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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수련생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다”

/ 천시(晨曦)

[밍후이왕] 나는 올해 22세 여성으로 어렸을 때 법을 얻어 현재 19년 됐다. 예전에 사회의 불량한 유혹에 따라 물결치는 대로 표류하기도 했었다. 그 시기 하루하루가 공허했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으며 화를 내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행운인 것은 어렸을 때 대법을 배웠었기에 절망 속에서 다시 대법 속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대법수련을 하면서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찾았고 나를 개변했다.

법을 얻다

3살에 법을 얻은 것은 할머니가 대법수련자이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할머니와 수련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 자주 아팠고 늘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한번은 아팠을 때 우연히 할머니 댁에 갔다가 마침 사부님의 설법동영상을 보았다(당시 할머니 댁은 법공부 장소였음).

할머니 댁에서 놀면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는데 설법을 다 듣고 나자 곧 병이 나았다. 매우 신기했다. 당시 약도 안 먹고 주사도 안 맞았는데 바로 나았다. 그때부터 나는 할머니 댁에 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사부님 설법을 보기 좋아했다. 나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도 수련에 들어오셨다. 중학교 다닐 때 수업 중에 갑자기 고열이 났다. 마지막 교시는 체육 과목이었는데 좀 일찍이 하교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 집에 왔다. 우리집 아래층까지 오자 힘이 조금도 없었는데 억지로 난간을 붙잡고 7층까지 올라갔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먹거나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빨대로 물을 마시게 해주셨다. 화장실까지 걸어가는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밤중에 내 방에 와보겠다고 하셨다. 얼굴에도 열기가 올랐다(40도가 넘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부님 설법을 들으면서 이튿날 아침까지 자고 일어났더니 아무런 증세도 다 없어졌다. 나는 대법을 수련해서 지금까지 19년 동안 약 한 알 안 먹고 주사 한 대도 안 맞았다.

교통사고 속에서 무사하다

중학교 여름 방학 때,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고 놀러 가셨다. 집에서 나오는 길은 매우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나는 스릴이 좋아서 아버지에게 속도를 내라고 했고 아버지는 페달을 두 번 밟았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승용차 한 대가 가로로 나타났다. 속도가 매우 빨랐다. 급정거하려 했지만 자전거도 속도가 너무 빨라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고 그대로 승용차 문에 들이 박았다. 아버지의 손은 차창에 박혔고 유리는 부서졌다. 손에는 온통 유리 조각이었다(집에 돌아와 물로 씻자 다 떨어졌음).

나는 자전거에서 떨어졌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살갗만 긁히고 피는 나지 않았다. 차주는 우리에게 어떤지 물었다. 우리는 모두 대법수련자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에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다. 차주는 괜찮으면 나에게 배상을 해야 합니다. 차가 당신들 때문에 부딪쳐 고장이 났으니 수리비로 2백 위안 배상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차주에게 함께 집에 돈을 가지러 가자고 하셨다.

이후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당시에 만약 그 차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더 큰 사고가 났을 거야.” 왜냐하면 앞에 더 큰 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속도로는 멈출 수 없었기에 그 결과는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대법을 수련했기에 매번 위험에 부딪혀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톈안먼 앞의 기억

우리집에는 대법제자가 7명 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나, 그리고 막내 삼촌, 숙모와 남동생이다. 19997.20 박해가 시작된 후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매일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나는 가족 그리고 기타 대법제자들과 약속이나 한 듯 함께 톈안먼에 가서 우리의 요구를 제기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직접 겪은 경험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을 향하고 병을 제거하며 몸을 건강하게 하고 도덕성이 다시 회복하게 하는 정법이다. 우리는 베이징에서 환경이 아주 안 좋은 숙소를 잡았다.

이튿날 톈안먼에 와보니 삼삼오오 떼를 지은 사람들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사부님께서는 결백하시다, 대법은 결백하다고 외쳤고 사이렌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경찰은 대법제자들을 발로 차고 밟으며, 어떤 경찰은 경찰봉으로 대법제자를 때리고, 어떤 경찰은 대법제자를 어디론가 끌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즉시 공터를 찾았고 제2장 공법 포륜을 했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을 미리 써 와서 배포했고 어떤 수련생은 현수막을 펼쳤다. 막내 삼촌은 준비한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려 했다. 이때 한 무리 경찰이 우리에게로 달려와 현수막과 사진기를 빼앗았다. 경찰은 소형 무전기로 수련생의 머리를 때려 피가 났고 또 연공하는 수련생을 폭력으로 제지했다(광장의 대법제자에 대해 연령을 막론하고 모두 이러했음).

