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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남편 온 가족이 두 손 두 발 다 들다

/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경축 5.13 밍후이 원고)

1. 시아버지는 올해 89세이고 19세 때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공산당의 역대 운동을 경험하셨다. 시아버지는 지주, 부농을 소멸할 때 이웃 마을의 한 가족은 지주로 분류 돼 온 가족이 공산당에게 살해됐고 3살 아이도 살해됐지라고 말씀하셨다.

문화대혁명 때 시아버지는 마을에서 서기를 담당했는데 한 푼도 탐오하지 않았는데 홍위병에게 잡혀 비판을 당하자 놀라서 밤에 친척 집으로 피해 숨어 계셨다. 날이 밝자 거리에서 누가 소리를 지르고 시끄러워 자신을 붙잡아 계속 투쟁하는 줄 알고 친척 집 문틈으로 밖을 엿보았다. 그러자 홍위병이 친척 방문을 하러 온 대만 사람을 붙잡아 그에게 허리 굽히고 허리에 한 자 높이의 수숫대를 걸고 거리를 걷게 했으며 천천히 걸으면 발로 차 넘어뜨리고 있었다. 이후에 시아버지는 잔산허(戰山河)’라는 곳을 찾아 은둔생활을 하셨다. 이후에 상급에서 찾아 비판 투쟁하지 않겠으니 돌아와 계속 서기를 담당하라고 했다. 시아버지는 놀라서 어떻게 해도 서기를 맡지 않겠다고 하셨다. 상급에서 하지 않으면 계속 비판, 투쟁한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핍박에 못 이겨 35년 간 서기를 맡으셨다.

내가 결혼한 후 시아버지는 퇴직하셨다. 나는 고덕대법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에게 억울한 6년 형을 선고 받아 온갖 고문을 당했고 죽다가 살아났다.

시아버지는 공산당에 겁에 질렸다. 내가 공산당이 나쁘다고 말하면 시아버지는 두려워하고 내가 탈당하라고 하면 겉으로 머리를 끄덕이고 속으로 감히 탈퇴하지 못하셨다. 나는 ‘9평공산당을 읽어드렸다. 그는 놀라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밀고 몰래 듣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셨다.

시아버지는 85세 당시 대뇌가 막히고 소뇌가 위축돼 치매에 걸리셨다. 병원에서 치료해도 효과가 없자 퇴원 후 우리 집에 오셨다.

누워 계시는 시아버지를 보고 남편은 수심에 찬 얼굴이었다. 시아주버님 부부는 시아버지를 모시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병원에서 출근하기에 사진을 갖고 주치의를 찾았는데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시아버지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말씀드렸지만 염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 혼자 집에 있을 때 시아버지는 어디에서 용기가 났는지 큰소리로 염하셨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반나절 외치시니 병이 나아졌다.

남편은 무신론자라 파룬따파하오를 몇 번 읽고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병이 나아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것을 믿지 파룬따파를 믿지 않았다.

나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원인인지 남편은 미친 듯이 나에게 배우지 못하게 하고 이불과 베개를 밖으로 내동댕이치며 나를 내쫓았다. 그때 나는 쟁투심, 원망심, 불평심이 강했고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할 줄 몰랐다. 그저 남편에게 따지다 보니 자주 맞았다.

이후에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남편은 더욱 거리낌 없이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대법을 배우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한번은 심하게 구타해 나는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그에게 진상을 알려도 눈을 부릅뜨거나 아니면 구타하거나 아니면 귀를 막고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자신감을 잃었고 어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정정당당하고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사람에게도 감히 진상을 알리고 심지어 정정당당하게 ‘610’(파룬궁을 박해한 불법 조직), 국보대대장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덧신을 신은 새색시처럼 어쩔 방법이 없었다.

이후에 나는 법공부를 통해 남편이 나쁜 것에 통제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려서 중국공산당의 전쟁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이다. 머릿속에 사당의 것과 그 지식범위 외의 것을 전혀 믿지 않았고 더욱이 인과응보를 믿지 않았다.

