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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닫게 한 방할과 고난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법을 늦게 얻었다. 힘겨운 가정생활의 고난, 구세력의 박해, 해외의 착실한 수련 표준 요구와 생활상 고초는 내 수련의 의지를 조금도 꺾지 못했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2016년 5월 뉴욕법회가 끝난 후 내 수련상태는 밑바닥으로 떨어져 있었고 스스로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몰랐다. 나 스스로는 열심히 ‘달리고’ 애를 썼다고 생각했지만 사부님 설법에서 인식해보니 추구하는 마음과 그 배후에 있는 사부님과 법에 대한 불신도 보게 됐다.

이번에 겪은 수련 과정을 기록해 수련생 여러분들과 교류하려 한다.

1. 나를 깨닫게 한 방할과 고난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당신들은 사부가 노래 부르는 것을 가르쳤다고 들었을 것이다”[1]라고 하셨다. 나는 운 좋게도 사부님께서 노래 부르기를 가르쳐주신 제자 중 한 명이다. 이 일체는 모두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거나 나의 서약일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사전(史前) 역사과정 중에서도 줄곧 정법시기 제자의 위대함에 따라 당신들의 일체를 만들고 있다”[2]고 하셨다. 난 어릴 때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졸업 후 언론사에 취직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일체 재능은 법을 실증하는데 쓰라고 주신 것이고 나는 이에 대해 오만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예전에 대학에서 배웠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고 이 길은 사부님께서는 이미 나에게 주셨는데 내가 필요한 것은 정념으로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있었던 것들이 자주 나를 교란하고 있었는데 나는 노래를 완전히 새롭게 개척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인식했다. 이 와중에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돌보고 계셨고, 늘 점화를 해 주셨으며, 시간을 다투어 연습하도록 추진해주셨다.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사부님께서 주신 그 길을 내가 개척했다고 생각했다. 2016년 5월 뉴욕법회 개최 전에 녹음한 비디오를 제출했는데 법회 열기 전에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좀 더 기다리자.’ 하지만 마음속에는 공허감이 몰려왔고 션윈예술단을 가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을 보았다. 자신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님의 설법 중에 한 단락이 나를 ‘방할’하셨다. 사부님께서 션윈예술단에 대해 설법 중에서 “구세력도 그를 여기 있지 못하게 하는데, 그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 나는 뚜렷이 사부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직 수련이 부족하구나.’

나의 수련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됐다. 돌아온 후 심정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스스로 열심히 달렸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도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까?’ 이 일념이 나오자마자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빨리 달리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나는 추구하고 있었다. 노력하는 이 일체는 결국 션윈에 가려는 것이었다. 사부님께 너무 죄송스러웠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준이 공능은 수련을 잘 하여 구도중생을 하라는 것으로 션윈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션윈에 가려하는 이 마음은 오로지 명을 구하는 마음 아닌가? 이것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가,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러고 있을 때 딸에게 또 문제가 생겼다. 딸은 4살 때 나를 따라 미국에 와서 제대로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대부분 법공부를 하기만 하면 졸려서 아이와 심성 마찰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전법륜’을 한 글자 한 마디 씩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제6강까지 배웠다. 그런데 딸이 사람 인(人)자를 모르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평소에 아이에게 늘 중국어를 가르쳤는데 어떻게 사람 인자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일(一)자를 가리키면서 한참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한 달도 안 되어서 담임교사가 두 번이나 나에게 전화를 해서 딸이 학교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문제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어디가 법에 부합되지 않았는가, 내가 자신을 바로 잡아야 아이도 좋아지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인내심 갖고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당시 나는 사람 마음을 찾지 못했기에 딸은 여전히 1초 전에 배운 한 글자를 물어보면 여린 눈을 부릅뜨고 억울하다는 뜻으로 말한다. “몰라요.”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이렇게 가르쳤는데도 모르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애가 배워도 모르니 제가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저는 어떻게 수련해야 합니까?’

