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에 나는 사부님의 최신 설법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를 본 후 정법수련의 법리에 비약적인 인식이 있었고 이로써 가정 모순에서 또 일부 큰 심성관을 겪었다. 우리는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말아야 하고 사부님께서는 또 장계취계의 법리를 말씀하셨고 마침 생사관처럼 보이는 바르고 부정적인 행위 표현 속에 있지만 우리는 이로 인해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더 똑똑히 인식하고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부정적 사유와 사람의 관념을 제거할 수 있다.
나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고 나와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아들도 내가 데리고 있으며 우리는 또 어린 딸이 있었고 남편도 아들 하나가 있었다. 이 몇 해 동안 가정의 마난은 끊이지 않았고 나는 관을 넘는 둥 마는 둥 했으며 그 고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매번 뼈를 깎는 듯 버리는 중에서 나의 가장 큰 부정적인 사유는 바로 후회와 자책이었다. 늘 생각하기를 초기에 이런 가정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혼자서 큰 아들을 데리고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생각했다. 사실상 이는 일종 보기에는 수련을 위한 구실인 것 같지만 사실상 일종 밖을 향해 구하는 원망심이다. 이런 부정적 사유는 가장 쉽게 자신으로 하여금 소극적이고 회피하려는 심리가 생겨나게 했고 사유는 극단으로 가기 좋아하고 가끔은 남편에게 욕먹거나 구타를 당하고 시어머니에게 무시를 당할 때 이혼을 생각했다. 그러나 또 대법 명예를 손상시킬까 봐 일종 어찌할 도리가 없이 인내했다. 시어머니는 80여세가 됐고 그들을 모시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사심의 작용 하에 또 아들딸을 데리고 떠날 생각을 했다.
한번은 나와 시어머니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생겼을 때 아들도 감히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 나는 수련이 정말로 만 개에 달하는 마들이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마의 교란으로 여겼고 발정념으로 아들에 대한 정을 제거하고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원한을 제거했으며 구세력이 가족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박해하려는 험악한 배치를 제거했으며 모순 배후의 요소를 제거했다. 조금 나아졌지만 진정한 제고라고 할 수 없었고 늘 어딘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아들은 집안의 복잡한 환경을 참지 못해 홧김에 타지에 가서 일을 했다. 나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아들은 나보고 상관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자신에게 남의 운명을 배치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남을 상관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찾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돈을 좀 많이 벌어서 집을 잘 안정시켜 놓으면, 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나는 다시 도를 닦겠다. 나는 당신이 망상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밖에, 당신이 뒷근심이 없고,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도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煉功)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다.”[1]
나는 마음속에 한 덩어리 물질이 꽉 막고 있어서 답답한 것을 느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고 아들에게 몇 마디 하고 싶었다. 갑자기 자신의 이런 부분이 정 속에 빠진 것이 아닌가, 나는 마땅히 사람의 이치를 내려놓아야 하고 나는 연공인이고 이런 인간의 정을 버려야 하고 이는 제고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나는 즉시 다리를 틀고 발정념을 했고 자신의 좋지 못한 사상염두를 제거했으며 부패한 물질은 사부님께서 순식간에 제거해주셨다. 온 몸은 에너지에 싸였고 사부님께 너무나 감사드렸다. 이것은 바로 관념을 바꾸고 신사신법한 표현이었으며 나는 끝내 자신을 닦을 수 있게 됐다. 이로써 나는 마음속에 더는 남의 좋지 못함을 담지 않았고 남의 장점만 보았다. 남의 단점을 보기만 하면 자신이 사람 속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세력의 배치와 교란은 아주 엄중한 것으로, 사부는 단지 당신들이 구체적인 혼란 속에 빠져 수련에 영향 주게 하고 싶지 않아, 당신들에게 최대의 흉금과 자비로 중생을 대하라고 했다. 어떠한 교란 하에서도 모두 구체적인 사건 속에 파고들어 자신을 교란하지 말아야만,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고, 게다가 위덕도 더욱 크다.”[2]
나는 자신은 사부님께서 상관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고 가족도 사부님께서 상관하고 계시며 일체는 모두 내가 사람마음으로 배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아들이 사기당할까 봐 걱정됐는데 전부 부정적 사유였다. 나는 이것이 마음이 바르지 않은 표현임을 인식했고 의념 속에서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제거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싫어하는 원망심을 제거했고 사업상 일체 잃고 얻는 것에 관한 모든 사람마음을 제거했으며 생활에 대해 어찌할 방법이 없는 소극적인 사상을 제거했고 일체 고생스러운 부정적 관념을 제거했다. 나는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이 제고한 후 수련생의 교류문장 ‘평범한 수련의 길에서’를 보았다. 수련생의 아주 평범한 수련체험 속에서 사부님에 대한, 법에 대한 단호한 믿음을 체현했다. 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수련 속에서 우주 특성 진선인(眞善忍) 원칙을 준수해야 했는데 나로 하여금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인(忍) 자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3]
실로 너무 어려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화를 크게 내는 성격이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화를 크게 냈다. 대법을 만난 후 천천히 자신의 성격은 남을 고려하지 않고 자아를 중시해 조성된 것임을 인식하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생명이 되라고 가르치셨고 우선 나는 남을 고려할 줄 알아야 했는데 이는 최소한의 선량과 관용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일종의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이고, 생명에 대한 자비이며, 일체를 모두 선의(善意)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4] 이러한 말씀은 나의 내심의 선심을 깊이 감동시켰고 마음속으로 깨달았을 때 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런 속담이 있다. “강산은 쉽게 개변할 수 있어도 성격은 고치기 어렵다.” 사람의 힘으로는 사람 이 한 층의 좋지 못한 물질을 제거하기 어렵다. 수련자는 한 가지 단점을 고치려 할 때 초상적인 힘으로 이런 좋지 못한 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데 아주 신기하다. 나는 무수한 가정의 난 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강한 마음과 다투는 마음, 남을 간섭하려는 마음을 제거했다. 원래 시끄럽게 떠들고 억울하고 원망하던 상태에서 한번 웃고 넘어가는, 아울러 내심에서 상대방이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시켜주었다고 고맙게 여기게 됐다. 지금 일가족은 늘 싱글벙글 웃고 있다.
우리는 선을 닦아야 하고 수련할수록 남을 더욱 깔보면 안 되고 관용하고 대범해야 한다. 곳곳마다 남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일체를 선의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부동한 특징이 있는 생명과 중생을 포용할 줄 알아야 맞는 것이다. 이로써 가족은 평온한 생활을 회복했고 자신을 바로 잡은 후 가족도 변했고 온 가족이 화목해졌다. 거의 붕괴할 뻔한 가정을 사부님께서는 가볍게 선해시켜 주셨다.
여기까지 쓰고 나의 눈에는 사존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부님이 계셔서 정말 좋고 수련은 진짜로 좋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3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12/3435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