심성 제고에 따라 남편은 좀 수그러들었고 그에게 진상을 알려도 때리거나 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대법을 언급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대법 설법과 대법 노래를 들으면 즉시 반대했다.

2. 201612월 시아버지는 왼쪽 눈 위에 민간에서 말하는 사반창(蛇盤瘡: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걸렸는데 눈이 심하게 부으셨다. 남편은 급히 시아버지를 요양원에서 자신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 치료했다.

하지만 매일 몇 천 위안 의료비를 사용하고 링거를 맞아 눈의 붓기는 내려갔지만 시아버지는 아프다고 계속 소리를 지르셨다. 남편은 치료가 늦어 바이러스가 머리까지 올라가 치료하기 어렵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기침도 갈수록 잦아지고 전에 앓았던 치매증상이 또 나타났으며, 의식이 똑똑하지 않고 이상한 말을 하거나 특히 밤에 더 심각했다. 거의 잠을 주무시지 않고 죽은 사람의 이름만 부르셨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병실 화장실에 앉아 헛소리만 하셨는데 병원에 입원하니 갈수록 심해졌다. 큰형님(남편의 큰 누나)이 밥을 먹여드리려 해도 먹일 수 없었다. 두 형님은 놀라서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6년 섣달 27일 큰형님이 아들을 시켜 시아버지를 업고 우리 집에 오셨다. 시아버지는 밤새 기침하고 헛소리를 하시며 침대에 실수하고 거의 밤새 주무시지 않으며 가래도 아무데다 뱉으셨다. 속으로 나도 좀 싫었지만 자신이 수련인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마음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아버지는 자주 옷을 몽땅 벗어버리고 이불도 덮지 않으신다. 땅바닥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 남편은 병원에서 작은 침대를 빌려와 시아버지 옆에 놓고 돌봤다. 남편은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는 노인이 시끄럽게 굴어 잠을 자지 못해 아주 피곤했다. 때로 남편을 자게 하고 내가 노인을 돌봤다.

시아버지는 전립선염이 있어 빈뇨증이 있다. 한번은 바지와 침대에 실수를 하신 후 안절부절 못하셨다. 남편은 또 출근이라 아주버님을 불렀다. 아주버님은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잘 하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아주버님이 오셔서 시아버지를 안고 내가 침대 시트를 바꿨다. 때로 형님을 불러 도와달라고 했다. 딸이 인터넷에서 일회용기저귀를 주문하려 했는데 내가 거절했다.

정월 초하루 큰형님이 온가족을 데리고 시아버지께 세배를 드리러 왔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알아보지 못해 큰형님은 슬퍼 눈물을 흘렸다. 정월 셋째 날 둘째형님 온 가족이 시아버지께 세배를 하러 와 내가 노인을 부축해 앉혀드렸다.(사실 내 몸에 기대 전혀 앉아있지 못하심) 나는 매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분이 누구신지 아세요?” 시아버지는 낯선 사람을 보는 듯 했다. 나는 일일이 노인에게 알려드렸다. “이 분은 둘째 따님이고 이 분은 둘째 사위, 이 아이는 아버님이 가장 사랑하는 외손자에요.” 시아버지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들을 보며 아무런 반응이 없으셨다.

3. 정월 초나흗날 여동생이 식사 대접을 했다. 나는 남편과 딸에게 가라고 하고 집에서 시아버지를 돌봤다. 남편과 딸이 간 사이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설법을 시아버지에게 들려드렸다. 소리는 가장 크게 틀었다(시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심)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음성이 시아버지의 머리와 마음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고 그럼 시아버지가 빨리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정오 때 사부님 설법을 거실에 놓고 시아버지를 부축해 거실에 앉혀드린 후 들었다. 시아버지는 책상 위의 사부님 설법 녹음을 보배처럼 손에 들고 진지하게 들으셨다. 나는 기뻐하며 핸드폰으로 시아버지를 촬영까지 했다.

