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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존님의 자비하신 보호에 감사하다

글/ 쓰촨(四川)대법제자

[명혜망 2016년 9월 23일] 나는 처음에 실험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파룬궁 연공장에 갔다. 막 시작하자마자 동작을 배울 때 몸이 가려운 느낌이 있었고 묘하기가 비할 바 없었다. 당일 저녁 나는 아주 뚜렷한 꿈을 꾸었다. 나는 꿈에서 몸이 거대하고 웃음을 짓고 있는 배불뚝이 미륵불을 보았다. 나는 미륵불이 하늘을 진동하는 웃음소리에 깨어났다. 그때부터 전에 늘 꿈에서 보았던 그 미륵불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후에 사존님의 저작 ‘파룬궁’과 ‘전법륜’을 공부하면서 인생의 목적은 반본귀진이고 수련은 진,선,인의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최후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을 수련해내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임을 알았다. ‘전법륜’의 박대정심한 법리는 나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고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법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사상경지도 승화되었고 법리를 점점 알게 되면서 많은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아 근심걱정이 없어졌다. 다시는 쇠뿔을 파고들지 않았고 정말로 유암화명유일촌(柳暗花明又一村)의 느낌을 받았다. 20년 수련 중에서 사존님은 항상 내 옆에서 나를 보호해 주시고 점오해 주시고 나를 격려해 주시고 나를 보살펴 주셨다. 내가 힘써 노력하지 않고 정진하지 않아도 사존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사존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신 것과 나를 위해 하신 것은 너무나도 많다. 여기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한다.

1. 사존님은 나를 도와 환경을 청리해 주셨다

법을 얻고 난 얼마 후, 법 공부 팀에서는 여러 명에게 사존님의 광저우(广州)설법 비디오를 보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공간에서 당신에게 무엇이든 모두 청리해 주며, 당신의 가정환경 역시 청리해 주어야 한다. 환경을 청리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것들이 당신을 교란하는데, 당신이 어떻게 연공(煉功)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방안에 있던 글자, 그림, 서적들이 ‘화화’하는 소리를 내면서 바람에 날리는 것 같았다. 표면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나는 사존님께서 나를 도와 청리해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1997년 여름 방학 때 나는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셔오기로 했다. 나는 어머니 방에다 침대 두 개를 놓았다. 하나는 어머니 것이고 하나는 조카의 것이다. 누나는 그날 어머니를 모셔와 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잤고 나와 조카는 한 침대에서 잤다. 그날 저녁 우리는 불을 끄고 막 침대에 올라갔는데 ‘파,파,파,파,파’하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한 번 한 번 때리는 소리는 매우 컸고 무엇을 때렸는지 모르지만 ‘아이고, 아이고’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꾸짖는 소리도 들렸다. 좀 지나자 때리는 소리는 점점 작아지면서 사라졌다. 우리 4명은 모두 들었다. 어머니는 “좀 전에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조카는 “누가 회초리로 무엇을 때리는 소리 같은데요. 고모는 xx을 믿지 않습니까, 아마 몸에 부체 같은 안 좋은 것이 있으니까 사부님께서 청리해 주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1999년 전, 내가 살고 있던 옆집에는 큰 찻집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늘 일부 사회단체가 와서 행사를 한다. 한 번은 무슨 기공협회가 그 곳에서 행사를 했는데 큰 나팔소리가 들렸고 처음에는 소리가 너무 컸지만 좀 지나자 밖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존님께서 내가 교란 받을까봐 나의 귀를 봉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점심 12시 전, 그 행사가 끝나자 나는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 사존님께서 나를 도와 나쁜 물질을 제거해 주셨다

1996년 겨울, 사부님은 나의 몸속에 나쁜 것들을 피부 표면으로 밀어내 주셨다. 몸은 간지러워서 참기 힘들었고 여기저기 긁어서 남긴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원래는 좋은 일이지만 나는 오랫동안 심성이 제고해 올라오지 못했다. 시간이 미뤄지자 나는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람마음이 움직여 약을 먹어서 간지러움을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중약, 서약, 민간요법, 민간처방을 모두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고비를 넘기지 못했더니 한 고비가 또 찾아 왔다. 온 얼굴에는 여드름 같은 종기가 났고 시력도 아주 빨리 떨어졌으며 칠판에 쓰여 있는 글자, 그림자, 그리고 책을 보는 것조차도 간신히 볼 수 있어서 생활에 아주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 수련하는지 잘 몰라서 너무 고민스러웠고 실망스러웠다. 어느 날, 나는 한 학생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부모님은 많은 물건을 사서 힘들어 보여 절반이 넘는 물건을 들어주었다. 나는 두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한 숨도 쉬지 않고 한참 걸어서 그녀의 집 문앞에 도착했다. 수련 전이라면 아마 체력이 약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나의 얼굴에 있는 여드름을 보고 걱정하는 표정으로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괜찮습니다. 연공해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무슨 공을 연마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파룬궁을 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녀는 듣고 나서 자신의 느낌을 함부로 말했다. 나는 당시 경각심이 생겼다. ‘자신이 잘못 닦으면 괜찮지만 절대로 자신이 잘못 닦아서 법을 파괴하면 안 되며 대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법에 안 좋은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몸에 있는 증상들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며 죽이든 살리던 마음대로 해라. 나는 너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어떻게 하는지 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나의 확고한 일념은 그 층차 법의 요구에 부합했기 때문에 사존님은 나의 몸에 있는 나쁜 것들을 전부 제거해 주셨다. 몸은 즉시 가렵지 않았고 얼굴의 여드름도 2,3일 안에 모두 사라졌으며 약간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시력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3. 생명 위험의 관건시기 사존님은 나의 목숨을 구해주셨다

