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산둥 대법제자 설매(雪梅)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나는 나의 수련심득을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법에 있지 않는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1. 끝없는 고해
나는 이멍산(沂蒙山) 지역의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장성한 후 이웃 마을에 시집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 생활은 고달팠지만 그래도 살만 해 어느덧 십몇 년이 지났다. 나는 생활에 큰 욕심이 없어 그냥 이렇게 산다고 해도 고생스러운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정신병에 걸렸고 나의 고생도 시작됐다.
남편 치료에 집안의 모든 저축을 다 썼다. 하지만 이런 정신병은 좋았다 나빴다 했다. 이때부터 남편은 일하지 못하고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일 약을 사는데 돈을 써야 했다. 약도 내가 시간에 맞춰 먹여야 했는데 그는 늘 내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고 했다. 병이 도지면 미친 듯이 때리고 욕해서 내 몸에는 상처투성이였다. 나는 남편을 돌봐야 할뿐만 아니라 연로한 시어머니도 돌봐야 했다. 그리고 농사일에 집안일에 다 나 혼자 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몸에 병이 생겼다. 기관지염, 담낭염, 불면 등등. 이 병들은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게도 한다. 밤마다 꼬박 잠을 못자니 정말로 죽기만 못했다. 하지만 죽을 수 없었다. 두 아이는 아직 어렸고 학교에 다닌다.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불행인데 만약 엄마까지 없으면 더욱 고생일 것이다.
나는 자주 깊이 사색한다. 죽지도 못하고 살 수도 없는 생활이 언제 끝이 나는가? 사람이 사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아마도 인연이 닿지 않아서였을까. 오늘날 생각해도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1999년 전에 우리 마을에 파룬따파를 수련한 사람이 1백여 명인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전히 생활의 고해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2. 구도되다
2002년 봄, 나는 우리 집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마을의 왕씨 성을 가진 아저씨네 밭이 우리집 밭과 닿아 있다. 그도 농사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병으로 비실비실한데다가 혼자서 힘겹게 일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당신 몸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한 가지 기공이 있는데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어요. 수련할 수 있겠어요?” 나는 무슨 공이냐고 물었고 그는 파룬궁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못하게 하잖아요?” 그는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날조하는 겁니다.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어요.” 나는 내 병만 고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었다. 왕씨 아저씨는 말했다. “만약 배우고 싶다면 우리 집에 책이 있어요. 이 공을 배우려면 반드시 책을 봐야 해요. 하지만 책은 한 권밖에 없으니 우리 둘이 번갈아 봐야 됩니다.”
왕씨 아저씨네 집에서 ‘전법륜’을 가져온 후 왕씨 아저씨는 재삼 당부했다. 책이 매우 소중하니 잘 보관해야 한다고. 그는 내 남편이 훼손할까 봐 걱정했다. 나는 말했다. “이는 생명을 구하는 책이니 반드시 잘 보관할겁니다. 마음 놓으세요.” 저녁에 남편이 잠들자 나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책에서 말씀하셨다. “이 우주 중에는, 불가(佛家)의 말에 의하면, 속인 중의 일은 모두 인연(因緣) 관계가 있어서 속인들에게는 바로 이렇게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존재한다는,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예전에 나쁜 일을 하여 생긴 업력(業力) 때문에 병이나 마난(魔難)이 조성된다.”[1] 여기까지 읽자 나는 이 책이 정말 좋다고 느껴졌고 구절마다 내 마음의 벽을 꿰뚫고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밤중이 되어 남편이 깨어날까 봐 침대에 누워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보았다.
며칠 지나 또 왕씨 아저씨를 보았다. 그는 나에게 한 번 다 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다 봤는데 더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며칠 더 보라고 하면서 시간을 내어 자기 집에 오면 연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내가 5장 공법을 다 배웠을 때 책도 세 번 보았다. 왕씨 아저씨는 말했다. “저도 책을 봐야 해요. 이전에 우리 마을에 80여 집이 대법을 배웠는데 지금은 아마 많은 사람이 안 배울 겁니다. 당신은 그 사람들 집에 가 봐요. 당신에게 책을 양보할 수 있는지 물어봐요.”
