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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잘 배워 정념을 단호히 하고 일사일념을 잘 닦아야

/ 우한 대법제자

[밍후이왕]비록 10여년을 수련한 노제자이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발견했는데 닦고 닦아도 표면만 수련하고 있었다. 뿌리 속의 ’, ‘자아는 오히려 그렇게도 뿌리 깊고 단단했다. 바로 최근 이틀 동안 사무실의 화분 몇 개가 모두 말라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뿌리는 전부 거의 썩어 있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준 탓이었다.

사무실의 꽃에 물주는 것은 줄곧 내가 책임지고 있었다. 마음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나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대법제자가 있는 마당은 바르고 일체는 모두 유익해야 한다. 그럼 현재 나타난 일 역시 나의 수련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꽃에 물을 줌에 있어서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은 세 가지 일을 한다고 계속 바빴지만 정성을 다하지 못했는데 이 한동안 진상전화를 걸어도 욕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다.

아래에 나는 이 몇 년 동안 새로운 수련환경에서 안을 향해 찾고 사람마음을 제거한 수련체험을 교류하겠다.

좋은 사람 배후에 숨어있는 집착과 사람마음을 닦아서 제거 

나는 2012년 연말 그룹회사에서 새롭게 이 새로운 업무환경으로 옮겼다. 전에 일하던 환경은 이미 개창해냈고 평소에 공개적으로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받아낼 수 있었다. 새로운 업무환경이 예전과 같은 환경으로 변화시키려면 최소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은 좋은 사람임을 인정하게 해야 환경을 개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사코 남들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인정하게 하려는 배후에는 사람마음과 집착이 숨어있음을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한번은 한 동료가 점심에 휴식하러 갔다. 오후에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도 그녀는 출근하지 않았다(사무실 한켠에 작은 방이 있고 낮잠을 잘 수 있다)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나는 고객이 오면 대신 티켓을 주었다. 그녀는 일어난 후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았고 마땅한 일로 여겼다. 후에 몇 번 그녀를 도와 일을 해도 그녀는 전혀 감사해하지 않았고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심지어 한번은 내가 사무실 청소를 하면서 그녀의 옆으로 갔다. 바닥을 닦아야 해서 그녀더러 발을 비켜달라고 했더니 그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만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청소를 끝낸 후 자리에 돌아왔다. 그녀가 뒤에 있는 동료와 웃고 떠드는 것을 보니 다른 동료에 대해서는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무척 존중해주었다. 마음속으로 무척 괴로웠다. ‘나도 당신보다 10여살 더 많은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도 존중하지 않는가. 모든 일에서 늘 당신을 도우려고 하는데 좋은 보답을 못받네.’ 마음속으로 이 동료가 참 철이 없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일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나는 천천히 그녀를 대신해서 일하려는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 당시 순리에 따르자고 생각했고 그녀가 정말 급해서 나를 찾을 때 도와주자고 했다. 후에 또 오후에 고객이 와서 티켓을 요청했다.(이 동료가 해야 할 업무) 이때 한 동료는 그녀를 깨워서 그녀가 이 일을 하게 하라고 말했다. 후에 다시 이러한 정황에 부딪치면 모두 그녀 자신이 일어나서 일을 하게 했다. 나는 그녀가 나에 대한 태도가 반대로 더 좋게 변한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은 나에게 전에 사무실의 동료도 이러했음을 기억나게 했다. 비록 이 관은 넘었지만 법에서 제고하여 넘은 것은 아니었다.

안을 향해 찾을 때 나는 사무실에서 동료를 돕겠다는 염두가 순정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비록 마음속으로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리겠다고 하는 것이 표면에서 보기에는 마치 아주 좋은 것 같지만 배후에는 남한테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숨어있었고 남들의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마음들이 만족을 얻었을 때 그 속에서 즐거워한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면 진상을 아는 것이 아주 적어지는데 내가 동료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킬 때 이 사람들이 침묵하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몇 번 겪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로부터 왕따가 될까봐 두렵고 사람마음에 이끌려서 포기했다.

깊이 파보면 나는 또 남한테서 인정받으려는 마음의 배후에 성격 중의 담이 작은 것과 나약함이 있었다. 안을 향해 찾아보면 가끔 남들이 나의 도움을 요청할 때 나는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급히 다가가서 도와주면서 남들이 거절할까봐 두려워했다. 마치 일을 잘못한 것처럼 가끔 자신이 도와주지 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사실 바로 일종의 자아의 존재감을 찾고 있었고 늘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배후에 그렇게 많은 사람마음이 숨어 있었다.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 거절하는 마음, 왕따 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는 진짜로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마음들이었다.

내가 이 일체를 인식했을 때 이는 나의 어린 시절의 성장과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하는 것이 아주 강했다.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아주 적게 받았으며 클 때까지 감정상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성장과정 중에서 수시로 일종 고립되고 도움을 못 받는 고독감이 생겨서 내성적이고 나약한 성격을 형성했다. 늘 남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고 그래야 비로소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대법수련으로 들어오면서 대법에서는 참음을 특별히 강조하는데 나는 오히려 자기 성격 속의 조용히 감당하는 것을 참음으로 여기고 있었다. 대법 수련에서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좋은 사람이 됨으로서 자신의 집착과 사람마음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너무나 부끄러웠고 나는 십 여 년을 수련했는데 비로소 무엇이 일종의 무위(無爲) 상태의 수련으로서, 오직 당신이 씬씽(心性)을 수련하기만 하면”[1]의 한 층의 내포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에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정당당하고 담담하며 추구가 없는 수련상태를 체험했다. 수련인이 관념, 사람마음, 집착을 내려놓은 후의 홀가분함과 쾌락을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질투심을 닦아서 제거

사무실은 전부 여성이기 때문에 모두다 이야기를 나누면 가장 많이는 아이들 이야기이다. 그중 한 동료의 딸은 2012년에 이미 미국으로 유학갔고, 나의 딸도 2013년에 캐나다로 유학갔다. 그 동료의 딸은 학과목이 전부 A이고 매년마다 장학금을 타고 또 가정환경이 매우 좋은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질투심을 유발했다.

