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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운 체득과 깨달음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 17살 때 다행히도 법을 얻었다. 20년 동안, 사부님 보호로 어렵게 오늘까지 왔다. 박해 초기, 법 공부를 비교적 틀어쥐었기에 사부님 가지로 정진할 때가 있었고 환경도 한때는 개변이 있었다. 하지만 환경이 좋아지자 서서히 경각을 늦추어 또 구세력에 끌려갔다. 2014년에 와서 ‘전법륜’을 외우면서부터 나는 그제야 내 수련의 차이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를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1. 법 외우기를 시작

이전에 나는 내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법 공부와 진상 알리기를 견지했으므로 나는 그래도 고생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법리에 대하여 약간의 이해가 있다고 하여 득의양양해 했고, 또 툭하면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곤 하면서 남들은 다 나보다도 못하다고 여겼다. 많은 수련생이 신체상에서 교란을 받지 않으면 진상하러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자신은 그래도 괜찮은 축이라고 여겼다. 후에 나는 몹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마난 속에서 나는 날마다 장시간 발정념을 하면서 이렇게 한동안 계속했다. 이 기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이 모두는 다 구세력이 한 짓임을 알게 해 주셨다. 원인을 알기는 했지만, 환경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문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자 나는 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너무 큰 압력을 주지 않으려고 저녁이면 날마다 법 공부를 마치고 나서 반시간에서 40분 동안 다시 법을 외웠다.

2. 다시금 정화

제1강을 10여 페이지 외웠을 때, 나는 뚜렷한 변화를 느꼈다. 나에게는 수련 초기의 상태가 나타났다. 한동안 늘 일을 잊었고, 심지어 어떤 때는 나와 여러 해 함께 일해 온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 이름을 잊기까지 했다. 직장의 동료들이 주고받는 속인의 말도 마음에 닿지 않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여러 해 동안 쌓였던 좋지 못한 사상 업력을 청리해 주시는 것으로 확신했다. 한동안 지나니 좋아졌고 또 말도 하게 됐다. 한번은 일 때문에 동료와 논쟁이 벌어졌다. 내가 막 화를 내려고 하는데 ‘전법륜’ 속의 말씀이 한 글자 틀리지 않고 머릿속에 나타났다. 비록 일을 엉망으로 만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심성을 그리 지키지 못했다. 이때 나는 자신이 참다운 수련을 너무 잘하지 못했고 대법이 분명하게 알려 준 것을 모두 하지 못했음을 느꼈다. 제1강을 다 외우고 나서 나는 수련의 길로 또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3. 법을 외우는 가운데서의 깨달음과 심성 제고

잇따라 나는 자신만만하게 제2강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순조롭지 못했다. 천목이란 이 한 절은 비교적 길었다. 웬 영문인지 첫 몇 단락이 외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제1강을 외우던 좋은 상태도 다 없어졌고, 법리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나는 좀 낙심해 중도의 한 주일 동안은 외우지 않았다. 그 한 주일 동안은 책을 들고 외우려고만 하면 압력이 높고 역겨웠다. 나중에 생각하기를, 외우기 시작했으니 그래도 포기는 하지 말자,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그래도 외우자. 암송할 때 한 단락의 법이 대번에 나의 사상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모래 한 알이 바로 우주와 같아”[1]는 법리를 알게 됐다.

제3강을 외울 때 나는 자신의 정념이 뚜렷하게 강해진 것을 느꼈다. 이때는 마침 장쩌민 기소 시기였다. 그때 나는 듣자마자 마음에는 정념이 저절로 생겨 속으로 생각했다. ‘참 좋구나, 얼른 이놈을 법정에 보내야지.’ 하지만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으므로 제때에 장 고소를 하지 못했다. 장고소 인원이 2만 명에 다가설 무렵, 나는 가족 수련생의 격려와 독촉으로 장고소장을 쓰기로 했다. 아울러 수련하지 않는 가족도 장을 고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중생도 모두 이 대마두의 해독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 다른 한 노인 수련생을 도와 함께 장고소장을 써서 최고검찰원에 우송했고 아울러 수령했다.

