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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정으로 수련생을 위한 것인가

-한 납치 사건에 대한 반성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이 납치당했다. 이 수련생은 정법의 각 항목 중 소모품의 구매, 컴퓨터의 설치와 유지 보수, 외지 진상 자료의 전달 등 중요한 일을 했다. 그는 항상 신용을 지켰으며 책임감이 강하고 과감하게 일을 담당하지만 떠벌이지 않았다. 매달 생활비는 2,3천위완(한화 약 30~50만원)인데 자신에게는 2,3백위안(한화 약 3~4만원) 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남은 돈을 대부분 진상에 사용했다. 이런 일들은 그녀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고 내가 이런 일들을 물어봐서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수련생이 정법이 곧 종결되고 사악도 아주 적은 정황 하에 납치당했다.

질투심의 위험

수련생이 납치당하기 전에 우리는 몇 번 길게 교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문제가 매우 엄중하고 수련의 길과 갈수록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처음 교류한 것은 아마 5월 말일 것이다. 5시간, 교류하는 중에 그의 질투심의 정도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욱 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가끔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아 그녀와 교류를 해보니 그녀는 법의 표준으로 수련생을 가늠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상에 관한 일은 그렇게 잘 처리하는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에게 “지금 수련하고 있는데 뭘 수련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라고 물었다. 전에 질투심의 문제라고 그에게 일깨워 줬으나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납치되기 한 달 전 인내심이 적어 아주 간단한 소프트웨어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준 적이 거의 없으며, 특히 컴퓨터의 기초가 없는 사람은 배우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배우는 사람을 질책해 그 배우는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평소에 늘 다른 사람을 힘들게 대했다. 나도 일을 좀 분담하려고 그에게 컴퓨터 기술을 좀 배우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거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자신 때문이고 그의 문제라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컴퓨터 기술을 배울 때 뜻밖에 그는 왜 이것을 배우냐고 화를 냈다. 확실하게 나에게 질투심으로 화를 낼 때에야 비로소 그가 질투심이 매우 깊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는 우리 지역에 기술 수련생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집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수련생을 의심하고, 수련생의 호의를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또 무의식중에 자신이 우리지역 일부 일들에 대해 잘 장악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지역에 컴퓨터 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수련생은 아직 부족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야 기술 수련생을 찾을 수 있었고 설령 아주 작은 문제라도 그들이 시간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속인의 질투심에 대한 이해, 즉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잘 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가 나는 사람이 있지만 웃는 사람이 없다’는 이 한마디는 질투심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수련 중 질투는 이것보다 광범위하다는 것을 체득했다. 예를 들어 불의에 용감히 맞서는데도 질투가 있다. 불의에 용감히 맞서는 것은 보기에는 정의롭고 확실히 바른 것이지만 그것은 악으로 악을 제압하는 것이고 안에 악의 마음이 들어 있으므로 그것 안에 질투가 있다.

사부님께서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개인적으로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악의이든 그것의 근본 원인은 다 질투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그와 긴 시간 교류한 후 그와 함께 발정념 했는데 나는 두 장면을 보았다. 그 중 하나가 매우 큰 악어 한 마리가 물을 떠나 기슭에 엎드려 있는데 몸에 상처가 있고 피를 흘리고 있는 광경이었다. 발정념을 다 한 후 내가 본 것을 그에게 말했고 아울러 나의 생각도 말해 주었다. 악어에 관한 그 광경에 대해 어느 면에서 당신은 법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상처가 있을까? 이제는 악어의 상처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았다. 바로 이번 납치였다. 대법제자가 법을 떠나면 사악은 손을 쓸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가 납치되기 전, 또 한 번 교류 중 나는 무의식중에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계속 이렇게 한다면 또 일이 생겨요.” 이 말을 한 후 나는 멍해졌다. 그러나 당시 이런 무서운 결과가 올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교류 후 그는 나를 두 번 찾아왔다. 그는 자신에게 매우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꼈으나 의식하지 못했다. 내가 뭘 말하든 그는 모두 귀담아 들었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말해 조금 깨달으려고 하면 그는 또 뿌리 깊은 관념에 끌려갔고 그 이유로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부정했다.

석자 얼음이 하루 추위에 언 것이 아니듯이, 질투의 나쁜 생각은 오랜 시간 동안 산처럼 누적되어 움직이기 어려운 관념이다. 그 본인이 소홀히 했고 방치해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집착이 커져버렸다. 어떤 때 어떤 면에서는 매우 주관적이고 이해할 수 없게 변했다. 마지막 교류가 끝난 후 일어나 고개를 들고 그를 보자 놀라서 숨이 막혔다. “잠깐만요” 라고 말한 후 좀 망설이다가 내가 본 장면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당신의 얼굴이 변형되었고 아주 무섭게 되었어요.” 후에 또 그에게 메일을 보내주었으며 다시 한 번 그녀의 문제를 교류했다. 그는 내게 감사하다고 했고 내가 한 말들을 생각했으며 만약 내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런 문제들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그가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사악이 손을 썼다.

