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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빚을 갚다

/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경축513특집 원고) 마을의 회계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차용증도 없으면서 돈을 갚았다!”고 말했다. 읍의 간부는 지금 어디에 이런 사람이 있는가? 20년의 소멸시효조차 다 지났는데도 돈을 갚았다!”고 했다. 이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나 이 사람에 대한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탄이다!

일은 이러하다. 1995년 경, 마을의 주차장과 식당을 도급 맡은 나는 그때 돈이 없어 대대에 차용증을 쓰고 총 127천 위안을 빌렸다. 이전에 장사를 하면서 몇 십만을 밑졌던 빚을 최근 1, 2년에야 갚았으므로 대대의 것은 돈이 없어 줄곧 갚지 못했다. 지난해에 집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보상금을 받아 비로소 빚을 갚게 되었다. 이 돈은 이미 20년이 지나가서 대대 장부조차 다 봉해 버렸고 차용증서도 없으며, 법률적으로도 소멸시효가 지나 속인 같으면 이 돈을 결코 갚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나라면 더욱이 갚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파룬궁 수련자이고 진선인의 표준에 따르는 사람으로서 빚진 돈은 얼마나 오래 됐든지 간에 반드시 갚아야 한다.

내가 촌장을 찾아가서 빚을 갚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나더러 마을의 회계를 찾아가라고 했다. 회계는 무슨 돈을 갚는다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1995년 도급금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차용증도 없고, 장부도 다 봉해 버렸는데 또 무엇을 갚는단 말인가?”라며 또 나에게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나는 127천 위안이라고 알려 주었다. 현금 회계는 또 장부 관리 회계를 찾았고, 그가 말했다. “장부는 진작 봉해 버렸고, 나도 돈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이 안 나니 정수만 받읍시다.” 내가 말했다. “그럼 13만을 갚읍시다. 3천 위안은 이자로 칩시다.” 그러자 회계가 말했다. “12만만 갚으세요.”

이튿날 나는 촌민 위원회로 빚을 갚으러 갔는데 현장에 7, 8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비로소 돈을 갚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말했다. “파룬궁이 어째서 나쁜가? 그는 빚마저 다 갚는데.” 후에 회계는 읍에 돈을 보내면서 읍 간부에게 상황을 알려 주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나는 성격이 유별나게 조급하여 누가 한 마디라도 좋지 않은 말을 하면 곧바로 욕설을 퍼부어 마을과 읍에서도 소문난 당나귀 성격이어서 거의 모두가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술과 담배를 하고 마작을 하며 놀았다. 담배는 밥 먹듯 하여 이틀이면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다. 오랜 세월 마작만 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애가 앓아도 아내 한 사람에게만 밀어놓아 그녀는 화가 났지만 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사회도덕이 파괴됨에 따라 나에게는 또 애인이 생겼다.

1994년 경, 나는 장사를 하다가 몇 십만 위안을 손해봤다. 돈을 아내의 친척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에 손해를 봐 나는 아내를 몹시 미워했다. 매일 아내와 싸우고 보기만 하면 싸웠다. 집에서는 매일 욕과 물건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는 내 일생 중 가장 암담한 시기였다. 장사로 손해보고 내연녀마저 나를 떠나고, 가정도 파멸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나는 마음속의 고초를 하소연 할 데 없어 항상 혼자서 눈물을 떨구고, 울적할 땐 생활이 너무도 희망이 없어 자신의 옷마저 다 태워 버렸다.

1996년 초반, 타인의 소개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후 얼마 안 되어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담배를 끊게 되었고, 마작도 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모든 악습을 모두 끊었다. 사람이 되는 이치를 알게 되어 마음이 밝아져 더는 아내와 다투지 않게 됐고, 무슨 일에서든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에 아내도 수련에 들어서 우리 집에서 더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파멸에 직면한 가정이 화목해졌다.

내가 마을의 주차장과 식당을 도급맡았기 때문에 대대에서는 나더러 내 놓으라는 말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를 건드릴 수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와 관계가 좋은 아는 사람을 통해 나와 말을 하게 했고, 후에는 촌 서기도 나를 찾아 왔다.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내놓지 않았을 것이고 내 놓았다 하더라도 대대에서 나에게 보상을 하게끔 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이미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으므로 아주 통쾌하게 대답했고, 게다가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1999, 중공이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고 나는 두 번 베이징에 청원을 갔다가 모두 현지 공안국 경찰에게 끌려 가 폭행을 당했다. 그들은 나를 치고 박고 전기 충격을 가하고, 나를 또 돌멩이에 꿇어앉혔으며, 이가 다 흔들렸고 후에는 빠졌다.

사악의 박해로 수련 환경을 잃은데다 몇 십만의 빚을 졌으므로 나는 빚을 갚기 급급했다. 서서히 나와 아내는 모두 수련을 포기했다가 2013년에 와서야 다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비록 십여 년 동안 수련을 포기했지만 진선인은 이미 나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평소에도 모두 자각적으로 진선인에 따라 하였다. 수련을 포기했지만 담배, , 마작 등의 악습에 더는 다시 물들지 않았다. 아내가 평소에 나한테 바가지를 긁어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고 더는 아내와 싸우지 않았다. 한 번은 이웃이 술에 취해서 우리 집에 와서 내 코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틀림없이 큰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당시 나는 몇 십만의 빚을 졌는데 90년대에는 거액의 돈이었다. 게다가 나 같은 농촌 사람으로 말하면 더욱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만약 파룬궁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이전의 나라면 그 어떤 못된 짓을 하면서라도 나는 돈을 벌었을 것이고,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르며 어쩌면 감옥살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진선인 법리를 알고 있으므로 나는 반드시 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고생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양돈과 두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모두들 알다시피 두부 하는 일은 가장 고생스럽다. 나는 7, 8년 돼지를 키웠고, 십 몇 년 두부를 만들었다. 이렇게 조금씩 빚을 다 갚았고 또 새 집까지 지었다.

내가 빚을 갚던 기간은 가장 가난했던 때여서 돼지에게 사료를 사 줄 돈도 없어 새끼 돼지가 멀쩡한 채로 굶어 죽었다. 그때는 마침 가을 옥수수가 여물 때인지라 옥수수를 훔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참았다. 나는 파룬궁이 말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를 생각하고 어떻게 고생스럽든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2013, 나와 아내는 파룬궁 수련을 다시 시작하여 복을 얻었다. 지금 우리 집은 4대가 한 집에 살고 있는데, 위로는 94살 노모가 계시고, 아래는 겨우 한 살 남짓한 외손녀가 있다. 온 집 12명 식구가 화기애애하게 살고 있어 동네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하고 있다. 지난 해 재개발에 들어가 200여 만 위안의 현금, 280평방의 아파트를 가졌는데 현금을 합하면 천여만 위안인 셈이다.

온 집 식구들은 우리의 수련을 몹시 지지한다. 노모는 대법을 아주 믿으면서 늘 파룬따파 하오를 염하여 신체가 아주 좋다. 내가 수련을 시작한 후부터 어머니는 거의 약을 드시지 않았고 생활은 완전히 자립하고 있다. 아들은 어릴 때 대법에 접촉했고, 수련은 하지 않지만 진선인은 그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 이번에 내가 마을의 12만 위안을 갚으려고 그에게 물어보니 그는 갚아야 할 건 갚아야죠 하고 말했다.

문장발표: 2017513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 수련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승화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3/3468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