4강을 외우면서 내가 가장 뚜렷하게 받은 감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자비심을 닦으라는 것이었다. 이전에 나는 진정한 선을 하기는 몹시 어렵다고 여겼다. 매번 모순과 번거로움이 오면 나는 상서로운 심리 상태를 유지할 때가 아주 적었고, 모두 모순 속에서 고생했고, 눈물을 머금고 참았다. 후에 끊임없는 법 암송 가운데서, 사부님은 끊임없이 법리로 나에게 개시하셨고, 나도 서서히 조금 조금씩 대법 속에서 대법에 따라 깨달음을 시도하면서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 어느 날, 나는 일하다가 모순이 발생하여 나는 막 화를 내려다가 속으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자비한 마음을 유지하라고 하셨으니 내가 그와 화를 내기보다는 기쁘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며, 나는 자비로워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나의 심태와 생각이 완전히 변하고, 정말로 마음으로부터 느끼는 그런 상서롭고 차분함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동시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도 좋게 변했음을 느꼈다.

우리의 정념은 모두 법에서 오며, 오로지 마음으로 대법을 잘 배워야만 비로소 정념이 족하고, 비로소 정념이 있게 된다고 여겼다. 후에 다시 법을 외울 때, 한 강을 읽을 때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나에게 내가 닦아 버려야 할 집착과 일부 법리를 알려 주셨다.

인상이 비교적 깊은 것은 질투심을 버릴 때였다. 질투심 때문에 사람의 관념은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 자신을 아주 나쁘게 만들어 남의 흉을 볼 수 있으며,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남을 깔볼 수 있고, 남을 해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한번은 우리 직장의 동료가 지도자에게 전화로 그녀가 좀 바쁘니 나에게 가서 무슨 일을 하게 하라고 했다. 사실 그녀도 그렇게 바쁜 것은 아니었다. 비록 통화 말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왜 이렇게도 공교로운지 마침 내가 듣게 됐다. 그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나의 사업은 많이는 밖에서 뛰어다니고, 게다가 돌아와서는 또 자신의 일을 해야 했다. 많은 부서의 일은 많이는 나를 찾아 협력하여 해야 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왜 사람을 부리는데 이렇게 마음대로인가, 당신의 일을 당신이 하지 않고 나에게 미루고 나에게 일을 시키다니 당신은 자신을 지도자로 여기는가, 나는 자신의 할 일도 다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면서 불평이 분분했다. 후에 또 이런 일을 몇 번 겪었다. 이전에는 이것이 질투심이란 걸 알긴 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불평이었고 화가 나서 야단이었다. ‘질투심’이란 장의 단락까지 외웠을 때, 하루는 자신의 사업에서 또 유사한 일에 봉착했다. 나는 질투심을 극복하려고 애쓰면서 당시 생각했다. 이는 질투심이니 나는 그것을 버려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 갈래 선한 에너지가 나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있으며, 나는 마치 온 하늘의 먹장구름이 흩어지고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나는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나를 도우셨다는 것을 속으로 알았다. 후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이전에는 질투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법은 작용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내가 이전에 법 공부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 법 공부란 이 문제에서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을 외우는 가운데서 사부님께서는 나에게서 조금 조금씩 좋지 못한 것을 없애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당신은 느슨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1] 끊임없이 법을 외우는 가운데 어떤 때는 법리를 분명히 알지 못할 때가 있었지만 무한한 아름다움과 승화를 느낄 수 있었고, 때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속인 중의 기쁨인 것이 아니라 신체 주위의 더(德)가 끊임없이 공으로 연화되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은 틈만 있으면 법을 암송했는데 5분 동안에도 나는 한 구절을 외웠다.

