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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법제자 “나는 꿋꿋하게 나아갈 것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시골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염을 앓던 아버지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셨다. 사실 그 당시에는 연공만 하고 책을 보지 않으셨다. 나와 언니를 공부시키기 위해 아버지는 마을 외곽에 양계장을 짓고 닭을 키운 지 7년이 지났다. 그 동안 가정에 갈등이 생겼고 닭을 기를 때 좋고 나쁜 일들로 인해 온 가족이 열악한 환경에 처했다.

1. 대법과 다시 인연을 맺다

2005년에 가정의 대들보인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두통이 시작되면 계속 머리를 벽에 들이받으셨고, 중노동은 못하고 매주 링거를 맞으셨다. 사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이 진짜로 혈압이 높은 게 아니라 일종 유전적인 고질병이라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거기에다 나까지 평소에 잔병치레를 계속해서 가정은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이후에 한 대법제자가 아버지에게 다시 대법을 수련할 것을 건의했고 그 후 우리 집에는 기적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연공한지 며칠 되지 않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셨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우리도 대법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우리는 7년간 우리가 어둠 속에 빠져있었음을 깊이 느꼈다.

이어진 수련에서 우리는 사부님 말씀대로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일을 처리해 가정이 엄청나게 변했다. 어머니의 조급한 성격은 아주 온화해지셨으며, 나는 방학에 부모님과 함께 법을 배우고 연공을 해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비록 가정에 모순이 생긴다 해도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잘못했는지 찾아서 빨리 평화적으로 해결했다. 어머니는 대법을 배운 후 먼저 할머니께 사과해 수년간의 고부갈등도 해결됐다.

2. 시련 중에서 연마하다

2008년, 부모님께서 납치당했을 때 우리 집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값나가는 물건을 모두 빼앗겼는데 당시 나는 고2였다. 나는 줄곧 응석받이로 자랐지만 갑작스런 박해에도 울지 않았고 조용히 침대에 앉아 집을 둘러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강해졌고 독립을 배웠으며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간하게 됐다.

우리 집의 일이 단번에 온 마을에서 뉴스 초점이 됐다. 어떤 사람은 고의로 회피했고, 어떤 사람은 멸시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동정했다. 그 일체를 마주해 나는 대담하게 거리를 걸었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웃어른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속으로 묵묵히 자신에게 부모님은 사람들을 구하는 대법제자이고 잘못이 없다고 알려주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학우들이 영화 보고 여행을 가며 생일 파티 등을 갈 때 나는 우리 가족은 대법제자이고 부모님은 이로 인해 박해를 받고 있었기에 부러워하지 않았다.

당시 큰 이모는 갓 수련의 길에 들어섰는데 수련을 통해 40여 년간 피우던 담배를 힘들이지 않고 끊으셨다. 몸에 질병도 치료하지 않고 다 없어졌다. 큰 이모가 와서 나를 보살폈고 나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주셨다. 큰 외삼촌(속인)은 나를 보면 “너는 학교를 잘 다니고 잘해서 너의 엄마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마라”라고 하셨다. 사촌언니도 나에게 “이렇게 어린데 다음 생의 무엇도 믿지 말고 엄마 아빠 말을 듣지 마라.”라고 했다. 나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집은 법을 얻기 전에 어머니는 늘 화를 냈고 아버지는 고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나는 걸핏하면 병에 걸렸다. 심지어 학교를 그만둘 뻔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부모님은 아주 상냥해졌고 아버지의 고질병은 치료도 받지 않고 다 없어졌으며 나도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대법은 우리에게 건강한 몸을 주었고 마음이 가벼워지게 했으며 삶이 아름다워지게 했다. 현재 대법이 나쁜 사람들에게 비방당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동요할 수 있겠는가?

이후에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여전히 꿋꿋이 수련하셨으며 이웃들과 친척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은 서서히 명백해졌다.

처음에는 박해가 두려워서 점점 회피했고 부당한 대우를 그저 감당했는데, 수련의 길이 아주 긴장되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후에 내가 대법을 정확한 위치에 놓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법제자로서 잘못이 없는데 우리가 왜 박해를 반대할 수 없는가?

2014년 2월, 부모님께서는 또 납치되셨고 다시 가택수색을 당하셨다. 어머니는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불법적으로 감금됐다. 나와 어머니는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우리의 잘못을 자세히 찾는 동시에 어쨌거나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나는 국가보안대 대장 OO에게 전화를 걸어 예의바르게 “할아버지”(우리 여기서는 아버지보다 이상인 사람들을 이렇게 부름. 그가 부모님과 나이가 비슷하지만 나는 대법제자로서 예의를 알기 때문임)라고 부르면서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고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효도하며 이웃에게 관대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아버지가 법을 위반했다고 딱 잘라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이후에 나와 언니, 형부는 함께 공안국에 가서 그에게 전화했지만 자리에 없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해도 소용없으니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조금 있다가 사무실에서 나오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하니 그는 볼일이 있다면서 차에 탔다. 나는 그가 숨으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알려주는데 우리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당신과 끝까지 싸울 거예요.”라고 하자 그는 차갑게 쏘아보면서 “너도 수련하지, 너 기다려, 너 기다려”라고 하면서 거들먹거리며 가버렸다.