납치당한 후 그는 일부 수련생들의 정보가 경찰들에게 누설 되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그는 자신이 수련생들의 정보를 누설해 그들이 박해 당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렇게 험악한 환경 중에 그렇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위급한 상황 중에 그는 대법 제자의 본성이 나타났다. 이것이야 말로 그의 원래 모습이고 명확한 생사관 앞에서 그는 먼저 타인의 안위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용감함으로 인해 큰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

주변에 이런 수련생이 아직 있고 문제를 엄중하게 만들며 심지어 거짓말로 그들의 이런 집착을 덮었다. 나는 이 사람들과 대면해서 말할 의의가 없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주 잘 연마한 물건이 있고 사람을 구하려는 매우 강한 마음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2], “질투심은 또 함께 도를 닦는 사람을 해칠 수 있다.”[3]라고 말씀하셨다. 엄중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 구세력의 배치와 박해를 대법제자는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부정하는가? 사람의 마음으로? 구세력과 같은 질투의 악으로? 그러면 누가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인가? 또 어떤 경지까지 걸어갈 수 있겠는가? 그들이 위험한 지경까지 가지나 않을까, 구세력의 심한 박해를 당하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이 다시 걸어오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이 일을 쓴 것이고 이런 문제가 있는 수련생은 계속 잘못을 고집하지 말고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지라고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 외에 수련의 일시적인 어리석음과 잘못으로 인해 정념으로 수련생을 구원하는 신심(信心)과 열정이 적어져서는 안 되고 구원을 늦추지 말고 포기해서는 안 되며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다해야 한다. 대법제자가 어찌 구세력의 박해에 휘둘릴 수 있는가? 그것은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수련생을 위하는 것인가

앞에서 서술한 이 수련생은 웃으며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만 저보고 뭐라고 해요.” 즉 그도 수련 중 문제를 지적 해주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뜻이다. 그 본인도 수련생의 문제가 보여도 앞에서 알려주는 것은 매우 적었다(그녀는 솔직하게 확실히 남의 미움을 살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한번은 자신이 박해 당해 교도소에 수감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안에서 그를 보았는데 나는 매우 화가 나서 그에게 “당신은 남의 문제를 보고서도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로 제가 여기로 왔잖아요.”라고 했다. 꿈에서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나는 더욱 화가 났다. 이 문제, 수련생의 문제를 봤을 때 제때에 지적해 주지 않거나 전혀 지적해 주지 않는다. 내가 보는 범위 내에서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매번 수련생이 납치당했을 때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변호사를 선임하는 수련생이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왜 이런 일을 수련생이 납치되기 전에 할 수 없는가? 왜 이전에 본 문제를 말해 주고 수련생이 이런 박해를 피하게 하지 않는가? 말해서 듣지 않는 것과는 다른 일이고, 말하는가 하지 않는가는 또 다른 일이다. 이번 수련생의 납치는 정말로 그가 말한 것처럼 그에게 그의 문제를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어찌 참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수련생이 그런 부담(負擔)을 가지고 걷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어찌 이런 집착이 그에게 더욱 큰 위험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을 보고 법공부만 하면 다 스스로 의식할 수 있다’는 것은 일부 수련생의 생각이다. 그 뜻은 상대방을 일깨워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말은 입발림 소리고 너무 선량하지 않다. 과연 그렇다면 법회를 열고 교류할 필요가 있겠는가? 수련인 스스로가 늘 자신을 이성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많은 경우 서로 선의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일깨워 줘야 한다.

사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문제를 지적해 주면 그는 자신을 볼 것이고 당시 깨닫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꼭 자신을 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쉽게 쌓이지 않는다.

수련생의 집착을 보고 그에게 지적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많은 수련생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일부 수련생은 남의 미움을 살까 봐 혹은 타인 앞에서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상대방의 부족을 지적해 주기 싫어하고 온화하고도 너그러우며 선량해 보이려고 한다. 사실, 그것은 다만 좋은 사람인 척 할 뿐이고 진정 좋은 사람이 아니며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이 문제에서 마음속 깊은 곳은 이기적인 것이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본 문제를 제때에 감히 말하며 상대방이 구세력이 강요한 불필요한 마난을 면하게 해야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단지 문제를 지적한 수련생의 말투를 강조한다. 그래도 우리가 선을 권하는데 방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선행 앞에서 발을 멈추는 이유는 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련 중의 사람은 신이 아니므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것이 있고 말을 할 때 순정하지 못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인식하고 연마해 없애야 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제3장 心性(씬씽) 수련’

문장발표: 2016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27/3335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