4, 장 고소, 진상 알리기와 발정념을 견지

법을 암기하는 가운데서 사부님께서는 나를 정념이 충족하고 신심이 가득하게 해 주셨다. 나는 대법은 꼭 우리를 구도할 것이며, 우리는 대법 수련 가운데서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법을 외우는 가운데서 나는 대면하여 3퇴를 권유하는데도 진보가 있었다. 꿈에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삼퇴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꿈에 나는 두 소녀를 만나 반나절이나 권유해도 탈퇴하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아무튼, 따지지 않을 테니 너희들은 탈퇴하라고 했더니 그녀들은 즉시 대답했다. 이튿날 진상을 알릴 때 정말 두 소녀를 만났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한 사람을 탈퇴시켰다. 또 한 번은 사부님께서 꿈에 직장 동료에게 진상을 알려 주라고 점화하셨다. 우리 직장은 멀리 있어서내 차에 여러 사람이 앉았고, 나는 차에서 진상을 알렸다. 몇 번 말하고 나니 그들은 모두 진상에 대해 일정한 이해를 하게 됐다. 그런 후 나는 탈퇴를 권하기 시작했고, 결국 한 사람이 탈퇴하지 않고 기타 사람은 모두 탈퇴했다.

후에 나는 진상 알리기와 3퇴는 함께 하지 말아야 하고 한 사람을 위주로 해야 한다고 사부님께서 알려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전에 나는 주도면밀하게 진상을 분명히 알리고는 또 조급하게 상대방이 탈퇴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진상도 잘 알아듣지 못했고 3퇴도 대답하지 않았다. 후에 나는 먼저 3퇴를 권하고 3퇴를 권하는 과정에 진상을 알렸다. 어떤 이는 말하자 곧바로 탈퇴했고 또 몹시 감격했다. 이는 아마 자료를 봤거나 진상을 알거나 근기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보통 많이 말할 필요가 없다. 3퇴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말해 준다. 진상 알리기는 영원히 기본 진상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데 분신자살, 생체장기적출을 포함하여 현지 사례를 결합한다. 설령 상대방이 탈퇴하지 않는다 해도 그에게 기초는 다져준 것이므로 다음번 수련생이 그를 탈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상이 비교적 깊은 것은 두 차례 3퇴를 권할 때 정념이 충족하고 관념이 없이 속으로 사람을 구하겠다는 생각만 하고 얼마만한 사람을 탈퇴시키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어쨌든 나는 말할 것이고 누구도 나를 막으려 하지 말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원 문 앞까지 갔을 때 전단을 배포하는 세 사람을 보고 다가가서 3퇴를 권했다. 그때 정념이 아주 강해, 말이 입에서 나가자 에너지가 아주 선함을 느꼈다. 그 몇 사람은 3퇴란 말을 듣자 곧 가버리려 했으나 또 무엇에 고정된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말했다. 우리는 당·단·대에 들 때 목숨을 그에게 바치겠다고 맹세했는데 이는 독한 맹세이다. 목숨은 자신의 것인데 어찌 그에게 바치겠는가, 내가 당신들을 탈퇴해 주면 평안을 지킬 것이며, 가명으로 해도 된다. 두 사람이 당장에서 대답하고 세 번째 사람은 곁에서 웃기만 하면서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우 내가 아우에게 이름을 지어 줄 테니 탈퇴하게.” 그는 듣더니 기뻐하면서 역시 탈퇴했다.

법을 외우는 것은 법 공부하는 면에서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는 것이고 법에서 정진하는 것이지만 통독은 필수이다. 한번은 아내 수련생이 출장 갔다. 나는한 주일내내법을 외웠지만, 법리는 별로 나타나는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몹시 괴상하게 느꼈다. 아내 수련생이 돌아와 같이 통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막 읽기 시작하자 법의 내포가 나타났다. 이때 나는 반드시 사부님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인식했다. 통독은 사부님께서 남겨 주신 법 공부 형식으로서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법 공부 형식에서 남과는 다른 기발한 주장을 내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후에야 깨닫게 됐다.