우리는 또 구치소로 갔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와 소통하면서 그들이 대법제자에게 ‘사이비교를 이용해 법률을 파괴한 죄’를 뒤집어씌운 게 전혀 죄가 성립되지 않음을 알게 됐다. 대법제자는 어떠한 법도 파괴하지 않았고 공산당이야 말로 사이비교다. 처음에 변호사는 공안국에 가서 법률위탁 수속을 하자 국가보안대 사람들은 아주 두려워 몰래 변호사에게 “당신이 어떻게 해도 좋은데 우리를 기소하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했다. 이후에 또 검찰원에 가서 법원수속을 밟아 검찰관과 법관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이것은 우리 지역에서 처음이었다. 또 구치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자 구치소 관계자들이 변호사를 백방으로 막았지만 막지 못했다. 교도관들마저 모두 “파룬궁이 감히 변호사를 청하다니?!”라고 의논이 분분했다.

법정에 선 네 명의 변호사는 이치에 맞는 말을 예리하고 엄숙하게 했으며 기품 있고 위엄과 정의가 넘쳐 법관과 검찰관들은 할 말이 없었다. 법정 밖에는 많은 수련생들이 줄곧 발정념을 하자 다른 공간에서 바른 것과 사악한 것 사이에 대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법정의 법관, 검찰관, 사법경찰들은 모두 그 과정에서 진상을 들었다. “세인이야말로 피해 입은 어린 양(羊) 나는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신의 길 위에 있거니”[1] 결과가 어떻든 중생들이 진상을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길을 걸으면서 나는 파룬따파는 정법임을 우리 마음이 알 뿐만 아니라, 해내야 하고 세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됐다.

2016년 6월, 우리 온 가족은 원흉 장쩌민 고소장을 정식으로 최고 검찰원과 최고 법원에 부쳤다.

3. 근무하면서 대법수련자의 이미지를 펼쳐 보이다

수련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에 대한 이해도 갈수록 깊어졌다. 특히 진상을 알릴 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될수록 세인들과 소통했고 대법제자들이 그들을 존중하고 상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당연히 이 부분은 수련상태의 자연스러움이다.)

한번은 내가 회사 사장에게 진상을 알렸을 때, 사장은 학력이 아주 높고 건축업계에서 작은 성과도 있는데다 늘 출국해 견식이 풍부해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했다. 나는 파룬궁은 무엇인가에서부터 말했고 그녀도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많은 사람들이 의사, 학자, 간부, 군관 등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장쩌민이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하고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고문과 생체 장기적출을 말하자 상당히 놀랐다. 동시에 사장도 아주 많은 질문을 해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질문을 했지만 나는 모두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견해도 경청했다.(그녀는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라서 나는 예절과 태도에 아주 주의했다.) 이후에 시간이 너무 늦었지만 그녀는 아주 기뻐했다. 그래서 내가 공산당의 일체 조직에서 탈퇴할 것을 권하자 “우리 둘이 시간을 내 다시 이야기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인연 있는 사람은 사부님께서 장악하고 계시지만 나는 있는 힘껏 잘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이 그녀에게는 파룬궁수련자의 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이고 대법에 대한 태도에 영향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회사가 이전하게 되어 사무실을 뺄 때 동료가 중개업체에다 사무실 청소를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중개업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에 그들은 우리가 청소를 하지 않았고 수도꼭지도 고장 나게 했다면서 계약금에서 1700위안을 공제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동료가 중개업자에게 따지러 갔다가 쫓겨났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이 격분해 직접 가려고 하면서 나에게 “만약 내가 가도 그들의 태도가 여전하면 너는 거기에 남아 사무실을 임대하는 사람이 오면 어떠어떠하게 불합리한지 말하며 그들과 싸우고 훼방을 놔라”고 했다.

듣고 나서 나는 아주 황당했다. 그것은 분명히 나보고 앉아서 버티라는 게 아닌가? 나는 대법제자다. 물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해야 하고 절대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후에 나는 사장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면 회사의 면모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또, 상대방을 화나게 해서 우리 때문에 그들이 장사를 망치면 나머지 계약금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누구에게나 좋은 점이 없습니다.” 사장은 “그럼 무슨 방법이 있니?”라고 물었다. 나는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진짜 우리가 어디에서 잘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돈을 공제하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가서 사정을 똑똑히 알리거나 혹은 그들의 불편을 덜어줄 수 있잖아요. 만약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의 언행이 도리가 있게 돼요.”라고 말했다. 사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너는 내가 화를 내지 못하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오후에 나는 사장과 함께 중개회사에 갔더니 그들의 태도는 과연 아주 좋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 억지를 부려서 사장을 아주 화나게 했다. 결국 아무 말도 없이 돈을 공제하자 사장은 화가 나서 투덜댔다. “보아하니 정말로 경고장을 발송해야겠다. 이럴 때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의 관대하고 자비로운 얼굴이 떠올랐고 사장에게 “돈만 놓고 말하자면 내 생각에 사장님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화를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를 내면 몸에 좋지 않은데 화를 낼 가치가 있나요? 우리는 이 가치 없는 일에 집착하지 말죠.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사정은 달라집니다.”라고 말했다. 이후에 중개사 사장이 나서서 문제를 똑똑히 설명했는데 아주 상냥한 태도였으며 그들도 어렵다고 말했다. 여전히 돈을 공제하고 주었지만 사장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퇴근해 돌아올 때 사장은 기뻐하면서 “네가 큰 역할을 했어”라고 말했다.

만약 파룬따파 표준의 지도가 없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가도록 구도하셔서 우리는 신의 길을 걷는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했으니 우리는 위험의 변두리에 있는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

나는 이 길을 걸어왔고 줄곧 꿋꿋이 걸어갈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3-신이 나에게 그대 위해 동분서주하라네’

문장발표: 2016년 9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13/334443.html