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안으로 찾아 법에서 수련하고 관념을 바꾸니 남편이 변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해서 지금까지 남편과의 심성 관은 늘 잘 파악하지 못했다. 안으로 찾으니 역시 나에게 남편을 얕보고, 원망, 질책, 쟁투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았다. 많이 닦아 버렸지만, 마음속 깊이 아직 깨끗이 닦아버리지 못한 것 같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을 제거할 때, 때론 잘 넘기고 때로 잘 넘기지 못한다. 지난 후 후회막심하고 너무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수련한 노제자인데 아직 이 모양인가.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한 단락의 법을 외웠다. “당신의 씬씽(心性)이 수련되어 올라오면, 예컨대 속인 중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욕을 한마디 해도 당신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이 아주 태연하며, 당신을 주먹으로 한 대 쳐도 역시 당신이 아무 말 하지 않고 한 번 웃고 지나간다면 이 사람의 씬씽은 이미 아주 높다.”[1]

전에 법을 읽을 때 한 번 읽고 지나갔다. 속으로 사회에서 누가 나를 때리고 욕하면 나는 대꾸하지 않을 수 있고 웃고 지나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진상을 알릴 때 욕하는 사람을 만나도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세뇌반에서 ‘전향’하지 않아 졸개에게 욕을 먹고 모욕당하는 것이 일상이라 전혀 개의치 않았고, 단지 그들이 가련해 보였다. 하지만 오늘 거듭 이 한 단락 법을 외울 때 갑자기 깨달았다. 평소 수련생 사이에 심성 마찰이 생길 때, 특히 남편이 까닭 없이 소리를 지르고 뼈를 깎는 듯한 상처 주는 말을 할 때 나는 언제 대꾸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태연했는가? 언제 웃고 지나갔는가? 뒤돌아보니 거의 없다. 설령 대꾸하지 않아도 속으로 불평했다. 몇 년간 이 한 단락 법을 거듭 배웠지만, 자신과 대조해 보지 않았는데 오늘 대조해 보니 깜짝 놀랐다. 나를 욕하거나 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이 듣기 싫은 말 한마디 해도 나는 변명했다.

그 원인을 보면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이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보지 않았으며 늘 인간의 옳고 그릇된 것으로 문제를 보고 사람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기억하라, 사람의 이치는 거꾸로 된 것이다.”[2] 하지만 나는 이 말씀에서 아직 반대의 이치로 옳고 잘못된 것을 보았다. 이것은 사람의 이치가 아닌가? 이 문제에서 나는 제고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에서 걸어 나와 신으로 되려면 문제마다 사람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 수련의 깨달음이 아닌가? 각자가 아닌가? 나는 자신을 각자로 되게 해야 한다. 어찌 사람과 사람의 이치로 쟁론하는가? 법리가 똑똑해진 후 관념을 바꾸고 남편과 수련생이 나를 질책할 때 맞받으려다가 삼킨다. 먼저 ‘대꾸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불편했고 속으로 자신을 위해 변명했지만, 서서히 마음속은 갈수록 조용해졌다.

어느 하루 내가 몇 명 수련생 집에 일 보러갔는데,최후 장기간 병업 상태에 처한 수련생 집에 갔을 때 수련생은 아주 괴로워했다. 수련생은 마음속의 괴로움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법에서 수련생과 교류했고 저녁 6시 발정념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7시쯤 됐다.

내가 문에 들어서자 남편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밤에 늦게 오고 집에 관심 없어, 이런 가장 생활을 더는 할 수 없고 이런 마음고생도 더는 할 수 없다며 이혼하자고 한바탕 듣기 싫은 말을 했고, 뜻밖에 그는 심장병과 고혈압이 있는 시골의 80여 세 노인에게 전화해 나에게 관여하라 했고 온종일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는 오후 2시에 나갔다. 우리 형제자매가 모두 대법을 수련해 엄중한 박해를 받았으므로 노인은 매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마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놀라 내 두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너의 언니, 또 사고 났다. 이거 어쩌면 좋아?”라고 했는데 이번에 몇 집 식구를 놀라게 했다. 내가 집에 돌아오자 갑자기 이런 일이 닥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동생이 전화해서 내가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으며 나에게 시골 엄마와 셋째 여동생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했다.

