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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이 변하니 모든 것이 순조로워

글/ 향자(香子)

[밍후이왕] 퇴직을 하고 나서 나는 사존의 각지 설법을 체계적으로 한번 다 읽었다. 사존께서 “미국서부법회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당신들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임에도 고집을 피우면서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한다. 당신은 완전히 남에게 정서가 통제되어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살고 있다.” 이 한 단락 법을 읽었을 때 나는 놀라서 깨어났다. 내가 바로 사람에게 정서를 통제 당해 살아가기 아주 힘들면서도 각성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반성해 보았다. 나는 수련인인데 왜 속인에게 이끌리는가? 어찌하여 법에서 깨닫지 못하는가? 나의 어떤 마음이 이렇게 하게 하는가? 강대한 사람의 관념, 쟁투심, 자아가 무형의 큰 산처럼 나의 앞을 가로막아 수련에 정진하려는 발걸음을 가로막고 있으며 남편과의 모순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수련을 19년이나 했다는 사람이 안으로 찾을 줄 모르고 늘 상대방의 잘못만 찾으니, 이런 나쁜 물질은 나의 공간장에서 나쁜 작용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또 남편의 공간장까지 쳐 들어가 산처럼 쌓이고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은 매일 일어나면서부터 투덜거린다. “다른 집은 하루에 두 번씩 청소를 한다는데 우리 집은 한 번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어” 라는 등 생각나는 대로 끊임없이 투덜댄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연공과 법 공부를 마치고 7시 20분이 되서야 침실에서 나와 아침을 짓는다.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에게 반응을 일으키며 생각한다. ‘130평 되는 집을 청소하려면 두 시간이 걸리는데 그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청소만 한다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나는 수련하러 온 사람이니 그와 다투지 말고 그저 참자.’

남편은 매일 일찍 일어나서 아침마다 물을 끓이는 습관이 있다. 세 식구의 컵이 나란히 있는데 그는 컵 두 개에만 물을 따르고 내 컵에는 따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개의치 않았다.날마다 이런 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수련인이므로 상관하지 않았다. 하루는 아들이 6시 반에 나간다면서 나더러 물건을 좀 챙겨주라고 했다. 나는 하는 김에 물을 끓여 세 컵에 물을 부어 놓았다. 남편은 일어나서 중얼거렸다. “나를 도와 물을 부었네그려” 나는 듣고 ‘다음부터는 내 컵에도 물을 부어 놓겠지’ 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여전히 내컵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평소 소소한 일에서부터 나를 모욕하고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좀 화가 났다. 그렇지만 나는 수련인이라는 생각에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아들도 곧 출가해야 하는데 이만한 일로 날마다 싸우면 이웃들도 다 보고 들을 텐데 좋지 않은 일이다. 매번 참고 또 참았다. 남편의 좋지 못한 마음으로 아주 화가 치밀 때면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1]를 외웠다. 계속해서 외우다 보면 눈물이 말라버리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 법리는 명백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찾아보지 않았다. ‘초과나한에 도달하여 하루 종일 싱글벙글 하는 상태에 도달하면 얼마나 편안할까’ 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남편이 소소한 일에서부터 투덜대면 참지 못하고 다투기도 한다. 남편이 반복적으로 자극하면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단지 그가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증오를 풀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수련인이므로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바르지 못한 염두는 마에게 틈을 탈 기회를 주기도 했다. 당시 나는 그것을 소멸해 버리지 않아 이런 교활한 생각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한 번은 남편이 반나절이나 잔소리를 하고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나는 마침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는데 나쁜 염두가 또 올라 와 나는 주먹으로 남편의 머리를 호되게 쳤다. 그를 때리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악한 마가 미워하는 마음을 확대시킨 것이고 마가 빈 틈을 탄 것이므로 속으로 ‘멸!멸!멸!’ 하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이 나쁜 염두를 의식하고 아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남편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말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목에 핏대를 세우곤 하는데 그가 미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만 들려도 마음이 뒤틀렸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나를 일깨워 주셨기에 비로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대륙에서 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심득체험을 쓰기 시작했다. 속으로 쓰고 싶었던 것을 다 써내어 수련생에게 보여주면서 의견을 달라고 부탁했다. 수련생은 보고나서 남편에 대한 마음을 더 깊이 찾아보라고 선의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동안 깊이 찾아보지 않았고 제대로 찾은 것 같지가 않았다. 그를 싫어하는 마음, 얕보는 마음, 쟁투심, 미워하는 마음, 공포심, 의심, 두려운 마음, 질투심,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 선(善)하지 못한 마음 등을 찾아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해 진 것 같았고 마음속에는 그렇게 미움이 큰 것 같지 않았지만 아직도 무언가 산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사존께서 수련생의 입을 빌어 말해 주셨으니 나는 참답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야 했다.

