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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있어도 간격이 생기게 하면 안 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진상자료를 만드는 기계가 망가졌다. 스스로 며칠간 연구해도 수리하지 못해 자료점에 가져다 놓았다. 왜냐하면 자료점 수련생은 외지의 경험 있는 수련생을 찾아 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어느 날 자료점의 수련생이 나를 찾아왔다. 협조인 수련생(전문적으로 기술수련생을 데리고 각지에 기계를 수리하러 다님)이 기술 수련생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보고 나서 나에게 부품이 부족하다고 하고 메모를 남겼다. 위에 어떤 부품이 부족한지 분명히 쓰여 있다. 나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기계를 열고 검사했는데 부품은 해체한 적이 없다. 나사가 하나 빠져도 나는 주워 놓는다. 하물며 이렇게 큰 2개 부속품이 부족하다고? 불가능하다. 나는 당시 기술 수련생이 기술이 부족하고 이런 모델을 수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료점 수련생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을 바꿔 다시 보게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수련생은 좋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 수련생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 일이 이렇게 되자 나는 잠시 내려놓았다.

그런 후 전에 내가 기계를 놓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찾았다. 확실히 어떤 부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에 차라리 속인을 찾아 수리해 보자고 생각했다. 컴퓨터 상점에서 프린터 수리점 전화번호를 찾았다. 자료점에 가지 않았는데 자료점의 수련생이 왔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자 자료점 수련생도 동의했다. 이후에 기계를 자료점에서 컴퓨터 상점으로 실어갔다.

컴퓨터 상점의 수리원은 한 시간 정도 수리하고 수리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조립해야 하고 부품이 없어 생산공장과 연락해야 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기계를 다시 차에 실었다.

이때 다른 컴퓨터 상점의 소모품을 판매하는 수련생이 생각났다. 그가 혹시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계를 그에게 실어갔다. 수련생은 수리할 줄 모르고 한 수련생만 수리할 줄 안다며 전화를 걸어주었다. 반시간 후 그 수련생이 왔다. 이전에 기술 수련생을 데리고 자료점에 온 협조인 수련생이다.(왜냐하면 컴퓨터상점 수련생이 전화를 걸기 전에 이 협조인 수련생을 찾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혹시 기술이 더 좋은 다른 수련생이 오기를 기대했기에 가로 막지 않았음.)

온 후 협조인 수련생은 부품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견지했다. 나는 부품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어떤 부품을 구매해야 하고 어디에 조립해야 하는지 물었다. 당시 우리는 대치상태였다.

이후에 컴퓨터상점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수리하라고 맡겼으면 다른 사람을 믿어야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수리하라는 말인가요?” 그래서 나는 부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품이 부족하니 기술 수련생에게 부품을 구매해 조립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협조인 수련생은 나에게 부품을 구매해 스스로 조립하라고 했다. 전 과정에서 그의 태도는 강경하고 냉담했다. 컴퓨터상점 수련생의 조정으로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기계를 기술 수련생 집에 놓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협조인 수련생은 기술 수련생의 집에 놓으면 불편하다고 했다. 당시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더 불편할 텐데’(노정이 비교적 멀어 기계가 손에 있으면 수리하기 편리함) 동의하지 않으면 강요해도 안 된다. 나는 기계를 자료점으로 가져왔다. 나는 협조인 수련생에게 시간이 되면 당신들이 자료점에 가라고 했다. 그는 시간이 없으며 시간을 짜내야 한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언짢았다. 수련생 사이에 왜 이럴 수 있는가? 속인이 물건을 수리해도 이런 태도가 아닌데. 이후에 생각하니 내가 잘못했다. 나는 수련생이다. 수련생 사이에 모순이 있으면 제고하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마땅히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 봐야 한다.

우선 이 일에서 기술 수련생의 진단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하는 수 없어 기술 수련생을 또 찾으니 협조인 수련생이 불만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태도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이 태도가 냉담하니 마음이 움직이고 기뻐하지 않고 심지어 원망심이 생겼다. 이것은 수련인의 심태가 아니다.

또 수련생 사이 협조 과정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부드럽고 자비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면 안 되고 그럼 수련생 사이에 모순과 쟁론이 있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 알다시피 나는 여태껏 ‘단결(團結)’이란 두 글자를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속인이 억지로 구하는 것이며 형식이기 때문이다. 수련인은 心性(씬씽)의 제고, 근본적인 제고를 말한다.”[1]

대법제자 사이에 모순은 정상이고 이런 일이 있다고 상대 수련생이 좋지 않고 수련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도 잘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은가? 자신도 사람 마음이 표현되어 나올 때 속인과 같지 않는가? 자신이 화를 낼 때도 속인의 행위가 아닌가?

이 일에서 수련생에게 감사하고 어떤 원망하는 마음도 없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수련생에 대한 원망심이 사라졌고 단지 감사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프린터와 컴퓨터를 연결해 다시 시도해 보니 모두 정상이고 사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일에서 내가 집착심을 찾고 자신을 제고했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2]

수련생 여러분이 모순이 생긴 후 자신을 찾기를 바라고, 밖으로 찾지 않기를 바란다. 정법 실증 큰일에 영향을 주면 안 되기에 간격이 생기면 안 되고 원망심이 생기면 안 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3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8/3439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