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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결핵과 반신불수 4년, 수련 4개월 후 발걸음 가뿐해져

/ 산둥 핑두(平度)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경축 5.13 특별 원고) 나는 올해 65세이고 산둥성 칭다오(靑島)시 핑두시 장서(張舍)진 롄자촌의 일반 농민이다. 1999년 나는 폐결핵 말기 확진을 받았다. 폐가 거의 다 썩어 의사는 치료할 수 없다며 가족에게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인 2002,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 반년도 되지 않아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 주셨고 죽음에 임박한 사람이 새 삶을 살게 됐다. 지금 15년이 지났는데 혈색이 좋고 하루 종일 기운이 넘치며 어떤 힘든 일이나 더러운 일이든 모두 할 수 있고 삼륜차와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다. 체력이 젊은이 못지않고 과거의 어두운 가정은 기쁨으로 넘쳤다.

뜻밖의 재난으로 궁지에 빠지다

나는 26세 때 결혼했는데 3년도 되지 않아 몸이 불편하고 피로하며 무력하고 끊임없이 기침했다. 31세 되던 해 병은 더 심해졌고 기침할 때 자주 피가 보였다. 형은 이런 상황을 보고 나에게 웨이팡(濰坊) 폐결핵병원에 가 검사하라고 했다. 병원에 가 검사하니 과연 폐결핵이며 중병이라 입원 치료해야 했다. 입원 후 의사는 가족에게 영양이 높은 음식을 많이 먹여야 한다고 했다. 그때 가정 형편이 어렵고 작은 아이가 2, 큰 아이가 6살이었다. 좋은 것을 먹기는커녕 가정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의사는 이런 상황을 보고 아내에게 집에 돌아가 아이들을 돌보라고 했다. 홀로 병원에 입원했으나 마음씨 좋은 의사가 나를 돌봐줬다. 나는 웨이팡 병원에서 5개월 치료받았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의사는 나에게 일하지 말고 잘 보양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온 가정의 중책을 아내가 짊어지게 됐다.

1998년 오전 나는 자주 열이 나고 기침할 때 피가 섞여 나왔다. 당시 목에 염증이 생겼다고 여겨 개의치 않았다. 소염제를 복용해도 효과가 없었다. 몇몇 병원에 가 검사해도 무슨 병인지 검사해 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더 심해져 고열이 내려가지 않고 피를 크게 토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가족의 독촉으로 나는 큰 병원에서 종합 검사를 받았는데 폐결핵 말기 확진을 받았다. 의사는 딸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는 폐결핵 말기 환자고 아주 심각하니 빨리 입원해 치료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시 폐결핵 병원에 입원했다. 2개월 입원 후 병세가 잡히자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병이 몇 번 또 재발해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은 점차 더 심각해지고 줄곧 1년간 지속됐다.

1999년 봄, 병은 또 악화되고 매일 피를 토하며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 피를 1~2나 토했고 강렬한 고통으로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다. 가을이 되자 아내가 밭에 땅콩을 수확하러 갔다.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 했는데 집에 큰 만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좀 짜지만 먹었다. 전에 10여 년 동안 간이 된 음식을 먹지 않았다. 10여분 새 온돌방에 앉아 뒤로 몸을 움직이며 이불에 기대려 했는데 갑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한입 한입 피를 토했다. 약 반시간 토하고 폐에서 살점을 세 덩이나 토했다. 마지막에는 닭 창자 같은 것이 혀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피를 토하기 전에도 이웃이 지붕 위에서 땅콩을 말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순간 의식을 잃었다. 1시간 정도 정신을 잃었을까, 11시 반쯤 둘째 형과 딸이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나는 정신이 돌아왔다. 딸을 보는 순간 눈물이 글썽했다. 가족의 걱정을 덜기 위해 눈물을 닦고 아무 일도 없는 척 했다.

나중에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두 폐가 이미 거미집 모양처럼 썩었다. 큰 구멍은 계란처럼 컸고 폐가 전부 썩었다. 의사는 가족에게 말했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요. 치료비가 비싸서 부담하기 어려울 거예요. 집에 돌아가 잘 돌봐주세요.” 이렇게 나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누우면 숨이 막히고 몸을 좀 움직이면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누워서 자본 적이 없다. 단지 이불에 기대고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해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대소변은 모두 딸과 아내가 받아줬다. 그간 저금했던 돈을 모두 치료에 썼다. 나중에 아내는 부득이하게 친척에게 빌리고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 빚더미에 앉았다. 돈이 없으니 병원치료를 하지 못해 집에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다. 병마에 시달려 나는 뼈만 남았고 175m 키에 몸무게가 35kg이 됐고 말라서 사람 같지 않았다. 마지막에 의사는 겁이 나서 주사 놓으러 오기도 싫어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힘들고 지친 아내와 딸을 보면 살기보다 죽는 것이 더 나았다.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며 몇 번 죽을 생각도 했는데 가족에게 모두 발견됐다. 그때 인생은 이미 갈 데까지 간 것 같았고 울어도 눈물이 말랐으며 병마는 온 가족을 궁지에 빠지게 했다.