2007년 초봄 어느 날 밤, 나는 화랑(畫廊)에서 퇴근해서 집으로 가려고 철도 터널을 건너려고 할 때, 뒤에서 벽돌 실은 트럭이 매우 큰 소리로 오고 있었다. 차 뒤에서는 코를 찌르는 시커먼 연기를 품어냈다. 나는 길옆으로 비켜서 트럭이 먼저 지나가게 하려고 그 트럭 뒤로 물러섰다. 그때 터널 입구를 재빨리 지나가던 트럭이 언덕에서 제어력이 떨어져 비틀어지면서 내가 타고 있던 자전거로 넘어졌다. 옆에는 터널 절벽이어서 피할 곳이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사고가 발생했다. 내 뒤에 오던 사람은 트럭이 나를 치는 것을 보고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을 뜨자 자신은 이미 자전거 앞에 넘어져 있었다. 나는 절벽을 잡고 일어섰는데 손과 발은 모두 움직일 수 있었다. 뒤로 돌아보니 자전거는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안장과 뒷좌석 부분은 부딪혀서 전부 박살났다. 나는 바로 알았다. ‘이것은 분명히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가려고 온 것이며 사존님이 나의 목숨을 구해주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때 뒤에서 지나가던 많은 행인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모두 내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밖에 살아 있었으니 내가 운이 좋고 복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 그 트럭기사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왔다. 놀래서 얼굴 안색이 노랬고, 온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의 외손자와 손자며느리는 뒤에서 걸어오다가 다가와서 보더니 놀라워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 몸에 상처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나는 손, 발을 움직이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평온하게 “나는 사부님이 보호해 주시니까 문제없다. 보거라 정말 머리털 하나도 다친데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손자며느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트럭기사 아저씨한테 ‘120’을 불러 병원에 가서 내상이 없는지 정밀 검사를 하자고 했다. 나는 사부님이 보호해 주시니 다친데 없다고 거절했다. 그들은 나의 고집을 이길 방법이 없기에 그만 두었다. 목숨을 앗으가려 했던 사고는 이렇게 사존님의 보호로 해결 되었다. 나는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 은혜에 감사한다!

4. 사존님께서는 진상자료를 담은 가방을 보안 검사에 걸리지 않게 하셨다

2010년 봄, 나는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모셔오기로 했다. 남편은 같이 안 간다고 했다. 나는 진상자료 가방을 몇 개나 들고 문밖을 나가기 전 사존께 나를 보호해 주시고 진상가방이 보안 검사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청을 올렸다. 나는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스양창(石羊腸)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려고 터미널에 들어가 표를 사려고 했다. 이때 한 젊은 총각이 다가오면서 친절하게 나의 앞을 가로 막더니 나더러 그들의 객차를 타라고 했다. 좌석 하나가 남아 있다고 하면서 친절하게 나의 가방들을 차 위에다 싫어줬다. 너무나도 교묘했다. 마치 그들은 내가 차타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고 심지어 좌석도 나에게 남겨준 것 같았다. 2012년 설날 때, 나는 남편 따라 남편의 고향 충칭(重慶)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아주 큰 배낭을 준비해서 진상자료를 가득 담았다. 나는 사존님께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기차역 검사원들의 보안 검사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청을 올렸다. 역전으로 들어갈 때, 나는 배낭을 등에 짊어졌는데 검사원은 마치 못 본 것처럼 나더러 들어가라고 했다. 충칭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자료는 이미 다 배포했는데 검사원은 나의 빈 배낭을 꼭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5. 손님은 제때에 그림을 가져가서 돈을 지불했다

2013년 말, 우리 집의 인터넷 임대기간이 만료되었다. 이튿날 우허우(武侯)구 전신국은 우리가 거주하고 있던 마당에서 행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에 사용했던 초고속인터넷이 너무 안 좋아서 전신으로 바꾸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는 단 1000위안 밖에 없었다. 나는 한번에 2년의 인터넷 임대료를 주고 싶었고, 게다가 생활비까지 필요하니 당연히 부족했다. 전에 나는 어느 손님에게 몇 천 위안의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전화로 가져가라고 알려 주었지만 오지 않았다. 이튿날, 나와 남편은 상의해서 어쩔 수 없이 1년의 비용만 내기로 했다. 점심이 지나서 나는 돈을 들고 마당에 설치된 전신국 부스에 가서 수속을 밟으려고 했다. 이때 전화가 왔다. 바로 그림을 주문했던 그 손님한테서 우리 마당 입구까지 왔다면서 나더러 그림을 문 입구까지 가져오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번에 2년의 인터넷 임대료를 낼 수 있었다.

문장발표: 2016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23/3353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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