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임신 기간의 수련 체득

/ 허베이 대법제자 루위안(茹願)

[밍후이왕] 나는 청년 여성 대법제자로서 오늘 임신 기간에 있었던 수련 체득을 얘기하고자 한다.

교란을 제거하다

1년 전, 나는 직접 시누이(온 가족이 모두 수련자)가 아기 두 명을 돌보느라 법공부와 연공을 못하고 수련상태가 좋지 못한 것을 보았다. 남편 수련생에게 애기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시누이의 두 애기가 죄를 짓는 게 아닐까요? 그들은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는 것을 교란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 수련생은 애들한테 뭔 잘못이 있겠어요? (관을) 넘지 못한 것은 어른이죠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왜 또 밖으로 찾고 있을까?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어찌 그 작은 생명이 결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배치된 각종 환경에서 구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없이 대법 법리에 따라 수련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젊은 수련생 법공부 팀에 8개월 되는 아기가 왔다. 아기 부모는 예전에 우리 법공부 소조에서 공부했고 돌봐줄 어른이 없어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아기가 오면서 우리 법공부 환경도 개변됐다. 그야말로 너무 귀여웠고 순진한 눈빛, 순수한 웃음 때문에 법공부 때 참지 못하고 아기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법공부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법공부가 교란 받아서는 안 된다고 깨달은 후 아기를 없는 걸로 생각하니 이 관도 넘어갔다.

비록 이 아기가 같은 또래 아이에 비하면 많이 기특하지만 한 시간 넘는 법공부 중에서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옹알옹알 거리거나 기어 다닐 때면 나는 쉽게 교란을 받았는데 내가 만난 법공부 환경은 모두 아주 조용하고 외부 교란이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아기의 부모 수련생은 요즘 이런 환경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할 것이고 틀림없이 돌파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한 주에 기껏해야 한 시간 좀 넘게 이런 환경에 부딪히는데 그녀가 온 것도 필연적인 것이고 장래에 내가 회피해서는 안 될 수련의 관일 수 있다. 이 관을 통해 나는 의외로 더 얻게 됐고 사전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가끔 법공부할 때 아기가 엄마한테 달라붙기도 하지만 엄마 수련생은 낮은 목소리로 아기에게 알려준다. “너 혼자서 놀고 엄마에게 영향주지 마.” 아기는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즉시 조용해진다. 나는 그 엄마 수련생이 교란을 제거하는 정념을 보았는데 그녀는 아기에게 이끌리지 않았고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후에 이 엄마 수련생이 아기를 데리고 오전에는 재래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오후에는 현지 법공부 소조에 가서 법공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아기 때문에 수련에 영향 받지 않았고 나는 대법의 박대(博大)함과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우려와 걱정은 신사신법(信師信法)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정말 돌파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후 법공부 할 때 사부님께서 어떻게 교란을 없앨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러나 당신들은 이 한 점을 영원히 기억하라. 즉 누가 교란하든지 그것은 모두 잠시이고, 모두 가상이며, 모두 주체(主體)가 아니고, 모두가 마치 유동하는 공기와 같은 것임을. 공간 속의 각종 물질요소와 생명은 곳곳마다 모두 있으며, 많기로 헤아릴 수 없다. 그것들은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이 다 있는데, 바로 미시적인 공간과 부동(不同)한 공간의 생명이다. 아직 법에 의해 바로잡히기 전, 우주의 미시적인 신()은 모두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곳에 존재하는 각자(各自)의 공간 속에 있으며, 무엇이 여기에 머물고, 머물지 않고는 단지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 자연적으로 거기에 존재하는 그러한 유형무형의 요소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며 누구도 정념 정행하는 대법제자를 조종하지 못한다.’[1]

아이가 있으면 확실히 일종 교란이 있을 수 있고 그의 일체는 우리와 연계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른바 교란이란 다만 내포가 없고 관련이 없는 몇 글자로서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것을 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영향주지 못한다.