사부님께서 내가 깨달지 못하자 내가 발정념 할 때 딸이 보게 하셨다.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 사악들이 대법서적을 가로막고 내가 글자를 못보게 하고 있어요!” 나는 갑자기 깨우쳤다. 나쁜 사악들, 알고 보니 그것들이 꾸민 짓이구나. 나는 강대한 정념으로 딸아이의 법공부를 교란하는 사악과 난귀들을 청리했다. 사람 마음을 갖고 사악을 청리하니 상황은 좀 호전됐지만 그리 선명하지는 않았다. 그 시기 우리는 한 시간에 ‘전법륜’을 세 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자주 한 손은 입장하고 한 손은 책을 받치고 아이를 가르쳤다. 심지어 아이는 한 글자를 10분 동안 보고 있었고 나도 10분 동안 정념을 했다. 그제야 아이는 좋아서 말했다. “엄마 생각났어, 런(人)이라고 읽어.” 나는 완전히 기운이 빠졌다.

사부님의 ‘방할’과 딸아이의 답답한 상황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뿌리부터 찾게 했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내심을 갖고 집에서 아이를 관찰했다. 아이가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내 어떤 문제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인가?

2.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어려움 속에서 기어나오다

나는 언론사에서 마케팅 일을 잠시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 일에 몰입했다. 이제 막 집에 있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돌격형’이다. 새로운 마케팅을 담당했던 나는 사부님의 가지 하에 성적은 줄곧 안정세를 유지했고 마케팅 팀에서도 몇 번이나 1등, 혹은 3등 안에 들었다. 나는 ‘돌격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놓고 말하면 어려운 것이 없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3] 나는 줄곧 마케팅할 때 ‘매체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는 매우 강대한 일념을 유지했다. 명, 리, 쟁론에 부딪히고 혹은 협조해야 할 때 나는 자신을 내려놓고 정체에 원융한다. 나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 앞에서는 자신을 내려놓는 게 매우 어려웠다.

나는 반성해보았다. 아이가 4살에 나를 따라 미국에 와서 생활상에서 아이에게 관심이 부족했고, 매체에 들어간 후 더욱 아이에게 소홀했다. 아이는 어린이 제자이니 나만 수련을 잘하면 그도 잘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 모두 관여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속인 이 측면에서 아이에 대한 관심은 너무너무 없었다. 항상 일주일에 밥을 한 번 하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이가 맛없다고 할 때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4] 이 이치를 대면서 아이를 훈계했다. 생활에서나 학교에서의 일은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번에 자신을 내려놓고 아이의 수요에 맞춰야 하니 매우 어려웠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집 부엌에서 돌고 도는 것이 싫었다. 하루 세끼 세심하게 아이를 돌봐야 하니 시간 낭비 아닌가! 이런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었고 나는 호랑이가 상자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억지로 자신이 이 ‘발버둥 치는’ 나쁜 물질을 누르면서 사부님 법상 앞에서 가부좌하고 울었다. 그 순간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임을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나머지 숙제’를 하고 계셨다. 어린 제자를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수련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사악한 것을 확대시켜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나는 인식했다. 사악들이 나를 아래로 끌어 내리려는 것이다. 나는 그것들이 달성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나는 어린이 제자를 데리고 같이 법을 실증하고 구도중생하는 일을 잘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안정시키고 차분히 영에서부터 조금씩 시작했다. 오전에는 아이와 같이 법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아이를 데리고 진상장소에 가서 연공하고 진상을 알리며 저녁에는 법공부를 좀 더하고 시간 있으면 같이 놀아줬다. 아이도 법에서 많은 제고가 있었고 이러는 중에서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우리들을 보호하고 계셨다.

