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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2년 우리 시에서 수련생 몇 명이 잇달아 납치됐다. 당시 변호사를 청해 수련생을 위해 변호하고 이 기회를 이용해 현지 변호사 업계와 공안, 검찰, 법원 요원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과정에서 줄곧 안으로 찾고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며 정체로 협력했다. 당시 자료 배포, 스티커 붙이는 것과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것을 모두 아주 잘했다. 심지어 수련생을 구출해 내겠다는 집착심도 내려놓았고 변호사가 법정에서 파룬궁이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몇 마디만 해주기 바랐다. 하지만 일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첫 번째 수련생은 재판하기 전,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치료받은 지 한 주 만에 세상을 떴다. 사악은 두 번째 수련생에 대해 대충대충 법정을 열었고 변호사에게 통지도 하지 않은 채 판결을 선고했다. 세 번째 수련생의 안건은 우리 성 변호사 말대로라면 정말 만 걸음 물러나 그들 공산당 말대로 해도 판결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악이 집을 수색할 때 대법 책 몇 권만 찾아냈을 뿐이다. 하지만 사악은 여전히 변호사에게 통지하지 않고 몰래 법정을 열어 판결을 선고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예전에 말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 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한 일체 일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이 몇 해 동안 나는 줄곧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안으로 찾아보았다. 어느 한 번 수련생과 교류할 때 그는 말했다. “당시 저는 많은 동료와 친척, 친구에게 변호사가 파룬궁을 위해 변호하니 그들에게 방청하러 가라고 요청했어요. 그들이 진상을 명백히 알기 바랐기 때문이었죠.” 이것은 매우 강한 마음이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법에서 우리는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속인인 변호사가 진상을 알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자신이 진상을 똑똑히 알리지 않고 속인에게 하라고 했으니 구세력이 어찌 교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차츰 알아차리기 매우 어려운 집착심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결과를 구하는 마음이다. 흔히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말로는 안으로 찾는다.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 대법제자로서 모든 기회를 이용해 무조건 자신을 바로잡지 못했다.

수련생을 구출할 때 시종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자신이 법의 요구에 따라 했으니 보답을 받기 바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련생이 구출돼 나오든지 하는 이런 것이다. 비록 요구가 아주 낮지만 그래도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3]라고 언급하셨지만 많은 경우 나는 해내지 못했다.

박해받은 수련생 가운데 어떤 사람은 안으로 찾으면서 수많은 부족한 부분을 찾아냈고 제거하려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결국 판결 받았다. 수련생들도 안으로 찾는 것이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박해를 면하려는 마음, 그곳에서 나오려는 마음은 없는지? 이런 것들은 모두 구하는 마음이다. 사부님께서는 “잡혀 왔으니 나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겠다. 여기에 왔다면 나는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다.”[4]고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모두 법을 실증할 수 있는데 비교해보면 우리 마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수련생에게 병업 현상이 나타나면 어떤 수련생은 도와 집착을 찾아주고, 어떤 수련생은 발정념을 해주며 어떤 수련생은 자신에게도 이 방면에 문제가 없는지 깊이 찾아본다. 병업에 처한 수련생 가운데 매우 정진하는 수련생도 있는데 안으로 찾고 연공을 견지하며 약을 먹지 않거나 어떤 수련생은 힘이 닿는 데까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어떤 때 아주 길게 끌고 심지어 세상을 떴는데 끝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다.

이 몇 년 동안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에게 우주가 얼마나 크고 각종 요소, 각종 인연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며 무슨 계약을 했는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말씀해주셨다. 우리가 어느 정도나 알 수 있을까? 어찌 우리의 그토록 제한된 생각에 따라 배치할 수 있겠는가?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5] 좋고 나쁨, 떠날 건지 머물 건지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시고 우리는 무조건 신사신법하면 된다. 오늘날 진수(真修)제자는 응당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야 하지 않겠는가? 구세력이 층층 깡그리 제거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이 줄곧 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바라고 그것도 바라나니 가엾고 가소롭구나”[6]

얕은 견해이니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도(道) 중에서’

[6]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 2-똑똑히 보아라’

원문발표: 2016년 1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18/3390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