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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를 마음에 들어오게 하면 일에 부딪혀도 움직이지 않는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이곳은 여러 해 수련한 대법제자 몇 명이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수련생 몇 명은 지금까지 병업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지의 법 실증과 중생구도에 일부 부면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어떻게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 그리고 병업 관을 돌파할 것인가? 대법수련 중, 수련생마다 각자 다른 길이 있다. 같은 문제도 다르게 대하고 곧 모방하지 않으며 또 그대로 하지도 않는다. 오직 참고로 할 뿐이다.

1. 법 공부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법제자로서 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한 후부터 우리의 전체 운명을 사부님께서 새롭게 배치하셨다. 생활 중의 일들은 수련과 연관이 있다. 수련자로 말하자면 자기의 심성 수련을 잘하여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이 우주의 특성진·선·인(眞·善·忍)에 부합되고 무조건 대법에 동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여러 번 우리는 모두 우주 고층 공간에서 왔다고 하셨다. 대법제자는 방대한 우주 천체의 주와 왕이다. 우리 매 개인의 수련과정은 곧 자신의 우주 천체의 무수한 생명이 바르고 좋게 변하는 과정이고 역시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이다. 또 역시 신 우주 대궁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다. 우리가 법 공부할 때 내심이 움직이면 사람 마음이 개변되고 좋지 못한 마음을 버릴 수 있다. 만약 장기간 제거하지 못한다면 곧 구세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법에 동화되지 못하므로 우리는 자기의 중생구도를 방해한다. 신 우주는 무사(無私)의 기점이기에수련은 마땅히 무사무아(無私無我)의 대선을 수련하고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현실 생활 중에서 참지 못하고 늘 성질을 부리며 물질이익에서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다. 세 가지 일을 사람 마음으로 하고 자기 수련을 중시하지 않고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는 법공부를 형식으로 하지 말고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여 빨리 제고해야 한다. 사람 마음으로 공이 올라가지 못하게 뒷다리를 당기게 하면 안 되고, 심성의 늦은 제고로 정법 노정을 늦추면 안 된다. 또는 수련할 듯 말 듯하여 대관 대난으로 만들어 둔다. 사부님께서는 “공(功)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라”[1], 자기를 잘 수련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법공부를 할 때는 마땅히 법이 마음에 들어와야 하고 자신을 법에 대조하여 스스로 법이 지도하게 해야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된다.

2. 수련인은 어떠한 시기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안팎의 교란을 받지 않는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미혹 중의 수련이다. 우리 몸에서 일체 감수는 모두 육감이지 우주의 진실한 표현이 아니다. 병업 상태에서도 제일 좋기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곧 안으로 찾으면서 무조건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미혹 중에서는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지 못하고 사람 마음과 터무니없는 관념의 잡생각으로 쉽게 구세력이 트집을 잡아 박해하게 틈을 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공간장 일체는 모두 당신 대뇌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천목으로 볼 때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보면 진실한 것이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보는 것은 모두 가짜로서, 이것이 바로 자심생마(自心生魔)이며, 수심이화(隨心而化)라고도 한다.”[2]

