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만 스리니바산
안녕하십니까 스승님! 안녕하세요 동수 여러분!
나는 2001년 플로리다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법을 얻었습니다. 이제 정법시기 15년 수련 중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1. 친구들과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다
법을 얻기 1년쯤 전, 나는 삶의 의미를 모색하면서 여러 가지 영적 수련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클럽 행사를 하다가 파룬궁 전단지를 받게 되었고 나는 즉시 수련해 보자고 결정했습니다. 첫날, 나는 강한 에너지가 전신에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2주도 지나기 전에, 나는 ‘파룬궁’과 ‘전법륜’을 다 읽고는 수련이 정말로 좋은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몇 달간 전법륜과 다른 설법들을 읽고 또 읽은 후, 나는 대법이야말로 내가 일생을 찾아다니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대법 수련에 전념했습니다.
곧 나는 대법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법을 얻기 전부터 나는 주류 언론 보도에서 파룬궁과 그 탄압에 대해서 본 바가 있었고 파룬궁에 대해 좋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파룬궁에 대해 뉴스를 이미 보았고 좋은 인상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들이 수련도 하게 될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파룬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들어본 사람들도 대부분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놀랐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내가 본 것과 똑같은 뉴스를 보았는데, 오히려 부정적 생각을 하고 있기에 나는 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수련을 하면서 긍정적 인간으로 바뀌는 것을 본 부모님은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반항적 10대가 도덕표준이 높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분은 내가 왜 머나먼 중국의 인권문제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두 분은 내가 진상 활동을 계속하면 중국공산당이 나를 해치기 위해 미국에 악한을 보낼지도 모른다며 걱정하셨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부모님의 그런 반응에 대해 그저 웃어넘겼습니다. 하지만 그 후 2년 동안, 수련에 대한 가족의 잘못된 이해는 점점 심해져서, 심지어 위험하니까 진상활동에 참여하지 말라고 어머니가 울면서 애걸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아직 대학생에 불과한 나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반대하신 분 중에는 사회에서 매우 성공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자라난 내게, 수련에 대한 가족들의 잘못된 이해는 그 2년 동안 가장 큰 고험이 되었습니다.
나는 가족들에게 진상을 깊이 알려드려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가족과 친구 모두에게 ‘파룬궁’과 ‘전법륜’ 책을 보내고는 다른 진상 자료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머니, 할머니를 찾아가서 함께 사부님의 9일 강의 비디오를 두 번에 걸쳐 다 보여드렸습니다. 할머니는 파룬궁은 정말 좋은 것이라 말씀하셨고 어머니는 수련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주변에 있어야 수련하시는 정도셨습니다.
영어 에포크 타임스가 발간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미국의 가족 대부분에게 이 신문을 구독하게 했습니다. 처음부터 에포크 타임스를 구독하셨던 숙모님은 신문 구석구석을 다 읽는다며 신문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션윈 월드 투어가 시작된 후, 나는 가족들에게 공연을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션윈이 텍사스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텍사스에는 형님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성탄 시즌에 형을 방문해서 션윈에 데리고 갔습니다. 다음 해, 션윈은 플로리다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나는 주말에 플로리다에서 금융 및 부동산업을 하시는 숙모 내외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형도 플로리다에 와서 네 명이 함께 션윈을 보았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당시 션윈을 세 번째 보았던 형은 볼 때마다 삶의 자세가 더욱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대법에 대해 걱정하고 부정적이던 가족들의 자세가 적극적인 지지로 바뀐 것은,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진상 방법을 사용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아직은 가족들로부터의 고험이 약간 있지만, 그들이 대법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에, 나는 그들의 미래가 탄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여러 가지 진상 항목을 통해 기회를 마련해 주셨고 그 모든 것이 내 가족이 대법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2. 고향 인도에서 법을 전하다
법을 얻은 후 나는 진심으로 내 고향 첸나이에 법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첸나이는 인도 남동쪽 해안의 도시로서 나는 거기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첸나이의 인구는 450만 명이고 시를 감싸고 있는 타밀 나두 주의 인구는 7천만 명입니다. 전에 몇 명의 동수가 법을 전하러 인도에 갔지만, 타밀 나주 주와 첸나이 시에는 아직 법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첸나이 시의 거의 모든 도서관에 ‘파룬궁’과 ‘전법륜’을 보냈습니다. 후일 그곳으로 여행 갔을 때 책이 정확히 전달 됐고, 몇 년 동안 많이 읽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첸나이에 처음 여행 갔을 때, 고향의 가족으로부터의 고험은 아주 많았습니다. 가족들이 수련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족들과 나는 대법 수련과 활동에 대해 몇 번 논쟁을 벌였습니다. 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서 홍법의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고, 기회를 놓친 것 때문에 마음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2년 후 고향에 다시 갔을 때 가족들은 나의 반복적 진상을 들은 후라 훨씬 긍정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시면서 전에는 내 수련을 ‘복음 종교’라고 부르시던 아버지는 주말에 수련반을 운영하도록 회사 사무실도 내주셨습니다.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인도의 다른 도시 수련생들이 홍법활동을 도우러 와주었습니다. 그 도움은 정말 컸습니다.
