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필라델피아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랜 세월 당(黨) 문화로 주입된 환경에서 생활했기에 심하게 해를 입었음에도 인식하지 못했고 일체는 모두 습관이 되었다. 2009년에 미국에 와서 플러싱 9평 점을 찾게 되었고 해외수련생을 만나게 되었다. 한 번은 법회에서 한 수련생이 중국에서 온 수련생들의 언행에 당 문화가 많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주 낯설었고 ‘중국 수련생들이 어때서?’ ‘다른 사람과 별 차이가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영어를 모르고 주류사회를 접해 보지 않아서 특히 플러싱 그 지역의 대부분이 중국 사람이기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평소 언행에 그렇게 많은 당 문화가 표현되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기에 중시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몇 년의 설법에서 끊임없이 중국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당 문화를 제거하는 문제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고 하셨고 매번 조금씩 더 중해졌다. 특히 2014년 사부님의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중에서 중국 수련생들의 당 문화 표현과 손해에 대해 아주 엄숙하게 지적하셔서 나는 충격이 아주 컸다. 그날 법회장에 들어가니 우리 자리는 강단에서 좀 멀리 떨어졌었는데 갑자기 앞자리에 앉으라고 알려주어서 나는 두 번째 줄에 앉았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처음부터 “중공사당의 사악한 당 문화(黨文化)는 수십 년간의 주입으로 은연중에 영향을 끼쳤는데, 이미 일부 대법제자를 포함한 대륙 중국인의 성격을 왜곡되게 하고 문제를 생각함에 모두 극단적이게 했으며, 나아가 국제사회 사람의 생각 및 전통적인 고대 중국인의 생각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1]라고 지적하셨다. “때론 매체에서 당신들을 쓰고, 때론 항목에서 당신들을 쓰는데, 당신들의 생각, 그런 당 문화의 극단적인 작법ㆍ거짓말ㆍ대충대충 하는 업무 작태는 정말로 그들로 하여금 못 견디게 한다.”[1]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다른 사람을 경계하며 말을 하는 것도 매우 두루뭉술하게 하거나 에둘러서 하는데 사람들에게 도둑처럼 두리번거리는 느낌을 준다. 어떤 일이든 피해 가려 하고 어떤 일이든 물어보기를 좋아한다.”[1]
사부님의 매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은 정신이 번쩍 들게 했고 나는 계속 울었으며 감히 사부님을 쳐다보지 못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는데도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 드렸기에 내심 더할 수 없이 부끄러워서 자책했다.
당 문화의 요소는 이미 나 자신이 법을 실증하고 해외 수련생들이 법을 실증하는데 매우 심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몸소 체험한 교훈은 우리가 ‘자유의 종’에서 진상을 알릴 때 자료를 계단에 놓고 현수막을 낮은 의자에 묶었으며 관목가지나 수도관에 걸었다. ‘자유의 종’의 관리인은 이렇게 하는 데 대해 엄중하게 경고했고 해외 대법제자들이 몇 년 동안 고생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장소를 구했는데 우리가 하마터면 파괴할 뻔 했다.
자신에게 존재하는 당 문화의 요소도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드러났는데 과시심, 질투심, 거짓말, 교활한 마음 등이다. 탈퇴를 권해서 삼퇴를 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모두 자신이 권해서인 것처럼 우쭐대고 뽐내면서 남의 공로를 자신의 것처럼 했고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삼퇴를 더 많이 시켰다는 말을 들으면 언짢아하며 질투했다. 관광객들과 이야기할 때 난징(南京)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아, 고향사람이네요.”라고 말했고 그 관광객이 나에게 난징사람이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하면서 진상을 알렸고 어떤 때는 삼퇴도 시켰다. 사실 나는 난징 사람이 아니다. 비록 난징에서 다년간 살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웠지만 실제는 안후이(安徽) 사람이었다.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였는가? 나 자신이 난징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말하면 가까이 갈 수 있다. 겉으로의 출발점은 좋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나쁜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첫째는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나는 감시 대상 명단에 오른 사람이고 비록 미국에 정치 망명으로 와 있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중국에 있고 아이는 아직도 안후이에서 일을 하고 있어 그들이 연루될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두 번째는 허영심이다. 안후이는 과거에 좀 낙후하고 가난해서 상하이 사람들은 안후이 사람들을 ‘촌놈’이라고 불렀다. 바로 ‘강북사람’을 비하하는 말이고 강북은 가난하고 문화가 없다는 뜻이다.
교활한 마음의 표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오전에 세 명 밖에 삼퇴를 시키지 못했는데 수련생이 나에게 오늘은 몇 명 삼퇴 시켰냐고 묻자 나는 얼마 안 된다고 말하고 속으로 얼마 안 된다면 네가 몇 명인지 알겠느냐고 생각했다. 왜 세 명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했는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적게 삼퇴 시켰냐고 말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에둘러 말했다.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참으로 시간을 아끼는군요. 전화를 걸어도 몇 마디 하지 않고 끊어 버리는데 어떤 때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실상 나를 중심으로 했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함께 미국에 왔는데 남편도 대법제자였고 그때 그는 90세에 가까웠다. 플러싱에 있었던 4년 동안 나는 남편을 잘 돌보지 못했고 나의 당 문화의 극단적인 생각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바로 수련이고 정진하는 줄로 알았기에 동분서주하면서 어떤 때는 남편 혼자 집에 있게 하였다. 남편은 지식인이었고 사람은 아주 좋았으나 살림에 대해 잘 몰랐다. 남편은 황색 세제를 식용유인 줄 알고 채소를 볶아 먹었다. 남편이 병업관을 넘을 때도 나는 그와 함께 법공부를 하지 못했고 난관을 넘도록 교류하고 격려해주지 못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나는 나의 이런 것이 극단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슬픔을 되새기며 지금까지 깊이 간직하고 있는데,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이상의 몇 가지 사례로 내가 당 문화에 독해 된 것을 보여주었다. 근본적으로 자아를 내려놓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으면 무사무아(無私無我)를 논할 수 없고 자비도 수련해 낼 수 없다. 구 우주의 생명 중에서 나오지 못하면 대법에 동화될 수 없고 구 우주의 도리가 당신을 통제하여 제고하기 어렵게 느낀다. 정법은 표면 공간에 접근했고 시간은 긴박하며 당 문화의 뿌리를 제거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하는데 반드시 분초를 다퉈야 한다.
(2016년 필라델피아법회 발언 고)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원문발표: 2016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 해외법회문장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17/3364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