한번은 딸아이가 법 읽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다. 내 귀찮아하는 마음이 또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진작 알고 있는 대(大) 자를 한 참 보아도 모르는데다가 잘 생각할 궁리도 안하고 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참으면서 모질게 말했다. “너를 때리라는 소리가 들린다!” 당시에 아이가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공갈을 쳤다. 참는 것이 너무 힘들어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스스로 진정하려고 노력하고 잠시 멈춰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사악이다. 내가 아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뚜렷이 몸에서 엄청 큰 가짜 자아가 ‘훅’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몸이 매우 가볍고 행복했다. 스스로 사악에게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엄청 큰 것을 제거해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부님의 가지로 우리는 ‘전법륜’을 한 시간에 세 줄씩 읽으며 썼는데 지금은 아이가 한 시간에 한 페이지씩 읽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조금씩 읽다 보니 2개월 동안 이미 40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아이도 대부분 글자를 알게 됐다. ‘홍음’도 매일 외우고 있고 매일 연공하고 주말이 되면 진상을 알리러 갔다. 하루는 아이가 즐겁게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난 꿈에서 엄청 큰 ‘전법륜’ 책을 보았는데 금빛 찬란하고 거대하게 컸어요!”

사부님의 격려와 가지에 감사드립니다. 이 와중에 6살 된 딸이 감당한 것은 나보다 더욱 많을 것이다. 얘야, 진심으로 고마워.

3. 자신의 문제를 뿌리부터 찾아야 한다

한 달 동안 착실히 어린이 제자를 돌보는 시간에 내 모든 것이 차분하게 됐다. 내가 달리는 것이 너무 빨랐고, 더 빨리 가다보면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천천히 찾아보니 이런 상태 배후에는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이 시기에 사부님께서 ‘조급하다’는 물질을 많이 제거해주셨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급한가? 법을 실증하고 구도중생 하는 것은 조급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수련해내야 하는 것이다. 너는 무엇 때문에 급한가? 조용히 찾아보니 2년간 해외에서 수련 과정을 돌이켜 보게 됐다. 도착하자마자 사악들은 호통을 쳤다. 각종 고난을 연화해 내가 겹겹의 고험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고 생활과 경제상 어려움을 겪게 하며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법을 실증해야 하고 수련생들 사이에 심성관도 넘어야 하고 등등. 중국 대륙에서는 정체 수련 환경이 없었고, 진정하고 착실한 수련은 2년 밖에 안 되는 신수련생으로 말하자면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당시 사방에 헛소문이 돌고 있었고 사면팔방뿐만 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이 대법에 따라 수련해야만 살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여기에 온 것은 반드시 내가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착실히 매일 ‘전법륜’을 3강씩 읽는 것을 유지했고 진상장소에 가서 진상도 알렸다.

당시 나는 늘 법공부를 하면서 울었다. 왜냐하면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명확히 나에게 체현해 주셨다. 어떻게 앞에 다가온 마난과 어려움을 직면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셨다. 나는 법공부하면서 울면서 사부님에게 말씀드렸다. “사부님 알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제자는 행하겠습니다.” 나는 크고 작은 심성관 및 사악이 조성한 수련생들과의 간격에서 착실히 심성 수련을 했고 걸어지나왔다. 언론 매체에 들어와 전직으로 마케팅 일원이 됐다.

나는 매일 새벽2시에 일어나서 전력으로 여러 구도중생 항목에 투입했다. 매체의 마케팅 일은 내 대부분 시간과 정력을 점했다. 하지만 나는 일만 하는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구도중생’의 일념이 명석했다. 시간 있으면 진상장소에 갔고 거기에는 젊은 사람들이 부족하다.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러 갔고 평소에는 아이를 데리고 진상장소에 갔다. 동시에 4, 5살 되는 아이의 법공부와 연공을 봐줘야 했고 생활 일체를 혼자 해야 했다. 중학교 때 나는 학교 악단에서 지휘를 맡은 적이 있었다. 이 지역 천국악단에서 두 번째 지휘자가 필요 했는데 나는 책임지고 이 신성한 항목에 가입했다. 이러다 보니 주말 오후에는 집안일을 해야 할 시간마저 점했다. 내 일정은 꽉 차 있어 조금도 틈 날 시간이 없었다. 2015년 5월 뉴욕법회가 끝난 후 또 한 가지 일이 생겼다. 노래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일들에서 내가 평형을 잡아야 할 때, 처음에는 법공부를 통해 강대한 정념으로 잘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했고 마케팅 성적도 안정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수련생들의 칭찬 속에서 자신의 환희심, 과시심, 쟁투심, 남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등등 사람마음이 나오는 것을 찾게 됐다. 이런 속인 마음 앞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다. 비록 법공부는 많이 하지만 이미 형식에 치우치고 자신의 급한 성격을 사악들이 잡고 놓지 않았으며 점점 이 나쁜 물질이 확대됐다.

