때문이다. 구세력이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고 기어코 손을 뻗쳐서 박해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은 그것들에 대해 부정하고 제거하는데 조건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수련생들이 흐리멍덩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가 누락이 있기만 하면 구세력은 손을 뻗쳐오고 그것들의 개입을 막무가내로 인정하는데 이는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그것들을 영원히 인정하지 않으시고 대법제자들이 만약 사상에서 그것들에 대해 한 치의 인정이 있거나 어찌할 도리가 없이 인정하는 것마저도 안 된다.
6. 박해를 부정하는 것과 안을 향해 찾는 것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정법수련에서 계속 유지해야 할 심태다. 그러나 박해가 급습하고 병업이 눌러올 때 첫 일념은 마땅히 ‘나는 괜찮다’여야 한다.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발정념해서 제거하는 것이다. 이때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고 첫 일념이 ‘나는 괜찮다’가 아니라 ‘내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당할까? 나는 자신을 잘 찾아봐야겠다’라면 바닥에 쓰려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목숨을 빼앗으러 온 박해를 가중시킨다. 왜냐하면 당신의 첫 일념이 박해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다. 박해가 급습하고 병업이 올 때는 발정념할 때와 같이 모두 구세력의 잔여부대가 온 것이고 이때의 첫 일념은 마땅히 나는 정정당당한 대법제자이고 절대로 괜찮으며 ‘너의 박해는 나와 상관없다’여야 한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들을 것이고 너희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전면적으로 제거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발정념해도 교란을 철저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멈추고서 자신을 잘 찾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심성상 문제가 구세력에게 박해할 구실로 잡힌 것이다. 자신의 집착, 심성 문제이고 모두 법리에 동화되지 않은 사람마음과 대응되고 있다.
내가 본 한 가지 상황은 당신의 집착심도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고 구세력이 당신의 집착심이 발산하는 그 장에 머물러서 당신을 박해하는데 그러면 발정념하는 공이 그것을 때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러한 집착심을 놓지 않고 보호하고 있거나 그것이 당신의 집착을 잡고 당신을 박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당신의 단점을 붙잡고 당신은 단점을 보호하고 있는데 어찌 제거할 수 있겠는가? 발정념 전에 자신의 집착을 청리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을 청리하는 것으로 단점을 보호하지 말아야 한다.
집착심이 끊임없이 억제되고 소멸되어 아주 작아진다면 흑수(黑手), 난귀(爛鬼)도 숨지 못하고 발정념하면 그것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7. 박해에 빠진 후 정확하게 교훈을 총결해야 한다
만약 수련생이 잘 가늠하지 못해서 박해 속에 빠졌다면 안으로 잘 찾아야 하고 진지하게 교훈을 총결해야 한다. 총결한 것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만약 구세력의 박해를 사부님의 배치로 총결하는 것도 안 되고 첫 일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해도 안 된다. 순정함에 도달하지 못하면(수련생A처럼 그러한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어떠한 관념도 없는 순정한 부분을 참고할만하다.) 병업은 길어질 것이고 혹은 기타 박해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다.
(계속)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3]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4]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7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17/3511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