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직장 동료가 평소 소뇌 위축증으로 길을 잘 걷지 못했다. 1998년, 나는 항상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내 사무실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병이 좋아졌습니까?”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해 나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동료도 14년간 결장염을 앓고 있었고 나중에 암세포로 증식했는데 파룬궁수련을 했더니 4일 만에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는 말을 그를 통해 들었다.
이렇게 나도 대법수련에 입문했다. 그때부터 앓고 있었던 심장병, 장염, 관절염, 간경화, 신경쇠약, 두통, 머리 멍한 증상, 귀 울리는 증상 등이 모두 서서히 완치됐다. 대법수련 18년간 나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는데도 몸은 점점 건강해졌고 얼굴에 원래 주근깨가 많았는데 없어졌고 피부는 부드럽고 매끈해졌다.
시아버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다. “너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서 신체와 성격이 모두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정말로 그렇다. 수련하고 나서 신체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파룬궁은 수련자에게 명, 리와 각종 욕망을 담담하게 보라고 요구한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쩐싼런’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다.
내가 전기 고문당할 때 사부님께서 보호하셨다.
중공이 대법을 박해한 후, 나는 2001년 4월 23일에 베이징에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는데 베이징 순이셴 경찰서에 납치당했다. 경찰들은 나를 핍박해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전기 고문을 가했다. 나에게 수갑을 채운 채 경찰 몇 명이 에워싸고 경찰서에 있는 한 사무실로 끌고 가 사람들이 그들의 불법행위를 볼까 봐 두려워 문과 창문을 꼭 닫았다.
경찰이 어디 사람이냐고 묻자 나는 응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리치면서 대걸레를 가져와서 수갑을 비틀어 짜겠다고 했다. 철로 만든 수갑이라서 걸레로 비틀면 손은 불구가 될 것이다. 나는 수갑 채운 손을 허벅지를 둘러 다리를 안고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전기 몽둥이 두 개를 나의 얼굴과 목 그리고 몸에 지속하여 고문했고 전기 봉에서 파란색 불꽃이 뿜어 나왔다. 한참 동안 고문하다가 멈췄고 계속 심문했으나 나는 응대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오로지 한 가지 염(念)을 냈다. ‘나의 생명은 사부님께서주신 것이다. 나의 생명으로 법을 위할 수 있다면 대법을 위해서 바른말 하는 것은 응당한 것이고 주소를 말하면 그 지역과 직장 많은 사람이 모두 연루되어 박해받을 것이다. 누구도 피해 봐서는 안 된다.’
이때 한 경찰이 뜨거운 물을가져와 갑자기 내 상의를 잡아당기고 뜨거운 물을 피부에 붓고는 전기 봉을 옷 안에 넣었는데 이상한 것은 전기가 흐르지 않았다. 그들은 전기 봉이 물에 닿아도 왜 전기가 흐르지 않는지 매우 궁금해했다. 그래서 나의 신발을 벗기고 발바닥과 발등에 아무리 대도 전기가 흐르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 한 명이 소리치면서 자기가 감전됐다고 했다. 당시 나는 다만 나일론양말을 신고 있었다. 경찰들은 나를 에워싸고 서로 쳐다볼 뿐이었고 아무도 말을 못 하고 궁금하고 놀라면서 공포 속에 있었다.
경찰들은 전기봉이 고장 났는지 확인해 보려고 자신의 양말 안에 있는 발목에 대자 허벅지마저 튀어 올랐다.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발바닥에 대면 감지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사부님께선 나를 보호하셨다.
남편이 외도한 후
파룬궁을 수련한 후 내 신체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기에 본래 남편은 내가 연공하는 것을 매우 지지했었고 예전에는 남편과 시부모님이 나와 연공을 같이 했었다.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내가 연공장에 갈 수 없게 되자 남편은 왜 연공하러 가지 않느냐고 묻자 나는 잡히면 어떻게 하냐고 대답하자 남편은 잡히면 도망치면 된다(뜻은 사람을 찾아 나를 구한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박해가 3년이 지나자 남편은 극심한 압력을 감당할 수 없었고 더욱 사회적 도덕의 하락세로 남편은 현장 책임자를 하면서 외도를 했고 그 여자는 임신했는데 남편에게 이혼하라고 죽음으로 협박했다. 결국, 남편은 나를 떠났다.
여자로서 남편이 배신한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내심 깊은 곳에는 이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수련하는 것은 정법이기에 남편이 나를 위해 노력한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그와 아이들을 위해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어떤 고통을 받아도 이혼만은 동의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랑 이혼하기 위해 매일 술 먹고 집에 돌아오면 나를 때렸고 그 후 아예 몇 개월 동안 집에 오지도 않았고 그다음 남편이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고 돈으로 우리 측 변호사를 매수하고 깡패들을 이용해 공갈 협박하며 이혼하지 않으면 친정 식구들이 다칠 것이라고 했다. 그때 우리 친정은 빈집이었는데 누가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어쩔 수 없어 이혼에 동의했다.
비록 나는 엄청난 고통을 감당했지만 전 남편에 대한 원망은 없다. 길에서 나를 피하는 그의 아내를 만나면 주동적으로 인사했고 속으로 그녀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나와 어떤 인연이든 간에 내 옆에 오기만 하면 나는 그를 구도할 책임이 있고 진상을 알려야 하고 재난을 피하게 해야 하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세간에 온 사명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전남편이 아이들 양육비를 줄 때, 나는 매번 친필로 편지를 써서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고, 진상을 알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고 그도 편지를 아내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전남편이 딸에게 용돈을 많이 주어서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끼칠까 봐 걱정되어 그의 집에 가서 그의 아내에게 딸 용돈은 걱정 안 해도 되고 이후 아이 아빠에게 주지 말라고 하고 만약에 필요하면 그때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켰고 그 후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가 납치당했을 때 그녀는 내 딸에게 구치소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이혼한 후 연세 드신 시부모님에게 나는 최대한 시간을 내어 보러 갔었고 먹을 것을 사 들고 시어머니에게 진상자료를 보여주면서 그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시어머님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는 착실한 사람이라고 하고 평소에 아이 고모에게 심부름을 시켜서 먹을 것을 보내셨다. 친척 중에서 시어머님에게 절에 가자고 하면 자기는 하려면 파룬궁을 한다고 했고 지금은 시어머님께서 가끔 대법 책을 보고 계신다.
딸이 직장에 다니고 나서 잠시 아빠 집에서 지냈는데 나는 항상 딸에게 남을 많이 배려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교육했다. 집에서는 일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 태도를 따지지 말라고 했다. 전남편 아내가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나는 딸에게 가보라고 했더니 딸이 만두를 빚어 병문안을 갔다.
아빠도 아이가 억울함을 잘 참는다고 했고 친구들은 이것은 엄마가 교육을 잘한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부님의 대법이 좋기 때문인 것을 나는 알고 있고 이런 좋은 대법을 얻지 못했다면 이런 일에 부딪히면 진작 화가 폭발하여 이지적이지 못한 일들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편의 외도 때문에 자살하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초탈하고 태연하며 활달하고 명랑한 것이 모두 대법의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매일 매우 즐겁고 기분이 상쾌하게 생활하고 있고 마음속으로 원망, 쟁투, 원수가 모두 없으며 오로지 사부님과 대법에 무량히 감사한 마음과 주변 중생들에게 아름다운 기원을 깊이 바랄 뿐이다. 사람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축복받아 모두 대법의 보호로 신체 건강하고 일생 무사히 지내기를 바란다.
사부님의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 2016년 12월 0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6/12/4/3342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