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광둥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경축 5.13 원고) 나는 광둥 모 대학의 대학생이다. 2015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짧은 2년 사이에 파룬따파는 나를 사상이 나쁘고 사리사욕만 챙기는 사람에서 진정으로 성품이 단정한 대학생으로 변하게 했다. 마침 세계 파룬따파의 날에 수련 중의 일부 경험을 글로 적으려 하고, 사부님과 파룬따파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린다. 세인, 특히 나의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기를 바란다.
자비심을 수련해 저속한 말을 하지 않다
지금 사람은 저속한 말을 하는 것이 일쑤다. 보기에 지식인이고 수양이 있는 대학생도 저속한 말을 하고 심지어 그런 말을 유행어로 바꿔 도처에 전한다. 속인의 염색항아리에서 나도 이런 나쁜 습관에 물들었다. 시작할 때는 ‘멋져’ 보이지만 점차 일종 ‘조건반사’로 변하고 사람을 욕하고 싶으면 저속한 말을 하고,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며 타인과 인사를 나눌 때도 그런 말을 하며, 이후에 재채기를 하고 자전거 체인이 빠지고 심심할 때도 그런 말을 한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이런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의식하고 고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습관이 형성돼 어떻게 고치는가? 억지로 참자. 하지만 막 법을 얻은 후 의지력의 한계가 있어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때로 마음은 법에 있지만 머릿속으로 속인 일을 생각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는 정확한 사상을 지도로 삼지 못해서 그렇게 끊어버리려 해도 그리 쉽지 않다.”[1] 사부님의 말씀이 중요한 점을 짚어주셨다. 한번은 대법의 장엄하고 신성한 음악 ‘보도’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에 열이 나고 머리에서 자비라는 글자가 스쳐지나갔다. 그렇다! ‘진·선·인’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로 자비심을 수련해내야 하지 않는가? 마음이 넓고 세간 모든 중생을 포용해야 하지 않는가? 저속한 말을 할 때 나의 자비심은 어디로 갔는가? 대법 수련자의 정념이 어디로 갔는가?
법리에서 깨닫고 나는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기 시작했다. 하는 일마다 타인을 고려하고 내심에서 타인이 좋기를 바라며 타인의 단점을 용납해 준다. 내 상태는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 저속한 말을 하려 할 때 빨리 입을 다물고 억지로 참는다. 지금 머릿속에 그런 말을 하려 하면 속으로 불편하고 그 말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런 집착심 배후에 독선적이고 타인을 얕보는 마음, 과시심 등 나쁜 마음이 있다. 이런 나쁜 마음을 제거함에 따라 입으로 저속한 말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저속한 말을 한 적을 뒤돌아보면 오래 전의 일이다.
자비심을 수련해 내고 세계를 보는 각도가 다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자비심이 나올 때, 아마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워 보이고, 누구를 보아도 모두 고생스러워 보이는, 이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1] 확실히 이렇다. 타인과 만날 때 이전처럼 타인의 단점만 보지 않고 타인이 잘하지 못하면 스스로 도와주고 타인이 좋기를 바란다. 이것이 ‘조건반사’가 됐다.
한번은 룸메이트가 술을 많이 마시고 기숙사에 와 한바탕 토하고 자리에 앉아 온몸이 힘없이 쳐져 있었다. 그때 이미 밤 12시가 넘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휴식하려 했다. 다른 룸메이트는 술을 마신 친구를 상관하지 않고 핸드폰 게임만 했다. 이 상황을 보고 침대에서 내려와 토한 이물질을 깨끗이 정리했다. 룸메이트가 토하면 가볍게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전이라면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나는 가벼운 결벽증이 있고 물을 마셔도 화장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신다. 더러운 것을 좀 보면 밥도 먹지 못한다. 하지만 파룬따파를 수련 후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이 토한 이물질도 감히 청소할 수 있었다. 평소 화장실 변기 청소는 내가 책임졌다. 이전이라면 이런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법에서 수련해낸 자비심, 선한 마음으로 비로소 자연스럽게 이 점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익의 유혹 앞에서 진·선·인을 지키다
어려서 우리는 ‘경제 발전이야말로 살 길’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개인 발전도 ‘모든 것은 돈을 본다’였다. 그러므로 개인 이익에서 모든 수단으로 쟁취하고 심지어 속이고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전에 나는 개인 이익이 가장 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인생의 화복은 모두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행하며 하늘에 따라 사는 것이 인생 행복의 바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점차 나는 그런 것을 담담하게 보았다. 물론 많은 유혹의 고험을 경험했다. 다행이 나는 기본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
2학년 때 나는 학생조직에서 부장을 담당했고 일부 경기 활동을 조직하는 일을 책임졌다. 한번은 학교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주로 학생간부를 대상으로 했다. 나는 평소 부서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책임져서 선생님과 학생의 인정을 받았다. 때문에 그때 주임 선배는 수상자 중 한 자리는 나에게 남겨주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수상자는 반드시 공청단원이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학생간부가 아니고 규칙에 부합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선배는 거듭 나에게 권하고 심사하는 사람은 자세히 이것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전에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데 넘어간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름만 올리고 정말로 안 되면 그때 보자고 했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기타 학생들이라면 그렇게 많은 것을 상관하지 않으며 상을 받으면 영광이고 학점을 받을 수 있으며 장학금도 받고 이후 일자리 찾는데도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에서 이렇게 제자를 지도하셨다. “사람은 속인사회 중에서 서로 다투고 빼앗고, 서로 속이고 속이면서 개인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데, 이런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우리 오늘날 공을 배우는 사람은 이런 마음을 더욱 내려놓아야 한다.”[1] 이 상은 본래 나의 것이 아닌데 어째 타인의 것을 빼앗을 수 있는가? 나의 마음은 태연하고 후회도 원망도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 후 나는 학교급 학술경연 대회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이는 많은 학생들 눈에도 ‘순도’ 높은 영예였다.