나는 사존의 설법을 반복해서 읽었다. 사부님께서는 “특히 우리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나는 통틀어 그것을 집착이라고 부른다. 이 집착들은 마치 강대한 자물쇠처럼 당신들을 잠그고 있다. 당신은 전진하는 길에서 자물쇠마다 그것을 다 열어야 하는데, 열지 못하면 그것이 당신을 잠그고, 미혹시키고 있어 당신은 진상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반본귀진 하려 하는 이 길에서 이 자물쇠들을 열지 못하면 당신은 건너갈 수 없는데, 이것이 바로 관(關)이다.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일체가 바로 당신의 장애이며, 수련 속에서 부딪히는 이 고비들 역시 사실은 당신 자신의 난(難)이다. 내가 그것을 이용하는 목적은 바로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자물쇠를 열어 당신들로 하여금 진상을 보도록 하는 것이며 당신들의 사상으로 하여금 승화되게 하는 것이다.”[2]라고 하셨다. 나는 자신의 그런 마음에 대조하여. ‘집착’, ‘관’, ‘자물쇠’, ‘자신의 난’, ‘승화를 얻다’를 반복적으로 생각했다. 조금씩 조금씩 깨닫고 생각했으며, 서서히 마치 그 물건을 건드린 것 같았다. 마음 속 깊은 곳의 그 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설법에 대조하니 글자마다 망치처럼 나의 마음을 무겁게 때리고, 예리한 칼날처럼 내 집착의 뿌리를 찔렀다. ‘나는 드디어 찾았다’라고 소리 질렀다. 강대한 자아,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나, 사적인 나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마음속에서 반복적으로 싸웠고 갈수록 심해졌던 것이다. 집착의 근원은 모두 자아에서 나왔고 사심으로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데서 나왔던 것이다. 19년이나 나를 괴롭힌 그 마가 나는 싫었다.

사부님께서는 19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남편을 통해 그 집착을 버리게 점화해 주셨는데 나는 깨닫지 못하고 늘 사람의 관념이라는 울타리에서 맴돌았던 것이다. 지금 나는 깨달았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서부터 일마다 수련인임을 알아야 한다. 그야말로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나니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3]였다.

나 같이 우둔한 제자도 포기하지 않으신 사존의 고심함에 감사드립니다. ‘사존이시여, 제가 너무도 몰랐습니다. 사람마음은 생활에서 가정에서 서서히 조금 조금씩 버려야 하는데 제가 깨닫지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전법륜』을 읽었을 때, 사부님께서는 사람마음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집착심이 너무 많고 오성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사부님, 이번에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남편을 통해 심성을 제고하게 하시고 수련을 도와 주셨으며, 그가 바로 나의 거울로서 각종 좋지 못한 집착심을 보게 하시어 그것을 버리게 했던 것입니다.