끊임없는 법 공부와 법 암기 가운데서, 연공과 정념에도 엄청 큰 작용이 생겼다. 한번은 파룬쫭파(法輪樁法)를 할 때 한 의념이 나에게 초상적인 상태에 들었다고 알려 주었다. 나도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연공을 마치고 나자 정신이 아주 충족하고 온전히 이틀 동안 졸리지 않았다(두 번째 날 저녁에야 상태를 회복했다). 또 한 번은 아내를 마중하러 그녀 직장에 갔다가 그녀가 일이 있다고 하기에 법을 외우면서 그녀를 기다렸다. 줄곧 두 시간 외우고 나서 중도에 휴식했다. 집에 와서 혼자 침대에 앉아서 발정념 했는데 대번에 입정이 되고 멸! 하는 일념만 남았다. 그 후 매주 토요일이면 나는 모두 오전마다 진상하러 갔다가 오후엔 두 시간 법 외우기를 했다. 평소에 시간이 있으면 법 암송 시간을 연장했다. 끊임없이 법을 외움에 따라대법은 내 일생에 따라야 할 법리와 인생의 준칙으로 여기게 됐다. 법 암송은 더는 강요와 형식이 아니라 내 생활의 한 부분으로 됐고,내 생활은 수련의 일부분으로 되었다.

5, 넘어졌으면 일어나라

제7강을 외웠을 때 나는 사부님의 극히 큰 가지를 느꼈다. 그때는 무엇을 봐도 모두 기뻤고 고깝게 생각하는 일이 없었으며 진상 알리기 효과도 비교적 좋았다. 하지만 좋은 상태에서 나는 줄곧 소박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고, 계속하여 좋은 상태로 수련을 연속하지 못했으며 자신을 방종하고 느슨히 했다. 계속하여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종하고 느슨히 했다. 서서히 나는 대법을 외웠으니 나를 가로막을 것은 없으며, 나는 무엇을 하든 다 되고 다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사실 이는 이미 너무 기뻐서 모든 것을 다 잊은 것이었다. 자심생마가 생긴 이런 상태에서 구세력은 나를 아주 심하게 박해했다. 나는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젊은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당신이 보라. 그는 평소 아주 좋으며, 속인사회 중에서 무슨 능력이 없을 때, 그의 명리심은 아주 담담하다. 일단 사람이 두각을 나타낼 때면, 흔히 명리적인 교란을 받기 쉬운데, 그는 남은 생애에 아직 먼 길이 있다고 느껴, 더욱 보람차게 해보려 하며, 한 번 분투하여 속인의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일단 공능이 나오고 능력이 있게 되면, 그는 그것을 흔히 속인사회 중에서 개인 목표를 추구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삼는다.”[1]이다.

설을 막 쇠고 나서 나는 위챗에서 물건 팔기를 해 보았다. 최초에는 날마다 한 번씩 상품 정보를 발표했을 뿐 큰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다. 후에는 팔수록 더 많아졌다. 돈을 버는 재미를 본 후 나의 집착심은 갈수록 커졌고, 손에서 핸드폰이 떠나지 않을 정도였으며, 밤에 집에 돌아오면 먼저 물건을 팔고 후에 법 공부했으며 새벽에 발정념 하고는 또 다시 한 번 스팸하곤 했다. 서서히 법에서 수련하여 얻던 행복감이 사라지고, 심성도 점차 지키지 못하게 됐다. 후에 사업에서 심각한 실수가 생겨 하마터면 손해를 빚어낼 뻔했다. 그런데다 동료들 사이에 모순도 몹시 격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구세력은 나의 신체에 대한 박해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고혈압 가상이 나타나 저혈압이 140, 고혈압은 너무 높아 놀랄 지경이었다. 이때에야 나는 심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재빨리 물건 파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며칠 내가 ‘전법륜’을 펼치기만 하면 안의 내포는 아주 분명하게 말한다. 색욕을 놓아라, 명리를 놓아라, 모든 정을 놓아라.

