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경축513 특집 원고) 나는 68세의 농촌 대법제자다. 되돌아보면 나의 이 한 생은 그야말로 쉽지 않았다. 위험, 어려움, 고생, 질병 등을 항상 동반했다. 그러나 나는 고덕대법(高德大法)을 수련하게 됐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나와 가족은 모두 인생이 개변돼 아주 화목하고 행복하다. 나는 나의 행복한 삶과 그간의 내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고목이 봄을 만나 된 서리가 덮치다
나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는 현숙하고, 아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생활이 점차 어려워지고 아내의 건강도 나빠져 많은 병을 앓게 되어 병원출입이 잦아졌다. 1998년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엄숙하게 말했다. “부인의 자궁종양이 애 머리만큼 커졌으니 즉각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우리는 그때 마침 자궁종양수술을 받고 나오는 환자를 보게 됐다.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인사불성이었다. 아내는 겁에 질려, “병으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수술만은 받지 않을 것이다. 누가 권한다 해도 결코 수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완강하게 수술을 거부했다.
사실 당시의 상황은 아내가 늘 병원출입을 했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아주 어려워졌을 때였고, 또 아내의 건강상태로 보아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극도로 허약한 몸이라 살아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리는 별 다른 방도가 없어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부터 아내는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충격을 받아 병세는 나날이 나빠져 절망감에 빠졌으므로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날 우리는 이웃의 소개로 “파룬궁(法輪功)이란 기공이 병을 낫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아내는 그 말을 들은 후 나에게, 파룬궁을 구경할 수 있도록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바람에 날아갈 듯이 야위고 허약한 아내를 부축해서 이웃집으로 데리고 가서 파룬궁 사부님의 지난 설법녹화를 보았다. 아내는 “사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듣기 좋다.”고 하면서 열심히 시청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계속해 녹화설법을 시청하러 갔는데, 날이 갈수록 아내는 차츰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껴 나에게 부축받기를 거절하게 되었다. 그러다 7일째 되는 날 그녀는 온 몸이 가뿐해졌다고 했다. 그때 아들이 의학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파룬궁을 배우러 다닌다고 하자,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면서 비웃는 조로 말했다. “파룬궁이 어떻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있겠어요? 정말 그렇다면 병원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아들이 보기에도 1주일 새 엄마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아들이 일요일에 집에 왔을 때 엄마의 병이 전부 나아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아들이 보기에도 이런 변화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인 것이었다. 아내는 재빨리 집안일을 할 수 있었고, 또 농사일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웃집의 옥수수 수확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자궁종양도 언제 없어졌는지 몰랐다. 나와 아들은 물론이고 이웃들까지 아내의 변한 모습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우리 온 가족은 모두 대법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면서 남에게는 선하게 대해 주었다. 온 가족은 모두 불광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면서, 파룬궁사부님께서 하사해 주신 은혜에 감격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집단이 질투심으로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시작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거짓말이 요소마다 넘쳐나면서 대법과 사부님을 모함했으며,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 사람들의 집이 가택수색을 당하고, 납치되어 세뇌되고, ‘전향’당하고, 노동교양처분과 징역형을 당했으며, 고문박해로 죽음에 이르게 했고, 가정은 파괴되어 뿔뿔이 흩어져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는 참상이 빚어졌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도 세뇌반에 끌려가 위협당하고 협박당했다. 추운 겨울 악인들은 아내를 눈 속에서 얼게 하면서 ‘전향’을 강요했는데, 그야말로 그것들 중국공산당은 사악한 짓거리를 마음대로 했다. 그런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단단히 기억했으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적은 자주 우리 몸에 강림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도 있는가? 우리 가족의 연으로 지냅시다