한 달 넘게 법공부하고 연공해 나의 심신은 이미 천지가 뒤집히는 변화가 나타났다. 모든 병이 다 나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은 마치 지붕창을 열어놓은 것처럼 밝았다. 나는 사람이 세상에 온 목적을 알았고 사람은 무엇 때문에 고난이 있는지 알았다. 고난의 근원을 알고 더는 생활 속 고생 때문에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대법을 끝까지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왕씨 아저씨의 안내로 나는 대법 책이 있는 집을 한 집 한 집씩 방문했다. 아직도 법공부를 하는 사람은 자신도 봐야 하기에 나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잠시 안 배우는 사람 역시 이 책이 너무 소중해서 나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나는 낙심하지 않았다. 반드시 80개 집을 다 찾아서 한번 물어보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저녁 큰 비가 내리는 중에 나는 우산을 쓰고 계속 방문했다. 남편의 사촌 형네 집에 왔을 때 아주버님과 형님이 열정적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아주버님이 말했다. “우리 집에 책은 있는데 나와 자네 형님이 다 보고 있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주버님은 나를 위안했다. “조급해하지 말아요. 반드시 방법을 찾아 책을 드릴게요.”
그 때는 한창 사악이 광적으로 대법을 박해할 때라 대법 책을 출판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 아주 많이 훼손시켰다. ‘전법륜’ 한 권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대법은 이렇듯 신기했다.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하려고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체 수련의 기회를 제공해 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버님은 나에게 ‘전법륜’ 보서를 주셨다.
이 책이 어렵게 구한 것임을 알기에 나는 줄곧 조심스레 보관하고 아꼈다. 어디에 가도 갖고 다녔는데 이후에 외지에 가서 7년간 일을 하면서도 줄곧 가지고 다녔다. 이후에 수련생들이 책을 만들 수 있고 또 새로운 판본이지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한 번 한 번씩 개자(改字)해 지금까지도 이 ‘전법륜’으로 법공부를 한다.
3. 고해에 가벼운 배 띄우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연공(煉功)하는데 왜 늘 번거로운 일과 마주치는가? 속인 중의 번거로운 일과 거의 비슷하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알게 됐다. 수련한다고 해서 어떠한 고생도 없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 고생은 여전히 시시각각 나를 따른다. 하지만 법을 얻은 후부터 나는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2]를 견지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인류사회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반대이다. 사람이 난(難)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3]
남편의 큰 형은 군부대의 고위 군관이다. 내 아들도 큰 아버지 있는 곳에 군복무를 하러 갔다. 남편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알고 어느 날 저녁 나를 집에 가뒀고 때리고 욕을 했다. “당신 만약 또 파룬궁을 연마해 아들의 앞길에 영향 줬다가는 몇 번을 죽어도 갚지 못할 거야!” 욕하면서 쫓아와 때렸는데 무슨 물건을 들어 내 등을 때렸는지 당장에서 기절했다. 그는 또 나를 침대에 끌고 가 옷을 벗기고 담배꽁초로 나를 지졌다. 나는 데어서 깨어났다. 그날 밤 그는 담배꽁초로 내 온 몸을 지져 온통 물집이 생겼다. 나는 끊임없이 속으로 외웠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사부님 구해주세요.”