오후, 내가 화장실을 청소한 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물소리가 났다. 나는 빨리 일어나 수돗물을 보았다. 시아버지 안방을 지날 때 시아버지가 가을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고 바닥에 실수를 하고 계셨다. 나는 웃었다. “아버님이 대법을 들으니 진보하셨네요. 바닥에 실수를 하면 다음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시겠지요.”

시아버지를 위해 옷을 갈아입히고 바닥을 깨끗이 닦았다. 시삼촌이 3대를 데리고 시아버지를 뵈러 오셨다. 나는 기뻐하며 말했다. “마침 바닥에 실수를 하셔서 막 청소했어요.”

나는 시아버지를 부축해 앉혀드렸다. 시아버지는 자신의 남동생 가족을 보며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시아버지는 오전에만 대법 설법을 들으셨는데 주의식이 강해졌고 사람도 알아보셨다.

정월 엿새째 둘째 형님이 시아버지를 뵈러 왔다. “아버지, 제가 누군지 아세요?” 시아버지는 둘째 형님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내 딸이지.” 둘째 형님은 기뻐하며 아버지가 절 알아보세요!” 시아버지는 딸에게 말씀하셨다. “효자 며느리를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 표준이 높아 도달하지 못해(화장실에 가는 것)”

시아버지가 말한 효자 며느리를 감당하기 어렵다라는 말은 원인이 있다. 1992년 결혼 때 시아버지 집은 거의 돈을 쓰지 않으셨다. 시아버지는 내가 불쾌할까 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후 돈이 있으면 너희들을 도와줄게.” 그러나 10년 후 도시 주택을 구매할 때 시아버지는 돈 한 푼도 보태주지 않으시고 우리는 타인의 돈을 빌려 구매했다.

나는 중국공산당에 6년간 박해를 당했어도 남편의 가족 어느 한 분도 나에게 와 본 적이 없고 나에게 편지 한 통도 써 준 적이 없다. 돌아온 후 시어머니가 암에 걸려 입원했을 때 나는 대소변을 받아냈다. 병실 사람들은 내가 딸인 줄 알았고 큰 형님이 며느리인줄 알았다.

시어머니가 입원해 돈을 써야 했기에 시아버지는 마음이 무거웠다. 시아버지가 의료비를 걱정하자 나는 말했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 의료비는 우리가 분담해드릴게요.” 나는 돈이 없어 남편과 상의해야 했다. 남편과 두 형님은 모두 동의하지 않았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버지한테 돈이 있어!”

원래 시아버지는 연세가 많아 눈이 좋지 않아 적금을 옮길 때 자식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아버지가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있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는 시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먼저 아버님의 돈을 사용하시고 이후 우리의 돈을 사용하세요.” 시아버지는 사양하지 않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디 돈이 있니?” 나는 웃으며 말씀드렸다. “형님들이 다 알고 계세요.” 시아버지는 더는 말하지 않으셨다. 큰형님은 이 일을 시어머니께 알려드렸고 시어머니도 돈이 있다고 하셨다.

나와 남편이 효자라 시어머니는 미안해하며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에게 알려 적금에서 1만 위안을 꺼내 우리에게 주게 하셨다.

4. 시아버지는 사부님 설법을 듣고 하루하루 좋아지셨다. 자신이 요강을 사용해야 하는지 알게 되셨다. 하지만 때로 조심하지 않아 바닥에 실수를 하면 나는 참을성 있게 대한다. 나는 시아버지께 전기면도기를 사드려 3,5일에 한 번씩 수염을 깎고 머리를 감기며 이발을 하고 발도 씻겨 드렸다. 나는 시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만약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지 않았다면 오늘 효자 며느리가 두 명일 거예요.” 시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셨다.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전에 동서도 대법을 배웠는데 시아버지와 관계가 좋았다. 두 분은 모두 함께 연공했고 10여 년의 간격을 제거했으며 동서의 각종 질병도 나아졌다. 하지만 연공을 1년도 하지 않았는데 사당은 파룬궁을 탄압해 동서도 감히 배우지 못하고 대법을 떠났다. 진선인의 지도가 없으니 시부모와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고 각종 질병도 되살아났다.

