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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에 따라 하니 삶이 갈수록 아름다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예전에 가끔 ‘담장을 넘다’란 말을 듣고서 ‘자유문’ 프로그램을 검색해 스스로 인터넷 차단을 해결했다. 이후에도 많이 ‘담장을 넘게’ 되자 아주 큰 심리 장애를 극복하고 파룬궁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전에는 중국공산당의 모함 선전만 들었을 뿐 파룬따파와 대법제자는 접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파룬따파 책을 찾아내 ‘전법륜’이 도대체 무엇을 말했는지 보려 했다. 책에서 하신 말씀이 아주 훌륭하기에 나는 또 연공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부님의 연공 비디오 동작에 따라 연공을 했다.

파룬따파를 배운 후부터 나는 많은 결점을 고치게 됐고 삶은 갈수록 아름다워졌다. 나는 이런 것을 써내 파룬따파가 나에게 가져다 준 아름다움을 증명하고자 한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에는 내 대인 관계는 몹시 나빴다. 늘 남과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새로운 환경에 가서도 며칠 못 가서 또 나빠졌다. 파룬따파를 배운 후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자신이 늘 색안경을 끼고 타인을 본다는 것을 발견했다. 외모가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속으로 싫어하면서 접촉하려 하지 않았고, 외모가 좋고 소질이 훌륭한 사람을 보면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가까이 하려 했다. 어려서부터 이런 관념을 양성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은 나를 거들떠보지 않기에 나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파룬따파를 배운 후 나는 보험회사 직원 훈련반에 참가해 검고 뚱뚱하며 거칠게 생긴 중년 부인과 나란히 앉았는데 아주 불편했다. 이 때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당신들이 중생을 구도하고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부딪힌 이 일체는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설령 한 가지 작은 일, 한 사람의 한 가지 생각일지라도, 당신이 진상을 알릴 때 부딪히는 각양각색의 부동한 사람과 일은, 모두 간단하고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오직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가서 해야만 된다.”[1] 그리하여 나는 이 일을 사부님 안배로 간주하고 자신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내 안팎에 하나의 물질이 있어서 불편을 느끼게 하고 순리에 따르는 것(随其自然)을 해내지 못한 것이라고 안으로 찾았다. 그리하여 나는 순리에 따르려 했고, 진선인을 말하려 했다. 나는 그녀에게 웃음을 보여주면서 내 물건을 치우고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도 나에게 웃어 보이며 아주 겸손했는데 분위기는 단번에 많이 완화됐고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한 가지 선한 행동으로 보답을 받았다. 나는 몹시 편안했고 심지어 몸에서 한 갈래 뜨거운 흐름을 느꼈다. 이후에 또 말이 아주 거친 여자를 만났는데 내 차로 태워다 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는 아주 싫었지만 한 길인지라 거절하기 어려웠다. 가는 길에 차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도 말하지 않아 분위기가 아주 딱딱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 나는 이런 분위기를 좀 완화하려고 그녀에게 문제 하나를 냈다. 의외로 그녀는 아주 열정을 보여 주었다. 보기에는 좋지 않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아주 뜨거웠고 하는 말도 아주 실재적이어서 듣자마자 성실한 사람이고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의 장점을 발견했을 때 이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됐다.

보험 회사에서 한 달 일한 후 어느 날, 직장에 젊고 예쁜 여자 동료가 왔는데 보자마자 아주 마음이 끌렸다. 이후에 우리는 함께 업무를 하게 됐고 몇 차례의 접촉이 있은 후에는 또 몇 번 함께 놀러간 적도 있었다. 관계가 비교적 가까워졌고 심지어는 날마다 그녀와 얼마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나는 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녀도 나에게 몇 번 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정과(正果)를 닦아내야 하므로 나는 반드시 자신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인식했다, 자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 하고 바르지 못한 곳은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관념으로 좋다고 여기는 것은 꼭 좋은 것일 수 없으며 어쩌면 나를 해칠 수도 있다. 고정 관념으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며 때로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직장에서 출퇴근을 할 때면 차로 태워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두 집 사이가 서로 가까이 있어서 한 이틀은 태워주었다. 나는 그녀를 한 이틀 태워주면 끝날 줄 알았는데 거의 날마다 내 차에 앉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나는 몹시 언짢았다. 나는 이건 새로운 갈등이 생긴 것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또 안으로 찾았다. 좋은 일을 한 가지 하기는 쉽지만 좋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한 가지 좋은 일을 하려면 어느 한 시기가 필요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시시각각, 시종여일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은 최저한의 요구다. 나는 자신이 사실은 너무도 잘하지 못했고 아주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의 제고에 노력해야 했다. 이런 인식이 있게 된 후 남을 돕는데 속으로 따지는 그런 생각이 없어졌고 아주 자연스러운 감을 느꼈다.