2005년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다 굽은 길에서 급히 달려오던 농업용 사륜차와 충돌했는데, 달리던 관성 때문에 오토바이는 그대로 몇 미터를 튕겨져 나갔다. 사고 순간에 내 머리 속에는 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나는 대법 수련자이니 괜찮다, 나는 절대로 남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사고 직후 30대의 기사는 당황해서 급히 차에서 내려 사고정황을 살폈다. 나의 오른 쪽 다리와 발등이 도로에 짓이겨 피범벅이 되었지만 상처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 움직일 수 있었다. 기사에게 말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간을 지체할수록 구경꾼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은 모두 나에게 “기사에게 돈을 받아내라”고 거들었다. 내 장인의 이웃인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삼륜차가 도망가지 못하게 차를 길 복판에 눕혀놓기까지 했다. 이런 정경을 보고 나는 아픔을 참으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볼일 보러 가십시오, 난 괜찮으니 모두들 출근시간을 지체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아직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히 대법을 실증하지 못한 것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오토바이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근 오토바이 공업사에 맡겼다. 기사는 병원에 가서 액스레이 사진도 찍어보고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나는 재삼재사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기사가 고집을 부려 부근의 의원을 들렀는데, 의사가 상처를 처치한 후 많은 약을 주면서 집에 가서 복용하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 약도 필요 없다.”고 했지만 기사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그대로 가져왔는데,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수련인이라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시기 때문에 이런 약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기사에게 약을 돌려주면서 환불해보라고 말해주었다. 기사는 몹시 감동했고, 그 일을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했다. 젊은 기사부부가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와서 “당신을 이렇게 다치게 했는데, 배상을 받지도 않고 의사처방의 약마저도 싫다고 하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친척의 인연을 맺읍시다. 오늘부터 우리는 당신의 아들이고 며느리입니다.”하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그들의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뻤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자, 그들 부부는 즉시 받아들였다. 그 때부터 나에게는 아들과 며느리가 하나 더 생겼다. 매년 설 명절이면 그들 부부는 우리에게 새해인사를 온다.
눈이 달린 트럭
2008년 어느 날 오후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는데, 앞의 오거리 교차로에서 도로공사를 하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나는 그 도로 공사장 남쪽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침 도로 공사하던 곳에 이르렀을 때 낮에 왔던 남측 도로를 따라 돌아가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한 갈래 강한 빛이 갑자기 시야를 가려 앞을 볼 수가 없었고, 순간 쾅 하면서 무슨 큰 벽을 들이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누가 뛰어오는 소리도 들렸는데, 오토바이는 땅에 쓰러져 있었다. 정신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나는 자동차 범퍼 앞에 쓰러져 있었는데 다치지는 않았고 멀쩡했다. 내가 일어나 머리를 들고 보니 그 자동차는 대형 화물트럭이었다! 기사는 “갑자기 앞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다. 그 트럭은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그렇게 적당한 곳에서 멈춰 섰다. 만약 관성대로 조금만 앞으로 더 전진했어도 나는 완전히 트럭에 깔렸을 것이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나는 맘속으로 사부님께서 나의 목숨을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다. 오토바이 앞부분의 범퍼가 조금 부서졌을 뿐 파손된 곳이 없었다. 그 기사는 내가 큰 보상을 요구할까봐 은근히 겁을 내고 있었다. 나는 수련인인데 그럴 수는 없잖은가?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차에 걸려 10여 미터나 끌려가서 ‘탁’ 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선량한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기사에게 말했다. “난 괜찮으니 당신은 가보세요.”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교통경찰관이 감동하다
2009년 겨울, 큰 눈이 내려 도로가 막혔다. 그렇지만 나는 꼭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나섰다. 많이 내린 눈으로 길은 몹시 미끄러웠으므로 차들은 눈이 다져진 곳을 피해 조심스럽게 운행했다. 나도 조심스럽게 오토바이를 몰면서 가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정면을 향해 돌진해 오면서 내 오토바이에 충돌했는데, 나는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정신을 잃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는데, 한 젊은이가 나를 안고 큰 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어서 정신을 차리세요! 할아버지 어서 정신을 차려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떴다. 교통경찰도 보였고, 기사의 부친도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 대략 한 30분가량 기절해 있었던 같았다. 내가 깨어나자 모두들 급히 병원으로 보내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으니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책임감을 느낀 교통결찰관은 나에게 서명을 받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나는 수련인이기 때문에 남을 번거롭게 하거나 남의 돈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투철했다. 나는 정말로 괜찮으니 병원에 가지 말고 나를 집에까지만 태워다 주면 된다고 했다. 사고처리 경찰관도 다른 곳의 사고처리를 위해 가야하니 서명하라고 한 후 급히 가버렸다. 기사가 나를 집으로 실어다 줄 때 “나는 파룬궁수련을 하는 사람이라,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사고를 당했어도 누구를 번거롭게 하지 않을 것이고, 배상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기사를 돌려보낸 후 신발을 벗고 보니 상처에서 흐른 피가 신발 안에 가득 고인 것을 발견했고, 다친 발의 피부가 크게 벗겨져 엉겨 붙어 있었다. 의무실로 가서 봉합수술을 한 후 집에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잠을 잤다.