기쁘게 대법을 얻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2002423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다. 그 날은 내가 다시 새 생명을 얻은 날이다.

20024월 어느 날 아내는 일하러 갔다가 대법제자 한 분을 만났다. 내 병은 남쪽, 북쪽 마을 모두 알고 있다. 대법제자는 아내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권했다. 아내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집으로 돌아와 나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 그때 자신의 병에 어떤 희망도 품지 않았다. 아내가 말하기에 간신히 대답했다. 대법제자는 나에게 진상 내용 관련 녹음을 가져다주었다. 내용은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파됐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24시간 연속 끊임없이 듣고 10일을 들었다. 느낌에 이런 진상 관련 이야기가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또 딸을 보내 그 대법제자를 찾아 좀 더 달라고 했다. 그 대법제자는 없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믿지 않고, 이렇게 좋은 것은 나라도 다른 사람 주기 아깝겠다고 생각했다.

423일 대법제자는 우리 집에 와 나에게 파룬따파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온몸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가기 전에 나에게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의 설법 녹음과 보배 같은 책 전법륜을 남겨줬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듣고 이튿날에 피를 토하지 않더니 그 후 병은 점차 호전됐다. 비록 간혹 피를 토하는 현상이 있었지만 사부님을 굳게 믿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점차 피를 토하는 증상이 사라졌다. 법공부를 얼마 하지 않았을 무렵 수련생이 집에 와 나에게 먼저 동공을 가르쳤다. 수련생은 내가 집을 나서게 하기 위해 나에게 말했다. “정공을 배우려면 우리 집까지 걸어오세요.” 나는 걷기 운동을 했다. 첫 걸음부터 다섯 걸음, 열 걸음, 점차 숫자가 증가됐다. 3, 4일 후 마침내 수백 미터를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집을 걸어 나오자 이웃들은 모두 놀랐다. “걸을 수 있어요?!” 집 안에서 4년을 지냈는데 파룬따파를 배운 후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말할 때 모두들 감탄했다. “파룬따파는 참 신기하다. 대단해!”

4개월째 되던 어느 날, 당시 추수는 이미 지났다. 수련생은 4km가량 떨어진 수련생 집에 법공부를 하러 가자고 했다. 그때 좀 주저했다. 많이 걸을 생각을 하니 좀 무서웠다. 신체가 막 회복됐기에 가족은 내가 먼 길을 걷는 것이 걱정됐다. 속으로 나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순식간에 한줄기 냉기가 정수리에서 내려가더니 순식간에 공포감이 사라졌다. 다리도 쑤시지 않고 걷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생 집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자신이 생겼고 몇 년간의 병에서 환골탈태된 기분이었으며 한달음에 수십km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기한 것은 며칠 뒤 또 4km 넘게 떨어진 수련생 집에 갔다는 것이다. 10여 년간 자전거를 타지 않았기에 처음엔 좀 주저했다. 다른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고 마음먹고 자전거를 탔다. 사부님께서 내 등을 밀어주시는 느낌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내내 아예 페달을 밟는 느낌이 없이 아주 가볍게 수련생 집에 갔다. 그때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 앉아 눈물을 흘리며 속으로 감개무량했다. 마음 깊이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대법에 감사드렸다! 대법은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죽음에서 끌어오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을 읽는 것을 가르쳐주시다

내가 7, 8일 확고하게 수련했을 때 어느 날 밤 어슴푸레 사부님 법신이 우리 집에 들어오신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황금색 가사를 입으셨고 곱슬곱슬한 푸른색 머리카락이셨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셨고 나도 사부님을 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사부님 모습을 뵌 적이 없어 사부님인지도 몰랐다. 어느 날 오전 8시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 집에 오셨다. 그 때 뵌 사부님 모습은 장쿤룬(張昆侖) 교수가 흰 대리석으로 조각한 사부님 법상의 형상과 같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시고 나도 사부님을 보고, 갑자기 진상 비디오에서 본 사부님의 수인 모양 및 가부좌하시기 전에 반짝이는 조각이 생각났다. , 이 분은 사부님이 아니신가? 이제야 나는 사부님을 두 번 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사부님께서 나를 인도해주셔서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어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법공부 초기 사부님의 설법녹음만 듣거나 가족이 나에게 읽어주었다. 나는 전법륜을 받들고 책 속의 매 글자를 볼 때 반짝반짝 빛나고 무지개 색 빛을 보았다. 하지만 한 글자도 몰랐다. 한 번은 우리 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할 때 매 사람이 한 단락씩 읽었다. 내가 읽을 차례에 책을 읽었는데 글자를 모르기에 넘어가며 읽어 뒤의 수련생이 읽었다. 그때 마음이 괴로웠다. 나는 꼭 전법륜을 읽을 것이라고 확고한 일념을 보냈다.