관념을 개변하다

임신 초기, 아랫배가 살살 아팠고 추위를 좀 탔다. 남들은 모두 반소매를 입고 있었지만 나는 긴 소매를 입고도 배를 막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가 아팠다. 그래서 뜨거운 여름에도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지 못하게 해 남편은 나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나는 그가 왜 아기를 위해 생각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한 번 우리 법공부 소조의 한 수련생에게 비염병업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녀 말로는 임신 초기 에어컨 바람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후 해마다 여름 때 에어컨을 켜면 불편하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여러 해 수련했는데 왜 아직도 낫지 않는지 아주 곤혹스럽다고 했다. 수련생들은 이에 대해 교류를 진행했고 나도 자신의 인식을 얘기했다. “관념을 개변해야 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는데도 병업이 나타난 원인을 눈에 보이는 일반 상식으로 판단하다니요. 이 생각을 배척해야 합니다. 에어컨 바람을 쏘이는 것과 몸이 불편한 데는 관련이 없고 다만 이 공간에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돼 나오는 외부 요소에 불과합니다. 바람을 맞을까봐 두려워할수록 바람을 더 맞아야 하고 이 관념을 돌파해야 합니다.” 그날 교류에서 나는 가장 많이 말했다.

수련생이 떠나간 후 남편은 내가 남에게는 관념을 개변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선풍기도 틀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는데 나 역시 이러했다. 속인이 임신에 대한 지식과 느낌으로 고통을 대했고 고통이 임신 때문이고 바람을 맞으면 고통이 더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피하려고 속인 방법으로 완화시켰는데 내 전반 인식과 행동은 완전히 속인과 똑같았고 이 문제에서 나는 자신이 수련자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사부님께서는 그의 다리가 아플 때, 우리는 흑색물질이 그의 다리로 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흑색물질은 바로 업력으로서 고통을 겪으면 소업(消業)할 수 있으며, 이로써 ()로 전화된다. 아프기만 하면 그 업력은 아래로 제거되기 시작하기에, 업력이 아래로 내리누를수록 그의 다리는 더욱 심하게 아프다. 그러므로 그의 다리가 아픈 것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이 아니다.’[2]라고 말씀하셨다.

법리가 명백해지자 바람을 맞을까 봐, 몸이 찰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다. 몇 번 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 남편 수련생은 자발적으로 선풍기를 끄겠다고 했지만 나는 바람을 맞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비록 바람 맞을 때 여전히 아픈 느낌이 있었지만 이때 통증과 선풍기는 관계가 없고 선풍기가 조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아픈 느낌도 금방 사라졌다.

임신 기간 속인의 길을 걷지 않다

나는 원래 임신에 대해 속인의 관념과 지식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늘 자기도 모르게 속인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하고 알아보았다. 이렇게 속인의 임신과 육아 지식에 대해 많이 알게 됐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류사회는 마치 진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후퇴하고 있으며, 갈수록 우리 우주의 특성과 멀어지고 있다.’[2]와 같게 됐다.

나는 자신이 갈수록 틀에 갇힌다는 느낌이 들었고 첫 일념은 더 이상 법에서 어떻게 얘기했는지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어떻게 말하고 전문가, 혹은 어느 속인이 어떻게 말했는가 였다. 그들 말대로 하지 않았다가 아이에게 불리할까 봐 두려웠는데 예를 들면 무엇은 먹어서는 안 되고, 무엇은 많이 먹어야 하며, 어떤 유아용품을 사고, 어떤 브랜드가 비교적 좋은지 등등이다. 당시 자신이 차츰 사람 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내가 속인의 이치를 선택했기에 나는 속인의 인식과 같았다. 그때 머릿속이 사람의 이치로 꽉 찼을 뿐만 아니라 제한된 법공부 시간마저 모두 빼앗겼다. 자신의 상태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거기에 빠져 법하고 갈수록 멀어졌다.

그러다 며칠 전, 갑자기 내 배 안의 자식이 무엇 때문에 우리집에 왔는지 생각해보았다. 속인 중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인가? 내가 이렇게 하는 목적은 그에게 사람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편하게 지내며 고생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게 이 생명이 환생해 내 배 안에 들어온 진정한 목적과 의의인가? 법공부를 조금 더 하고 한 사람을 더 구하는 것과 비싼 사람의 음식을 먹고 편한 유아용품을 사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진정 그가 원하는 것인가?