이튿날 촌 간부의 안내를 받은 교통사고처리 경찰관이 사고차량 기사와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다. 경찰관은 나에게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내가 정말 아무 일도 없다고 하자, 교통경찰관은 갖고 온 사고현장 사진을 꺼내 보이면서 말했다. “이걸 보십시오, 이건 단순한 충돌의 사고가 아닙니다. 당신은 아무 일 없다고 하지만, 당신은 백여만 위안이이나 되는 차(아우디 Q7)와 충돌해서 구덩이에 빠졌어요. 그런대도 아무 일 없을 수 있겠어요?” 사진에서 본 그 구덩이는 사고당시 바로 내가 쓰러져 있었던 그 구덩이였다. 경찰관은 또 “수리비만 해도 10여만 위안인데 당신이 다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번에는 기사와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고 말했다. 그들이 그토록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말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서 나온 결과는 왼쪽 갈비 뼈 2대 골절, 엄지발가락 복잡골절, 오른쪽 다리 심한 타박상 등의 결과가 나왔다. 나는 그랬어도 한 푼의 배상도 받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서 연공하고 법 공부를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교통사고처리 경찰관이 나를 찾아와서 사고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대신 갔다 왔는데, 사고처리는 자동차 운전기사에게 100%과실로 결정됐다. 교통경찰관이 아내에게 말했다. “사고 가해자는 사업하는 사장이어서 몇 십만 위안 정도를 배상해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남을 번거롭게 하거나 무슨 일이 있다고 해서 남에게서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교통경찰관이 아내를 한 쪽 구석으로 끌고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뭘 하는 사람 같아요?” 그 뜻인즉, 직접 말은 할 수 없지만,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 파룬궁수련자이기 때문에 박해를 당하게 된다는 언질이었다. 그는 “당신은 그냥 돈만 받으면 된다.”고 일러준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당신은 얼마의 배상을 받겠다고 요구하는 액수만 말하시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싫다고 하면서 말했다. “그날 저녁 그들이 내 남편을 집에 싣고 왔을 때 돈을 한 뭉치 책상에 놓으면서 2천2백 위안이라고 했어요, 내가 세여 보니 2천3백 위안이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 돈을 받지 않았어요.”
교통경찰관은 아내의 말을 듣고 감동된 듯 말했다. “당신, 이 할머니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근무를 했지만 당신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남들은 모두 돈을 많이 달라고 울고불고 하는데, 당신들은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니, 참으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며칠 후 사고차량 기사가 문안을 왔다. 그는 나의 회복이 빠른 것을 보고 몹시 놀라워하면서 말했다. “할아버진 입원치료도 하지 않고 이렇게 빨리 나은걸 보니 정말 신기합니다.” 아내는 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 주고, 동시에 그를 ‘3퇴’ 시켰다. 때는 설 명절 시기여서 연휴기간동안 쉬면서 상처가 완쾌되어 연휴가 끝난 후 18일부터 정상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여름이 왔으므로 반바지를 입다가 무심결에 오른 쪽 무릎의 뼈 중간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을 발견했다. 전문적으로 안마를 하는 친구에게 무릎을 보여주고 골절돼서 그런 거냐고 묻자, 그는 만져보고 나서 “자네, 무릎이 세 토막으로 골절이 됐네.” 하고 말했다. 일반 사람이 이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면 최소한 6개월 동안은 자리보전하고 누워서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고, 의사도 그 부상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부상상태에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했고, 겨우 38일 동안 집에서 쉬다가 출근했던 것이다. 정말로 기적인 것이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마다 나와 아내는 모두 아주 특별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대법제자들이 받는 행운과 행복은 전부 대법과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오늘은 다만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자 할 뿐이다. “파룬따파하오(法轮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는 천만번 지당한 것이다! 이는 진실한 것이다!
원문발표 : 2017년 5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교류>병을 떼고 몸을 튼튼히 한 이야기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2/3467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