사부님께서 내 확고한 일념을 보셨다. 2003년 봄 어느 오전 가족은 모두 밭에 일하러 갔다. 내가 전법륜을 펼치니 어슴푸레 사부님께서 내 옆에 오신 것을 보았다. ‘전법륜첫 페이지부터 한 글자씩 한 줄 한줄 나에게 가르쳐주셨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밤 12시에 나의 원신(元神)에게 책 읽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정오에는 육신에게 책 읽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이렇게 3년을 가르쳐주셨다. 일자무식이었던 나는 마침내 전법륜과 사부님의 기타 설법을 통독할 수 있었다.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고 나와 아내는 세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겨울 3개월 동안 진상을 알렸고 3월에 아내에게 말했다. “법을 적게 배워 머리에 지혜가 없네요. 시간을 내 법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이 일념을 보내니 사부님께서 즉시 나를 도와주셨다. 사부님께서 대법 중의 글을 잘라 하나하나 키에 담아주셨고, 키에 가득 채워 막 넘칠 것 같다. 사부님께서 키 안의 글자를 내 입에 넣어주셨다. 이렇게 나는 대법으로 신심이 충만됐다.

사부님께서 새로운 폐로 바꿔주시다

2002년 어느 날 밤 잠잘 때였다. 나는 잘 때 늘 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잔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내 발을 두드리시더니 말씀하셨다. “집에서 누워있기만 하고 나가 놀지 않는가?” 말씀하시더니 사부님께서 나를 데리고 수백 미터 밖 정원으로 가셨다. 당시 자신이 땅과 반 미터 정도 떨어진 느낌이었고 바람과 구름을 타고 마당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이미 불도신이 한 바퀴 크게 둘러 앉아있었고 유일하게 자리 하나만 남아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단번에 나를 앞으로 데려오셨고 그 다음 나를 보시며 손으로 내 가슴 오른쪽을 손으로 재셨다. 먼저 가로로 재고 그다음 세로로 재면서 아래위로 재셨다. 그때 사부님의 손이 따뜻하고 아주 편안했다. 손이 다리까지 왔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나아졌고 천목도 열렸으니 스스로 돌아가라.”

내가 깨어났을 때는 발이 땅에 닿을 수 있었다. 나는 기뻐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에 몸이 좋아질 거야.” 이후 수련생에게 이 일을 언급할 때 수련생은 말했다. “사부님께서 당신 가슴을 재신 것은 새로운 폐로 바꿔 주신 것이 아닌가요?” 수련생의 일깨움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서서히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진상을 알릴 때 위험에서 벗어나다

2004년 음력 20, 악인의 고발로 지방 경찰서 경찰 6, 7명이 우리 집에 뛰어들어와 수색했다. 그들은 도처에서 뒤집으며 대법 책과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가져갔다. 아내는 말했다. “남편에게 배우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한 경찰이 곧 말했다. “그에게 배우라고 해요. 우리는 그저 보러 온 겁니다.” 그들은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오후에 경찰서에 오라고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에 갔다. 마을 근처 큰 커브 길을 돌 때 연속 2번 안으로 돌아 나는 되돌아 집에 갔다. 아내에게 이 일을 알렸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가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했다. 다음 날 나는 자신이 가서 대면해야 하고 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3일째 컵을 들고 아내와 함께 경찰서에 갔다. 경찰은 우리 둘을 편안히 대했다. 부소장은 직접 우리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정월 초삼일 내 신체에 이상이 나타났다. 먼저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초나흘, 초닷새갈수록 심해졌다. 초이레 날 아내 홀로 경찰서에 책을 가지러 갔다. 명절이라 휴가이므로 경찰서에는 당직 경찰만 있었다. 초아흐레 날 아내는 또 경찰서에 가서 책임자에게 말했다. “여자로서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또 환자가 있어 쉽지 않습니다. 남편이 파룬궁을 수련해 나아졌어요. 당신 보기에 좋지 않습니까? 남편이 힘들게 병이 나았는데 당신이 가서 남편을 놀래켰어요. 당신이 가지 않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겁니다. 가서 한번 보세요. 남편이 어떻게 변했는지요. 당신이 그때 갔을 때 남편이 어떤 모양이었나 생각해 보세요. 책임져야 합니다.”

