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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관념을 타파하고 법에서 인식하다

[밍후이왕] 최근 우리 시 일부 수련생들이 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할 때 납치됐다. 이번에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예전처럼 그렇게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예전에는 수련생이 ‘박해 당하러’ 갔다고 생각하고 ‘기를 쓰고’ 발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했을 뿐만 아니라 참여한 경찰을 증오했다. 이번에는 마음이 안정되어 더는 감정에 이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즉시 정법의 기점에 서서 교란을 부정하고 아울러 정념으로 수련생의 정념정행을 가지했으며, 법에서 부족함을 바로 잡고 교란을 타파했으며, 진상을 알려 박해에 참여한 모든 경찰을 구도했다. 설령 우리가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 해도 구세력이 틈을 타고 중생을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녀들은 박해를 당하러 간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러 간 것이다. 진정으로 박해 당하는 사람은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한 그런 사람이며 그들이야 말로 가장 슬픈 생명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와 한 수련인으로서, 내가 말하건대 수련인은 적이 없다. 당신들은 오로지 사람을 구원하는 몫이 있을 뿐, 사람의 수단과 사람의 이치로 사람을 징벌하고 사람을 판결(判決)하는 몫은 없다.”[1]

동시에 수련생과 교류해 정체적으로 인식을 제고하고 관념을 개변했으며, 구세력이 우리의 누락을 이용해 중생을 망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중생은 모두 인연을 맺으러 왔고 우리는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원용할 수 있을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2] 법리가 똑똑해 진 후 다시 강대한 발정념으로 모든 교란을 부정하고 다시 가서 수련생을 구출하니 정말로 상황이 즉각 변했다. 우리는 그것을 좋은 일로 변하게 했는데 모두 시험지였고 모두 승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소중히 여길만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A수련생(납치당한 수련생의 가족)이 나를 찾아와 박해 당하는 수련생에 대해 말하고 그녀의 집착을 말하면서 정에 이끌려 원망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당시 나도 따라서 걱정했으나 마음속에는 그 수련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고, 더는 그녀의 집착에 집착하지 않고 아주 조용했으나 그래도 이 일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표시하고 싶었다.(막 인식한 것인데 과시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B수련생에 대해 말했는데 그녀는 이 일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달랐다. 당시 그저 교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수련생과 인식을 교류함으로서 수련생을 일깨워주고 자신을 수련하며, 정과 원망을 내려놓고 그들의 정념을 가지해 사람을 구하고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한다고만 생각했지 자신에게 무엇이 틀렸는지 의식하지 못했고 안으로 닦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자 B수련생이 나를 찾아왔다. 아주 강한 원망을 지니고 나에게 끊임없이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누가 A수련생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A수련생은 180도로 돌변해 그녀와 충돌을 일으키며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뜻인즉 내가 그 수련생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해석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꾸만 원망하는 것이었다. 나는 좀 귀찮아하면서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내놓고 하세요.” 하지만 자신이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재빨리 깨닫고 즉각 그녀에게 선의적으로 해석했더니 그녀도 개운해 하면서 당사자 수련생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말하고 말하다 뭔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더 말하지 말죠. 우리는 모두 잘못한 것 같아요. 우리는 이때 다른 수련생의 문제를 담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도 깨닫고 재빨리 자신을 바로 잡고 돌아갔다.

수련생이 돌아간 후 나는 마음이 밝고 눈앞이 환해지면서 법에서 깨닫게 됐다. 원래 나는 다른 수련생의 문제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여겼고, 이제는 수련생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됐으며, 더는 밖을 향해 보지 않고 밖을 향해 원망하지 않게 되어 자신은 수련할 줄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수련을 제 위치로 하지 못했음을 단번에 알게 됐다. 또 한 층의 것을 닦아 버리지 못했는데 그게 바로 사상 중 다른 수련생에 대해 형성된 ‘관념과 인식’이었다. 이전에 밖을 향해 볼 때, 수련생이 자신의 인식과 부합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형성된 ‘관념’이 아직도 머릿속에 존재했던 것이다. 이 관념은 아주 깊이 숨어 있어 쉽게 발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바로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었다. 상대 수련생은 이미 제고했고 이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또 한 가지를 깨닫게 됐다. 즉 자신에게 언제 형성된 것이든, 어느 사람에 대한 ‘관념과 인식’은 우리의 중생 구도를 심각하게 교란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다른 수련생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건 즉각 나와서 작용하면서 간격을 만든다. 상대 수련생이 우리의 정념의 가지가 필요할 때면 그것이 먼저 나와서 방해 작용을 해 당신에게 상대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게 한다. 밖으로 상대 수련생의 문제를 찾으면서는 자신이 안으로 수련하거나 솔직한 마음이나 순수한 정념으로 상대 수련생을 가지하지 못한다. 더 깊이 파보면 구세력과 비교적 유사하다. 설령 수련생에게 발정념을 한다 해도 이런 시커멓고 끈적끈적한 물건도 따라서 나갈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이런 정념을 내보내면 어떤 작용을 일 수 있는가? 답안은 부정적이다. 이 역시 나에게 한 가지 일을 알려줬는데 왜 우리가 많은 때 발정념으로 수련생을 구출하는 효과가 오히려 몹시 나쁜가 하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해주던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우리 시의 한 수련생에게 병업이 엄중해 30여 명 수련생이 계속적으로 발정념, 교류하고, 전 시의 수련생이 모두 협력해 발정념 했으나 나중에는 여전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수련생들은 의문이 있긴 했지만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어디에서 법에 부합되지 않는지 깨닫지 못했다. 이 물음표는 줄곧 내 마음속에 걸려 있었다. 이번에는 전부 알게 됐다. 바로 이 물건, 즉 관념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어 우리를 그 한 층의 법의 표준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고 승화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할 수 없게 했던 것이다.

나는 또 깨닫게 됐다. 관념 자체가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일부분에 속하며 아울러 구세력에게 통제를 당한 것이다. 이를 깨닫게 되자 나는 알게 됐다. 나는 반드시 법에 부합되지 않는 층층의 이 관념을 타파해야 한다! 오직 수련생에 대한 관념을 타파하고, 자아를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수련생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길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3]임을 알 수 있다.

내 인식이 승화되자 참으로 모든 일이 다 좋은 일임을 느끼게 됐다. 당신이 법에 서서 인식하고 자신을 수련할 때, 이른바 ‘나쁜 일’은 진정으로 전부 좋은 일이 되고, 그건 전부 당신에게 펴놓은 하나하나의 계단으로서 당신이 오를 수 있는지 본다. 이런 일이 없으면 당신은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는가? 나는 참음의 묘함을 느끼게 됐다. 만약 당시에 참지 못하고 밖을 향해 보면서 원망하고 수구하지 않으며 싸웠다면, 수련생 간에 간격을 빚어낼 것이며 그러면 구세력에게 틈을 보여 수련생 구출을 교란했을 것이다.

조금의 깨달음으로서 단지 자신 현재의 층차에서의 인식일 뿐이다.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7》〈시카고시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시카고 법회〉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 수련소감> 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23/3379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