정월 7일째 시아버지는 스스로 화장실에 가실 수 있게 됐고 더는 밥을 먹여드리지 않아도 됐다. 스스로 거실에서 우리와 함께 식사하실 수 있었다. 시아버지는 밤에 더는 헛소리를 하지 않고 기침도 하지 않으며 조용히 잠을 주무신다. 단지 머리가 좀 아프다고 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도 조용히 잠을 잘 수 있을 거예요.”

정월 9일째 시아버지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세수도 하실 수 있었다. 저녁에 의자에 앉아 TV도 볼 수 있고 우리와 정상적으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큰형님은 기뻐하며 말했다. “시아버지를 잘 돌봐주니 우리 딸보다 낫네!” 나는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효도해도 노인의 병이 낫게 할 수는 없어요. 대법이 시아버지를 구했어요!”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법을)듣지 않아도 나아져. 약의 작용이지.”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이렇게 양심이 없다니, 대법을 듣기 전에도 약을 드시지 않았나요? 그 때는 왜 나아지지 않으셨나요?” 시아버지는 아들이 기뻐하지 않으니 놀라서 법을 듣지 않으셨다.

5. 시아버지가 이틀 대법 강의를 듣지 않으시자 이전처럼 침대와 바닥에 실수하고 밤에 헛소리를 하며 기침을 하고 계속 두통을 호소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남편은 말이 없었다. 시아버지에게 많은 약을 사다 드렸지만 시아버지는 여전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밤에 당신이 시아버지와 함께 주무셔야 해요.” 남편은 말했다. “2천 위안을 주고 요양원에서 돌봐드리면 안 돼?”(이전에 요양원에 800위안을 내 시아버지를 돌보게 했다.) 나는 말했다. “이 정도면 누구도 돌봐주지 않아요.”

남편은 큰 형님께 말했다. “아버지를 돌보지 않고 나에게만 돌보라고 합니까?” 나는 시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대법만이 아버님을 구할 수 있어요. 누구 말도 듣지 않고 대법만 믿으세요.” 시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셨다.

정월 12일째 시아버지께 사부님 설법을 들려드렸다. 기적이 발생했다. 시아버지는 또 정상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왼쪽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한번은 시아버지는 대법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공산당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지시가 내려왔나?”, “어떤 정책인가?” 또 왼쪽 다리도 움찔 움찔하셨다. 나는 물었다. “왼쪽 다리는 왜 그러세요?” 시아버지는 다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시아버지는 전법륜3강의를 들은 후 갑자기 말씀하셨다. “알게 됐어. 근본 문제는 70년간의 당력(黨歷)이야. 탈퇴하면 안 되지.” 이것은 시아버지 배후의 공산사령의 교란이었다. ‘전법륜에는 전혀 이런 말이 없다. ‘사반창이 시아버지의 왼쪽 눈썹에 자랐다. 움직이는 것도 왼쪽 다리다. 뱀의 부체가 그 위치에 붙어있는 것이었다. 나는 설법 강의를 끄고 ‘9평공산당을 시아버지께 들려드렸다. 7강의 들을 때 시아버지는 왼쪽 다리를 힘껏 흔들더니 그 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사령이 죽었다. 나는 시아버지께 머리가 아프세요?”라고 여쭈었다. 시아버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씀하셨다. “아프지 않아.” 또 여쭈었다. “공산당이 좋아요, 안 좋아요?” 시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좋지 않아!” 나는 물었다. “탈당 하실래요?” 시아버지는 시원스럽게 답했다. “탈퇴!”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께서 이 생명을 구해주셨구나!’ 깊이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이 일을 큰 형님과 남편에게 알려드렸다. 남편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둘째 형님도 반신반의하며 우리 집에 와 시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머리가 아직 아파요?” 시아버지는 말했다. “아프지 않다.” 둘째 형님은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이네.” 그리고 시아버지께 말했다. “이후 (대법을) 잘 들으세요.”