마지막에 우리는 강제로 버스에 태워졌고 어디로 보내질지 몰랐다. 버스에서 우리는 여전히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당시 대법제자들은 어디에 보내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가족들은 분리 감금됐다. 나와 어머니는 당일 저녁에 석방됐다. 그날의 정경을 영원토록 잊지 못한다. 2000년 이후 가족은 잇따라 불법적으로 징역 선고를 받았고 할머니, 남동생과 나만 집에 남았다. 이후에 막내 삼촌과 할머니는 박해로 잇따라 세상을 뜨셨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텔레비전에서 선전한 것과 다르고 우리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선량한 민중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절망속의 광명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더 이상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학우들에게도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초등학교 때 학우들은 모두 알았고 늘 나를 괴롭혔고 괴물 취급했음). 거의 법공부를 하지 않던 나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고 비교적 좋지 않은 학생을 사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주 욕하고 싸우며 어떤 때는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나는 비록 싸움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나쁜 습관에 물들어 갔다. 자주 숙제를 하지 않았고 아침에 학교에 가서 다른 사람의 숙제를 베꼈다. 그들과 함께 물건을 훔치고 욕하고 어떤 때는 집의 돈도 훔쳤다. 이렇게 선생님이 거의 상관하지 않는 학생이 됐다.

한번은 가족들이 나에게 외지에 가서 학교를 다니라고 했다. 나는 얼른 대답했다. 누구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나는 외지 학교에 갔고 그 학교의 풍기는 더욱 안 좋았다. 대법을 배우지 않는 나는 그야말로 어떠한 사물의 유혹도 뿌리칠 수 없었다. 밖에서 사회의 좋지 않은 풍기에 많이 오염되었다. 담배 피고, 술 마시며, 회식하고, 노래방, PC방에 가며, 인터넷 연애, 침실에서 음란 사이트에 접속해 동영상을 보았다. 나도 다른 여학생처럼 변했고 매일 모든 사람들처럼 졸업한 후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매일 향락과 자극을 추구했지만 매일 무료하고 공허하며 쓸쓸했다. 자신은 이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자신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도 몰랐다.

반년의 짧은 실습기간에 나는 스스로도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자신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3년이 지났고 졸업한 후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문책에(당시 대학갈 나이였음) 나는 거의 붕괴상태였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고 매일 침대에 누워 소설을 보며 현실을 도피했다. 거의 문을 나서지 않았고 문을 나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 피해 다녔다. 이런 생활에 나는 몇 번이나 자살하고 싶었다.

우연히 한번은 내 방에서 물건을 찾다가 이전에 수련생 교류가 담긴 MP3를 발견했다. 사부님의 법상 앞에 앉아 수련생의 교류를 들으면서 매우 괴로웠다. 그리고 자신이 매우 오랫동안 법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매우 후회됐다.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울었다. 자신이 했던 일을 생각하면 후회와 사부님께 대한 죄송함뿐이었다.

이렇게 잘못한 나지만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롭게 나를 용서해주셨다. 수많은 해를 지나쳐 버렸다가 다시 수련했다. 대법을 배우면서 서서히 모든 나쁜 습관을 고쳐 나갔다. 사부님의 요구대로 했고 더 이상 물건을 훔치지 않았으며 집안 돈도 훔치지 않았다. 출근해 복사가게에 들어온 돈에 한 번도 손대지 않았다. 얼마를 받으면 그만큼 넣어놓았다. 지금은 집안 탁자에 수 백 위안이 놓여 있어도 한 푼도 건드리지 않는다.

평소에 밥 짓고 집안일도 도왔다. 이전에는 너무 게을러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몰랐다. 쓰레기 버리기 힘들다고 창문에서 아래로 던지고 또는 문 입구에 서서 아래로 던졌다. 어떤 때는 봉지가 터져서 쓰레기가 온데 널렸다.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번거로움을 준다는 것을 안다. 쓰레기를 버릴 때 주머니에 잘 담아서 복도에 놨다가 나갈 때 들고 나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변의 친척들은 모두 내가 좋다고 하면서 현재 밖에 있는 아이들과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예전의 나는 그들과 똑같았다. 매일 향락과 자극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은 배려하지 않았다. 파룬따파가 나를 개변했고 내 마음속의 등불을 밝혀줬으며 더는 무기력하고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어떤 때는 부모님께 화도 내고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마음을 고치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노력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매일 기분이 좋다. 내심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그런 기쁨이다. 파룬궁은 사람의 도덕을 승화할 수 있는 고덕대법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살아있는 사례다.

친구여, 만약 당신이 파룬궁수련생을 만나는 인연이 있다면 반드시 걸음을 멈추고 한번 알아보기 바란다. 중국공산당이 선전한 것과 전혀 다르다. 당신이 알고 나면 무엇 때문에 전 세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하는지 알 수 있고, 무엇 때문에 탄압에 맞서 우리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확고하게 나아가는지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원문발표: 2017613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어린이제자마당>청소년이 대법을 배우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13/3495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