급한데서 조급해졌고 초초하고 불안해졌으며 마지막에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표면적인 상황은 구도중생 앞에서 시간 배치가 잘 안되고 매일 마케팅 일 외에는 종종 아이와 같이 법공부를 할 수 있는데 노래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혹은 시간을 내서 노래연습을 하면 아이의 법공부 시간을 빼먹었다. 노래 연습과 아이와 법공부를 다하면 밥 하는 시간, 먹는 시간, 설거지 시간이 없었다. 또 혹은 이 모든 것을 다하면 내가 법공부 하는 시간이 부족했고 법공부 시간과 품질을 보증할 수 없었다. 서서히 아이도 어리고 일이 많아지자 아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만약 네가 없으면 나는 더 잘 할 수 있는데.’ 이런 심리로 인해 아이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이 많은 일들 앞에서 무엇 때문에 사악들이 내가 조급한 것을 붙잡고 있을까? 조급하다는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계속 찾기 시작했다. 결국 ‘어려워하는’ 마음이었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할 수 있게 유지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결국 이것을 승인한 것이다.

사실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내가 막 법을 얻었을 때 가족들의 강압적인 감시를 피하기 위해 2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고, 당시 남편은 다른 지역에 발령돼 일하고 있어서 집에서는 나 혼자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돌봐야 했다. 나도 출근해야 해서 법공부와 연공 외에는 진상 자료를 만들고 나눠줘야 했다. 진상도 알려야 하고 아이의 모든 것을 돌봐야 했고, 집안일 등등 집 밖에 모든 일도 내가 혼자 해야 했다. 그때는 아이가 더 어렸고 처리할 일도 더 많았는데,나는 뜻대로 처리를 잘했고 매일 웃음만 가득했다. 이웃들은 믿을 수 없어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4, 5명씩 한 아이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 사부님께서 초범적인 능력을 주셨다고 했다! 속인들은 어렵다고 보지만 나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즐거웠다. 왜냐하면 집에서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나를 수련하게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였다. 그리하여 속인들 보기에는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더 깊이 찾아보았다. 어렵다는 것을 승인하는 배후에는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잘했을 때 환희심이 나왔다. 특히 내가 사부님께서 주신 노래의 길을 통과했다고 생각하고 션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느꼈을 때, 사악들은 내 환희심을 이용해 감춰져 있었던 ‘션윈에 가고 싶은’ 마음을 확대시켜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계속 찾고 찾았다. 어렵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과 추구하는 마음 뒤에는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많은 일들에서 평형을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고, 매 건마다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으며, 해외의 안일한 환경 속에서 한결같이 잘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사악들이 틈을 탄 것이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션윈에 가자’, 이 추구 때문에 결국 이 일들은 점점 어렵게 변했다.

나는 계속 뿌리까지 찾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 일체 어렵고 잘하지 못할까 봐 하는 배후에는 뜻밖에도 ‘신사신법’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이것을 찾은 후에는 너무 놀랐다. 내가 의외로 어려움 속에서 ‘신사신법’의 확고한 의지가 움직였다니!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발정념을 하는데 사부님께서는 또 아이에게 보여주시면서 나를 격려해 주셨다. 아이는 기쁘게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난 사부님을 보았어요, 사부님께서 엄마를 보고 웃으셔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자는 뜻밖에도 ‘신사신법’의 근본이 문제가 생겼으니, 사부님 너무 죄송합니다!