물론 수련인은 모두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야 함을 알고 있기에 매번 유사한 이야기 내용을 들으면 나는 내심에서 불편해질 때 자신에게 마음을 움직이지 말자고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질투심을 일으킨 배후의 근본 집착은 제거하지 못했고 질투심은 수시로 또 표현되어 나왔다. 이때 나는 동료가 자기 딸이 속인과 만날 때 어떻게 잔머리를 굴린다고 했을 때 단번에 나의 관념이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의 딸은 어릴 때부터 나와 같이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그다지 정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견지해나갔다. 따라서 대법에서 성장한 딸애의 품성은 아주 단정했다.

후에 동료가 또 자기 딸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품성을 가진 딸이 더욱 출세해도 나는 별로이다. 심지어 마음에서 아주 싫어졌는데 그 당시에 이것이 사실 또 질투심이란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딸과 교류할 때 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찾아 캐나다에 남아야 한다고 했다. 비록 매일 법공부를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지만 늘 부족한 느낌이었다. 매번 가족모임에서 시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딸애가 철이 들고 착하다고 흥분해서 칭찬하면서도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할 생각을 못했다. 대법이 가져다준 아름다움을 즐기고 누리려고만 했다.

자신이 색욕심, 과시심, 환희심, 질투심, 속인 중에서 명예와 성과를 구하는 허영심 등 각종 집착심에 이끌려서 딸애도 그다지 착하지 않게 변했다. 심지어 후에는 딸애와 영상통화하면서 여러 차례 심성상 충돌이 발생했고 딸은 엄마가 너무 간섭한다고 여기며 나와 대립했다. 내가 법공부하라고 하는 말을 듣지 않았고 가끔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나는 내심에서 정에 이끌려 무척 괴롭고 속상하고 걱정되고 초조해졌다. 이때에야 비로소 나는 갑자기 마땅히 딸에 대한 정, 아이의 학업성적에 대한 요구를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일체는 사부님께 맡겨야 했다. 아이도 이렇게 오랜 시간 법을 배웠고 사부님의 제자이다! 이때 정의 집착이 올라오기만 하면 나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1]

매일 매 정각에 특별히 발정념하여 나의 정에 대한 집착과 사람의 관념을 제거했다. 나의 공간장에서 미시적인 데서 거시적인 데에 이르기까지 일체 구세력이 강제로 배치한 일체와 정과 관련된 집착심과 생명물질을 제거했다. 그리고 대법제자가 윤회전생과정 중에서 형성된 일체의 각종 집착심과 욕망을 만족하기 위해 형성된 각종 사람마음과 일체 사람의 관념을 제거했다. 그 배후의 일체와 이와 관련된 생명물질과 그것의 요소들을 제거했다.

동시에 나는 또 법 외우는 것으로 법공부 했고 매일 2~3시간 했고 한동안 견지한 후 나는 이런 정의 집착이 갈수록 옅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화강암 같은 집착하는 좋지 못한 물질들을 제거해주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딸에 대한 정의 집착을 천천히 내려놓고 딸이 속인사회에서 출세하여 나 개인의 속인적 허영심을 만족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딸도 그렇게 반항하지 않았고 천천히 예전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그녀의 딸을 또 칭찬할 때 나는 내심의 공(), ()를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내심에서 동료를 위해 기뻐해 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비워지고 선념(善念)이 이네”[2]의 현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에야 질투의 배후는 원래 사람마음과 집착이 있었기 때문인 것을 알았고 만약 한사코 질투를 제거한다고 했으면 아주 깨끗이 제거되지 않았을 것이다. 배후의 근본 집착과 사람마음을 제거해야 비로소 질투심을 철저히 제거할 수 있었다. 지금 딸은 또 책을 보고 법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내심에서 아주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에 대한 집착으로 사악에게 틈을 타게 되었고 하마터면 딸로 하여금 대법에서 이탈하게 할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상업이 아주 강하고 오성이 아주 차한 제자이다. 많은 시기에 일부 심성상의 관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넘고서 비로소 깨닫곤 하는데 비록 법을 계속 외우지만 실질적으로 수련하는 면은 아주 차하다. 많은 시기에 사람 일념 중의 관념을 진정한 자신으로 여기고 법에서 수련해낸 정념으로 자신을 주재하지 못했다. 그래서 관을 넘는 시간이 이렇게 길고 층차 제고가 이렇게 느리다. 매일 구하는 사람도 이렇게 적다. 나는 지금에야 수련의 엄숙성을 느끼는데 진짜로 반드시 일사일념에서 자신을 잘 닦아야 비로소 바르게 걸을 수 있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의 길을 잘 걸어야 비로소 진정으로 조사정법하는 것이다.


[1]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
[2]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시사홍음3-성경(聖境)에 들어가다

문장발표: 2017529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29/3487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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