신기한 것은 매번 아내가 경찰서에 갈 때 내 병은 나았고 피도 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아내가 가지 않는 날이면 나는 집에서 괴롭고 피를 토했다. 아내는 내가 피를 토하는 것을 보고 놀라 또 경찰서에 갔다. 정월 25일 아내가 경찰서에서 돌아온 후 나는 단번에 일어났고 온몸이 가볍고 무슨 일도 없는 듯했고 편안했다. 나는 아내에게 그들이 진상을 알면 되고 이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사부님의 보호로 사악이 해체돼

200888일 사악의 올림픽개막식 때 나는 의자에 앉아 TV를 틀고 개막식을 보았다. 대략 반시간 본 후 나는 물을 부어 마시려 했다. 갑자기 온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반개월 동안 나는 줄곧 땅에 꿇어앉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이 공간의 공기가 전혀 없는 듯했으며 괴로웠다. 가족은 선풍기, 벽걸이 선풍기를 모두 틀어놓았고 24시간 바람을 불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느낌에 공기가 없는 듯하고 호흡이 어려웠다. 15일 후 나는 말라 뼈만 남았다. 속으로 이렇게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구하신다. 사부님 저에게 뭘 좀 먹게 해주세요.’ 사부님의 보호 아래 16일째 나는 바나나 한 개를 먹었고 점차 하루에 바나나 한 개, 복숭아 한 개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체는 아주 괴롭고 허약했으며 두 어깨는 접는 의자에 의지하고 무릎은 땅에 꿇고 있어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20여일 지났을 때 형과 형수님이 오셔서 내 모양을 보고 병원에 가라고 재촉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아내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는 사부님이 관여하고 계세요.”

28일째 아내는 바닥에 한 달 가까이 꿇어앉아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당신을 우마차에 태우고 밭에서 땅콩을 따게 할게요.” 처음에 나는 좀 주저했지만 갑자기 꿈에서 사부님께서 3번 점화해주신 것이 생각났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점화하시어 나에게 나가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짚고 있는 지팡이를 던졌는데(그때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에 갈 수 있었음) 어디에서 그렇게 큰 힘이 났는지 모른다. 난 단번에 우마차에 올라앉았다. 아내가 우마차 앞에 앉고 나는 우마차를 몰고 밭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브를 돌 때 소가 갑자기 빗나가 나는 우마차에서 뛰어내려 소에 맨 줄을 잡았다. 내가 힘이 이렇게 센 것을 보고 아내는 놀랐다. “당신 말랐어도 힘이 정말 세네요. 당신 지금 신체 나이가 몇 살이에요?” 나는 두 손을 내밀고 말했다. “스무 살.” 다음 날 나는 밭에 가서 가족과 함께 땅콩을 수확했다.

28일째 자정, 나는 장쩌민이 내 머리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기세등등하게 한 바퀴 돌고 화가 나서 말했다. “네가 나아졌어도 나가서 교류하면 안 된다.” 말하고 화가 나서 갔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사악은 해체됐다. 사당 올림픽 개막식을 보는데 집착해 사악이 내 신체를 박해할 틈을 준 것이었다. 내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확고하기에 사부님의 가호 아래 결국 사악을 타파했다.

천목으로 본 것, 사악이 멸망으로 가다

나는 다른 공간의 사악 ‘610’ 경찰차 소리가 오리가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사악이 박해를 발동하려 하면 이런 소리는 먼저 사당 중앙에서 전해 나오고 그런 후 각 성 및 지방으로 전해진다. 때로 어느 지역에 박해가 발동되면 다른 공간에는 원자탄 폭발한 후 나는 듯한 짙은 검은 연기가 생기고, 때로 큰 불이 난 것처럼 그 큰 불이 점차 그 지방에 넓게 퍼지면 그 지역은 대대적인 박해가 발생한다.

2014년 다른 공간에 있는 사악의 깃발이 공중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20152개의 깃발은 땅에서 3m 높이쯤 있었고 2016년에는 계속 떨어졌다. 2016년 겨울에 ‘610’ 경찰차의 다른 공간에서의 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거의 땅에 붙어야 들렸다. 나는 사악이 이미 해체됐고 사당은 멸망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상은 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고 내 이야기가 미혹된 세인을 진정으로 일깨워줄 것을 희망한다. 빨리 대법 진상을 알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513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3/3468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