내가 처음 홍법을 하려했을 때 나는 신문에 광고를 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의 스위스법회설법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우리 수련생이 때로 개인적으로 신문에 실어 다른 사람이 좀 알도록 하는, 이것 역시 아주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을 수 있게 하므로, 나도 이런 형식을 부정하지 않는데, 연분 있는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있다.”
나는 광고를 내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첸나이 여행은 일 년에 1회 뿐이었고, 다른 수련생들이 홍법활동을 계속 해 줄 것인지 잘 모르겠기에 나는 도시 최대 신문에 작은 광고를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광고를 내던 순간 나는 광고를 전국 광고로 확대했습니다. 연분 있는 분이 광고를 보고 첸나이 수련반에 오지 못하면 웹사이트를 통해서라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광고에는 웹사이트 주소와 무료 강습 등의 간단하고 기본적인 정보만 실었습니다.
광고가 나간 첫 날, 나는 하루 종일 수련에 관한 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는 전국에서 걸려왔는데 그 중 한 분은 먼 시골에서 기차를 6시간 타고 첸나이에 와서 수련반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일 년에 몇 번이나 연공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는 지금도 나와 연락하고 있습니다. 한 숙녀는 어느 서적 축제에서 파룬궁 책들을 샀으나 연공을 배울 수가 없어서 수련을 계속하지 못했는데 수련반에 참가하면서 수련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나는 시내 해안에 일주일에 한 번 연공장을 열기로 했습니다. 해변에서 연공을 배운 한 젊은이는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일생을 기다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년 동안 나와 동수들은 크고 작은 신문사를 방문해서 진상을 알렸고 신문사들은 거의 대부분 이벤트 섹션에 파룬궁에 관한 짧은 기사를 실어주었습니다. 언젠가는 시에서 두 번째로 큰 신문이 파룬궁의 건강상의 이점과 지역 수련생과의 인터뷰 등 아주 좋은 내용의 기사를 실어주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왔을 때 나는 정말 기뻤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홍법활동 중에서 올해의 클라이막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읽어보니 그해에 도우미로 와 준 수련생 역시 훌륭한 인물로 부각되어 있었습니다. 내 첫 생각은 ‘나는 이 몇 년간 최선의 노력을 들였고 그는 이번에 딱 한 번 와서 도왔을 뿐인데, 어떻게 그가 나와 똑같이 평가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질투임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중생이 구도될 수만 있다면 누가 더 훌륭하게 보도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부님의 ‘정진요지’ 중의 ‘맹격일장’이 생각났습니다.
“일의 성공은 다만 속인 중의 표현형식일 따름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법을 얻고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게 하는 것은 대법(大法) 자체의 위력(威力)과 법신의 구체적인 배치이다.”