시아버지는 신체가 완쾌된 후 매일 밤에 술병과 몽둥이를 침대 머리 위에 놓으라고 하시며 말씀하셨다. “만약 나쁜 사람이 오면 그를 때려 보낼 거다!” 사실 그는 사당사령이 다시 그를 박해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정월 15일 두 형님은 내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남편과 상의해 시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했다. 시아버지는 알고 기뻐하지 않으며 우리 집에 계속 머물고 싶다고 하셨다. 남편은 말했다. “누가 시간이 있어 매일 아버지를 돌볼 수 있어요?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에게 말했다. “또 당신도 일이 있잖아.” 내가 대법 일을 하지만 지금껏 남편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 그는 그의 친구들이 말한 것을 들은 것이다.(남편 친구들은 내가 모두 삼퇴를 시켰다.) 나는 말했다. “아버님을 월말까지 머물게 하세요.”

남편은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에게 탄복했다. 그는 월급은 여태 나에게 준 적이 없었다.(내가 진상자료점에 줄까 봐 두려워하기에) 내 월급은 2천 위안이고 시아버지 사계절 옷은 모두 내가 구매했다. 시아버지가 뭘 드시고 싶으면 내가 샀다. 시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모두 며느리가 효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실 때 나는 해삼을 사드리자고 남편과 상의했다. 남편은 필요 없다고 했다. 나는 스스로 해삼전문점에 가서 봉지로 된 정품 해삼을 구매했다(이것은 우리가 결혼 25년 이래 처음으로 해삼을 구매한 것임) 매일 시아버지에게 사탕을 드리며 2개 드린다. 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우리 집에 계셨는데 남편은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화를 낼까봐 좋은 말로 인사를 좀 드리라고 했다. 남편은 안방 입구에서 억지로 인사를 드렸다.

만약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평온하고 원망도 후회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과 그의 가족을 진심으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감옥에서 단식 15일 째일 때 둘째 형님은 남편을 부추겨 법원에 지인을 찾아 나와 이혼시키려 했다. 나는 남편과 만났다. 법원 사람도 이럴 때 나와 이혼하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이혼하실래요?” 남편은 말했다. “이혼하겠습니다!”

이후에 딸이 동의하지 않아 우리는 이혼하지 못하고 재결합했다.

특히 남편의 형과 형님이 노인을 돌보지 않겠다고 했다.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도 그들과 이렇게 따졌을 것이다. “아들이 둘인데 왜 우리만 노인을 돌봐야죠?”

고덕대법은 내 인생을 개변했다. 나에게 사심이 없게 하고 원망도 후회도 없게 했다. 사부님께서 다투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고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6. 정월 29, 시아버지는 요양원에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시아버지께 머리를 감겨드리고 이발과 면도를 해드리며 새 옷과 목도리를 해드리고 모자도 씌워드렸다. 남편이 택시를 불렀고 시아버지는 3층에서 내려와 택시를 타고 가셨다.

둘째 형님이 와서 시아버지를 함께 보냈다. 그녀는 격동해 시아버지께 말했다. “어디에서도 이런 효성스러운 며느리를 찾을 수 없어요!” 또 격동해 말했다. “언니, 감사해요. 아버지가 올 때는 업혀 오셨는데 지금 걸어서 나가셨어요. 저는 늘 말해요. 우리 딸도 언니처럼 하지 못한다고요.” 나는 말했다. “둘째 형님, 대법에 감사드리세요. 모두 대법의 덕을 봐서 그래요.” 둘째 형님은 말했다. “맞아요.”

남편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말했다. “올 때처럼 그러시면 정말로 번거롭지.” 나는 말했다. “당신은 앞으로 양심이 있어야 해요. 우리는 모두 대법에 감사해야 해요.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지금은 내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남편 침실 벽에 걸어놔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에게 삼퇴를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미 탈퇴시켜주지 않았어?”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꽃에 물을 주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머리를 돌리고 보니 그는 몰래 웃고 있었다.
 
  
원문발표: 2017513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3/3467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