어머니라면 모두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머니 층차와 인식이 다름에 따라 주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구분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준 사람 속의 일체를 배척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 아이는 갈수록 사람 속에 빠지고 행동은 대법과 갈수록 멀어져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게 된다. 내 수련상태가 아이에게 영향 준다는 것을 느꼈고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하사하신 목적은 인륜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행복하게 생활하라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사람 속에서 인재가 되어사람의 모든 것을 누리라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배치한 이 길은 우주 중에 이러한 요소가 있기에 당신에게 준 것이며 당신에게 걷도록 한 것이다. 여러분은 내가 말한 이 뜻을 알아들었는가? (박수) 그러나 어떤 공능이 있는 일부 수련생들은 오히려 중대한 사명을 저버리고 잘 걷지 못했다. 자신에게 자그마한 재주가 좀 있다고 여기고 득의양양해하며 심지어 과시하는 문제에만 그친 것이 아닌, 심지어 아주 크게 굽은 길을 걸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오(邪悟)하고도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 당신은 우주가 당신에게 한 중요한 부탁(重託)을 저버렸는데,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로 말하면 각 방면에서 모두 주의해야 한다. 대법제자가 뒤돌아 당신이 걸은 길을 보면, 부동한 환경 속에서 개개인은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당신의 세간 일, 당신의 생활방식을 포함해서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3]고 말씀하셨다.

수련자로서 임신은 속인 중의 일이 아니고 임신 기간 일체 증상과 방법을 속인의 인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 이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이고 어린 수련생을 잘 이끄는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맡긴 중임으로서 이 길에서 걸어 나와야 하고 법에서 수련해야 한다. 깨달은 후 더 이상 임신 후 아주 힘들고 피곤하다는 것을 구실로 새벽 연공을 놓치지 않았는데 이건 나 이 한 생명의 손실만이 아니었다. 또한 더 이상 임신을 구실로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는 횟수를 줄이지 않았고 진상을 알리기 전에 늘 우리 함께 협력하자는 일념을 내보냈다. 또한 감히 법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생겨난 사람 마음은 무의식중에 자라고 있는 생명에게 좋지 않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가급적 날마다 한 시간을 내어 발정념을 하면서 자신의 좋지 않은 일체와 외래 교란을 제거해 차츰 상태가 좋아졌다.

대법제자는 주인공이다

임신 후, 한때 사람 마음으로 생각했기에 세 가지 일에 영향 주었다. 나는 자신이 왜 늘 교란 받고 속인의 일에 이끌리며 사부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는 합격된 제자가 될 수 없는지 많이 고민됐다.

사부님께서는 왜냐하면, 인류는 대법을 위해 창조된 것이고 대법은 이 극의 주요 줄거리(主線)이며 중생의 존재는 일체가 모두 이 주요 줄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람들은 모두 극 중의 사소한 모순과 충돌에 골몰해 미혹됐고 극의 주제를 잊어버렸으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이 극의 무대가 바로 중국이다.’[4]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점화 하에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한 부의 극에서 어떤 인물이 주연이 되겠는가? 주연은 언제나 주요 줄거리와 관통될 것이고, 조연은 주요 줄거리와 미세한 관계, 심지어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 주요 줄거리가 작가의 취지이자 의도로서 정법 이 길에서 극 중의 주요 줄거리는 사부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바싹 이 줄거리를 에워싸고 하는 것만이 우리가 인간 세상에 온 목적과 소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이 주요 줄거리에서 벗어났고 줄거리가 아닌 곳에 마음을 많이 쓴다. 어느 한 번 배 안의 아이와 임신 이 사실을 크게 보고 사부님의 제자, 자신의 조사정법 사명을 소홀히 여겼다. 나는 자신이 왜 쉽게 대법에서 빗나가고 속인의 것에 집착하며 쉽게 유혹과 교란을 받고 아주 힘들고 허전해 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그건 속인의 것을 붙잡고 포기하지 않고 속인의 일에 마음을 쓰거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나는 속인의 일을 주요 줄거리로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 수련마저 희미해져서 속인의 일을 중하게 보는데, 당신들에 대해 말하면 그것은 대법제자의 수련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5]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방할(棒喝) 하에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자신의 사명을 똑똑히 인식했고 그전에 낭비한 시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저녁밥을 하기 전 시간을 이용해 직접 전화로 사람을 구했는데 비록 짧은 반시간이고 가끔 반시간 동안 한 사람만 구도하지만 마음이 착실하고 기뻤다. 수련 초기의 느낌을 되찾았고 빗나간 수련의 길에서 다시 되돌아왔다.

합당하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사존께 감사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순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설법

원문발표: 2017527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27/3473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