수년간 동수들과 나는 수 백 명에게 첸나이에서 연공을 가르치고 대법을 소개했습니다. 홍법활동 중에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파룬궁 교실을 열었을 때 첸나이는 심하게 가물었습니다. 수년간 비가오지 않아 시 전체는 물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첫 수련반을 연 그날 뜻하지 않게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법을 전한 그 몇 해 동안 비는 시내의 가뭄을 해소하면서도 홍수는 나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내렸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2003년에 설법하신 ‘대뉴욕지역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어쨌든 당신들은 그곳 생명들의 희망이다! 장래에 당신들은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수) 지금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 대법제자가 없다면 그들로서는 대단히 큰 곤란이 조성될 것인데, 최소한 이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대법제자가 얼마나 있든지 그 민족으로서는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3. 직장에서 진상을 알리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나는 동수들과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캠퍼스 내에서는 일일 연공장이라든가, 진상 알림 이벤트라든가, 포스터 붙이기 등을 했고 캠퍼스 주변에서는 큰 빌딩에 에포크 타임스를 비치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나는 어느 투자은행의 월스트리트 본사에 근무하게 됐습니다. 이 회사는 맨해튼 한 곳에서만 1만 명이 근무하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책상에 늘 전단지를 놓아두고 있다가 기회만 오면 동료들에게 직접 진상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정에서처럼 게시판 활동이나 이벤트 활동은 못했습니다. 우리는 파룬궁 수련반을 열기 위해 회사 체육관을 몇 번 접촉했지만 응답은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직장에서 큰 규모로 진상을 전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본사 중앙에 있는 화려한 카페테리아를 지나가고 있었을 때, 회사가 주류 영어신문 서너 개를 매일 구독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중 두 신문은 과거에 파룬궁과 션윈에 대해 부정적 보도를 했던 신문이었습니다. 나는 에포크 타임스가 저기 놓여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에포크 타임스가 영향력 있는 신문이 되어 대기업의 직원들에게 전달되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에포크 타임스를 오늘 회사에 비치해 놓을 방법이 없을까?” 사부님께서는 설법 ‘북유럽 전체 수련생에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기다리지 말고 의지하지 말며 외재적 요소의 변화를 바라지 말라.”
이 생각을 하고 이틀도 지나지 않아 나는 회사의 신문구독을 결정하는 분과 접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에포크 타임스 뉴욕 일일판 몇 장을 샀습니다. 그분에게 신문을 보여주면 곧 진상을 알게 될 것이라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추가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에포크 타임스가 회사의 좋은 자리에 다른 주류 영자신문들과 나란히 놓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구독 계획을 처음 생각했을 때 내게는 많은 관념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에포크 타임스를 받아들여서 다른 강력한 신문들과 나란히 놓아줄까?’ 그런데 회사는 에포크 타임스 구독을 결정하고 바로 첫 날부터 회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신문을 비치했습니다. 그러자 또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중국인 직원이 많은데 그들이 훼방은 놓지 않을까?’ 이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에포크 타임스는 이 금융 대기업 본사에서 매일 날개 돋친 듯 퍼졌습니다. 몇 년 후 내가 회사를 옮길 때까지 매일 회사 카페에서 에포크 타임스를 읽는 독자가 거의 100명에 달했고 매일 신문을 잠시라도 보는 사람은 수백 명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가 에포크 타임스를 읽게 된 데는 에포크 타임스에서 근무하는 서양 수련생들의 노고 때문임을 나는 잘 압니다. 하지만 아직도 놀라운 것은 신문이 이 대기업에 들어와서 금융계의 몇몇 거물들까지 읽게 되는 것이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진정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다져 놓고, 당신이 가서 하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4. 중국어를 배워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다
법을 처음 얻었을 때, 나는 중국어는커녕 중국문화도 거의 몰랐습니다. 나는 내가 중국어를 배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을 1년 쯤 했을 때 나는 법을 중국어로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일 년이 또 흐른 후, 나는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전법륜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중국어로 기본적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진상을 알릴 때 더욱 쉽게 말이 나옵니다. 예컨대 중국 본토 사람을 만나면, 나는 보통 이렇게 대화를 끌어갑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중국대륙에서 오셨죠? 저는 중국어를 조금 합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수련한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 신체가 건강해졌습니다. 파룬궁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줍니다. 저는 중국 문화와 중국어를 즐겨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파룬궁의 진상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내가 이 말을 끝낼 때면 중국인들은 대개 놀라면서도 즐거워하며 나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진상을 더 알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수련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중국 본토 사람들에게 진상 알리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가 파룬궁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그들은 화를 내면서 외국인이 중국에 대해 뭘 아냐고 고함까지 쳤습니다. 나는 그들을 구도하기가 너무 어려워 자주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중국어를 배워서 말하게 되자, 중국인들은 내게 좀 더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싶어 했습니다. 예컨대, 내가 거의 텅 빈 뉴욕 지하철을 타고 가던 어느 날, 40~50대의 양복 입은 중국 사업가 10~15명이 차량에 타서 내 주변에 앉았습니다. 법을 듣고 있던 나는 플레이어를 정지시키고 헤드셋을 벗었습니다. “따자하오.” 나는 그들에게 중국어로 진상을 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말 하는 동안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미소를 지었고 절반 정도는 입을 딱 벌렸습니다. 나는 그들과 계속 대화 했고 몇 분간 진상을 전했습니다. 나는 내리기 전에 그들에게 내 말을 들어주어서 감사하며, 당신들이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한 명이 미소 지으며 따라 일어나더니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주었습니다. 그는 중국어로 자신이 광저우에서 왔으며 나더러 중국에 오게 되면 꼭 자기를 찾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나를 접대하고 도시 관광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명백한 일면이 깨어났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몇 분간 말해주는 진상을 듣고 그렇게 나를 선하게 대했을 것입니다.