나는 학력이 높고 좋은 사람이 되려 했기에 주임도 나를 믿었다. 한번은 그녀를 차에 태웠는데 그녀가 말했다. “직장에서는 앞에서는 말도 하고 웃기도 하지만 뒤에서는 모두 남의 흉을 보죠. 날마다 함께 일하면서도 이렇게 남을 함정에 밀어넣으면…” 내가 말했다. “저는 지금껏 뒤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요. 만약 내가 속았다면 그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만 탓할 뿐이죠.” 그녀는 묵묵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꼭 당신을 잘 이끌어 줘야겠네요.” 이후에 내가 그녀에게 소선대, 공청단에서 탈퇴하라고 권유하니 단번에 승낙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승낙하냐고 묻자 그녀는 “이전에 친척이 내게 탈퇴하라고 해도 전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이렇게 좋고 또 학문도 이렇게 높은데 당신이 믿는 것이면 당연히 나도 믿는 거죠.”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밖에서 지내도 편안하고 집에서도 이전보다 잘 지내게 됐다. 처음에는 그리 정진하지 못해서 모순 처리도 잘하지 못했다. 한번은 발 씻는 대야에 누가 양말을 놓았는데 며칠 되도록 빨지 않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보고 보다가 나는 자신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알려주었다. 마침 그 며칠 동안은 ‘남을 위하는’ 마음을 닦아내라는 수련 문장을 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양말 몇 켤레도 빨지 않으면서 무슨 ‘남을 위한다’고 말하는가? 나는 이는 아마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 양말을 놓고 사심을 버리게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을 위한다’란 무엇인가? 할 일이 있으면 따지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조금씩 ‘남을 위하는’ 것임을 나는 인식했다.

이전에 나는 특히 아이들을 자주 욕했다. 어떤 때는 나 스스로도 너무 심하게 욕해서 아이가 불쌍하다는 감을 느꼈지만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이 점을 돌파하지 못해 매우 고민스러웠다. 나중에 사부님 설법에서 대각자들이 그들의 세계를 관리할 때, 속인의 수단이 아닌 “그는 완전히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으로 관리한다”[2]를 보고 나서 나는 내가 아이들과 함께 노는 때가 너무 적어서 그들 스스로 소란을 피우고 난동을 부리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면서 그들에게 정확한 행위관념을 양성해 주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지금 큰 아들이 일찍 일어난다면 나는 그에게 ‘전법륜’을 읽게 한다. 아이가 법을 얻은 것을 보면 나는 마음이 기쁘다. 정말 아이가 안으로 찾는 것을 배워 더 잘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나는 자각적으로 술 담배를 끊었고, 음란한 것을 거부했으며, 이전에 좋아하던 게임과 만화마저 보지 않게 됐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내 삶에 무슨 재미가 있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수련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믿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만화, 게임을 즐겨서 고치기 어려운 습관이 돼 버렸고 또 다른 취미란 없었다. 이전에는 늘 이런 집착을 남겼다가 나중에 가서 버리면 되지 하고 자신을 위안하곤 했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3]를 인식하게 됐다. 고정관념 역시 물질로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접촉한 것은 모두 ‘고정관념’이란 이런 물질을 강화한다. 내가 만약 ‘불법(佛法)’의 존재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고정관념’이 다시 나를 주도할 수 있으므로 나는 법공부를 많이 해 사상이 시시각각 모두 법에 있고 법에 동화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마디 한 마디씩 외우고는 다시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고 되새겼다. 이렇게 공부하니 내가 하루에 깨닫는 것이 이전에 한 달 동안의 것보다 적지 않았고, 게다가 마음을 법에다 쓴 후, 불법이 펼쳐준 세계는 비할 바 없이 광활하고 정심해 아주 마음에 들어 머릿속에는 게임과 만화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지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라는 이 구절의 법만으로도 나는 아주 많은 것을 체득했고, 신과 마귀의 존재를 체득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물론 단번에 당신의 사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데, 앞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당신은 천천히 당신의 사상을 바꾸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주의하여 듣기 바란다.”[3] 이전에 나는 친구에게 대법이 좋다했고 삼퇴를 권유했으나 짧은 시기 안에 하지 않으면 더는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그들을 단번에 개변시키려 했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말하고, 참답게 말했으며, 그들에게 내가 대법에서 인식한 법리를 말해 주었다. 이후에 몇 사람은 단, 대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또 대법 책을 보기 시작했다.

총괄하면 대법을 배운 후 나는 정신상이든 육체상이든, 가정과 사회상이든, 또 성격상이든 할 것 없이 모두 아주 큰 개선을 가져왔다. 나는 자신이 이렇게 훌륭한 법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는 내 전체가 불법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삶과 운명 전체가 모두 햇살로 가득 넘치는 것 같아서 살기가 너무 즐거웠다. 나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0-맨해튼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4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14/3455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