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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수를 되찾아 오는데 대한 한 가지 생각

글/ 석연

[밍후이왕 2016년10월07일] 나 역시 과거에 수련의 대오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수련생 중 한 사람이다. 나 또한 동수들을 다시 찾아오는 일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인식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들의 지적을 부탁드린다.

수련생들이 나를 돌아오게 한 과정을 말하면, 이 일체는 모두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해 놓으신 것이다.

물론 나 자신도 대법에 다시 돌아오고 싶은 꿈과 소망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발적으로 수련생들을 찾아서 돌아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늘 마음속으로는 어느 동수가 나를 찾아와 대법에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 나는 꼭 돌아가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한동안 지난 후, 정말로 수련생 A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수련생 B집에서 만나고 싶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과거에 수련생들과의 인연이 생각났다. 동시에 대법을 수련하겠다는 소망이 되살아났다.

수련생 B는 매우 열정적으로 나를 대했다. 나는 진짜로 어쩔 줄 몰랐고 아주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반감도 없었다.

수련생 A는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가고 나 혼자 수련생 B집에 남았다. 수련생B는 정성을 다해 나를 도와 집착심을 찾게 했다. 그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위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대법을 떠난 지 만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수련생의 일방적인 급한 마음으로 나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날 밤 나와 긴 시간 얘기를 나누었다. 마음 한구석은 수련생의 시간을 너무 점하는 것 같았고 그가 비교적 강하게 나를 위하는 마음을 보고 거절할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필경 자신의 문제이고 끝까지 수련을 견지하지 못해 대오에서 떨어졌는데 무슨 자격으로 거절할 수 있는가? 열등감이었다. 할 수 없이 억지로 다음날까지 견지했다.

당시 수련생B는 내 상태를 보고 걱정을 너무 많이 했다. 다음날 또 나를 도와서 자신을 찾게 했다. 심지어 신수련생 C앞에서 직접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사부님의 법을 보고 싶어서이다.” 그러자 수련생 C는 수련생 B가 말하는 것을 제지했다. 그들은 나를 도와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조금씩 조금씩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 수련생 A는 예전에 같이 수련하던 수련생 E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수련생 E를 찾아 가기로 했다. 아주 순조롭게 수련생 E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자 마자 수련생 A는 또 말을 많이 했다. 끊임없이 설득했다. 말투 속에는 선생님이 학생한테 가르치는 것 같았다. 물론 수련생 A의 직업은 교사다. 직업에서 오는 습관과 책임감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가 생각났다. 내가 돌아온 것은 마음 깊숙이 감추어진 대법에 대한 미련과 소중함 때문에 돌아온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진정하게 자신이 대법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대법의 힘이다. 수련생들 작용도 일부 있지만 진정한 힘은 바로 대법이었다.

수련생 A의 말을 들으면서 또 수련생 E가 무슨 반감이 있을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나는 주동적으로 나서서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수련생 A를 설득해 잠시 중지하고 수련생 E한테 대법서적을 볼 수 있도록 건의 했다. 그래야만 왜 다시 대법으로 돌아와야 하는지를 모두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수련생 E도 다시 돌아왔다.

나와 수련생 E가 돌아온 사례를 통해 다시 돌아온 수련생들에 관한 교류를 하고자 한다. 과거 수련생들이 진정으로 대법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사부님께서 친히 보고 계시고 배치한 것이다.

대부분 대오에 떨어진 수련생들은 모두 대법에서 이로운 것을 얻었고 혹은 대법의 순정을 알기에 대법에 들어왔다. 과거 어떤 이유로 대법을 만났든지 그들 마음속에는 대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법은 너무나 바르고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대법에 대한 소중함을 몰랐고, 인식이 부족한 탓에 낡은 세력이 수련생들의 집착심을 이용하여 한동안 대법을 떠나게 했다. 과거의 수련생들을 우리가 다시 돌아오게 한다 해도 그들은 이미 법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었는지 모른다.

사부님 말씀: 일부 대법제자가 대법제자의 대오를 떠났을 경우, 다시 돌아오면 당신은 그를 노수련생으로 여기지 말라. 절대로! 왜냐하면 그는 그때 절대적으로 속인과 똑같기 때문이다. 이전에 배운 법을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대법제자는 응당 어떠한 상태여야 하는지 그는 전부 알지 못한다. 당신은 절대로 그를 노수련생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신수련생으로 여기고 대해야 그는 비로소 걸어 지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그를 노수련생으로 여기면 또 그를 내보내게 되는바, 그는 견디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완전히 신수련생이다. [1]

내가 겪은 과정 중에 인식한 것은 진정으로 누구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오로지 법이다. 법이야 말로 이런 위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매 수련생들도 필연코 법을 끊임없이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선택한 것이다. 또 진정으로 사람의 집착심을 내려놓게 하는 것도 법의 힘이다. 물론 적당한 시기에 수련생들의 적절한 교류도 일정한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인식은 돌아온 수련생들에게는 우선 법공부를 하게 해야 한다. 최대한 사람 마음으로 대하지 말고, 돌아온 후 차차 교류해도 늦지는 않다. 자연스럽게 적당한 교류도 필요하다. 교류하기 좋아하는 동수가 있으면 그 것은 별개의 문제다.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된다. 교류 중에는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선의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수련자의 자비와 평온함을 느끼게 하면 제일 좋은 것이다. 만약 급한 마음이 있으면 언어와 말투는 상대방을 훈계하는 식으로 되어 버린다. 혹은 왜 이렇게 정신 못 차리냐는 투는 모두 사람 마음이다. 수련생이 법공부만 하게 되면 일체가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이다.

수련생을 비난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마음속으로 나에 대한 수련생 A와 수련생 B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대법 속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대오를 떠난 후 늘 마음에 담아 두었던 ‘꿈속에서도 대법을 놓지 않았던 바램이었다.’ 그러한 나의 경험은 비교적 이지적으로 정확하게 수련생들의 상태를 대할 수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배척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수련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겠는가? 수련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왕 우리가 수련생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최대한 사부님께서 법에서 요구한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수련생들을 대하자.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10월 0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6/10/7/3360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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