중국어로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면 이와 비슷한 좋은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캠퍼스에서건, 직장에서건, 진상 이벤트에서건, 탈당행사에서건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중국인에게 하는 진상 활동이 100% 효과적이라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중국어로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써서, 그들이 당장은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아도 장래에는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달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수들을 포함한 중국인들은 내가 중국어 학습반 같은 통상의 중국어 공부 방법을 쓰지 않고, 전법륜 공부를 통해 중국어를 배웠다고 말하면 종종 놀라곤 합니다. 나는 중국어 법공부를 처음 할 때, 컴퓨터 사전을 사용해서 각 어구의 병음과 뜻을 알았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3개월 간 그 사전으로 중국어 법공부를 했더니 사전을 찾지 않고도 알 수 있는 한자가 30% 정도 되었습니다. 1년도 되기 전에 나는 전법륜 한자의 80~90%를 알게 되었고 중국어 단체 법학습에 들어가서 사전 없이 따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사부님께서 1999년 ‘캐나다법회설법’에서 말씀하신 내용과 아주 유사합니다.
“그러다 비몽사몽간에 그는 책 속의 모든 글자가 다 금색으로 변하여 매 한 글자마다 그의 대뇌 속으로 날아드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깨어나서 책 전체를 완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과거에는 자기 이름조차도 쓸 줄 모르던 사람인데, 『전법륜(轉法輪)』 속의 글자를 전부 알았다. 이런 현상도 아주 많다. 그러나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다른 공간을 전혀 볼 수 없지만, 내가 중국어 법공부를 할 때 한자들이 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법의 위력이 내게 한자를 빨리 습득하게 도와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전법륜의 한자들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다른 중국어 학습 자료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도움이 됐지만 단언컨대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중국어 어휘는 전법륜에서 얻은 것입니다. 요즘 나는 사부님의 설법 전부를 간체자로도 번체자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어 신문을 읽거나 중국 TV를 보는 것은 아직 매우 힘듭니다. 내가 중국어 법공부로 중국어를 공부한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다른 서양인 동수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유해 주고 싶습니다.
5. 결론
15년간의 수련 동안 전반부는 대학생, 대학원생으로 교정에서 보내면서, 직접 진상을 알리기도 하고 진상 알림 이벤트나 항목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후반부 때는 사회에서 일하면서 세 가지 일에 참여할 시간 여유는 줄었지만 금전적 기여는 좀 더 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 기간 내내 나는 수많은 상승과 하강을 겪으며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정, 질투심, 경쟁심, 결혼 등등 여러 가지 집착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수련을 오래 해도 수련에 지름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수련의 끝에 도달할 때 까지 계속 잘 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수련 이야기가 동수님들께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스위스법회설법’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정진요지’‘맹격일장’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각지설법3’‘대뉴욕지역법회설법’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정진요지2’‘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
[5]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각지설법11’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해야 한다’
[6]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캐나다법회설법’
문장발표: 2016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27/3368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