무엇도 다 대법에서 수련하여 얻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음을 의식했을 때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계속 법을 외웠으나 법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박해당해 죽을 것 같았다. 고혈압 가상은 나의 심근 빈혈, 불면을 초래하여 머리에는 납을 부어 넣은 것 같았고, 얼굴이 붓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반복해 연공 했으나 효과가 좋지 않았다. 발정념은 그래도 좀 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박해는 약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정말 후회했다. 나는 사부님 법상에 마주 서서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전 정말 후회합니다, 법에서 막 정진하기 시작했는데 박해로 죽게 됐습니다. 사부님 법상을 바라보니 사부님께서 아주 기뻐하시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방에 돌아와 또 발정념 했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 그렇게 많은 법을 암송했는데도 헛 외웠단 말인가? 나 대법을 수련하는 당당한 제자가 이렇게 쉽게 박해당해 죽는단 말인가? 참으로 웃음거리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자신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여전히 법 공부하고 법을 외울 것이다. 하루는 단체 법 공부를 마치고 혈압을 재보니 고혈압이 160이었다. 나는 한동안 법을 외우고 다시 재보니 140, 또 한참 법을 외우고 재보니 120, 정상이었다. 여러 번 발정념을 한 동시에 아침에 일어나 연공 했다. 서서히 나의 신체는 정상으로 회복됐다.

나는 속으로 알았다, 구세력은 전혀 나를 건드릴 수 없었고 나는 낙심하지 않았으며, 나는 다시 정진하려 했다. 오직 참으로 법공부를 잘하면 넘지 못할 것이 정말로 없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어떠하든지 법 외우기는 중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려움은 자신 몸에 있었으므로 여전히 조금 조금씩 넘겨야 했다. 서서히 사부님께서는 또 나를 좋은 방향으로 밀어주시면서 나의 잘못을 미봉해 주셨다.

회사는 상장하는 중요한 단계에 들어섰으므로 우리는 연장 근무하면서 자료를 정리해야 했다. 3년 반의 업무 데이터, 몇십 만개를 20일 사이에 정리해 내야 했고 게다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게 조정해야 했다. 우리의 업무는 구역을 나뉘어 했는데 나는 십여 개 지역을 맡았다. 다른 사람은 가장 많아야 5~7개였다. 나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잘하려고만 생각했다. 연장 근무를 하는 20여 일 동안 나의 효율이 가장 높아 다른 동료보다 모두 빨랐다. 내가 책임진 지역의 데이터는 조금도 오차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동료들은 나를 괄목상대했고 나도 무척 기뻤다. 나는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거로 생각했다. 우리 주임도 이번에 당신이 가장 빨리, 가장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얼른 정념으로 말했다. 나의 지역은 상황이 복잡하지 않아서 정리하기 쉬워요.

연장 근무 동안,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빠르면 11시, 늦으면 새벽 1시였다. 나는 여전히 시간을 다잡아 법 공부, 법 외우기를 했다. 아침에 반 시간 법을 외우는 것을 동요하지 않았고, 저녁에 너무 늦게 돌아오면 통독 45분을 견지했다. 법을 읽은 시간이 짧아 법리가 별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글자마다 마음에 닿았다. 동료들과 20일을 고생한 끝에 우리는 임무를 원만하게 완수했다. 연장 근무를 하는 수련에서 나는 내가 이전에 여전히 게으르고 태만했음을 발견했다. 많은 때는 속인보다도 더 못하게 했다. 작년 8월 ‘깨달음’, 이 한 장을 외울 때 나는 나의 오성이 여전히 몹시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때 여전히 사부님 말씀대로 하지 못했다. 9월 초에 ‘전법륜’ 암송을 완수했다. ‘대근기지인’을 외울 때 아무리 어떻게 해도 외울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또 두 시간 외웠다. 다섯 번째 외울 때 사부님께서 나를 정화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나의 사상이 정체되고 시간은 아주 느렸으며, 나는 마치 멀고 먼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고 마음은 아주 차분했다.

이상은 근 일 년 남짓한 동안의 나의 체득과 느낌이다. 적당하지 못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 2017년 3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심성제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14/3439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