내 안에서 정확하게 찾아 뿌리를 뽑아내자 산 같던 나쁜 물질이 순간에 사라졌고, 유쾌하고 홀가분했다. 일깨워 준 수련생에게 즉시 알리고 싶어서 시계를 보니 밤 11시 40분으로 발정념 할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시외에 살고 있었고 남편은 시내에 살았는데 마침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나에게 집에 와서 준비해 놓은 반찬도 가져가고 식사도 같이 하자고 했다. 전에 없이 상냥한 말투였다. 나는 이것이 나의 사람 마음을 버리니 나쁜 물질이 없어져 선의 역량이 자연적으로 흘러 나왔음을 알았다. 대법의 위력은 참으로 컸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집안에 들어서자 남편이 인사를 했다. 그는 거실에서 한창 만두를 빚고 있었다. 나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 채소를 사고 밥을 하는 가정일은 마땅히 퇴직한 가정주부인 내가 해야 하는데 남편이 하는 것을 보니 몹시 미안했다. 가지고 온 고기를 넣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나는 주방에 들어가 국을 끓이고 밥을 지었다. 주방에 들어가 보니 싱크대 위에 십 여 개의 가지가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가지 세계에서 왔나 보다 하고 속으로 웃었다. 사람마음을 찾기 전에 이것을 봤으면 ‘종일 한다는 것이 그저 가지 뿐인가?’ 하면서 마음이 끓어올랐을 것이다. 원래 나는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았고 아이도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하면 무엇을 먹었고 단지 많이 먹는가 적게 먹는가 하는 것이다. 남편은 채소를 사기만 하면 언제나 많이 샀고 가지는 빼놓지 않았다. 한 번 사면 3~4끼는 먹어야 했고 기름도 적게 넣고 삶은 가지요리를 한다. 횟수가 많아지자 나는 가지를 보기만 해도 역겨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지를 보아도 역겹지 않았다. 가지는 여전히 그 가지인데 사람마음이 말썽을 부린 것이다. 그 마음이 없어지자 사람을 보고 물건을 보아도 다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밥을 지으면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을 깨끗이 닦았고, 주방의 하수구는 도구가 없어서 깨끗하게 청소하지 못했는데 교류 문장을 다 정리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 대청소를 할 생각이었다. 남편은 집 안팎의 일은 물론 그의 형제자매의 일까지 가정의 대소사를 모두 걱정해야 하므로 참으로 어려움과 고생이 많았다. 그는 확실히 능력 있는 사람인데 성질이 좀 급하고 직설적이어서 대인관계를 처리할 줄 모를 뿐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생활한지 거의 30년이 되었다. 수련 전에도 나는 그를 미워했고 수련 후에는 마음속으로 미워했다. 내가 수련을 하기 때문에 이는 내가 버려야 할 마음임을 알았다. 나는 심득소감을 쓰면서 사부님의 가지 하에 드디어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해체하게 됐다. 나는 마음속으로 남편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가 아니었다면 수련에서 이렇게 확고하게 걸어올 수 없었을 것이며 이렇게 심성을 제고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줄곧 이런 역할을 해 줌으로서 나에게 심성을 제고할 환경을 제공해 준 남편에게 감사드린다. 동시에 남편이 대법에 대한 좋지 못한 태도를 개변하여 대법에 동화되고 나의 수련을 지지하기를 바란다.

마음을 찾아내고 관념을 바꾸어 생각해 보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보았을 때 진정하게 수련해 올라올 수 있는 원인은 바로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발생하여 이 마음이 표준에 도달하고 사람의 사상 경지가 표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닦아 올라온 것이다.”[2]를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아침 연공 때 가부좌하여 두 다리가 아픈 것은 막힘이 없는 아픔이지 막힌 듯한 아픔이 아니며 두 가지 아픔은 같지 않은 것이다. 한 가지는 즐거운 아픔이고, 한 가지는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이다.

『전법륜』을 읽고, 외우는 것도 같지 않다. 많이 읽고 적게 읽는 것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 책에서 법을 끊임없이 당신에게 펼쳐 보이신다. 그런 수확과 희열은 바로 법 속에 용해되는 것이다.

일보러 가는 길에 5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네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으며 아울러 장쩌민 고발 서명을 받았다. 그야말로 더러운 물질을 쏟아버리니 사상이 순정하게 관통되어 모든 것이 다 순조롭고 바르게 되었다.

사부님의 가호에 감사드립니다!

법에 있지 않는 곳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스위스법회설법》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홍음》<마음고생〉

문장발표: 2016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14/3362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