나는 장시간 가만히 있었고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진정으로 견고하게 신사신법을 못한데 대해 한숨을 쉬면서 후회했다. 사부님 말씀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3]. 그리고 7.20이후 법을 얻은 제자에 대해 “어쨌든, 더 어려울지라도 사부가 당신에게 준 길을 반드시 걸어올 수 있다. (박수)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기만 하면 당신은 곤란을 박차고 지나올 수 있다.”[5] 그렇다, 기왕 내 수련의 길, 법을 실증하는 길은 이렇게 배치된 것이면 오직 신사신법만 한다면 꼭 걸어 지나올 수 있다. 사부님 말씀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3]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은 오직 제자가 ‘신사신법’의 신념을 갖고 착실히 수련한다면 자비롭고 위대하시며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는 사부님 앞에서 일체 사악한 요소들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하게 된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왜 매번 ‘전법륜’ 제3강을 공부할 때 “오로지 당신이 착실하고 견정(堅定)하게 수련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곧 당신을 제자로 삼아 이끌 것인즉”[3], 매번 이 단락을 읽을 때, 그 ‘착실하게’는 사부님께서 늘 확대시켜 나를 깨닫게 하셨다. 착실하게 앞에 놓인 매사를 잘하면 일체는 사부님의 배치가 있으셨다. 한 달간 집에서 아이를 돌보았는데 문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뜻밖에도 38,000달러의 광고 수입을 올렸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또 다시 이 성적으로 제자를 격려해주셨다. 조급해하지 마라, 두려워 마라, 잘할 수 있다. 마케팅, 아이를 돌보는 것, 노래 연습, 진상을 알리러 가는 것, 천국악단, 생활을 돌보는 것, 일체는 모두 수련 중에 있고 오직 수련인의 의지가 느슨하지 않고 착실하게 법에서 수련하면 일체는 사부님께 맡겨야 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6] 이 이치는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절실히 이행해야 한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번거로운 일들에 힘들었던 것이 개운해졌다. 사부님께서 내 용량을 넓혀주시는 것을 느꼈다. 마케팅도 매일 열심히 하고 있고 노래도 매일 연습하지만 ‘션윈에 가고 싶다’라는 집착은 없고 오로지 잘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아이도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고 있고, 매일 시간을 내서 아이와 학교생활에 대해 교류하고 진심으로 아이를 관심했다. 진상도 빠지지 않았고 점심에 시간만 있으면 갔다. 주말은 꼭 갔다. 왜냐하면 그곳은 구도중생하는 전선이다. 천국악단 항목도 계속하고 있고, 매일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이미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것은 대법이 나에게 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사소한 생활부터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좋은 엄마도 아니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좋은 사람도 안 되면 어떻게 ‘진선인’에 동화될 수 있겠는가? 더욱 ‘구도중생’의 사전(史前) 큰 소원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신 “많은 일이 보기에는 무질서하지만, 실제로 모두 질서가 있는 것이고”[7]의 깊은 이치를 또 깨닫게 됐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해 주신 이 일체에 감사드린다. 바로 이 보기에는 ‘다 잘할 수 없는’ 일체가 내 앞에 놓여 있었기에 나를 밀고 내가 강대한 정념으로 ‘조사정법 구도중생’의 길에서 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바로 이 보기에는 ‘다 잘할 수 없는’ 일체가 내 앞에 놓여 있었기에 비로소 나는 ‘구도중생’ 이 일념을 시시각각 명심할 수 있었다. 매체에서 일만 하는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어린이 제자의 ‘정’에 빠지지 않으며, 션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느슨해져 다른 구도중생 일에 영향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구도중생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매 항목마다 서로 보충되고, 원용되고, 서로 이끌어서 제고된다.

나는 ‘몸은 그 중에 있지만 마음은 그 밖에 있다’라는 초탈한 경지를 느꼈고 몸은 매 항목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일체는 모두 구도중생을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듯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8]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일체에 대해 감사드리며 제자는 자신의 일체를 사부님께 맡기겠습니다. 신사신법에 반석처럼 견고하며, 자신을 내려놓고 용맹정진할 것입니다. 다만 앞에 놓인 매사를 잘하고 서약을 완수하며 구도중생을 할 것입니다.

자비롭고 위대한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들의 지적 부탁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도중’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싱가포르불학회 설립식 설법’

[7]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8]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10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11/3361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