날이 밝자 남편도 지쳤는지 잠들었다. 나는 그제야 집을 뛰쳐나왔다. 이웃들은 내 얼굴이 붓고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병원에 데려갔다. 검사하니 늑골 한 대가 부러지고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이웃과 의사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예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7․20 이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들은 이 수련의 과정 중에서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는 것과 한데 어울려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법을 얻은 사람들은 그들의 개인 수련 그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 그들의 주요한 과제는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고 법을 실증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마침 법을 실증하는 때를 만나 당신도 동참하게 됐으며 동시에 또 개인 수련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당신은 일부 문제가 좀 복잡하다고 느낄 것이다.”[4]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 예를 들어 말해 보자. 당신의 금후 인생행로 중의 각종 업력(業力)을 모두 집중시켜 그것의 일부분을 없애버리는데, 절반을 없애버린다. 나머지 절반도 당신은 넘지 못하는데, 산보다도 더 높다.”[1] 사부님께서 개시해 주셨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그것을 무수한 여러 몫으로 나누어 당신이 수련하는 각개 층차 중에 배치해 놓고,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게 하고, 당신의 업력(業力)을 전화(轉化)하여 당신의 공을 자라게 한다.”[1]
사부님의 법은 이렇듯 간단명료해 알기 쉬운데 법리는 매우 심오하다. 나는 내가 깨달을 수 있는 법리로 마음속 매듭을 풀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감당하셨는지 모른다. 나는 이 고통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남편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심 남편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그의 주의식(主意識)이 똑똑하지 않기에 자신이 얼마나 큰 업력을 조성했는지 모르는데 장래에 어떻게 갚을 것인가? 나는 입원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아주 빨리 나았다. 나는 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속에 뛰어 들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수련생과 보행해 십 몇 리 떨어진 마을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왕복 30여리 산길을 걸으며 나는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특히 돌아올 때 작은 강을 따라 걸었는데 강에 물이 얼마 없었다. 발밑에 크고 작은 자갈을 밟는데 마치 구름을 밟는 것처럼 홀가분했다. 나는 자신이 날아서 집에 돌아온 것 같았는데 그 느낌은 정말로 기묘했다.
딸은 학교에 가야하고 남편은 약을 먹어야 했기에 집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 나는 외지에 일하러 갔다. 법을 얻었기에 어디에 가도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잊지 않았다. 자료가 없으면 여러 색상 분필을 사서 저녁시간을 이용해 나가서 진상 표어를 썼다. 전봇대, 담벼락, 큰 나무, 교각(橋墩), 돌로 쌓은 도랑,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면 다 가서 썼다. 이후에 분필로 쓴 표어는 빗물에 쉽게 씻겨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크레용으로 썼다. 외지에서 일하는 5년 동안 나는 얼마나 되는 표어를 썼는지 모른다.
딸은 졸업한 후 시내에 직장을 구했다. 나는 또 시내에 가서 2년 일했다. 외지에 있는 여러 해 동안 줄곧 혼자 수련했다. 시내에 와서 수련생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이 일념이 있자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셨다. 어느 날 아침 시장에 한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고 있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다가가 수련생에게 나도 대법제자인데 자료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련생은 열정적으로 나를 그녀 집에 데려갔다. 이때부터 나는 진상을 알리는 자료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단체 법공부에도 참가하고 수련생과 함께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사람을 구했다.
2014년 우리 마을은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게 됐다. 시어머니가 다른 마을 셋집에 들기 싫어하셔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 해 동안 일해 모은 돈으로 우리 집 밭에 세 칸짜리 집을 지었다. 저녁이 되자 시어머니와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기에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취사용 막 옆에 간이 천막 하나를 더 지었다. 작고 낮아서 작은 침대를 하나 놓으면 바닥에는 나 한 사람만 허락하는 자리였다. 땅에 서서 ‘미러선야오(彌勒伸腰)’할 때면 손이 천정에 닿지 않을 정도다. 사면에 바람이 새고 여름에는 막 안에 삼십 몇 도이며 겨울에는 영하 십몇 도였다. 하지만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필경 나에게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것이다. 이 막에서 나는 근 3년을 지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속인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추구하지 않고; 속인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속인이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1]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 일부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1] 나는 잊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을 따라 진정한 집을 돌아가겠다!
생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사부님의 정법도 최후에 다다랐다. 나는 법을 얻은 이후 생활속 고생은 이미 고생스럽지 않았다. 반대로 조사정법하고 신의 길에서 걷는 행복을 경험했다. ‘사은송’에서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중생을 위해 왔는데 조사정법하여 고해에 내려감을 어찌 두려워하리오.” 인간세상이 비록 망망한 고해이고 나는 작은 배 한 척이라 해도 사부님의 법선이 있기에 세찬 바람과 커다란 파도에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마음고생’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밍후이왕 제13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3회(2016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4/3371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