나 자신도 여러 번 허리가 갑자기 아파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뒤집지 못해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였다. 이런 정황에 직면하여 내가 먼저 생각한 것은 자신의 심성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 점이 있는가를 생각하고 자신을 바로잡고 정상적으로 세 가지 일을 하였다. 일마다 원인이 있는 것으로 내 생각에 이 역시 제고의 기회인 것으로 여기자 허리도 빨리 좋아졌다. 어떤 수련생 역시 같은 일에 부딪히자 신체에 그 무슨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여 결국 반년을 끌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는 바르지 않게 인식한 것이고 마음이 법에 있지 않아 조성한 번거로움이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대법을 배웠으니, 당신이 부딪힌 좋은 정황이든 나쁜 정황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라고. (박수) 왜냐하면, 당신이 대법을 배웠기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3]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믿는가는 관을 넘는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수련생 A는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하는 중에 갑자기 신체가 불편해졌는데 머리가 아파 땅바닥에 뒹굴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잘 걷지도 못했다. 당시 그는 겁이 나서 자기가 수련인임을 잊었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네 가지 암 증상과 요독증이 검사결과였다. 의사가 검사 결과를 알려주자 가족들은 놀라 울고불고하는데 그는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는 사부님과 대법을 생각한 것이다. 그는 가족에게 말했다. “오직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실 수 있다.” 의사가 주사기로 그녀의 복수를 빼려고 하는데 순식간에 복수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는 이 기적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주변의 친척 친구들도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왜냐하면, 이 일은 당시에 사람 마음이 움직여 속인의 치료에 의지하려고 병원에 입원했던 것인데 당시 병원이 치료할 수 없게 되자 사부님을 생각했다. 결국, 그가 대법을 굳게 믿고 신체의 병업 가상을 분별하여 자신을 사부님께 맡긴 것이다. 이렇게 그는 속인의 절망 중에서 나올 수 있었고 동시에 곧 퇴원했다. 그러나 사실은 불필요한 굽은 길을 걸었고 이 굽은 길은 사람 마음이 조성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2], 그러므로 많은 좋은 일은 마음이 바르지 않아 나쁜 일로 변한다. 많은 일이 나쁜 일 같지만, 오직 우리가 심성을 제고하면 모두 좋은 일이다. 대법제자는 관을 넘을 때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의 행위가 세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법을 실증한다면 이 관은 곧 잘 넘길 것이다. 이는 바로 수련의 과정이고 역시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3. 병업 중의 수련생을 어떻게 보는가?

대법제자는 정체이다. 수련생들은 모두 병업 중에 있는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을 해 주는 것을 아주 중요시하는데 바른 작용을 한다. 한 수련생이 병업 상태가 아주 엄중했다. 몇십 명 수련생들이 비바람 속에서도 빈틈없이 그를 둘러싸고 연속 한 시간 한 시간씩 발정념을 하였는데 많은 수련생이 명확하지 못했고, 병업 중의 수련생은뜻밖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 그가 특수한 것인가? 사부님께서 관계하시지 않은 것인가? 깨달아야 할 것은 마난 중의 수련생은 무슨 특수한 것이 없는데 물론 구세력의 박해든지 자신의 업력이 조성한 것인지를 막론하고 그 본인이 마난 중에서 걸어 나와야만 이 법은 승인하므로 수련은 누구도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수련생은 그를 특수한 예로 인식하고 그가 엄중하므로 그의 표면현상을 개변하려고 하는데 이는 역시 사람 마음으로 정법수련을 본 것이다. 그럼 더욱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여 마난 중의 수련생을 병업 혹은 마난이 가중되게 하여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주위의 수련생들은 마땅히 침통한 교훈을 총결하고 사람 마음으로 마난 중의 수련생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누락이고 쉽게 구세력이 틈을 타게 하고 주위 수련생들의 사람 마음을 제거하기 위하여 병업 상태 수련생의 정황을 더욱 엄중하게 만든다. 마난 중의 수련생은 오직 자신이 법리에서 제고해야만 구세력의 배치를 벗어날 수 있다. 교훈은 심각한 것이고 수련은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우리가 수련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법리에서 인식하고 그들이 사람 마음에서 벗어나 수련의 길에서 마난을 정념으로 대하고 사악의 교란을 피하게 하는 것이다.

정념으로 말하자면 내 생각은 평소의 사상과 행위가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해야 곧 정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들은 발정념을 하는 시간이 길면 효과는 더욱 좋다고 인식하는데 이는 사부님의 발정념의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면 곧 어떻게 해야 하고 에누리는 없어야 하고 고치면 안 된다.

이상은 개인의 수련체험으로 바르지 않은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하고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 파룬따파’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3]리훙쯔 (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6년 12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원지>이성 인식원문출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8/3386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