내 전공은 시험이 많고 회계, 증권, 선물(先物), 초급자격증, CPA 등이다. 이런 시험에 학교는 일반 교육을 제공해주지 않고 스스로 인터넷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많은 사람은 수업을 들으려 하며 돈을 내려 하지 않으며 나쁜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매번 시험 기간이 되면 인터넷 학교에 수업료 지불을 몰래 다운로드해 웨이신, QQ에서 무료로 수련생과 공유한다. 표면에서 보면 마치 정신을 나누는 것 같다. 하지만 대법 수련자로서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은 자는 얻지 못하고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다. “당신이 잃지 않으면 당신으로 하여금 강제로 잃게 한다.”[1]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것은 인터넷 학교 선생님이 노동을 지불해 만든 노동성과를 인터넷에서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들의 노동성과를 나누려면 마땅히 돈을 지불해야 한다. 만약 돈을 지불하지 않고 해적판을 보면 타인에게 경제적 손실을 주는 것이 아닌가? 도둑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사람이 덕을 잃는 일을 하면 자신의 복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많이 얻을수록 잃는 것은 더욱 많다. 수련인으로서 이런 일을 하면 수련의 길에서 업력을 증가시킨다. 매번 인터넷 학교 자원이 필요하면 지불해야 할 돈은 지불한다. 비록 가격이 저렴하지 않고 경제 조건도 부유하지 않지만 절약해 생활해도 진선인을 배신하는 일은 하기 싫고 자신의 소중한 덕을 잃기 싫으며 고통스러운 업력으로 바꾸기 싫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해치고 타인도 해친다.
이런 일은 비록 많은 정직한 속인도 할 수 있다. 파룬따파는 사람에게 그 중의 인연과 득실관계를 알게 하고 진정으로 이치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원인을 알게 한다. 이익의 유혹에서 진정으로 미혹되지 않게 하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심에서 정정당당한 좋은 사람을 되려는 것이다. 파룬따파는 진정으로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대법을 수련하면 사리사욕이 없어지고 행복해진다
법을 얻은 시간은 대략 2년이 됐다. 대법이 나를 빨리 변하게 했다. 며칠에 한번 변화가 생기고 심지어 하루에 한번 변화가 생긴다. 오늘의 나와 2년 전의 나는 생긴 것은 같지만 심태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진선인 세 글자는 이미 내 생명의 깊은 곳에 새겨졌다. 나는 파룬따파가 만든 생명이다.
내 수련 과정은 보기에 아주 평범하다. 왜냐하면 내가 속인에서 수련하고 속인의 일을 하고 속인의 말을 하고 속인의 번거로움을 만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으로서 속인 중에서 끊임없이 승화한다. 내가 만나는 번거로움은 자주 뼈를 깎는 듯하다. 속인으로 말하면 마음속의 상처를 남길 것이다. 그 후 마음속에서 지우기 힘들다. 하지만 수련인은 이런 모순에서 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자신의 심성을 제고한다. 번거로움이 지난 후 법리에서 깨닫는다. 사람의 언어로 말하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신성함이 있다. 그런 경지는 수련인만이 알 수 있다. “시시각각 心性(씬씽) 수련하나니 원만은 묘하기 무궁하여라”[2] 비록 많은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고 많은 부족한 점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대법 수련은 아주 행복하다!
내 주변에 아직 파룬따파에 오해가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 90년 이후 출생자들은 대법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질 시기에 태어났다. 우리는 그때 철이 없고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할 때 우리는 어리고, 우리는 문화대혁명, 6.4 천안문 사건을 경험한 적이 없다. 생활 정보가 봉쇄된 환경에서 중국공산당에게 주입 받아 공산당은 위대하고 바르며, 무신론, ‘고급동물론’, 투쟁철학에 젖어 많은 사람은 물질이익을 추구하여 자신을 잃었고, 독립적인 사유 능력을 잃었으며, 마음속 남은 인성과 양심을 짓밟았다.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려면 확실히 어렵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알려주려고 생각하고 우리 90년 이후 출생자 중 나와 같은 대법제자가 많은데 줄곧 묵묵히 수련하며 자신의 도덕 표준을 제고하고 유혹을 거절하며 난세에서 세속에 묻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
모든 소중한 중국인은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이는 여러분 인생에 복덕을 가져다준다. 수련의 길을 걷지 않아도 우주의 진선인의 특성에 따라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향한다. 중국인은 아름다운 미래로 가야하고 정치인들의 권력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돈만 보는 상인이 아니며 사람마다 양심이 있고 정의감이 있는 우리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온 세상 선량한 사람들이 일생 평안하기를 바란다!
사부님의 구도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오성이 나쁘고 사부님께서 고생이 많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진수’
원문발표: 2017년 5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2/3468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