나는 엄마와 셋째 여동생에게 전화한 후 남편의 질책, 원망과 고함치는 것을 들었다. 화가 난 남편을 보고 속으로 마음이 평온하고 전혀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해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묵묵히 들었고, 들으면서 안으로 찾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는 나를 위해 걱정돼 이렇게 화를 낸 것이다. 이후에 늦게 오면 그에게 전화하거나 그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 비록 자신이 전화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타인의 전화로 전화할 수 있다. 어찌 이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사부님께선 우리는 작은 일이라도 타인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에 그를 거의 생각지 않는다. 늘 자신이 대법을 실증하는 바른 일을 하기에 남편이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대할 수 없으며 교란하면 더욱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여태 남편의 감수(感受)를 생각한 적이 없고 남편의 각도에 서서 그를 이해한 적도 없으며 늘 내 마음대로 행동했다.

사부님께서 전에 우리에게 일찍이 훈계하셨다. “실제로 대법제자의 생활은 이미 수련과 한 고리 한 고리 엮여 긴밀하게 용합된 것이다.”[3] 평소 나는 비교적 세심하지 않은 사람이다. 생활 속의 일부 작은 일은 마음에 놓지 않는데, 이런 작은 일에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남편은 이런 작은 일로 예를 들면, 화장실 불을 끄지 않았고 땅에 물을 흘렸고, 식사 때 밥을 흘리는 등으로 나와 다툰다. 매번 나는 그에게 여자 같고 남자답지 않다고 말했으며 속으로 그를 멸시했다. 지금 알게 됐는데 사부님께서 남편 입을 빌려 작은 일에서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고 점화해 주신 것이다. 나는 그에게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했는데 이것이 바르지 않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나는 진심으로 남편에게 사과했다. “모두 저의 잘못이에요. 당신을 위해 생각하지 않았고 당신에게 저를 걱정하게 했어요. 이후 집에 늦게 돌아오면 꼭 당신에게 전화해 알리겠어요. 당신 화내지 마세요. 다음에 꼭 주의하겠어요.” 남편이 천천히 화가 가라앉은 것을 보고 말했다. “전에 저를 도와준 수련생 언니 집에 갔어요. 장기간 병업 상태에 처해 있어 몹시 괴로워해 좀 더 머물다가 왔어요.” 남편은 듣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이튿날 일어난 후 남편은 미안해하며 나에게 어제 일은 자신이 잘못했는데, 그렇게 화를 내지 말아야 했고 더더욱 장모님에게 전화해 노인의 마음을 졸이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빨리 장모에게 전화해서 자신이 사과한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괜찮아요. 모두 저의 잘못이에요. 제가 잘못한 것이에요. 앞으로 이런 교훈을 받아들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고 시시각각 내 수련을 잊지 않겠어요.” 남편은 결국 어머니에게 전화해 사과했다.

그 후 남편은 변했다. 내가 더 늦어도 그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때론 자발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사를 했다. 나도 되도록 빨리 돌아와 밥하고 가정의 정상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시골 시장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납치됐다. 우리는 구출 준비로 점심에 돌아오지 못하므로 돌아와 남편과 상의했다. 이번은 처음으로 남편을 존중하고 그와 상의했으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말했다. “내가 가면 당신 점심은 어떻게?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나는 가지 않겠어요. 집에서 기타 일을 하면 돼요.” 남편은 내가 그를 존중하고 그의 의견을 듣고 전처럼, 전혀 그의 감수도 생각하지 않는 데서 남편의 의견을 묻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처음으로 남편은 존엄을 느꼈다. 그는 격동돼 나에게 말했다. “당신 꼭 가야 해요. 당신이 세뇌반에 납치됐을 때 수련생들은 모두 당신을 열심히 구출했어요. 당신이 어찌 가지 않을 수가 있어요? 가야 하고 나도 갈게요. 내가 길을 잘 아니 내가 운전해 줄게요.” 나는 듣고 놀랐다. 남편 태도는 의외여서 나는 말했다. “좋아요! 우리 수련생이 운전을 막 배워 길이 익숙지 않아 걱정됐는데, 내일 당신은 그의 차를 따라가면 되고 6시 반에 모모 수련생 집에서 그를 기다려요.”

말하고 우리 둘은 모두 기뻤다. 여태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전에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늘 나와 정반대였는데 지금 나의 관념을 바꾸니 남편은 변했다.

전에 나는 줄곧 남편과의 심성관을 잘 넘기지 못해 괴로웠다. 이번 법을 외운 것을 통해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사람의 관념을 바꾸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으니 상대방이 변했다. 나는 법의 위력, 선의 힘을 보았다. 동시에 수련의 즐거움과 현묘함을 경험했다. 나는 수련에 자신감이 생겼고 신사신법에 정념이 생겼다. 전에는 무사무아로 수련하고 선타후아의 각자로 되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늘 높아서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떻게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지 알았다. 사부님께서 여러 번 설법에서 가르치신 것처럼 “일을 하는 데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생각하라.”[4]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 7-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3]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4]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 9-2009년 워싱톤DC국제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7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7/3425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