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한지 10년 가까이 된다. 질투심을 발견하고 철저히 이 마음을 없애겠다고 결심을 내린 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몇 년이 됐다. 과정 중 곤두박질하며 뼈에 사무칠 듯한 고생을 겪으며 어렵게 오랫동안 연마했어도 뚜렷한 제고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드디어 다소 돌파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왜 자신의 질투심이 이렇게도 뿌리가 깊고 완고하며 없애기 어려운지 줄곧 몹시 궁금했다. ‘석 자 얼음이 하루 추위에 언 게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릴 적부터 클 때까지 겪은 각종 일을 회상해보면 줄곧 많은 별들이 달을 에워싸듯 선생님, 동창, 동료의 보살핌 하에 걸어온 것이고 주변에서 칭찬하는 목소리로 충만되어 있었다. 학습이든 외모든 우리 그 작은 지방에서 보면 모두 아주 우수했기 때문이다. 칭찬의 목소리는 자아를 똑똑히 보지 못하게 했고 ‘난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높이 있다는 마음의 암시가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 줄곧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동창, 동료, 친구, 심지어 가족이 나보다 잘했을 때 마음속으로 편안하지 않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것은 질투심이고 수련인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과정 중 줄곧 아주 고생스럽게 수련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늘 주변에 있는 사람의 입을 빌어 내 마음을 자극하는 말을 해주셨고 질투심을 없애게 하셨다. 그야말로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왔다. 어떤 때 정말로 자신의 용량이 극한에 달했다는 느낌이 들면 사부님의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라는 말씀을 생각한다. 그리고 대량으로 법을 배우고 법을 외웠다. ‘전법륜’을 몇 번 외웠는지 모른다. 확실히 이 방면의 많은 집착심을 연마해 없앴지만 얼마 안 되어 고험이 또 올 뿐만 아니라 그런 좋지 않은 생각이 특별히 강렬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좀 강하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괴로웠다. 아이는 늘 나보고 이마를 찌푸린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정말로 아주 고통스러웠다.
이마를 찌푸린다고 말하자 갑자기 외모의 변화는 질투심과 관계된다는 것을 의식했다. 지금의 외모는 이전과 완전 달랐다. 얼굴이 수척하고 피부가 누렇고 용모가 좀 변했다. 동창, 동료는 다시는 ‘예쁘다’는 말을 내 몸에 사용하지 않았다. 어머니마저 날 싫어했고 내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늘 동창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호텔, 은행에 갔을 때마다 신분증 대조가 잘 되지 않았다. 나도 늘 안을 향해 찾았고 자신에게 외모에 집착하는 마음 등이 있다는 것을 찾았다. 그러나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마지막에는 이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이 한 편의 교류문장을 쓸 때 갑자기 용모 변화의 더욱 깊은 층차의 원인이 질투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2]라고 말씀하셨다. “이 질투심을 당신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 물건은 무시무시한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모든 수련을 다 해이해지게 만들 것이고, 당신을 망칠 것이다. 질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3]라고 말씀하셨다.
최근에 ‘정진요지’를 볼 때 갑자기 외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요즘 매일 외웠고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수량을 추구하지 않는 마음으로 견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연속 며칠 외웠다. 뜻밖에 ‘정진요지’를 외우다 보니 매일 싱글벙글 웃었고 주변의 모든 것이 상서롭고 자비로워 보였으며 어떤 모순에 부딪혀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주 평화로웠다. 관건은 질투심을 저도 모르게 많이 없앴고 이전에 질투하던 사람과 일(몇 년간 줄곧 완전히 없애지 못했음)이 지금은 다 존재하지 않게 됐으며 그들이 그렇게도 착해보였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러 나와 그들을 위했는데 억지로가 아니었다. 이런 평화로움을 이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부님께서 “사실 당신은 수련 중에서 바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수련되어 올라온 것이다. 기억하라.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 “대법(大法)을 잘 배우려고 한다면 어떠한 목적도 품지 말고 배워야만 비로소 옳은 것이다.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읽을 때마다 좀 명백해졌다면 바로 제고한 것이며, 당신이 한 번 보고 나서 혹시 단 한 가지 문제라도 명백해졌다면, 그 역시 진정으로 제고한 것이다.”[4]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드디어 알게 됐다. 이전 법공부할 때 구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배웠구나!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전법륜’을 적지 않게 외웠지만 질투심을 이렇게 오랫동안 돌파하지 못했다. 많은 수련생들도 나와 같은 느낌이 있을 것이다. 법을 외우는 것이 아주 어렵고 오랫동안 외워 비로소 조금 밖에 외우지 못했거나 외운 후에도 또 잊고 어떤 때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것은 법을 외우기 위해 법을 외우는 것이고 법을 기억하기 위해 외우는 것 같다. 자세히 ‘기억하다’, ‘외우다’를 생각해보면 이것도 구하고자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정진요지’를 외울 때 평화로운 마음으로 법을 외웠다. 얼마나 외울 수 있으면 그만큼 외웠고 잊으면 다시 외웠더니 결과가 아주 좋았다. 법을 외우는 목적은 법을 얻기 위한 것이지 법을 외웠다고 법을 얻는 것이 아닌데 어찌 제고할 수 있겠는가?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다.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법해’[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법을 배우다(學法)’
원문발표: 2017년 7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7/3507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